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혁명 - 지구와 평화롭게 지내기
존 벨라미 포스터 지음, 박종일 옮김 / 인간사랑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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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는 새로운 터전 위에서 일어서리라.

이전에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었으나

이제는 우리가 모든 것이 되리라.

 

-P.319 인터내셔날가의 한 소절-

 

 

흔히 환경오염의 원인에 대해 무분별한 화석연료의 사용, 울창한 산림남벌, 도시의 광역화, 화학배합물질의 사용 등을 꼽는 것이 정설이다. 이에 따른 결과는 생태계의 교란으로 이어지고 지구는 점점 더 따뜻해지는 온난화로 이행된다. 마크 라이너스가 지은 <6도의 악몽>은 살벌하고도 무섭게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다. 최악의 환경대재앙에 대한 실현가능성은 마치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선다. 하지만 지구는 그 예전 원시생태와는 엄청나게 달라졌으며 변화의 유속 또한 증폭된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환경에 대한 인식의 패러다임은 재고되고 바뀌어야 하는 것에 대해 더 이상의 부연설명은 필요치 않는다. 물론 지구 온난화의 허점을 파고들어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는 지구의 순환이라는 반대론자의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너무 더워져 버린 지구라는 인식은 이미 깊숙이 각인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껏 지구 온난화와 생태변화에 대해 접근한 방식은 과학적인 사고에 의한 예측적 기후모델에 의한 결과의 산물이다. 유한한 자원에 대한 활용과 분배에 대한 헤게모니는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왔지만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오류를 극복할 해결책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이익에 대한 분배의 과정을 경제적이고 이성적인 합리성을 요구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성적 합리성은 냉철한 가슴을 지닌 정온(定溫)적 인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윤의 창출과정은 지속가능한 범주의 개념을 모두 경제적인 시스템으로 해석하며, 자본주의는 과실의 분배보다 이익의 창출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는 얼개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분배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시스템을 애초에 포기하였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분배의 평등의 해결수단으로 정부의 역할과 비중을 더욱 싣게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와 반대로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고유한 창조력, 즉 노동에 핵심적 가치를 심는다. 노동은 유한계급의 구별을 철폐하고 자본소외에 대한 이상향이 바로 유토피아라는 사상을 내세웠다. 마르크스는 물질에 대한 의존이 불가피하다는 관념인 유물론에 입각하였으며 단계별 상호작용에 의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 따른 변증법적 역사관을 지녔다. 마르크스는 이상향에 가까운 이데올로기를 건설하고자 하였으나 레닌에 의하여 노동자계급의 자발적 수행능력을 철저하게 부인하는 등 혁명가에 의한 체계적인 지배를 역설하며 심각하게 변질되는 수모를 겪었다.

 

앞서의 두 가지의 이데올로기는 태동부터 다르며 사물을 대하는 관념의 틀조차 상이하게 다르다. 자본주의가 자연을 지배적이고 정복 내지는 수복 가능한 개념으로 이해했다면 마르크스주의는 자연과의 조화, 나아가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인정하였다. 실제 과학의 발전 또한 자본주의에 편승하였음은 주지한 사실과 같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저자 존 벨라미 포스터의 <생태혁명>은 기존의 범람하는 이론과 학설과는 판이 다른 거시적인 안목의 보고서에 다름 아니다.

 

총3부로 나뉘어 지구의 실상과 환경개혁실패에 대한 사례를 소개하고 마르크스의 이념과 시스템을 통해 모순의 본질을 파헤친다. 끝으로 생태혁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며 지속가능성, 공동체, 그리고 평등에 대하여 의미심장한 주장을 펼친다. 

