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 - 축소되고 가려진 또 하나의 이야기
안영주 지음 / 안그라픽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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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우하우스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독일에서 미술과 공예의 융합을 목표로 세워진 종합 예술학교다. 응용 미술인 공예보다는 순수 미술인 미술이 위에 있다는 당시의 고정 관념을 깨고 모든 미술 분야를 통합하려 했고, 건축과 디자인에 기하학적인 조형미를 더했다. 바우하우스 특유의 단순하고 기하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건축물과 사용하는 물건의 디자인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바우하우스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이것만이 우리가 100년이 넘도록 곱씹어야 할 바우하우스의 의미일까? 저자는 흔히 알려져 있는 바우하우스 설립의 의의와 바우하우스가 현대 조형 예술에 남긴 영향에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다. 저자가 눈을 돌려 바라본 것은 바우하우스의 여성들이다. 여성들도 분명 바우하우스의 일원으로서 자기 분야에서 활약했지만, 바우하우스의 역사에서 조명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한 축은 바우하우스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차별받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바우하우스는 겉으로는 미술과 공예,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다고 주장했고, 여성의 입학을 허용했다. 당시 여성들은 바우하우스가 한 사람과 전문가, 예술가로 인정받을 발판이라고 생각하고 바우하우스의 문을 두드렸다. 학교를 설립한 해에는 지원자 중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여학생들의 입학금은 남학생들의 입학금보다 더 비싸게 책정되었다(바로 다음 해에 남학생들과 같은 금액으로 조정되었지만, 왜 처음에는 남학생들보다 입학금을 많이 받았는지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바로 이듬해에는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가 예외적인 재능을 가진 여성들만 받아들여야 한다며 여학생 모집 정원을 전체 정원의 3분의 1로 축소했다. 그런 데다 회화나 건축 같은 순수 미술 분야는 물론이고, 공예 분야에서도 '여성은 무거운 공예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목공, 금속 공방에 여학생이 들어가는 것을 제한했다. 미술과 공예,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면서 둘 사이의 이분법과 위계를 누구보다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고, 구조 자체로 여성을 차별하고 있던 곳이 바우하우스였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그러한 차별을 뚫고 자기 분야에서 자신의 예술을 개척해 간 여성들의 이야기다. 바우하우스의 여학생들은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은 분야'라는 이유로 전공 선택에도 제약을 받았고, 바우하우스의 조형 원칙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에 따라 공예 작품을 만들어도 '열등감의 발로'라는 평가를 받았다. 직조 공방의 남성 교수가 자신은 직조공이 아니라 미술가라는 자부심에 갇혀 직조에 대한 실무 지식은 익히지도 않고 학생들 스스로 직조를 익히도록 방치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공예 기술을 익히고 공방의 커리큘럼을 다시 짜고 훌륭한 제품 디자인을 만들어낸 여성들이 있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갇혔지만, 바우하우스에서 배운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었던 프리들 디커 브란다이스, 미국으로 건너가 직조를 산업의 측면에서나 예술의 측면에서나 한 단계 끌어올리려 했던 아니 알베르스, 처음 금속 공방에 들어갔을 때 남학생들이 시키는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야 했지만, 결국 오늘날까지도 사용되는 여러 일상용품 디자인의 원형을 만들어낸 마리안네 브란트 등 바우하우스의 일곱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자신을 제약하는 것들을 뚫고 자기 예술을 펼쳐낸 그녀들을 조명하면서, 그녀들이 그러한 한계에 부딪히게 만든 바우하우스의 시스템과 차별이 얼마나 부당하고 불합리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작은 판형에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얇은 책이지만, 우리가 보지 못했던 바우하우스의 이면을 우리 눈앞에 들여다 놓는 책이다. 검은색과 하얀색, 주황색으로만 이루어진 간결한 디자인이 바우하우스의 제품 디자인을 연상시켜먼서도 텍스트에 온전히 집중하게 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이 책에 소개되지 않은 바우하우스의 여성들을 다른 책이나 글에서도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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