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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거주불능 지구 -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4월
평점 :
『팩트풀니스』의 저자는 ‘다급한 본능’을 설명하면서, 위험성을 극대화하거나 경고하는 것만으로는 현대 사회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272쪽)
하지만, 『2050 거주불능지구』을 읽다 보면 생각보다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고 느끼게 된다. 다급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살인적인 폭염, 빈곤과 굶주림, 집어삼키는 바다, 치솟는 산불, ‘날씨’가 되어버릴 재난들, 갈증과 가뭄, 사체가 쌓이는 바다, 마실 수 없는 공기, 질병의 전파, 무너지는 경제, 기후 분쟁, 시스템의 붕괴(목차). 기후변화로 인한 우리의 미래는 완벽하게 암울하며, 불안한 미래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 사태 관련 강의를 찾아 듣다가 알게 된 김누리 교수님은 최근에 발견한(?) 사람들 중 가장 흥미로운 사람이다. (재발견의 최고봉, 진중권씨 제외) ‘야수 자본주의’에 대해 설파하는 이런 ‘반기업적’ 인물이 어떻게 방송에 출연할 수 있게 되었는지, 어떻게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 유명해졌는지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나 보다.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을 말하다 : 당신은 소비기계입니까?> 강의 중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스위스 취리히에 사는 대학생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 베를린으로 이동하려고 한다. 그는 1시간 소요, 50유로의 비행기 대신 8시간 소요, 150유로의 기차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한다. 왜? Flugscham 때문에. 비행기 타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Flugscham이라는 단어를 난생 처음 듣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먼저는 안도감. 아, 그렇구나. 비행기 타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니. 유럽애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비행기 타고 유럽을 누비는 아시아인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다행이야, 나는 해외여행 몇 번 다녀 왔어. 아, 그럼 한동안은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건가. 두번째는 질투의 감정. 아니, 그럼 자기들은 산업화 다 해놓고, 산업기반 다 마련됐다 이거야? 극단의 소비 저항 운동으로 가겠다고? 따라가야 하는 아시아는? 이제 막 세계를, 유럽을 경험할 수 있게 됐는데, 그걸 하지 말라는 거야? 혼자 고고한 척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거야? 사다리 걷어차겠다는 거야?
Flugscham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비행기가 탄소를 얼마나 많이 소비하는지 알게 되면, 해외여행 속 명소 사진에 흐뭇해 하던 1인은 다시금 숙연해진다. 혼란스러운 일이다. 너무나 혼란스러워 이 글을 쓴다. 비행기 타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니. 이런 순.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글을 쓰는 저자에게 사람들은 미래를 낙관할 만한 이유가 있기는 하느냐고 묻는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주내용: 지구온난화는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저자 부부에게는 아이가 생기기도 했는데, 저자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야 하며, 암울한 미래에 순응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인류가 완전히 멸종되지 않는 한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담아서 말이다.(58쪽)
저자는 폴 호킨의 주장을 근거로 ‘환경 파괴를 중단하는 일을 시행할 때, 집단적으로 무작정 행동하되 극적인 방식은 물론 지극히 일상적인 방식으로 해내자’고 주장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을 실천하며, 에어컨 사용을 절제하고, 비트코인을 사지 말자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그리고, 그에 더해 ‘정치적 차원의 움직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기후를 구제하는 일에 ‘일상의 작은 실천보다 투표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학계에서 내놓는 전망이 점차 암울해지자 서구권 국가의 진보주의자들은 책임을 모면할 구실이라도 마련하고 싶었는지 소고기 섭취를 줄이고 전기자동차 이용을 늘리고 대서양 횡단 비행을 줄이는 등 자신이 도덕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결백하다고 포장하는 방식으로 소비 패턴을 조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위안해 왔다. 하지만 그처럼 개인적인 차원의 생활양식 조정은 전체적인 수치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며 오직 정치적 차원의 움직임으로 확장될 때만 의미가 있다. 얼마 남지 않은 환경 정당 세력은 차치하더라도 이 문제에 걸린 이해관계를 깨닫기만 한다면 그런 움직임을 이끌어 내기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계산기를 정확히 두드려 보면 정치적 차원의 움직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61쪽)
식사를 하다가 큰아이가 화장지를 너무 많이 써서 짧게 한두 마디 했다. 휴지 아껴서 써라, 이게 다 자원 낭비다.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에코 페미니즘이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책 딱 두 권 읽고 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채식을 실천하고 있는 큰아이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 휴지 아무리 아껴 써 봐, 고기 먹으면 다 소용없어요. 고기 생산하는데 탄소가 얼마나 많이 배출되는지는 알죠?
어디 하나 쉬운 길이 없고, 어디 가나 만만한 곳이 없다. 휴지랑 물티슈 아껴쓰기를 한살림 실천 항목에 포함시키기로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구를 이 위기에서 구해줄 정치세력이 어느 쪽인지를 찬찬히 따져 보아야겠다. 생활습관만큼 투표가 중요하다. 분리수거만큼 투표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유기농 음식을 먹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진정으로 염원하는 목표가 기후를 구제하는 일이라면 투표가 훨씬 더 중요하다. 정치는 도덕적 증폭기와 같기 때문이다. 병든 세상을 인식하더라도 정치적 참여로 마무리 짓지 않는다면 ‘웰니스wellness‘(‘웰빙‘과 ‘피트니스‘를 아우르는 표현으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트렌드-옮긴이)‘를 얻는 데서 그치고 만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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