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아롱이가 모든 학생이 필히 가입해야 하는 특별활동반에 들어갔는데, 원하던 반(바둑반)에 들어가지 못하고 과학실험반에 가게 됐다. 외출하고 돌아오니 엄마, 내가 가려던 반이 마감됐어요, 3분만에, 하길래, 원래 1분 안에 마감이야, 라고 속으로만 말했다. 원치 않은 과학실험 반에서는 하필이면 손이 많이 가는 생태기둥 테라륨 만들기가 과제였다. 1.5리터 패트병이랑 고운 흙은 개인이 준비하고 씨앗과 자갈, 물풀, 송사리 3마리는 학교에서 준비해줬다. 집으로 오는 중에 한 마리가 죽었다. 굿바이, 송사리.
뚜껑을 양파망 같은 망으로 막고 자갈, 흙을 깔고 씨를 심었다. 손으로 간신히 잡을 만한 씨를 네 칸으로 나눈 흙 위에 종류대로 심었다. 그 아래에는 물을 받아 물풀을 넣고, 송사리 2마리를 풀어줬다. 이틀이나 지났을까. 얇게 깔린 흙을 뚫고 새싹이 자라났다. 생명은 얼마나 위대한가. 얼마나 놀라운가. 씨가 너무 작아 넉넉하게(?) 묻었는데, 세상에, 작은 새싹들은 흙을 밀어내고, 서로 어깨를 걸고 세상을 향해 얼굴을 내밀었다. 이 작은 씨앗들이 살겠다고, 빛을 보겠다고, 자라나겠다고, 어기영차 힘을 내는 모습이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끈질긴 생명력이 부담스러웠다. 손으로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씨앗이, 죽은 것처럼 보였던 작은 씨앗이, 흙 속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영양분을 섭취하고 물을 마시고 햇볕을 쏘고 나서는, 새로운 존재로 변신했으니 말이다. 예전의 씨앗은 잊어라. 나는 새싹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작은 새싹들이 너무 당당해서 조금 무서웠다.
그렇게 생태기둥 테라륨 2층이 번성하는 와중에 1층에 살던 송사리 두 마리가 죽었다. 볕이 너무 잘 들면 물이 뜨거워질까 베란다 한쪽에 잘 보관했는데. 부지런한 물질이 안 보여 물풀 속에 숨었나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물풀에 걸려있는 송사리를 발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활기차게 움직이며 즐겁게 수영하던 송사리들이 이제는 죽었다. 썩고 있었다, 송사리 두 마리가.
생명이 있을 때는 그 작은 씨앗조차도 그렇게나 활발하고 당당하고 예쁘건만, 생명을 잃은 송사리는 무서운 흉물이 되어버렸다. 생명이 있을 때와 생명이 없을 때. 그 얇은 간극은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사는 것과 죽는 것. 생명있음과 생명없음. 삶과 죽음.
죄 많은 사람을 공격할 때, 죽음은 진정 공포의 제왕답다! 동정심 많은 사람은 어떤 위로도 찾지 못하고, 영원히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할 뿐이다. 살아남은 자들도 각자의 길을 마쳐야 하니, 다시 만나자는 인사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검다! 무덤은 진정 망자를 받아들인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고통이다! (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