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였다. 아니다, 지지난 주였다.

건강 검진 결과지, 정확히는 채용 신체검사서가 필요하다 해서 검진을 받았다. 나는 이제 늙었나 봐.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안 마시는 게 너무 힘드네. 빛의 속도로 이어지는 검진 과정. 키 재고, 펑! 흉부 사진 찍고, 채혈까지 마치고 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체중도 좋으시고(나는 키가 커서 체중이 좀 나가도 괜찮은 편에 속한다), 혈압도 괜찮으시네요. 이제 막 의자에 앉으려는 내게 의사쌤이 벌써 2문장을 말했고. 세 번째 문장은 의문문이다.

운동은, 운동은 뭐 하세요? 아, 운동은. 운동은 안 하세요? 이제 막 자리에 앉아 대답한다. 네, 안 해요. 전혀? 한 가지도 안 하세요? (요가 매트 펴놓고 요가 15분 하고 누워서 20분 핸드폰 하는 걸 차마 운동이라고 부를 수 없어서) ... 네. 아~~ 하루에 5,000보도 안 걸으세요? 네. 못 걷는 날이 많아요. 흠. 저녁에 남편이랑 전철역까지 걸어가기는 하는데... (반가운 눈빛) 오? 15분 정도 걸려요. 아이고, 15분 가지고는.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서는 좀 걸으셔야 돼요. 햇볕 좋을 때 밖을 좀 걸으세요. 근데, 걷기랑 골다공증이랑 무슨 상관이 있나요? (나를 설득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나는 그게 궁금하고요. 죄송합니다, 바쁘신데. 챗지피티에게 물어볼 것을) 골다공증에는 걷기가 제일 좋아요. 자주자주 걸으세요. 네에~~

제목이 『의자의 배신』인지라 (원제는 『Primate Change: How the world we made is remaking us』), 부제까지 엮어서 예상하면 현대의 편리함이 인류에 미친 해악을 고발하는 내용일 테고, 그래서 결론은 '의자에 앉지 말고 더 많이 몸을 움직여라!'일 거라 예상되는데, 저자는 내 짐작보다 훨씬 더 멀리, 더 옛날로 이동하고 계시다. <척삭동물> 챕터에서 우리에게 척추가 있다는 걸 야무지게 언급해 주시었고, 이제 막 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발, 우리가 종으로서 성공을 거두는 데 몸의 많은 부분 중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발, 바로 그 발.

하지만, 내가 인덱스한 부분은 바로 여기다.

발가락에서 무릎과 엉덩이까지, 관절을 거쳐 골반과 가슴을 지나 어깨를 돌아 팔을 거쳐 손가락까지, 구부러진 척추를 따라 기형적으로 변한 얼굴 전체와 푹 꺼진 정수리에 이르기까지, 변화는 우리 몸 전체에 나타난다. 이런 변화를 읽어 내려면 암호를 풀 열쇠만 구하면 된다. (27쪽)

예전에 일어났던 변화, 지느러미에서 발가락으로의 변환을 이뤄냈던 이 종이, 이 종의 후손들이 또 다른 부분으로의 변화를, 진화를 멈출 텐가. 생태적 환경으로의 적응뿐 아니라, 순수하게 '문화적(?)'인 이유에서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이 종이, 이 종의 후손들이 스마트 안경을 쓸 것 같고, 날개를 달 것 같고, 거기에 더해 또 무언가 변화를 가져올 것 같은데... 그럴 것 같은데. 발가락 에피소드에서도 생각나는 사이보그와 휴먼노이드. 발달하는 기술의 결과로 인공 장기를 더 많이 부착하게 된 사이보그와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휴먼노이드의 만남. 이들의 이상한 동거의 결말에 대해 1초 정도 생각해 보고. 나는 항상 생각한다, 궁금하니까. 자주 생각해 본다.

앗! 찾았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찾던 문장은 바로 이런 거였다.