 

책은 저자의 통렬한 함의와 주장의 산물인 본질적 가치에 비해 난해하다. 학술적인 내용이 곳곳에 배치되어 일반 독자가 읽어 내기에는 쉽지 않다. 생태의 문제에 더 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념을 알지 못하고는 가독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조밀조밀하게 얽힌 내용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커다란 줄기를 잡아채듯 나아간다면 전혀 다른 새로움이 기다린다. 매몰된 가치에 대한 반향에서 탁 튕겨 나와 내려다보는 원경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적 가치는 관점의 변화에 있다. 새로운 환경주의의 패러다임과 인간면제주의의 패러다임(캐튼과 던랩의 관점, P.268)에 근거한 이분법적인 오류를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와 자연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의 질(지속가능성)에 관하여 인간과 자연과의 신진대사균열이론에 의해 접근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자본주의에 대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로 이행하여야 하며 이행의 본질은 인간 자체를 혁명하는 혁명적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설파한다. 실제 이와 같은 실험적 하회주의는 볼리비아의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에 의해 열렬히 환영받았다. 이는 <빼앗긴 대지의 꿈>의 저자 장 지글러의 책에서도 언급이 되었으며 새로운 공동체의 출현가능성을 엿보는 대목이다.

 

이렇듯 존 벨라미 포스터의 생각의 총체는 혁신적이고 신선하다. 자본주의의 결핍과 모순에 좌초된 생태혁명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을 새롭게 구성했다는 성공이다. 다채로운 사고와 대립된 이념이 충돌하는 혼돈의 중심이라 할지라도 풀어 헤쳐 보면 의외로 단순한 결과가 도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좌파적이고 진보적인 접근의 통념을 걷어내고 단순한 도식으로 풀어보면 인간과 자연은 공생의 관계, 즉 지속가능성의 범주의 한 묶음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과 조우하게 된다. 결국 이념을 넘어 생태혁명을 위한 성공적인 수단은 탐욕을 경계하고 분배와 평등의 관계로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을 대할 때 가능한 일이 아니겠냐는 저자의 주장은 곱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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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오랜 세월입니다. 거뭇거뭇 수염이 웃자라기 시작하던 때부터 만나 지금껏 모임을 이어오는 친구들과 어제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각양각색의 성격을 가진 친구들과 모임을 이어간다는 것은 때론 위태하기도 하고 때론 숨가쁘기도 합니다.
 

세월이 더디 가기만 하던 그 시절과 지금 현재의 속도는 확연히 다릅니다. 빠르다는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마음,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습니다. 존재도 형체도 없는 그 마음이 지금껏 우리들 곁을 지키고 섰습니다. 
 

어제는 유독 자주 만나지 못했던 K가 눈에 밟힙니다. K는 다부진 체격에 구리빛으로 그을린 단단한 성격을 가진 친구입니다. 한 번 마음 먹은 일은 악착같이 달라 붙기도 하지만 외골수의 고집으로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그런 성격탓에 K는 다른 친구들보다 삶의 진동이 컸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좋아 보입니다.
 

호탕하게 웃어 젖히며 세파의 굴곡을 넘나든 K는 갈피를 잡지 못하던 삶의 방향추를 단단히 옭아 맺습니다. K에게서는 잃어 버렸던 자신감이 흐려졌던 진정성이 묻어 납니다. K는 ROTC를 임관하고 제대 후 잦은 이직과 이혼 후 현재 용접일을 하는 기술자로 땀 흘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K와 이혼 했던 전처와 화해하고 재결합해서 인생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음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통감했음을 눈빛으로 전해져 옵니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수많은 가지 중 하나에 불과하겠지만 그 친구들의 이야기에 더위도 잊고 불콰하게 달궈진 기분이 마냥 좋기만 합니다. 사는 것이 바빠 만남이 소원했던 모임을 계속 갖자고도 하였고 엉켜 뒹굴던 그 시절처럼 만나자는 기약없는 약속이 오고갑니다. 후덥한 공기를 가르고 피어 오르는 친구의 속 깊은 마음이 청량감을 주듯 유쾌하기만 합니다.     

마음은 그런가 봅니다. 세월의 격랑에 깨지고 구르고 넘어지다 보니 마음이 온전할리 없습니다. 하지만 친구들 곁에 오롯이 서 있던 그 마음이 닳고 헤어진 마음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잊어 버렸던 웃음을 채워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통한다는 말, 듣기만 해도 흐뭇합니다. 친구는 오래될 수록 좋고 멀리서 찾아 오니 얼마나 기쁘겠냐는 공자의 의중을 조금은 헤아려 봅니다. 

