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는 겨우 중학교 3학년과 1학년인 두 아들이 중간, 기말고사를 볼 때면 아무 것도 안 하려고 한다. 심지어 아이들이 시험을 보러 학교에 가 있는 오전에도 나랑 놀아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시험 보는 동안 자기만 신나게 놀면 미안하고 혹시나 부정 탈지도 모른다는 거다. ... 자신을 고통에 빠뜨리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혹시 보상받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진다. (43쪽)
그래서, 아들이 시험보는 시간에 놀지 않고 인고의 시간을 보낸 끝에, 아들이 시험을 잘 보고,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야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 아이가 내 기대에 못 미쳤을 때, 원망과 분노는 그 사랑하는 아들에게 쏟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착각은 자신은 웬만하면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 자신이 착각하는 것보다 덜 착각한다고 믿는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훨씬 더 착각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믿음은 가장 치명적인 착각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순진한 사실주의 native realism'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자신은 객관적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신중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착각하거나 편향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이러한 착각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타인을 비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66쪽)
자신이 실제 착각하는 것보다 덜 착각한다는 착각, 자기가 더 객관적이라는 착각, 자기는 신중하게 판단했기 때문에 착각할 가능성이 다른 사람들보다는 적다라는 착각이 착각 중의 착각이요, 착각의 대표자다.
성적표를 받아오는 날 아내와 둘째아들 순영이의 대화를 듣다 보면 내 귀를 의심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아내는 성적표를 보자마자 물어본다.
“너희 반 1등은 누구니? 몇 점이니?”
“(순영이보다 평소 공부 잘하는) 아무개는 몇 점이니?”
이러한 질문에 대한 순영의 대답은 한결같다.
“우리 반 꼴등이 요번에 아무개야”, “누구는 수학에서 40점 받았대”, “이번 시험이 모두들 이상하대. 문제가 거지같아”.
아내와 순영이가 주고 받는 질물과 대답은 ‘사오정 놀이’처럼 엉뚱하지만 인간적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무언가를 더 잘 하고 싶은 ‘향상의 동기 need for improvement'가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과 비교한다. 보통 비슷한 분야에서 자신보다 좀 더 잘하는 사람과 상향적 비교 upward comparison를 함으로써,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는 고민하는 것이다. 순영이가 조금이라도 더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아내는 항상 더 잘하는, 더 나은 친구들과 비교하려 든다.
그래서 순영이는 자기보다 더 못한 친구들 이야기를 계속한다. 인간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아주 기본적이고 강력한 동기를 갖고 있다. 이를 ‘자기고양동기 need for self-enhancement'라 한다. 그래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과 하향 비교 downward comparison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엄마에게 자신의 성적이 그리 나쁘지 않음을, 그리고 자신이 그리 못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바로 자기보다 못한 친구들과의 하향비교다. (89쪽)
정말, 진짜로, 엄격하게 판단해서....
우리 딸이 단원평가 시험지를 집에 들고 왔을 때, 나와 우리 딸의 대화 내용과 똑같다. 완전 똑같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나는 “100점 맞은 친구도 있어?”하고 물어본다는 정도. 신랑은 기겁을 했다. 예상 밖의 시험지를 들고와서, 15점 맞은 친구 얘기를 하는 딸애가 아니라, “100점 맞은 친구도 있어?” 하는 나를 보면서 말이다. 우리 신랑은 어쩜 그리 초연하신지, 그 예상 밖의 시험지를 보고도, “아, 우리 딸 참~~~ 잘했네.” 하신다. 그 표정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진심과 사랑이라고나 할까.
착각, 난 지금도 착각에 빠져있다.
내 글은 재미있다라는 착각, 누군가 내 페이퍼를 재밌게 읽으리라는 착각, 누군가는 추천을 꾸욱! 누르리라는 착각. 착각. 지금 나는 제 정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