볼프의 법칙Wolff's Law에 따르면 사람의 뼈는 하중에 따라 오랜 시간에 걸쳐 강해지거나 약해진다. 뼈는 충격을 받거나 반복적으로 하중을 받으면 더 강해진다. 뼈가 약해지는 경우는 밀도가 높은 골•격의 경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굳이 칼로리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우리 몸이 판단할 때다. (86쪽)

걷기가 골다공증에 좋은 이유. 그랬다. 그랬던 것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근손실이 일어나고, 적당한 무게가 얹히지 않은 뼈는 약해진다. 구멍이 숭숭. 무서븐 그 어떤 미래여. 내가 원했던 건 바로 이런 문장이었다. 늦게 찾아온 섬뜩한 진리. 운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이 단순함. 사람들의 주장과 설득을 모두 무위로 만들어버리는 이 강렬함. 하중을 받은 뼈는 더 강해지고, 경도를 유지할 필요가 없는 뼈는 약해진다. 걷고, 걷고, 또 걷자.


내가 아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중에 여러 대륙과 도시에서 가장 많이 걷고 뛰는 사람인 내 친구는 언제나 걷기와 뛰기에 진심이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던 그녀가 마침내 한국에 돌아왔고, 그녀의 선물도 다른 선물들처럼 잘도 도착했다.



알라딘 친구들에게서 책선물은 여름날의 생수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토머스 하디에게는 약간의 결심이 필요해 보인다. 소금계의 에르메스 LOJA do SAL 소금과 짙은 파랑의 책커버가 진지하게 도전을 요청한다.

동생이 3년 만에 호주에서 왔다. 이것저것 할 일도 도와주고, 엄마, 아빠하고만 지내면 심심할 것 같아 아직 출근하지 않는 1인이 매일 친정으로 출퇴근한다. 밤이면 피곤해서 책을 펴두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BTS 공연은 못 봐도, 광화문 한 번 둘러보러 나가야겠다 하니 온 가족이 뜯어말린다. 여기저기 교통 통제가 된다고 해서 집을 못 찾아올까 걱정하는 모양새다. 낮에 급한 일만 보고 대기하다가 8시부터 라이브 공연 봐야겠다. 딱 한 시간만 보고 책 읽어야지. 결심을 한다. 항상 그렇지만, 일단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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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6-03-21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많이 걸으셨네요! 제가 읽은 책에도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게 흡연이랑 같다고. 많이 많이 걸으세요~

단발머리 2026-03-21 12:55   좋아요 1 | URL
오늘이 아니라 ㅋㅋㅋㅋㅋㅋ 죄송요. 화요일 기록입니다. 나름 기록이 높은 것으로다가 골라보았습니다.
많이 많이 걸을게요, 햇살과함께님! 오늘의 결심입니다^^

망고 2026-03-21 1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 햇빛에서 산책할 수 있는 계절이라 좋아요 비타민D와 함께 걷기 운동으로 튼튼해집시다😄

단발머리 2026-03-21 12:57   좋아요 2 | URL
네, 망고님~~ 그래야겠어요.
사실 어제 비타민 D를 구매하였답니다. 하지만, 올해는(아니, 오늘부터) 걷기 운동으로 더 튼튼해지려고요.
뽜야, 화이팅, 아자아자!

수이 2026-03-21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끼리는 하루 평균 30km를 걸어요. 건기가 되어 물과 풀을 쉬이 구하기 어려워지면 100km. 그만큼 걷는 이들인지라 동물원에 그들을 가둬놓는다는 것은 그들의 영혼을 죽이는 짓이고. 그러니까 아시겠죠? 제 말의 요지를 😜

단발머리 2026-03-21 13:34   좋아요 0 | URL
세상에 ㅋㅋㅋㅋㅋㅋ코끼리 많이 먹는다고 놀렸는데 ㅋㅋㅋㅋㅋㅋㅋ 많이 걷네요, 코끼리.
귀에 딱지가 앉도록 외워 주신 귀한 말씀, 마음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일단 올해는 매일 5,000보가 제 목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