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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응답 - 우리가 궁금했던 여성 성기의 모든 것
니나 브로크만.엘렌 스퇴켄 달 지음, 김명남 옮김, 윤정원 감수 / 열린책들 / 2019년 3월
평점 :
나는 여성의 몸을 가진 사람으로 지금껏 살아왔지만 실제로는 내 몸에 대해 잘 몰랐다. 남성과 차이점이 도드라지는 사춘기 시절부터 시작해 월경, 임신, 출산, 수유의 과정 등 남성과 공유가 불가능한 경험과 섹스, 피임 등 남성과 공유한 경험이 성이라는 카테고리를 통해 내 몸 안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매순간 나는 내 몸의 주인이 아닌 관찰자였다. 알지 못 했고 묻지 못했다. 성과 섹스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상(혹은 성격상) 가끔 몸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누기는 했어도 섹스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이야기하지 못 했다. 친한 친구가 결혼 직후, “언니한테도 못 물어보겠어. 난 이런 거를 물어볼 사람이 너희들 밖에 없어~”를 시작으로 성생활에 대해 질문하곤 했는데, 내게는 어쩌면 그 질문들이 더 야해서(?) 그 친구보다 한참 전에 결혼한 나는 오로지 O, X로만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여성 몸에 대한 대탐험이 가열차게 펼쳐지는 이 책은 젊고 야심만만한 의학도 두 여성의 공동작품이다. 책의 내용도, 구성도 모두 다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나만 이런 유머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밖에도 생리 주기에 관여하는 호르몬이 두 가지 더 있다. 둘 다 뇌하수체라는 기관에서 분비된다. 뇌하수체는 뇌 아래쪽에 있는 콩알만 한 분비샘으로, 우리가 성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 보는 것보다 다 성기처럼 보이는지는 몰라도 꼭 음낭처럼 생겼다. (98쪽)
요컨대 섹스가 인간 생존에 꼭 필요한 활동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섹스를 그렇게 정의하면, 우리가 성욕 부족을 심각하게 걱정하는 것이 일리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혹 헷갈릴까 봐 말씀드리는 데, 세상에 섹스를 못 해서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섹스는 추동이 아니다. 보상이다. (144쪽)
특히 눈길이 갔던 부분은 생리통에 대한 부분이다.
나는 생리통(혹은 생리 곤란증)이 심했다. 중학교 내내, 고등학교 때 정점을 찍었고 대학에 들어간 후로는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보통 여성들보다 심했다. 많이 잡아서 여성 6명 중 1명은 매달 직장이나 학교를 이틀즘 쉬어야 할 만큼 생리통이 심하다고 하는데, 내가 그 6명 중의 1명이었다. 일단 아랫배가 아프다. 배가 아프고 식은땀이 난다. 배가 아프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배가 아프고 구역질을 한다. 배가 아프고 배가 아프고 또 아프다. 내가 생리하는 것을,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알았다. 알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면 너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이지만, ‘중독’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언의 압박 때문에 진통제 하나 없이 매월 며칠을 그렇게 견뎌냈다.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와 여자들의 출산 이야기는 접점 포인트가 있는데, 아무리 반복해도 재미있고 특히나 본인이 그렇게나 재미있어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 나는 출산이야기를 할 참이다. 출산예정일이 3일이나 지난 수요일 새벽, 자는 도중에 양수가 터졌다. 책에서 읽은 대로 나는 차분히 머리를 감고(양수가 터졌을 때 샤워는 안 되지만 머리 감는 것은 가능합니다), 챙겨 둔 가방을 들고(남편에게 들게 하고) 진료받던 병원으로 향했다. 새벽 4시였고, 진통은 그날 하루 종일 계속 됐다. 약한 생리통처럼 시작된 진통은 중간 정도의 생리통을 거쳐 심한 생리통의 단계로 들어섰는데, 하루가 다 끝날 무렵, 그러니까 오후 6시 반이 넘어설 때쯤 나를 맡고 있던 간호사가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분만실’로 들어가야겠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형광등을 쳐다봤다. 전해 들은 이야기와 맘까페에서 읽었던 글에서는 극한의 고통이 계속되고, 형광등이 노란색으로 보일 때쯤에야 분만실에 들어간다고들 했다. 다시 형광등을 쳐다봤다. 하얀색이었다. 노란색이 아니라 하얀색. 생각했다. ‘아, 아직 하얀색인데 지금 들어가는 건가? 이렇게 애를 낳는 거야? 다 된 거야?’ 이 문단을 읽고서야 나의 ‘출산 극복기’ 혹은 ‘용이한 출산기’가 이해됐다.
혹 당신이 남들보다 통증에 예민해서 생리통으로 엄살을 떠는가 싶다면, 또는 생리통이 얼마나 심한지 설명해도 남들이 좀처럼 믿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생리통과 분만의 통증을 비교해 봐줄 테니 이 말을 전하면 남들도 아마 입을 닫을 것이다. 생리 곤란증이 있는 여성은 자궁이 수축할 때의 압력이 150~180밀리미터 에이치지나 된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울 테니, 분만과 비교해 보자. 분만 중 여성이 힘을 줄 때의 압력은 약120밀리미터 에이치지다. 또 분만 중 여성은 자궁 수축을 10분에 서너 번씩 겪는데, 생리 곤란 중 여성은 생리 중 그런 수축을 10분에 네다섯 번씩 겪는다. 달리 말해, 극심한 생리통은 분만 통증과 엇비슷한 데다가 발생 간격은 더 짧다. 그러니 아플 만도 하다. (283쪽)
나는 매월 출산에 버금가는 고통을 그냥 내 몸으로 견디며 살아왔던 셈이다. 바보같이. 한약도 먹어보고 약국에서 특별조제한 약도 먹어보았지만, 모두 그 때 뿐이었다. 진통제 하나 없이 그 모든 시간들을 견뎌냈고, 그런 인고의 시간들이 오히려 출산 과정에서 빛을 발해, 나는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도 ‘아, 진짜 아프다. 생리통이랑 비슷하네. 근데 언제부터 진짜 아픈거지?’라고 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생식기, 냉, 생리, 그 밖의 분비물 챕터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 중에서 잘못 알려진 것들을 바로 잡는다. 이를 테면, 건강한 성기는 냄새가 난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섹스에 대한 챕터는 (물론) 흥미진진하고, 피임에 대한 챕터에서는 여러 피임법들을 비교 설명해 준다. 여성 성기에 대해, 나 자신의 몸에 대해 궁금한 모든 여성들에게 아주 유용한 책이 될 거라 확신한다. 너무 흔한 표현이라 지양하고 싶지만, 느끼는 바 그대로 말하자면, 일독을 권한다.
우리가 처음 만나서 한 일은 하얀 스티로폼 음경에 콘돔을 씌우는 것이었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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