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러시아 - 러시아의 굴곡진 현대사와 독재자의 탄생
대릴 커닝엄 지음, 장선하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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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기교 없이 단순한 형태와 색상, 사실을 꽉꽉 채워 넣은 텍스트만으로 푸틴과 그의 일당들이 벌인 해악을 전달한다. 푸틴이 태어난 1952년부터 2020년 12월까지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기 때문에, 푸틴이 그동안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이 입문서로 읽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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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 조지 손더스의 쓰기를 위한 읽기 수업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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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의 소설가 조지 손더스가 대학에서 맡고 있는 소설 창작 수업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될 생각이 없는 나는 왜 이 책을 읽었을까. 내가 인생작이라고 할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졸작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들이 많아, 작품을 보는 내 안목에 회의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작품 자체나 캐릭터(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배우)의 매력에 눈이 먼 것일까. 그래서 제대로 작품을 읽는 법을 배워보고 싶었다.

이 책이 어쩌서 독자를 위한 책이기도 한지 저자는 나보다 좀 더 심오한 이유를 말한다. 독자들은 읽기가 자신을 더 포용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삶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안다고. 읽는 방식을 공부하면 다른 사람(즉 작가)의 정신을 읽게 되고, 더 나아가 현실을 더 예리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된다고. 읽는 법을 훈련하면 타인과 세상을 읽는 우리의 능력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흠, 솔깃한데. 그러니 작가가 될 마음이 없더라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히 확보했다.

독자는 저자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대문호들의 단편 일곱 편을 읽게 된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가 놓치기 쉬운 것들을 짚어주는 저자를 보면, 문학 작품을 낱낱이 분석해 주는 수능 국어 수업이 생각난다. 물론 수능 국어 수업과 달리 저자의 수업에서는 하나의 정답만 강요하지 않는다. 저자는 '나와 의견이 다르다면 그것은 당신의 예술적 의지가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니까. 그리고 작품의 어떤 것이 복선이고 어떤 것이 상징이며 주제는 무엇인지 해부하고 분석하는 수능 국어 수업과 달리, 저자는 작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확장시켜 나가고, 뻔한 이야기가 될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서 이 이야기를 위대하게 만들었는지 차근차근 보여준다. 저자의 해설을 듣지 않았다면 '이 단편소설에는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게 없잖아', '이 작가는 왜 갑자기 사건을 전개하다 말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전부를 장황하게 소개하지', '이 단편소설은 왜 이렇게 황당하게 전개된담' 이 정도 생각에 그쳤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영어로 번역된 러시아어 단편을 한국어로 또 한 번 옮긴 것이니 원작과 좀 더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러시아인 동료를 통해 자신이 원문의 흐릿한 모방에 불과한 것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데, 한국어로 한 번 더 걸러서 읽게 되는 한국 독자들은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번역가가 유려하게 번역했고, 저자가 특정 부분의 각 영어 번역본별 번역을 비교해 주어 우리는 번역들 사이에서 원본의 뉘앙스와 의미를 조금이나마 손에 잡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어로 한 번 더 걸러졌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작가와 그가 그려낸 인물들을 만날 수 있고, 저자의 수업을 통해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을 더 가까이 느낄 수도 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쓴 체호프,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고골 네 작가는 각각의 스타일과 개성을 지니고 있고, 이 책에 실린 단편들만으로도 그것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대문호라 불리는 그들의 작품에도 결점이 있고, 우리가 그 결점 있는 부분을 고쳐 써볼 수도 있다는 데서 우리는 그들과 우리의 격차가 생각보다는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백수십 년 전 러시아 사람들이지만,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우리 자신도 갖고 있는 측면, 우리 자신도 느끼는 감정, 경험, 문제, 모순까지 보여주며 작품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이렇게 우리는 읽기를 통해 타자와 연결된다. 백수십 년의 세월과 수천, 수만 킬로미터의 공간을 뛰어넘어서.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서 타자와 연결됐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저자는 이 책에 실린 단편의 작가들이 활약했던 문화의 황금기 바로 뒤에 스탈린의 폭정이 이어졌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소설이 무언가에 효용이 있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고. 그럼에도 저자는 읽고 쓰기를 여전히 사랑한다. 소설은 우리의 마음을 아주 조금씩 바꾸고, 그 변화는 크지 않지만 진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픽션 작품을 보는 내 안목이나, 타인에 대한 내 이해력과 공감 능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요소와 원리를 조금은 알게 되었고, 그것으로 내가 어떤 작품을 왜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좀 더 분명히 알게 될 것이며, 그 이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그 사람 자체를 아주 조금이라도 더 깊이 이해하고, 타인들과 내가 발 붙이고 있는 현실을 더 예리하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책을 읽기 전과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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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 조지 손더스의 쓰기를 위한 읽기 수업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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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것은 연결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각 단편을 쓴 작가들과도, 그 단편을 소개하고 해석해 주는 저자와도 연결되면서 작품을 더 깊이 보게 된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 책과 거기에 실린 단편들을 읽고 나서는 내가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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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쇄 찍는 법 - 잃은 독자에서 읽는 독자로 땅콩문고
박지혜 지음 / 유유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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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쇄를 찍는다'는 표현은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 덕분에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중쇄란 처음 출간한 책이 시장에서 모두 팔려 나가 같은 책을 더 인쇄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알기로 내가 만들어낸 책 중에서 중쇄를 찍은 책은 아직까지 단 한 권도 없다. 심지어 출간된 지 3년밖에 안 됐는데 절판돼서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 책도 여러 권 있다. 아마 가장 많이 팔린 책도 판매 부수가 천 부는 못 넘었을 것이다. 그런 나로서는 출판사를 차리고 나서 낸 책들의 70퍼센트는 중쇄를 찍었고, 독립하기 전엔 몇 만 부씩은 팔리는 책을 만들었다는 저자가 다른 세상 사람 같다. 나도 그 다른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사실 아직도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었다.

