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
로맹 퓌에르톨라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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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엉뚱한 주인공의 독특한 여행기를 그린다는 점에서『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과 성격이 비슷하지만, 그보다 이야기는 빈약하고 구성은 엉성하다. 인도인을 주인공으로 삼았으면서도 인도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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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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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항상 낯선 나라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바로 옆 나라들의 이야기나 가장 흔하게 보고 듣는 영미권의 이야기가 아니라 더 먼 곳, 더 낯선 곳의 이야기들. 그래서 읽을 소설을 찾다 눈에 띈 것이 나이지리아의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였다. 


이 책을 사기 전 인터넷 서점의 미리보기를 읽을 때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나이지리아의 낯선 자연과 문화, 풍속이었다. 주인공네 집 정원에 피어 있는 온갖 낯선 식물들, 재료부터 낯설어 무슨 맛일지 상상도 안 되는 나이지리아 전통 음식들, 주인공의 할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이 치르는 나이지리아 전통 종교의식. 이보어(나이지리아의 주요 언어 중 하나) 단어들이 대화 중간 중간에 번역되지 않은 채로 끼어 있어 낯선 느낌이 더 강해졌다. 


하지만 깊이 없는 이해 없이 낯선 것들의 매력만 즐기는 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이 책에서 깊은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낸 건 낯익은 이야기였다. 주인공들이 겪는 가부장제, 유일신교, 독재정권의 억압은 우리가 겪었거나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이다. 왜 지금 여기에서 낯익은 이야기를 찾지 않고 먼 나이지리아에서 낯익은 이야기를 찾느냐고 한다면, 나는 더 넓은 세상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그 사람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동질감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주인공 캄빌리와 오빠 자자는 가부장제, 유일신교, 독재정권이라는 3중의 억압을 겪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그들을 속박하는 것은 가부장제와 유일신교였다. 가부장제와 유일신교의 권위로 아버지가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남들은 부유한데다 정의로운 민주화 투사인 아버지를 존경하고, 그런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난 두 남매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집안에서 아버지는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며 아내와 자식들에게 자신의 규칙과 가톨릭 신앙을 강요하는 폭군이다. 아내와 자식들이 자신의 뜻을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아버지는 무자비하게 그들을 폭행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아버지의 규율과 통제에 얽매어 있었던 두 남매는 그것이 폭력이고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그런 두 남매가 자신들의 억압적인 상황을 깨닫고 변화하기 시작하게 한 것은 이페오마 고모였다. 이페오마 고모는 국립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지식인이고, 가부장제와 유일신교, 독재정권의 폭력과 억압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자식들이 자신을 거역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아버지와 대조적으로, 이페오마 고모는 항상 자기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행동하게 한다. 이페오마 고모 덕분에 방학 동안 고모 댁에 머물던 캄빌리 남매는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한 대로 말하는 것을 점차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아버지의 억압과 폭력으로 숨 막히게 만드는 이 소설에서 이페오마 고모는 두 남매뿐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숨 쉴 틈을 만들어준다. 


고모 덕분에 변화한 두 남매가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스스로 자유를 찾길 바랐던 내 기대를 저버리고, 이 소설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아버지의 권위에 흠집이 가고 무너지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아버지는 죽고 나서도 두 남매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남긴다. 군사 정권의 원수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이지리아의 모든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부패와 불의, 억압이 가득한 나이지리아를 떠나 미국에 간 이페오마 고모네 가족도 인종차별과 가난에 시달릴 것이다. 실질적으로 문제들이 해결된 것도 아니고, 캄빌리가 눈에 띄는 성장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두 남매의 마음속에는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지는”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가 주어졌다. 적어도 자유의 씨앗은 둘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다. 진정한 자유는 마음속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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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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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 자체도 자각하지 못했던 두 남매가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를 찾기까지의 고통스러운 성장기. 변화와 성장이 아무리 느리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자유를 찾아도 그 다음에 짊어져야 할 것들이 많다 해도 자유와 변화, 성장을 향한 갈망은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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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의 시대 1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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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끔 소설을 쓰곤 한다. 내가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일기 대신 소설의 형식으로 쓴다. 일기도 매일 쓰긴 하지만, 일기를 쓸 때보다 좀 더 거리를 두고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와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가는 것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큰 흐름도 잡아놓지 않고, 가끔씩 소설이 쓰고 싶어질 때마다 마음 가는 대로 몇 문단씩 써 놓는다. 나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에게도 읽힐 만한 소설은 못 되지만 소설을 쓰는 행위에서도, 써 놓은 소설에서도 위안을 얻는다.


