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룸 -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Philos Feminism 6
수전 팔루디 지음, 손희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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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팔루디에서 스테파니 팔루디로 변신한 그의 삶을 헝가리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서 변화의 과정과 원인을 추적해가는 책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당신이 필연적으로 되어야 했던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당신이 누구인가는 당신이 이뤄 누구인가, 아니면 당신이 물려받은 것과, 그것의 유전적, 가족적, 종족적, 종교적, 문화적, 역사적 요인의 운명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 , 정체성이란 당신이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 피할 없는 무엇인가? (92) 




오래전 어머니와 이혼해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린 아버지. 보통의 아버지가 아니라 접근 금지 처분까지 받았던 폭력적인 아버지가 여성이 되었다는 이메일을 보내오고, 수전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헝가리로 향한다. 그녀의 정체성 변화가 그녀의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그녀로서는 도저히 피할 없는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정체성의 문제를 스티븐 팔루디의 경우에 제한해 살펴보았을 , 그녀/그에게 정체성은생존 위한 다름 아니다. 가장 나이브하게 설명하자면 독일 점령 당시나치 완장 같은 것이다. 헝가리인이 되어야만 했고, 비유대인이 되어야만 했으며, 전쟁 후에는 미국인이 되어 진정한 남자, 남편, 아버지가 되어야만 했던 스티븐 팔루디는 헝가리로 귀국한 , 반유대정서와 유대 남성에 대한 편견에서 탈출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스티븐은 스테파니가 되기로 한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여성이란 그의 머리 , 그의 상상 속에서나 존재가능한 여성이다. 




아버지는 초로 장식한 케이크와 세로로 홈을 새긴 샴페인 잔을 가져왔다. ‘헝가리에 환영해케이크를 잘라 모두에게 나눠 주면서 아버지는 어떻게 택배 기사로 하여금 작년 겨울에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집까지 배달하도록 했는지 이야기했다. “여자라서 너무 좋아.” 아버지가 잔을 들면서 말했다. “내가 속수무책으로 보이니까 모두들 나를 도와준다니까. 야단법석이야. 여자들은 하고 싶은 대로 있지!” (310) 





여자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지 않는다. 물론 남자들도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남자와 여자 중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지 못하는 집단이 어디냐 선택해야 된다면, 집단이 어디인지는 모두 짐작할 것이다. 그렇다. 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집단이다. 이동의 자유에 제한을 받는 집단. 밤에 마음대로 돌아다닐 없는 집단. 밤에 돌아다닐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운 집단. 





방문 열어 줄래?” 그녀(아버지) 말했다. “자러 가면서 맨날 문을 닫잖아.” 

말을 잃고 뒤로 물러섰다. 

열어 줄래?” 

왜요?” 

여자로 대우받고 싶어서. 내가 옷을 벗고 돌아다닐 , 네가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면 좋겠어.” 

여자는 옷을 벗고 대수롭지 않게 돌아다니지 않아요.” 나는 말했다. 

칼날이 닫혔고, 만약에 그것이 대화의 기회였다면, 기회 역시 함께 닫혔다. 그녀는 여성용 칼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119) 





여자는 옷을 벗고 대수롭지 않게 돌아다니지 않는다. 게다가 벗은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수전의 아버지, 스테파니가 되고자 하는여성 빨간 힐에 하얀 스커트, 어깨에 핸드백을 메고 시간이 때마다 화장을 수정하는 여성성(이라 이해되는) 상에 충실한 사람이다. 탈코르셋을 주장하는 근자의 여성들이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상에 정확히 부합하는 여성이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사랑했던 여성의 모습이 되기 원했는데, 사실 여성들은 그런 여성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스테파니는 자신이 좋아했던 여성이 되고자 했던 뿐이다. 여성이 되고자 간절히 원했던 그녀/그의 진심과는 상관없이, 여성이남성과 같은 사람 되고자 하는 맥락과 남성이사람이 아닌 여성 되고자 하는 맥락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무관심으로 외롭고 쓸쓸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유대인 남성이 아니었기에 유대인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사는것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어머니를 동경했던 그는, 여성이 되기로 했다. 유대인이라는 범주에서 탈출하기 위해. 나치 완장을 차고 유대인이 아닌 척하며 그의 부모를 탈출시켰던 것처럼,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수전이 내린 결론에 일면 수긍한다. 그녀의 말은 옳다. 가장 중요한 개의 이분법은 삶과 죽음 뿐이다(623). 죽음 이후, 생각과 , 고민과 갈등은 판단의 영역에서 살짝 벗어난다. 마지막까지 스테파니는 충실한 기자인 수전에게 불가해한 존재로 남았고, 수전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죽음이 전해준 이해와 용서 때문이다. 스테파니는 죽었고, 수전은 스테파니와 화해했다. 죽음이, 그녀와의 영원한 이별이 이를 확인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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