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을 읽기 시작하면서 많이 망설였다. 작품 뒤의 해설을 읽을까? 말까? 읽을까? 말까? 결국에는 읽지 않고 2권을 마쳤는데, 해설을 미리 읽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2권을 마쳤다는데 큰 의의를 둔다.
그 대목에서 시모니니는 비로소 탁실의 부탁을 받고 위고와 블랑의 편지를 날조했던 사실을 기억해 냈다. 보아하니 탁실은 그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 거짓말을 다반사로 하다 보니 자기 자신을 속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그는 마치 그 편지들이 진짜인 것처럼 진심의 빛이 어린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513쪽)
거짓말을 계속 하다보니, 자기가 어디까지 거짓말을 한 건지도 모르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주인공도 거짓말을 하고 있고, 기타 등장인물들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 가공의 인물 시모니니도 거짓말을 하고 있고,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들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 모두 다 거짓말쟁이다.
시모니니는 거기에서 빅토르 위고와 마주친 적도 있었다. 그건 위고가 사망하기 조금 전의 일이었는데, 살아 생전에 이미 하나의 기념비처럼 우뚝한 존재가 되어 있던 그는 나이와 상원 의원의 직무와 뇌 충혈의 후유증 때문에 매우 지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583쪽)
매우 지친 기색의 ‘빅토르 위고’의 다섯권짜리 소설을 읽어오다가 급하게 ‘프라하’로 넘어와버린 본인은 ‘위고’의 등장에 적잖이 놀라고 말았다. 그래, 위고는 실제 인물이었지, 하면서 말이다.
작품 내 여러 사건 중, 그래도 조금 알고 있는 사건은 ‘드레퓌스 사건’이다.
『이미 맞춤한 후보자를 물색해 두었습니다. 드레퓌스 대위라는 자인데, 당연히 알자스 출신이고 수습 요원으로 방첩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부유한 여자하고 결혼한 데다 호색한의 면모를 보이고 있어서 동료들이 하나같이 그를 아니꼽게 여기죠...』 (636쪽)
책을 읽다가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도 해 보았다. 늦은 나이에 웬 공부?
<드레퓌스 사건>
유대인 출신의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 대사관에 군사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12년만에 무죄로 판결된 사건.
독일과의 전쟁(1870~1871)에서 지고 반독일 감정이 잔재하고 있던 1894년 10월, 프랑스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유대인 출신의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Dreyfus, Alfred: 1859-1935)가 독일 대사관에 군사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비공개로 진행된 군법 회의에서 그는 별다른 물증이 제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당시 민족주의가 발흥하면서 유럽 사회에 팽배해진 반유대주의라는 사회적 편견이 드레퓌스를 스파이 사건의 주범으로 몰아간 것이다.
이후 프랑스 군 수뇌부는 사건의 진범이 드레퓌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확증을 얻었으나 진상을 밝히길 거부하고, 오히려 사건을 은폐시키려 했다. 그러자 드레퓌스의 결백을 믿고 재심을 요구하던 가족은 1897년 11월 진범으로 알려진 헝가리 태생의 에스테라지 소령을 고발한다. 하지만 프랑스 군부는 형식적인 신문과 재판을 거쳐 그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석방함으로써, 이 사건의 진상은 묻혀지는 듯 했다.
그런데 재판 결과가 공개된 직후인 1898년 1월 13일, 소설가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드레퓌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프랑스 군부의 의혹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설을 <로로르(L'Aurore·여명)>지(紙)에 게재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에밀 졸라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형식의 이 글에서 드레퓌스의 결백과 에스테라지의 유죄를 조목조목 따진 뒤, "드레퓌스는 정의롭지 못한 힘에 의해 자유를 빼앗긴 평범한 시민입니다. 전 프랑스 앞에서, 전 세계 앞에서 나는 그가 무죄라고 맹세합니다. 나의 40년 간의 역작, 그 역작으로 얻은 권위와 명성을 걸겠습니다. 그가 무죄가 아니라면 내 전 작품이 소멸돼도 좋습니다." 라고 했다. 그러나 졸라는 군법회의를 중상모략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영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이 사건 이후 '드레퓌스주의자'의 반정부 투쟁이 전개됐으며 내각은 사실상 해체됐다. 그리고 드레퓌스 사건 발생 12년 만인 1906년 7월 12일, 프랑스 최고재판소는 드레퓌스 재심에서 그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네이버, 시사용어사전, 2005>
작품 뒤, 옮긴이의 설명이 유익했다.
다시 말하면, 허구와 사실이 뒤섞일 때 나타나는 독자들의 혼동과 오해, 악을 고발하기 위해 악인의 관점을 취하는 전략의 효과와 부작용, 거짓을 해부하기 위해 그 형성 과정을 재구성하는 일의 위험성, 독자가 작가의 의도에 반하여 작품을 해설할 가능성 등 많은 문제가 이 논쟁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옮긴이의 말, 772-3쪽)
무척 재미있었던 건 확실하다. ‘시모니니‘라는 인물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매우 컸다. 하지만, ‘움베르트 에코’라는 세기의 철학자, 가장 권위있는 기호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그리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소설가가 마련한 한 편의 거대한 세계를 누비기에는 나는 너무나 외소했다. 거인 나라의 ‘걸리버’라고나 할까. 나의 무식함을 확인하는 적절하고, 그러면서도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