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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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자체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그 맛집에 드나들던 사람들, 맛집이 번영하게 된 원인, 맛집 음식의 종류와 가격 등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촘촘이 재구성하니, 책을 쓰는 데 수고가 만만치 않게 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화폐 단위가 지금 화폐 단위로 얼마쯤인지 밝히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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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의 미친 여자들 - 여성 잔혹사에 맞선 우리 고전 속 여성 영웅 열전
전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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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다 포기한 일본 고전 소설 『겐지 이야기』를 다시 읽고 있다. 옛날 어느 천황의 아들인 주인공 겐지가 벌이는 연애 행각을 그린 소설인데, 여성 캐릭터 각각의 개성을 잘 살렸다지만 작가나 현대 일본어로 옮긴 번역자나 (둘 다 여성임에도) 여성 캐릭터들을 진열장에 놓인 예쁜 인형들처럼 취급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느끼한 것을 먹고 나면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마시고 싶어지는 것처럼, 도무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 여성 캐릭터들을 보니, 인형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는 여성 캐릭터들을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우리 고전 소설 속 여성 영웅들을 이야기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이야기에서나 영웅은 시련을 겪지만, 고전 소설 속 여성 영웅들은 남성 영웅들에게는 없는 제약을 하나 더 받게 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바로 가부장제에서의 성차별이다. 이들은 함께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보다 능력이 뛰어나도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에 묶이거나, 가족에게 학대당하고, 심지어 가족에게 버려지거나 살해당하기까지 한다. 저자는 우리 신화나 고전 소설 속에서 가부장제의 억압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파헤쳐 보고, 그 허울과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예를 들어, <사씨남정기>는 남성 저자가 당대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려고 쓴 소설이고, 여주인공은 가부장제의 이상적인 여성상 그 자체다. 작가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그런 완벽한 여성도 남편의 애정에 따라 운명이 뒤바뀌는 모습을 통해 가부장제의 이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인지 드러난다. 여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소설들에서도 여주인공의 남편은 '착한' 첩이나 후처를 얻어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고, 여주인공이 겪는 고난을 방조한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은 처벌받기는커녕 여주인공이 얻은 성과를 누리며 편안히 여생을 보낸다. 이렇게 작가가 당대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드러나는 부분이 오히려 그 시대의 한계를 보여준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법 체계도 바뀌었지만, 가부장제 아래에서의 편견과 성차별은 시대를 뛰어넘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에서도 이야기에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저자는 고전 소설 속 여성들이 겪는 수난사를 보여주고, 그 원인이 되는 가부장제의 문제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을 가둬둔 규방 문을 박차고 담장을 뛰어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여성 영웅들의 서사들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이들은 남장을 하고 성별을 감추어 자신의 능력으로 사회적 성취를 이룬다. 이들도 여성임이 드러나면 남성인 줄 알았을 때 자신을 존중했던 사람들에게 곧바로 무시당하고, '여자로서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혼인을 강요당한다. 혼인을 하고 나서는 남편이 자기 권위를 내세우거나 첩을 들이는 것까지 봐야 한다.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여전히 그들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군주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군주 개인의 시혜적인 행동일 뿐 그들을 둘러싼 현실을 변하지 않는다. 그런 현실과 타협하는 여성 영웅들도 있지만, 그들이 당시 여성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래도 여주인공들이 기껏 큰 업적을 쌓고 높은 자리에 올라도, 여자의 도리를 지켜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혼인하게 되는 이야기, 혼인하고 나서 남편이나 남편의 첩, 시댁 식구들과 갈등하며 마음 고생하는 이야기는 지겹다고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책 마지막에 그런 틀을 깨고 한 걸음 더 나아간 소설을 소개한다. 바로 <방한림전>이다. 주인공 방관주의 부모는 딸의 총명함을 보고 여자로 태어난 것이 안타까워, 친척들에게도 방관주가 딸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고 아들로 키운다. 그런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방관주는 계속 남자로 살아가기로 선택한다. 방관주는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해 일찍부터 관직을 얻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 하지만 남자 행세를 하면서 아내를 얻지 않으면 의심을 받을 테니 걱정하는데, 병부상서의 딸 영혜빙이 방관주가 여자라는 것을 알아채고 부부로 행세하면서 평생지기로 살아가자고 제안한다. 둘은 금슬 좋게 지내면서 총명한 아이를 입양하고, 그 아이도 훌륭한 인재로 키워낸다. '음양의 도리를 어겼다'는 이유로 방관주가 서른아홉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방관주가 전생에 남성 신이었는데 방자하다는 이유로 '여자로 태어나는 벌'을 받은 것이라는 데서 당시의 가치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성 부부가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자녀를 입양해 이상적인 가족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생활 동반자법도 아직 통과되지 못한 현대 대한민국을 뛰어넘는 진보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여성 서사들이 여성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더 많은 여성 서사가 필요하다. 아직도 어머니나 연인, 냉장고 속의 피해자에 그치는 여성 캐릭터들이 많으며, 현실에서 살아남고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는 여성들에게 여성 영웅들은 용기와 희망을 주고 역할 모델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저자가 우리 신화와 고전 소설 속에서 꺼낸 여성 영웅들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지만 우리가 현실 너머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데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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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의 미친 여자들 - 여성 잔혹사에 맞선 우리 고전 속 여성 영웅 열전