 

 

그 마음을 전 우정이라고

되새겨 봅니다.

 

친구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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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19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에 깨지고 구르고 넘어지고... 그래서 상처받고... 그런데 요즘은
제가 세월 때문에 좀더 말랑말랑해지고, 각진 곳은 둥글게 닳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면이 꼭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도 합니다~

친구 만남... 즐거우셨겠어요. 저두 동기 모임하자고 졸라봐야겠습니다.

穀雨(곡우) 2010-08-19 17:59   좋아요 0 | URL
음, 그러네요. 닳다보면 둥글 둥글해지겠죠.
제 모토가 둥글게 둥글게 거든요...^^

blanca 2010-08-19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그런데 저 헷갈렸어요^^;; 옆지기님이랑 같이 쓰시는 건가요? 저는 여자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케 된 거죠? 제가 완전 잘못 짚었었나요?

우정은....아, 저는 고등동창모임이 있는데 지금 조금 위기 상황이랍니다. 다들 한창 바쁠 때라 그런지 서로 한 번씩 놓치고 그러다 보니 서운함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지...자꾸 고등학교 시절의 그 순수한 우정을 그리워하고 그때만큼 나한테 안해준다고 좁은 마음을 가지게 되니 더 힘들어지는 거겠죠...관계도 세월에 따라 포기할 건 포기하고 배려할 건 배려해야 하는데 수련을 조금 더 쌓아야 겠어요...

穀雨(곡우) 2010-08-19 23:59   좋아요 0 | URL
아....어찌....전 줄곧 남자였고 앞으로도 그럴텐데...^^
제 글이 여성스러웠나요? 아님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킬 대목이라도......


세실 2010-08-25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 친구들 넷이서 모임을 하는데 참 편안하더라구요.
이혼한 친구도 있지만 아들과 둘이 잘 살고 있는 모습 보면 다행스럽기도 하고, 전남편과 재결합했으면 하지만 전혀 생각이 없네요.
그렇게 나이들어 가는게 인생인가 보아요^*^

穀雨(곡우) 2010-08-25 20:21   좋아요 0 | URL
사실 그 친구, 이혼하고 한 때 방황하는 통에 재결합했음 했거든요. 물론 지금이야 잘 지내지만 인연이 없음 그것도 억지로 이어진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닐거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해서 전 늘 둥글게 둥글게 사는 게 제 인생의 모토입니다. 둥글게...~~^^
 

밤새 옆지기가 꿈에 시달렸다. 꿈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낯선 어느 곳에서 물고기를 잡는 행사가 있었다. 이미 길게 뻗은 줄 사이로 앞 선 아이가 제 키보다 큰 잉어를 품에 안고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더란다. 이후 아내의 차례가 되어 물 속을 드려다보니 커다란 잉어, 표독스런 뱀, 열대관상어처럼 생긴 노란 물고기가 노니는 것을 보았나 보다. 아내는 평소 비린 것을 끔찍히도 싫어하는 터라 꿈에서도 그 성격이 고스란히 표출되었던 모양이다.

 

징그러운 마음도 잠시, 그렇게 잡아 올린 물고기는 열대관상어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노란 물고기. 그것도 2마리나. 그런데 품은 물고기를 엉겁결에 놓치고 말았다. 아내는 그 와중에도 한 번 더 커다란 뜰채로 물고기를 끌어 올렸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유유히 사라져 버린 물고기. 무엇을 예지하는 것일까?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꿈의 파편들을 끌어 모아 분석하는 작업을 다룬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프로이트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을 통해 일어났던 실제의 사례를 통해 일정한 가설을 만든다. 그는 해박한 정신분석의 연구를 통해 습득한 경험을 통해 꿈을 꾸는 이유, 꿈이 뻗어 나가는 궤적을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다룬다.

