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정민이 보는 다산의 하늘은 정조와 천주이다. 같았던 다산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고, 숨겨져 왔던 그의 천주교 신앙을 기록을 통해 추적하고, 그럼에도 그를 무한신뢰했던 정조와의 일화를 소개한다. 



지금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국가가 개인 안에 녹아 들어가는 상황을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다. 짐이 국가다,라는 말을 믿는 사람이 없다. 태극기를 앞세워 국가 사랑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의 치열한 문재인 저주를 목격할 더욱 그러하다. 국가와 국가 지도자는 합치되지 않는다. 내가 상상하는 이루어지는 가장 비슷한 모습은사제간이다. 학문 군주로서 정조의 모습이 드러나는 일화 때문일 수도 있겠다. 정조는 해당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훌륭한 교수이고, 다산은 대학시절 이미 두각을 나타내 스승이 대학원 진학을 종용하는 총명한 학생이다. 이런 추리는 <정조의 문답식 학습법>이라는 단락에서 확인 가능하다. 

 




30 나던 1791 겨울에는시경』 관해 한꺼번에 무려 800 조목의 질문이 내려왔다. 임금은 40일의 시간을 테니 답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핑계는 활쏘기에서 과녁을 제대로 맞춘 벌이었다. 질문을 보고 놀란 다산이 20일을 요청해 겨우 달의 말미를 얻었다. … 문답 순서대로 정리한 책자가 올라가자, 임금은 어필을 들어 다음과 같은 평을 내렸다. 



널리 백가를 인증하여 나오는 것이 끝이 없다. 진실로 평소에 쌓아둔 것이 깊고 넓지 않다면 어찌 능히 이와 같으랴. 내가 돌아보아 물어본 뜻을 저버리지 않았으니, 깊이 가상하게 여긴다. (132) 





다산은 어쩜 이리 총명했을까. 저자는 이유를 다산의 공부법에서 찾는다. 









다산이 읽었던 책에는 곳곳에 그의 메모가 남아 있다. 읽다가 퍼뜩 떠오른 생각이나 기억해야 내용을 그는 여백에 습관적으로 썼다. 조금 호흡이 생각은 별도의 공책에다 주제별로 정리했다. (127) 





다산은 정조의 기대에 부응했고, 정조는 다산을 아꼈다. 다산의 첫번째 하늘은 정조이다. 다산의 두번째 하늘은 천주이다. 





확실히 조선의 천주교회는 출범부터 유례가 없을 만큼 기이했다. 가톨릭 역사에서 선교사가 파송되기 전에 자신들끼리 교리책을 공부해 세례를 주고 신부를 임명해 미사까지 봉헌한 예는 번도 없었다. (216) 





이승훈이 중국에서 1783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아 조선인 최초의 영세자가 , 불과 5-6년만에 조선에는 신자 1,000명이 모였다. 외부 선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교리책을 공부하고 세계에 유례가 없는가성직제도 통해 자체적으로 사제단을 구성하고, 미사와 성사를 거행했다. 저자는 조선천주교회의 폭발적 성장의 중심에 다산이 있었다고 본다. 천주학과 유학의 가운데에 다산을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산의 신앙과 배교가 사실인 것처럼, 만년의 참회도 거짓이 아니라고 주장한다.(148) 다산과 천주교의 연결점을 확인할 있는 문헌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다산의 철저한 자기검열과 삭제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조선 천주교회사에 관심이 생긴다. 무엇이 많은 사람들을 나라의 해괴한 이야기로 이끌었을까. 새로운 신앙이 주는 어떤 해답이 사람들을 매료시켰을까. 죽음을 불사하는 믿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정약용, 정약전 형제는 이벽에게서 천주교 신앙을 전해 들었다.  





우리 형제는 이벽과 함께 배를 타고 내려오다가 안에서 천지조화의 시작과 육체와 정신, 삶과 죽음의 이치에 대해 들었다. 멍하니 놀라고 의심스럽기가 마치 은하수가 끝없는 것만 같았다. (155) 





조선 최초의 세례자는 이승훈이지만, 실제 조선 천주교회 설립에 가장 역할을 했던 사람은 이벽이다. 이벽은 다산의 큰형 정약현의 처남이다. 집안에 중국으로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아 서학과 관련된 서적을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독학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였으며 조선최고의 천주교 이론가였다. 천주학의 모순을 비판하는 남인계 서학의 1인자 이가환과의 사흘 논쟁에서 승리했고, 원로 이기양과의 토론에서도 상대를 침묵케 했다. 논리적으로 완파 했을 뿐만 아니라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어서, 그들의 토론을 지켜본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성호학파의 중심 녹암계의 수장이었던 권철신 형제를 찾아가 10 일간 감호에 머물며 설득을 거듭해(171) 전도에 성공했다. 이벽이 전한 말은 무엇이었나. 그가 전한 말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세상은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155) 





동서고금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질문에 카를로 로벨리는 『모든 순간의 물리학』에서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내면에 새겨진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존재이며(123), 모든 세포의 총체로 만들어진 하나의 프로세스이다(125). 우리는 자연에서 통합된 부분이자헤아릴  없이 다양한 자연의 표현 방식 중한 가지로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127)이다 











이벽은 이런 답변에 만족했을까. 1783, 1784, 1785 그리고 1801. 자연의 법칙을 따르며 자연의 일부로 살던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환한 낯빛에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하늘이 열렸다. 번째 하늘. 파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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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1-23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산도 대단하지만, 그런 다산의 글을 평한 정조 역시 비범한 군주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 반면, 조선의 기독교 신앙 수용이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자발적임에도 불구하고 제사에 대한 로마교황청의 경직된 태도로 인해 많은 순교자가 났음은 아쉬운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단발머리 2019-11-23 16:3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말씀에 100% 동감합니다. 천재를 알아보는 건 천재의 안목이겠죠.
아쉽다고 하시는 부분에도 공감되고요. 제가 글에서 자세히 풀지 못했는데, 겨울호랑이님 댓글을 읽다보니 더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만약 1789년 윤유일이 중국에서 만난 사제가 다른 교파, 다른 교단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요.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의미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로 인한 조선 천주 교회의 어려움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으니까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