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여성학 강의』<개정판> 오래 세월에 걸쳐 여성운동적 실천과 여성학에 대한 학문적 탐구를 계속해온 한국여성연구소 노력의 소산으로, 대학의여성학개론강의의 역사와 함께 우리 나라에서 여성학이라는 학문 발전의 증인과도 같은 책이다. 여러 저자의 중에서 김영희의 <2 평등과 해방의 : 페미니즘의 다양한 모색> 정리해본다. 



페미니즘의 갈래 자유주의 페미니즘은여성도 동등한 인간이다라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여성 역시 이성적 존재임을 강조하는 것이 자유주의 여권론의 특징(39)이며, 여성에게도 남성과 똑같은 교육과 기회가 주어져야 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참정권이 확보된 이후에도 실질적인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았던 현실에 의거, 남녀평등론의 위력과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을 낳는 궁극적 요인을 사적 소유제 혹은 근대적 형태인 자본주의 체제로 보는 관점이다(42).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중추가 되는 것은 여성 억압의 기원과 역사에 관한 탐구와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 억압 구조에 대한 분석이다. 여성 억압은 계급제도와 동시에 발생하였으며, 계급적 억압과 마찬가지로 사적 소유제에 바탕을 둔다. (43) 



자유주의 여권론의 단편적, 현상적 문제제기를 넘어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여성문제를 역사적이고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럼에도 성별 억압을 곧바로 계급 억압으로 환원하는 경향이나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 나타나는 여성문제를 경시하고 남녀대립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탓으로 쉽게 돌리는 폐해도 존재한 것이 사실이다.(45) 



급진적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의 뿌리 깊은 근원성을 강조한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모든 억압 가운데 여성 억압이 가장 처음 생겨났고,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가장 뿌리 깊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 남녀대립을 강조하는 급진적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이 나타나는 영역으로, 법이나 제도, 노동보다는 출산, 섹슈얼리티(sexuality, 성애), 문화에 주목한다. (37) 




급진주의 페미니즘에서는생물학적 가족자체가 여성 억압의 핵심 요인이며, 여성다움이야말로 여성을 속박하는 올가미라고 주장한다. 성애문제를 중시하며,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에서도 드러나듯, 이제껏 가려졌던 각종 사적인 문제들을 공론화했으며, ‘가부장제라는 용어를 일반화해 여성대중을 일깨우고 여성 억압 체계에 대한 분석을 자극했다(48). 모든 현상을 남녀대립이라는 틀로 설명함으로써 집단 안의 계급, 인종, 민족적인 다른 억압 구조들과의 관계를 단순화했다는 지적도 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마르크스주의와 급진적 페미니즘의 통합적 성격을 가진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은 성별 분업에서 두드러진다. 마르크스 페미니즘이 성별 분업 자체보다는 이를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은 생산, 소유 관계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는 반해,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계급제도 이전의 성별 분업도 이미 여성차별적이었기에 성별 분업이 가부장제를 낳고 유지하는 주요기제라고 주장한다.(50) 가부장제 분석과 자본주의 분석이 서로 긴밀히 결합하기보다 기계적으로 병렬하는 경우가 많아,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변형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다양한 억압 구조를 나열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도 있다.  



여성들 내부의차이의 문제 흑인을 비롯한 3세계 여성들의 문제제기와 포스트 모더니즘의 문제의식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그간 페미니즘에서여성 너무 쉽게 하나의 통일된 집단처럼 처리한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질문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에서 이미 제기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본격적인 관심으로 떠오른 것은 흑인 유색인 여성들 또는 3세계 국가 여성운동가들의 서구 주류 여성운동과 이론의 비판이었으며, 비판의 핵심은 페미니즘이 선진국의 백인 중산층 여성 중심이라는 것이다(52). 



포스트 모더니즘의 근대성 비판, 특히 이항 대립과 근대적 주체에 대한 비판은 여성 범주를 해체하는 쪽으로 발전한다.(54) , 여성을 하나로 일반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남성/여성이라는 이항 대립으로서의 인식을 넘어, 여성을 단일한 주체로 설정하기보다 여성들이 지닌 계급적, 인종적, 성애적 차이를 인정하며, 강조하는 것이다. 



에코 페미니즘은 생태적 사유와 페미니즘의 결합이다. 문화적 에코 페미니즘은 여성과 생태의 친화관계를 강조하며 반생태적 사고와 행태로부터 생태적인 여성적 문화로의 전환을 강조하며, 사회적 에코 페미니즘은 다른 다양한 억압과 생태적 억압을 함께 사유하는 다원주의적 입장을 취하는데, 여성, 계급, 인종, 성이라는 억압 축에 생물종이라는 하나의 억압 축을 추가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한계,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한계에 대해 읽을 , 이러한 사유의 범위와 역사적 역할, 한계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나는, 비판에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백인 중산층 여성의 권리에만 천착한 사실이지만 목숨을 걸었던 그녀들의참정권투쟁은 자체로도 의미 있는 도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삶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성의 변증법』만큼여성성의 신화 역시 의미 있는 저작이고, 훅스가 중요한 만큼 시몬 보부아르의 역할 역시 부인할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수도, 그 무언가를 깊이 있게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시 정희진 선생님의책의 위상과 저자의 입장 되새긴다. 길이 멀다. 

 




책을 읽는 방법은 크게 가지이다. 하나는 습득이고, 하나는 지도그리기(mapping)이다. 전자는 그대로 책의 내용을 익히고 내용을 이해해서 필자의 주장을 취하는(take) 것이다. 별로 효율적이지 않다. 반면 후자는 내용을 익히는 초점이 있기보다는 읽고 있는 내용을 기존의 자기 지식에 배치(trans/form 혹은 re/make)하는 것이다. 습득은 객관적, 일방적, 수동적 작업인 반면에 배치는 주관적, 상호적, 갈등적이다. 자기만의 사유, 자기만의 인식에서 읽은 내용을 알맞은 곳에 놓으려면 내용 자체도 중요하지만 책의 위상과 저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자기 입장이 있어야 하고, 자기 입장이 전체 지식 체계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가, 그리고 지금 책은 자리의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정희진처럼 읽기』,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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