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식의 시대 - 요리는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레이철 로던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탐식의 시대』라는 제목만 보면 사람들의 탐식 때문에 지구의 많은 동물들이 대량학살당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책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원제인『요리와 제국-세계사에서의 요리(Cuisune and Empire: Cooking in World History)』 그대로이다.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2010년대 현재까지 요리의 세계사를 폭넓게 살펴보고 있다. 전 시대와 전 세계의 음식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 내용이 꽤 방대하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 음식의 평등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 이다. 


  이 책은 고대 세계에서 요리와 식사를 지배하는 규칙은 세계의 질서에 따라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군주는 인간 세상의 위계질서의 정점이자 우주의 축으로서 가장 훌륭한 요리를 먹었다.고귀한 신분은 고급 요리를 먹고 미천한 신분은 하급 요리를 먹는 음식의 구별은 19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 심지어 19세기 초인 1806년에도 "가난이 없이는 노동도 없고, 노동 없이는 부도, 세련된 문화도, 안락함도,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혜택도 없다."면서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를 통해 세계 각지의 각종 식재료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식품 가공, 냉장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음식의 평등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근대 이전에 가난한 농민들은 멀건 죽 같은 하급 요리로 간신히 연명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부드러운 곡물 음식(흰 빵이나 흰 쌀밥), 고기, 유제품, 달콤한 과자들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고급 요리만큼 비용이 많이 들지 않지만 기름지고 부드러운 음식,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중급 요리가 널리 보급된 것이다. 물론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국민의 대다수가 하급 요리로 연명해야 했던 전근대와 비교하면 음식의 평등이 실현되었다고 할 만하다.


  저자는 현대의 음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권력자가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이유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제한하는 세계로 역행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래서 옛날 음식들이 현대의 음식들보다 순수하고 전통적이었다는 낭만적인 환상을 깨뜨리려고 한다. '국민 요리'로 생각되는 음식들은 사실 20세기 중반 강대국들에서 여러 나라들이 독립할 때, 각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음식을 두고도 다른 두 나라가 서로 자국의 국민 요리라고 다투기도 한다. 유구한 전통을 지닌 것 같은 음식들도 관광객들을 끌기 위해 더 고급스러운 재료를 쓰는 등의 개량 과정을 거쳤다. 현대인의 조상들 대다수가 먹었던 '순수하고 전통적인 음식'은 사실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먹는 하급 요리였을 것이다. 저자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음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음식의 평등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방대한 내용이 나열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조금은 읽기 버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만큼 음식의 역사를 폭넓게 바라보는 책도 드물 것이다. 저자가 서양인이니만큼 서양의 음식사에 더 치중되어 있고, 동양인들의 주식으로서 음식 문화에서 큰 영향을 미친 밥에 대한 내용이 의외로 적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음식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통해 세상이 평등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다. 그리고 '오랜 전통을 지닌 국민 음식'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는 시각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정치사, 경제사보다 일상적인 것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 영미권 저자가 쓴 책이라 중국 저자의 이름은 중국어 발음대로, 책은 영문 번역으로 나왔을 텐데도 고대 중국인의 이름, 중국 서적의 이름의 한자를 찾은 수고는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pseudo'(-의 작품이라고 전해졌지만 사실은 아닌 것으로 밝혀진)를 '프세우도'로 번역하고, 세계 인구를 600억이라고 번역한 것은 너무했다. 영어사전을 찾아보거나 기본 상식을 떠올렸더라도 이런 오역은 없었을 것이다. 나머지 부분의 번역은 무난한 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