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와 딸
요즘 들어 딸롱이와 같이 읽는 책이 부쩍 많아졌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서도, 딸롱이의 책 읽는 수준이 높아서라기보다는 내 수준이 낮아서이다.
처음에는 딸롱이 독서모임에서 <엄마 발표 시간>을 준비하다가 그렇게 됐는데, 요즘엔 꼭 그렇지만도 않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내가 시작한 책이다. 도서관에서 1권을 빌려와, 편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만화의 힘이라고나 할까. 조금 어려운 내용이더라도 만화이기에 만만히 보고, 시작할 수 있다. 만화 작가님들, 죄송합니당^^), 그 다음에는 신랑이 읽기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딸롱이가 합류했다. 나는 대부분 1번 읽고 마는데, 딸롱이는 2번은 기본, 3번씩 읽은 책도 꽤 여러 권이다.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역시 내가 추천한 책이다. 위대한 개츠비 구매시에, 서비스로 받게 된 책인데, 친구 만나러 가는 길에 들고 나갔다가, 친구 만나는 재미만큼 큰 재미를 안겨 주었다. 그날 밤, 딸롱이에게 지나가는 말로 앞부분을 살짝 이야기해 주었는데, 많이 좋아하며 자기도 읽겠다고 했다.
이 책은 딸롱이가 먼저 읽은 책이다.
2학년 때던가, 고전도 읽으면 좋은데, 하며 도서관에서 <심청전>을 내밀었다. 조금 읽어보던 딸롱이는 이 시리즈가 꽂혀 있는 자리로 가서 목록을 살펴보고는 <춘향전>을 대출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렇게나 열씸히 <춘향전>을 읽어댔다. 내가 도서관에서 슬쩍 봤을때는, 2학년인데 괜찮을까?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게 웬걸, 초등 2학년 어린이는 ‘어화 둥둥 내 사랑’을 그렇게나 좋아할 수 없었다.
저번주에는 같은 시리즈 중, <장화홍련전>을 집어들더니, 한 자리에 그림처럼 앉아 열독을 해댄다. 내 책이 있었지만, 나도 그 책을 집어든다. 생각보다 재미있다. 딸애가 조용히 속삭인다.
“거봐, 재미있지?”
2. 더울 땐 역시 스릴러
“누, 누구냐? 사람이냐 귀신이냐!”
이대로 물러날 순 없었다. 정동호는 이를 악물고 고함을 질렀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림자처럼 형체가 불분명한 귀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정동호는 두 눈을 부릅뜨고 귀신을 노려보았다.
“아니, 너는?”
귀신은 어여쁜 여인이었다. 연두색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은 자태가 마치 꽃봉오리 같았지만, 기운은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한여름인데도 소름이 돋을 만큼 냉기가 흘렀다. 여인은 정동호 앞에 서서 공손히 절을 올렸다. (155쪽)
찾아온 여인은 홍련이었다. 언니의 어이없는 죽음을 대하고, 밤마다 연못 주위를 떠돌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원통함을 풀기위해 관아를 찾은 혼령이었다.
장화와 홍련의 억울한 사정이야 백분 이해하지만, 이들의 등장에 모골이 송연해 이 세상을 하직한 관아의 새 부사들도 안 됐다. 정동호처럼 심기일전했어야 하건만.
<장화홍련전>에서 제일 서늘한 이야기는 계모 허씨의 행적들이다. 사람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오직 자기 자식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 대해 질투심이 폭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사실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울 땐, 역시 스릴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