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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2학년 2반, 형님반이 되어서 그런가, 부쩍 커버린 아롱이가 일찍이 집을 나선다.
“엄마, 갖다올께요~”
시계를 본다. 8시 3분. 작년 요맘때였으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을 시간이다. 길을 건너는 아롱이를 바라본다. 저 앞에 걸어가는 친구를 발견하고는 아롱이가 또 뛰어간다. 아롱이는 아롱이의 생활 속으로 뛰어간다. 그리고, 나는 아침 설거지를 미뤄두고, 책을 펼친다. (물론, ‘설거지를 미뤄두고‘와 ’책을 펼친다’ 사이에는 약간의(?) 뉴스 확인과 인터넷 검색 그리고 애니팽 3-4판이 자리한다.)
나쓰메 소세키를 큰 맘 먹고 구매한 후에 제일 먼저 손에 든 책은 3권 [풀베개]이다. 열린책들 판으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반 정도 읽었는데, 그래도 이 책이 먼저 읽고 싶었다. 알라딘 어느 분 서재에서 읽었던 이런 구절들 때문이었다.
산길을 오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지(理智)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발목이 잡힌다. 자신의 의지만 주장하면 옹색해진다.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살기 힘든 것이 심해지면 살기 편한 곳으로 옮겨 가고 싶어진다. 어디로 옮겨 가도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가 태어나고 그림이 생겨난다. (15쪽)
누구나 아는 이야기, 이렇게도 쉬운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이지(理智)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발목이 잡힌다. 아,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이 세상에 살게 된 지 20년이 되어서야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임을 알았다. 25년이 되어서야 명암이 표리인 것처럼 해가 드는 곳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른이 된 오늘날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쁨이 깊을 때 근심 또한 깊고, 즐거움이 클수록 괴로움도 크다. (16쪽)
서른을 넘어 마흔의 문턱까지 달려온 이 즈음, 기쁨이 깊을 때 근심 또한 깊고, 즐거움이 클수록 괴로움이 더한다는 소세키의 말이 담담하게, 그리고 깊이있게 다가온다.
책을 펼치고, 책을 만지고, 삽화를 보고, 소세키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책 속에서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이런 멋진 구절을 읽게 될 때, 나는 생각한다. 너무 ‘호사스럽지 않은가’. 내 생활이 너무 호화롭지 않은가. 내 삶이 너무 사치스럽지 않은가.
조용한 아침, 혼자 소세키를 읽으며 하는 생각이다.
나는 기차가 분별없이 모든 사람을 화물과 마찬가지로 알고 맹렬히 달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객차 안에 갇혀 있는 개인과, 개인의 개성에 털끝만치의 주의조차 주지 않는 이 쇠바퀴를 비교하며, 위험하다, 위험해, 하고 주의를 주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문명은 이 위험이 코를 찌를 정도로 충만해 있다. 앞을 전혀 내다볼 수 없는 상태에서 분별없이 함부로 날뛰는 기차는 위험한 표본 가운데 하나다. (182-3쪽)
사이다처럼 시원하고, 냉수처럼 깔끔한 소세키의 문장이 현대 문명을 비판한다. 기차를 보며 말한다. 이것은 위험하다고 말이다. 위험하다고 주의를 주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말이다. 소세키가 보았던 기차보다 2배, 3배, 아니 10배는 빨라진 기차를 생각하며 나도 말한다. 위험하다, 위험해.
아래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락이다. 나는 이 단락을 읽으면서, 소세키의 작품을 그리고 소세키를 더욱 좋아하게 됐다.
“그럼 뭐가 쓰여 있는데요?”
“글쎄요.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호호호호. 그래서 공부하시는 거예요?”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책상에 이렇게 펼치고, 펼쳐진 데를 적당히 읽고 있는 겁니다.”
“그래, 재미있나요?”
“그게 재미있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읽은들, 끝에서부터 읽은들, 적당한 데를 적당히 읽은들 괜찮은 거 아닌가요? 그리 이상하게 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122-3쪽)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나는 책상에, 아니, 식탁에 이렇게 책을 펼친다. 아무데나 편다. 아무데나 펴서 적당히 읽는다. 공부하는 게 아니다. 나는 그냥 아무데나 펴서 적당히 읽는다.
이게 내 일이다.
맞다, 나는 호사스럽다. 나는 너무나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내 삶은, 너무나 사치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