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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팩트풀니스』는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라는 부제로, 스웨덴 의사 한스 로슬링과 며느리 안나 로슬링 뢴룬드, 아들 올라 로슬링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은 세계에 관한 이야기고,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14쪽)
저자들은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사실질문 13개를 제시하고, 독자로 하여금 13개 문항에 직접 답하도록 한다. 침팬지보다 못한 정답률을 근거로 일반인은 물론 언론인, 기업인, 과학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세상을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를 밝혀낸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701/pimg_7981871742593201.png)
세상을 오해하는 본능으로 저자들은 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 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함 본능을 제시한다.
1장은 10가지 극적인 본능 중 첫 번째인 간극 본능 이야기다. 우리에겐 모든 것을 서로 다른 두 집단, 나아가 상충하는 두 집단으로 나누고 둘 사이에 거대한 불평등의 틈을 상상하는 거부하기 힘든 본능이 있다. (38쪽)
저자들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의 단순한 구분이 실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다년간의 연구 개발로 완성한 물방울 도표를 통해 보여준다. 8번째 오해 본능은 단일 관점 본능이다. 세계를 단순화하고, 모든 문제는 단 하나의 원인이 있어 항상 그것만 반대하면 되고,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단 하나라고 주장하려는 본능이 단일 관점 본능이다. 단일한 원인, 단일한 해결책.
한스 로슬링은 평생에 걸쳐 인도주의적 의료를 실천한 사람이다. 백인 중심, 서양 중심적인 사고에 사로잡혔던 순간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백인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의 나라 스웨덴에서 오해에 사로잡힌 학생들에게 충격적인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앞선 ‘우리’는 누구이고, 뒤쳐진 ‘그들’은 누구인가. 동양이란 어디이고, 어디까지가 서양인가.
나는,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해 세상을 판단하고 낙관적인 미래를 기대하는 스웨덴 백인 남자의 생각에 반대하지 않는다. 또한 그의 책을 다 읽은 지금에도, 그가 페미니즘에 반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감사의 말>에 아들보다 며느리 이름을 먼저 쓸 줄 아는 사람이다.
다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읽은 책들, 내가 썼던 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문제의 단순화를 경고하는 수많은 글을 읽었음에도, 어느 순간 나는 이 세상을 남자와 여자의 대결로 손쉽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정확히는 남자들이 만든 세상과 그 속에 사는 여자들의 대결.
여성의 역사는 의도적으로 완벽하게 지워졌다. 나는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하지는 못하겠다. 몇 명의 특별한 여성 지도자들을 제외하고 국회의원, 고위각료 중 여성의 비율은 극히 미미하다. 유력한 CEO 중에 여성의 숫자 역시 극소수이고, 독특하고 비중 있는 목소리를 가진 여성 언론인도 찾아보기 힘들다. 교수는 물론 강사 자리를 얻을 때도 여성은 불리하다. 대작을 제작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금투자를 받을 수 있는 여성감독은 몇 명이나 되는가. 여자배우를 원톱으로 하는 시나리오가 투자를 받을 수 있는가.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라. 심지어 여자들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요리’에서도 그것이 ‘푸드 토크쇼’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질 때, 자리에 앉는 사람들은, 셰프는, 전문가들은 모두 남자들이다. 전 세계에서, 평생 동안 요리하는 사람들은 할머니, 어머니, 아내, 모두 여자들인데 말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분류된 타자다. … 문제는 성이 남성에게는 인생을 좌우하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여성에게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다. 몸(성)은 남성에게 별 의미가 없는데, 여성에게 몸은 자원이자 억압으로 인생의 주요 모순이 된다. (『낯선 시선』, 75쪽)
여자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을 가졌기에, 출생에서부터 생명을 위협받고, 평생을 성폭력의 위협 속에 살아간다. 더 적은 급여에 만족해야 하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착한 딸, 착한 며느리여야 한다. 직장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일하는 ‘이중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물론 그 사이에 아이를 돌봐야 한다. 여성은 ‘남성’이라는 집단 아래에 속한 하나의 계급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성은 독립적 요인이 아니다. 무엇이 다르다는 사회적 규정은 계급, 인종, 연령, 성별 등 다양한 권력이 개입하고 관련을 맺으며 작동한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정희진, 32쪽)
즉, 백인 여성은 비참한 처지의 흑인 여성보다 자신과 같은 계급에 속하는 백인 남성을 더 가깝게 느끼기 쉬우며, 백인여성 유력자와 약자 또한 식민지의 브라운 흑인 남성과 여성 약자에 대한 착취를 통해 이득을 공유한다(『가부장제와 자본주의』, 306쪽). ‘여성’이라는 차이에 근거한 단 하나의 요인과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하는 여러 개의 요인이 공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좋아하는 생각에 허점은 없는지 꾸준히 점검해보라. 내 전문성의 한계를 늘 의식하라.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새로운 정보, 다른 분야의 새로운 정보에 호기심을 가져라. 그리고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하고만 이야기하거나, 내 생각과 일치하는 사례만 수집하기보다 내게 반박하는 사람이나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나와 다른 그들의 생각을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는 훌륭한 자원으로 생각하라. (267쪽)
여성의 적은 여성이 아니다. 남성 또한 여성의 적이 아니다. 알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냉철함을 잃지 말고, 그런 위험을 줄이기 위한 국제적 협력을 지지하자는 뜻이다. 다급함 본능과 모든 극적 본능을 억제하라. 세계를 과도하게 극적을 바라보고 상상 속에서 문제를 만들어 스트레스 받기보다 진짜 문제와 해결책에 좀 더 집중하자. (344쪽)
글을 시작할 때는 글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 가끔은 개요를 작성해놓고 글쓰기를 시작하고, 어쩔 때는 제목만 정하고 쓰기 시작한다. 글을 쓰다가 생각이 정리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많다. 예상치 못했던 결론에 다다를 때도 많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페미니즘 사고’에 대해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려고 했다. 여러 질문이 떠올랐고, 또 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에는 실패했다. 이 글은 그 실패의 증거다. 당신이 이 책 『팩트풀니스』를 읽고 내게 답해주었으면 좋겠다. 만약, 당신이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면, 복잡하게 엉켜버린 내 사고의 어떠함을 당신이 이해했다면 말이다. 잘 모르겠다. 이 책을 다 읽었는데도,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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