 
프로이드는 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과연 꿈의 가치는 미래를 예지하는 데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그 대신 꿈은 과거를 가르쳐준다고 하는 편이 더 옮은 말일 것이다. 왜냐하면 꿈은 어떤 의미에서든 과거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p311)

 
 

프로이드에게 꿈은 잠재의식 속에 내재된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의미한다. 억압되고 내재된 욕망이 의식의 뒷편에 숨은 또 다른 자아의 분출이고 표현이라는 말이다. 프로이드는 꿈을 성적인 욕망과도 매개했다. 모자를 쓴 중년신사의 중절모자란 특정사물이 남성의 성기를 비유하기도 한다. 이처럼 프로이트는 에고(자아), 이드(본능), 슈퍼에고(초자아)를 구별하고 억압당한 본능에 충실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며 얼토당토 않은 주장으로 매도 당했다.

 

그렇다면 프로이트가 자신의 이 책에서 꿈을 소망하고 왜곡된 재료를 바로잡은 성과는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본능을 일깨웠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전제로 한 모든 인간의 본성에 깃든 본능을 수면위로 끌어 올렸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꿈의 해석은 본성을 적확하게 드려다 보는 프리즘이었을 것이며 정신세계를 조밀하게 엿보는 확대경에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프로이트가 남긴 <꿈의 해석>은 난해하다. 광인의 언변처럼 믿기 힘든 사실을 단순하게 꿈에 나타난 재료를 통해 다듬고 가공한다는 것은 어딘지 모를 의구심을 낳는게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아내의 지난 밤 꿈이 무엇과 관련이 있는지 비추어 보았다. 아내는 현재 임신중이다. 잦은 입덧에 괴로워하고 무기력증을 호소한다. 그로 인해 유발되는 피로감, 신경증이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중이다. 하지만 평소 너그럽고 여유로운 성격으로 인해 조금은 대립각을 세울 상황을 적절히 조절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과연 다소 해괴한 꿈의 의미는? 태몽으로 직결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네이버친구에게 문의한 결과 딱 맞아 떨어지는 즉답은 없다. 프로이트가 말했듯 예지로 이어지는 꿈은 모두 소망의 충족 또는 욕망의 표현이라는 관점을 유지한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이 꿈은 평소 비늘 덮인 물고기를 꺼림칙하게 생각하고 눈꺼풀이 없이 빤히 쳐다보는 생기없는 동공을 거부하는 아내의 행동을 보아서는 임신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축적된 상태인 모양이다. 이것은 태몽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나는 스트레스로 인한 정상의 상태를 갈망하는 불만의 무의식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물론 네이버친구의 신뢰할 수 없는 말에 의하면 재물운이라고도 하는데. 그럼, 아내에게 로또를 사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

 

p.s) 위 책은 지난 3월 시작해서 지금껏 읽고 있는 책이다. 한 순간에 몰아쳐 읽어 낼 성질의 책이 아니므로 천천히 곰삭혀 읽는 중.


p.s) 이 꿈이 무슨 뜻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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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8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9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8-19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권의 마지막 자리에서 놓치는 꿈? 아하하.. 죄송해여.

저는 꿈에 대한 해석은 프로이트보다 융의 이론이 더 맘에 들어요, 수긍도 가구여~

穀雨(곡우) 2010-08-19 18:00   좋아요 0 | URL
마지막 자리라도 3등인데, 그게 어딥니까...^^
저번에 3등 당첨되었을 때는 모르겠던데, 다시 또 되면 푸하핫^^
융도 한번 살펴 봐야겠습니다.
 