김탁환 작가의 『대소설의 시대』를 읽으면서, 18세기 조선에도 나처럼 소설을 읽고 쓰는 것을 즐겼던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전체 180권이나 되는 『완월회맹연』등의 대소설이 여성들의 손으로 쓰여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고, 김탁환 작가는 그 연구 결과를 토대로 『대소설의 시대』를 썼다고 한다. 조선 후기 여성들이 한글 소설을 즐겨 읽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소설을 직접 창작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100권이 넘는 길고 긴 소설이라니. 조선 후기 여성 작가들이 이런 대작을 쓸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김탁환 작가는 지금까지 나온 연구 결과에 상상을 섞어 ‘임두’라는 필명의 조선 후기 여성 작가를 만들어냈다. 임두는 23년 동안 199권에 이르는 소설 『산해인연록』을 써 왔다. 그녀가 23년 동안 소설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소설을 좋아했던 혜경궁 홍씨와 의빈 성씨가 그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후원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그녀의 소설을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깔끔하게 필사해 주는 궁녀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렇게 대소설을 만드는 여자 뒤에는 소설을 사랑하는 여자들의 연대가 있었다.


그녀들 이전에는 임두가 처음 작가로서 발을 내딛게 해준 여자들의 연대가 있었다. 시부모는 스물네 살의 임두에게 오랜만에 친정에 온 시누이를 위해 소설들을 필사하라고 했다. 임두는 단순히 필사만 한 게 아니라 자신이 보기에 필요 없는 내용을 빼고 내용을 더 지어서 넣었다, 시어머니는 임두가 더 넣거나 뺀 내용을 보고 임두의 글 쓰는 재능을 알아보았다. 그 이후로 임두는 시댁 여인들의 소설 쓰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소설을 쓰는 즐거움에서 평생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임두 같은 대작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소설을 놓았다 하더라도, 그녀들이 있었기에 임두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소설에 자신들이 겪는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을 담았던 그녀들에 대한 기억이 임두가 대소설을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쓸 수 있게 했던 원동력이 되었다.


그녀들과 임두가 그토록 소설을 사랑했던 것은, 그 시절 그녀들이 꿈을 꾸고 욕망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소설뿐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조선의 한 집안 안에 갇혀 지내지만 그녀들은 소설 속에서 광활한 대륙과 천상의 세계, 지하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수백 명의 인물들이 그 안에서 살아 숨 쉬게 만든다. 단지 이야기일 뿐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때로는 살아갈 힘을 준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그 이야기를 읽거나 들으며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꿈을 꾸고 욕망하고 그것을 펼쳐낼 방법이 많아진 시대를 살고 있지만, 나는 수백 년의 그녀들에게 깊이 공감한다. 내게는 그녀들이 겪었던 것과는 또 다른 현실과 제약들이 있고, 그런 답답한 현실에서 내가 버틸 수 있게 하고, 꿈꿀 수 있게 하는 건 이야기들을 읽고 쓰는 것이다. 대소설의 시대는 이야기를 만드는 여자들의 시대였고, 그 시대는 끝나지 않고 내 안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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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의 시대 1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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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공간의 제약을 넘어 더 넓은 세상을 만들어내고, 수백 년 전의 사람들과 수백 년 뒤의 사람들을 이어주는 이야기의 힘. 수백 년 전, 스스로 소설을 쓰고 필사하고 즐겨읽었던 여인들의 존재를 알려준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책. 소설로서의 재미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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