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의 정의에서 밑줄을 그을 부분은 ‘그녀의 의사에 반해’이다. 여성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성행동이 바로 강간이다. ‘동의하지 않은’ 성행동이 ‘가능’한 이유가 인간의 신체 구조, 남녀간에 상이한 신체 구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신체 구조로 인해 강제 삽입 행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피해갈 수는 없다고 수전 브라운밀러는 말한다.
인간의 신체 구조로 인해 강제 삽입 행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이 단 하나의 요인이 남성 강간 이데올로기를 창조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남자들은 강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렇게 했다. (24쪽)
시몬 드 보부아르 역시 『제2의 성』에서 곤충, 물고기, 개구리, 두꺼비, 조류와 포유류의 교미 과정을 비교하며 암컷이 울음소리, 교태, 노출 등으로 수컷을 유혹할 수는 있어도 교미의 주도권은 수컷에게 있다고 지적한다.
비록 암컷이 도발적이고 동의적으로 나오더라도 결국 암컷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은 수컷이다. 그러므로 당하는 것은 암컷이다. 이 말은 대개 아주 정확한 의미를 갖는다. 수컷이 특수한 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또는 매우 강하기 때문인지, 수컷은 암컷을 잡아 꼼짝 못하게 한다. 이와 같이 교미행위를 능동적으로 행하는 것은 수컷이다. 많은 곤충이나 조류, 포유동물들은 수컷이 암컷에게 성기를 삽입한다. 그래서 암컷의 내적 본질은 침범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2의성』, 49쪽)
『The Second Sex』에서 의미가 좀 더 명확하다.
Whether she is provocative or consensual, it is he who takes her: she is taken. The word often has a very precise meaning: either because he has specific organs or because he is stronger, the male grabs and immobilizes her; he is the one that actively makes the coitus movements; for many insects, birds, and mammals, he penetrates her. In that regard, she is like a raped interiority. (35)
수컷은 암컷을 ‘차지하고’, 암컷은 수컷에게 ‘취해지며’, 이는 수컷이 자신의 성기를 암컷에게 삽입하는 행위(penetrate)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남근선망과 내안의 나쁜 감정들』의 저자 마리 루티는 이에 대해 다르게 말하는 것 같다. 즉, 남성을 성에 능동적인 존재로,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미국의 주류 성관념이 관통성/수동성 등식으로 작동해 가장 급진적이라 할 퀴어 성생활 학술 연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143쪽)는 지적이다. 나는 솔직히 이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인간 신체의 특정 구조가 강제 삽입을 가능하게 했다는 주장이 여성의 성적 능동성을 제한하는 논리에 역이용될 수 있는건지. 또는 강간 피해자를 비난할 때 자주 사용되듯이, 여성은 성행동에 소극적이어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피해여성은 ‘강간’을 포함한 ‘강제적 성관계’를 ‘원했다’는 궤변에 악용될 수 있는건지. 그걸 잘 모르겠다.
관통성과 수용성, 남근중심주의와 남근선망은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이것이다. 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인류 사회 초기부터, 남성 장기의 일부가 여성에게 무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남자들이 알아챘다는 것. 강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것.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두려움을 일으키는 무기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일은 불의 사용과 돌도끼의 발명과 함께 선사시대에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꼽아야만 한다. 강간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해왔다.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에 묶어두려고 의식적으로 협박하는 과정이 바로 강간이다. (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