전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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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전> 속 주인공 자매와 계모의 갈등을 재산 분배의 관점에서 바라보거나 <금방울전>을 현대의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과 비교해 보는 등 색다르고 신선한 시각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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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 - 축소되고 가려진 또 하나의 이야기
안영주 지음 / 안그라픽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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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우하우스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독일에서 미술과 공예의 융합을 목표로 세워진 종합 예술학교다. 응용 미술인 공예보다는 순수 미술인 미술이 위에 있다는 당시의 고정 관념을 깨고 모든 미술 분야를 통합하려 했고, 건축과 디자인에 기하학적인 조형미를 더했다. 바우하우스 특유의 단순하고 기하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건축물과 사용하는 물건의 디자인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바우하우스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이것만이 우리가 100년이 넘도록 곱씹어야 할 바우하우스의 의미일까? 저자는 흔히 알려져 있는 바우하우스 설립의 의의와 바우하우스가 현대 조형 예술에 남긴 영향에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다. 저자가 눈을 돌려 바라본 것은 바우하우스의 여성들이다. 여성들도 분명 바우하우스의 일원으로서 자기 분야에서 활약했지만, 바우하우스의 역사에서 조명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한 축은 바우하우스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차별받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바우하우스는 겉으로는 미술과 공예,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다고 주장했고, 여성의 입학을 허용했다. 당시 여성들은 바우하우스가 한 사람과 전문가, 예술가로 인정받을 발판이라고 생각하고 바우하우스의 문을 두드렸다. 학교를 설립한 해에는 지원자 중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여학생들의 입학금은 남학생들의 입학금보다 더 비싸게 책정되었다(바로 다음 해에 남학생들과 같은 금액으로 조정되었지만, 왜 처음에는 남학생들보다 입학금을 많이 받았는지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바로 이듬해에는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가 예외적인 재능을 가진 여성들만 받아들여야 한다며 여학생 모집 정원을 전체 정원의 3분의 1로 축소했다. 그런 데다 회화나 건축 같은 순수 미술 분야는 물론이고, 공예 분야에서도 '여성은 무거운 공예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목공, 금속 공방에 여학생이 들어가는 것을 제한했다. 미술과 공예,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면서 둘 사이의 이분법과 위계를 누구보다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고, 구조 자체로 여성을 차별하고 있던 곳이 바우하우스였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그러한 차별을 뚫고 자기 분야에서 자신의 예술을 개척해 간 여성들의 이야기다. 바우하우스의 여학생들은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은 분야'라는 이유로 전공 선택에도 제약을 받았고, 바우하우스의 조형 원칙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에 따라 공예 작품을 만들어도 '열등감의 발로'라는 평가를 받았다. 직조 공방의 남성 교수가 자신은 직조공이 아니라 미술가라는 자부심에 갇혀 직조에 대한 실무 지식은 익히지도 않고 학생들 스스로 직조를 익히도록 방치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공예 기술을 익히고 공방의 커리큘럼을 다시 짜고 훌륭한 제품 디자인을 만들어낸 여성들이 있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갇혔지만, 바우하우스에서 배운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었던 프리들 디커 브란다이스, 미국으로 건너가 직조를 산업의 측면에서나 예술의 측면에서나 한 단계 끌어올리려 했던 아니 알베르스, 처음 금속 공방에 들어갔을 때 남학생들이 시키는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야 했지만, 결국 오늘날까지도 사용되는 여러 일상용품 디자인의 원형을 만들어낸 마리안네 브란트 등 바우하우스의 일곱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자신을 제약하는 것들을 뚫고 자기 예술을 펼쳐낸 그녀들을 조명하면서, 그녀들이 그러한 한계에 부딪히게 만든 바우하우스의 시스템과 차별이 얼마나 부당하고 불합리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작은 판형에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얇은 책이지만, 우리가 보지 못했던 바우하우스의 이면을 우리 눈앞에 들여다 놓는 책이다. 검은색과 하얀색, 주황색으로만 이루어진 간결한 디자인이 바우하우스의 제품 디자인을 연상시켜먼서도 텍스트에 온전히 집중하게 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이 책에 소개되지 않은 바우하우스의 여성들을 다른 책이나 글에서도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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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 - 축소되고 가려진 또 하나의 이야기
안영주 지음 / 안그라픽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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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에서의 차별을 뚫고 나아갔던 여성들이야말로 바우하우스가 지금의 우리에게 남기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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