편집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후 출판 시장의 형편이 더 좋아졌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매년 더 나빠진다는 이야기만 들었고 '출판 시장 최대의 위기'는 과연 어디까지 커질지 짐작도 안 된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보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책을 팔아야 하는데, 나조차도 유튜브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럼에도 저자처럼 희망을 찾고 싶다. 그래서 1장 첫 페이지부터 '마치 책 사줄 독자가 모두 사라져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는 태도와는 거리를 두겠다고 선언하는 저자의 모습이 반가웠다.

우선 출판업도 제조업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종이책은 한 번 찍히면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인쇄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정정한 부분을 스티커로 만들어 붙일 수 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고 추가로 들여야 할 비용과 수고가 만만치 않다). 인쇄하기 전까지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편집 작업을 하다 막상 인쇄 직전에 힘이 풀려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액화천연가스 수송선은 9천 개에 달하는 패널을 깔고, 이 수송선을 만드는 용접 기술자들은 매일 아침 용접 테스트를 거치고 매달 자격증을 갱신한다고 한다. 책 만드는 사람도 그렇게 자기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완성도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매번 반복되는 고된 사이클 때문에 해이해질 때 이것을 기억해야겠다고 다시 마음먹게 되었다. 예전에 한 웹소설 출판사 PD가 자신들은 책의 외형까지 만들어내야 하는 종이책 출판사 편집자들과 달리 콘텐츠 자체에 더 집중하고 개발하는 데 힘쓸 수 있다고 자랑했었는데, 나는 오히려 종이책 출판사 편집자들이 책의 겉모습을 더 완전하게 만들어내는 제조업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그 책에 가장 잘 어울리고 그 책의 내용을 더 온전하게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겉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하고 땀 흘렸고, 그래서 지금까지 책의 역사가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의 내용은 어때야 할까. 저자는 2할의 전복성과 7할의 충분성, 1할의 미래 지향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전의 책과 같은 내용을 반복한다면 그 책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내용, 새로운 것을 담고 있어야 독자들은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대신 그 책을 읽기로 선택한다. 그런데 참신한 주장만 있을 뿐 그를 뒷받침할 내용이 없다면 함량 미달인 책이 된다. 그러니 그 책의 함량을 꽉 채워줄 7할의 충실한 내용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어야 출판사의 특성이 뚜렷해진다. 지금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비슷비슷한 책들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기존의 책들과 다른 책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면서 책의 내실은 어떻게 다져야 할까 고민하는 내게 이 비율은 하나의 지침이 되었다.

내 또 다른 고민은 내가 만든 도서 기획안들이 늘 '시장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든다는 뚝심을 지켜오고 있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전복성이 구현된다는 저자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실패해도 좋으니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마음을 따라 시도하다 보면 시장이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복성은 시장에 끌려 다니기를 거부할 때 이뤄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주제 중에서, 남들은 뭐래도 나는 꼭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우리의 핵심 타깃이 좋아하는 형태로, 해당 주제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책을 만들어보자고.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성공 사례처럼 이것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다 가닥이 손에 잡혀가는 느낌이 들었다.

중쇄를 찍는 것은커녕 책을 만들 기회가 다시 올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중쇄를 찍을 날을 꿈꾼다. 더 많은 독자들이 내가 만든 책을 읽고, 지식을 얻고 위로를 받고 더 깊이 생각하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쇄율 0퍼센트의 편집자인 내게 이 책은 그 꿈을 잃지 않게 해주는 작은 버팀목이 되어준다.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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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본시인 2024-01-17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묵묵하게 지켜나가려는 모습에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응원합니다!

바스티안 2024-01-17 23:15   좋아요 0 | URL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의 그 부분 때문에 상처받았는데, 꿈에서본시인님 댓글에 위로를 받았어요. 이런 응원과 칭찬을 받기에는 부족하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중쇄 찍는 법 - 잃은 독자에서 읽는 독자로 땅콩문고
박지혜 지음 / 유유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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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시장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간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이 만든 책이 더 많은 독자에게 전해지기 위해 분투하는 출판인들을 위한 다정한 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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