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찾아 듣는 프로그램은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이다. <코로나 19, 신인류 시대>라는 특별기획이 방송되었는데,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의 홍기빈 소장이 출연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자주 회자되는 말이 ‘일상’이라는 단어다. ‘일상을 산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어서 잃어버린 소박한 일상을 되찾고 싶다’. 홍기빈 소장은 다르게 말한다.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무한 소비를 긍정하는 현대 문명으로의 회귀에 대해 반대한다. 멈추고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도래하는 대상으로서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미래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정관용 : 아까 금융화 설명하시면서도 그런 얘기하셨잖아요. 예측을 못 하기 때문에 금융시장에서 어떤 액터들이 어떤 플레이를 해야할지 방향을 못 잡겠다는 거 아니에요. 지금 그런 현상이죠?
홍기빈 : 그러면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서는 미래를 우리가 대하는 방식은 결단이에요. 그건 우리가 이 상황에서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고 어떤 식의 미래를 만들고 싶은가라고 하는 우리의 이성과 양심으로 되돌아가서 어떤 미래를 만들까라는 그림을 우리 스스로가 결단하고 만들어야 됩니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방송일: 2020년 4월 20일 월요일)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끝나고 초, 중, 고등학교가 등교개학을 하게 되면 우리는 예전과 비슷한 모습의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의 위협이 상존하는 미래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방역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학년별 식사 또는 학년별 등교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난 주부터 교회에 간다. 체온기로 열을 체크하고 손소독제로 그 자리 서서 (장로님이 보는 앞에서) 손을 문지르고 명부의 이름을 확인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간격을 유지해서 앉아야 하고, 예배 중에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악수 대신 주먹인사를 한다. 식사는 7대 방역 지침 위반이어서 불가능하다. 무기한 연기. 예배 드리고 밥 먹고 커피 마시며 이야기하고, 연습하고 예배 드리고 다시 만나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들은 어쩌면 다시 못 올 추억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맘이 슬퍼진다. 다른 시간, 다른 시대가 오고 있다.
장하준 교수는 말한다.
… 제가 보기에 이번에 그런 산업구조 개편 이런 것도 있지만, 뭐가 우리 사는 데 더 중요한가, 이런 데 대해서 사람들이 다시 생각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왜냐하면 방금 말씀하신 배달, 택배 이런 거 그냥 당연히 하는 거 이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그러면 의료, 보육, 양로 이런 데서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하다못해 식품점,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그러다 보니까 영국 같은 데서는 그런 의료나 먹거리, 교육 이런 데 종사하는 분들을 핵심인력, 키워커 이렇게 부르고 미국에서도 필수직원, 이센셜 임플로이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그냥 세상에 더 중요한 것도 없고 덜 중요한 것도 없고 그냥 시장에서 사람들이 원하면 그런 게 더 많이 생산이 되고 원하지 않으면 그냥 생산이 안 되고 이런 식으로 해서 사회를 운영을 했는데, 이제는 뭔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 필요한 일들이 있고 그런 데서 일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이제 생겼기 때문에 그런 임금구조나 노동시장구조, 이런 것도 또 변할 것 같아요.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방송일: 2020년 4월 10일 금요일)
질병의 치료와 돌봄.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식자재의 생산과 유통. 조리, 반조리 식품의 배달까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영역의 노동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하찮게 여겨왔고, 노동에 대한 처우도 불합리했다. 비대면. 바이러스의 전파자인 인간과의 접촉을 무조건 피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질병의 치료와 완화를 위해 의료적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에 비로소 우리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노동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삼시세끼의 위대함과 고단함. 외로움에 대한 대처. 돌봄과 사랑. 연대 그리고 돈.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주민센터를 오르는 어르신들은 서울시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러 가시는 길이다. 4인 가족 100만원.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된다. 만7세 미만 아동 1인당 40만원 아동돌봄쿠폰이 지급되고 지자체별로 5만원부터 10만원까지 재난기본소득이 지급된다. 이전에 한 번도 없었던 비상 시국에, 이전에 한 번도 없었던 형태로 나라에서 주는 ‘공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은 물론,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당장의 생활이 어렵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다. 누구를 탓하며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가 가진 자원을, 더 중요한 곳, 더 필요한 곳, 더 긴박한 곳에 배분해야 한다. 지금이 그런 때이다. 그런 일을 시도할 만한 때이다.
총선이 끝나고, 나의 정치적 성향을 가감없이 드러내도 전혀 괜찮은 독서모임 언니들과 카톡을 하게 되었다. 축하인사를 나누고, 덕담을 주고 받다가 이렇게 썼다. 언니님들, 예상을 뛰어넘는 이런 결과를 받아보니 부담이 되네요. 무한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언니님들은 하하하! 하고 웃으셨다. 근데 언니님들, 왜 제가 부담감을 느끼는 걸까요?
180석에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는 나는 평범한 전업주부다. 이세상 제일 싫은 이야기 주제가 ‘개학일정’인 24시간 수면잠옷 고딩과 고기반찬만 먹으려 하는 호르몬 폭발 중딩의 엄마이다. 유부만두님이 알려주시지 않으면 지금이 이불빨래 타임이라는 것도 모르는, 철모르는 나다. 『나의 사촌 레이첼』의 ‘필립’을 아주 조금 사랑하고, 그를 한없이 미워하면서도 다시 그의 마음을 찬찬히 헤아리며 마음껏 상상하는 독자다.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테지만. 우리 앞에 새롭게 펼쳐질 세계에 대한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이제는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유토피아에 대한 전망이 글쓴이들이 직접 겪은 고난의 경험에서 온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요구는 반드시 우리가 잘 아는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현재의 삶에 관해서도 말해 준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12쪽)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현재의 불합리와 불평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돈이 최고라는 종교 같은 신념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는가. 인간마저 도구로 치환하는 자본주의 미친 질주를 어떻게 멈출 것인가.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는, 내 아이가 살아야 할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방송 내용이 묶여서 책으로 나왔다고 한다. 참 기민하고 적절한 출판 자세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