 

        우리는 어머니를 위대하다고 흔히 말한다. 그 위대함은 어머니이기에 가능하고 또 가능하리라는 강인한 믿음이다. 어머니는 당신 품으로 내어 준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주고 아까워하지 않으며 항상 용기를 북돋워준다. 그래서 어머니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존재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엇비슷한 이유는 바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다. 어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컬러 오브 워터>. 이 책은 저자 제임스 맥브라이드의 어머니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쓴 회고록이다. 지옥 같은 유년시절의 공포를 딛고 공포, 폭력, 차별의 사회적 편견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담대하고 용감한 어머니의 삶을 기록했다. 제임스의 어머니 루스 맥브라이드 조던(레이철 데보라 실스키)은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미국 이민자의 자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완강하고 가부장적이며 소아 성애자였으며 매우 권위적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소아마비로 왼쪽을 거의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었다. 어린 시절 루스는 아버지로부터 끔찍한 성폭력과 노예와 같은 무시와 차별을 견뎌내며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녀는 17살이 되던 해 뉴욕으로 독립하여 오롯이 자신을 위한 삶을 선택하며 가시밭길 같은 삶을 걷는다. 두 번의 흑인과의 결혼과 사별을 통해 12명의 물라토(흑백혼혈인)를 낳았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키워 냈다. 그녀의 자식들은 모두 성공한 인격체로 성장했으며 왕성한 활동을 통해 든든한 가족을 일궈냈다. 실로 신실하고 강단한 삶이었다. 백인 공동체 내에서의 유태인으로서의 차별, 흑인과의 결혼에 의한 혐오에 가까운 편견과 시선은 그녀를 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그녀가 걸어 온 모든 비인간적인 경험과 적대와 무시와 모욕감은 겪어 보지 않고는 모른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차별의 무자비함과 비이성적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인간이 인간을 향해 던지는 차별은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공존한다. 집단 내에서 펼쳐지는 차별의 양상은 서늘하고도 무겁다.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에 대한 차별. 머리로는 이해하나 마음으로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둘러싸인 막과 같다. 이러한 문제는 미국사회에서만 펼쳐지는 모습은 아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할레의식, 신분에 따른 차별이 뿌리 깊은 제도적 계급, 급기야는 부에 따른 차별까지 가르고 막을 수 있는 모든 것은 나뉜다. 이렇게 차별은 특권의식을 만들고 특권의식은 차별에 따라붙는 모순된 현실을 되풀이한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저자 제임스 맥브라이드가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통해 혹독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한 훌륭한 롤 모델로 제시하고자 하였음은 이내 알 수 있다. 굳이 구구절절 풀어 쓰지 않아도 12명의 자식들을 키우고 돌보는 동안 수없이 많았을 충돌과 갈등의 우여곡절이 넘나들었음은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다. 한명도 힘들어서 키우기 힘든 요즘의 잣대로 들여다본다면 시도는 물론이고 생각조차 하기도 힘든 일이다. 자신을 믿고 두려움을 극복한 사랑의 힘이 없었다면 그녀 또한 이와 같은 삶을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서로를 연대하고 의지하며 충만한 에너지가 가득한 삶을 지탱한 신실한 믿음이 그녀를 위대함 속의 위대함을 낳게 하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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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출간되지 않은 가제본 <컬러 오브 워터>에 대한 서평이다. 아들 제임스의 눈을 통해 바라 본 어머니와 어머니 루스의 서간체의 형태가 주거니 받거니로 이루어진다. 제임스의 감정변화와 어머니를 바라 본 심경, 그리고 어머니의 회고에 의한 감정선이 협주곡처럼 매우 잘 어울려진 작품이다. 물론 실화다. 100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미국 전역의 고등학교의 교재로 채택될 만큼 반향이 컸던 책이다. 인상적인 내용이 호소력있게 다가 서는 근래에 보기드문 휴먼스토리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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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8-15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따끈따끈한 신간 리뷰네요. 어머니의 힘은 위대하죠. 12명의 자식이라니. 저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기사 보면 온몸에 소름이 돋아요. 어쩜 그럴수가 있을까 하고...

穀雨(곡우) 2010-08-16 09:55   좋아요 0 | URL
어머니의 힘에 대해 읽으면서도 전 세실님처럼 성폭력에 눈이 멈췄어요. 성폭력은 아주 친밀한 곳에서 정신병처럼 퍼지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함께 말이지요.
 

        지금처럼 인터넷이 생활 깊숙이 들어오기 전에는 책은 수동적으로 읽혔다. 글이 늘어진다든지 마음이 혼란할 때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다 손에 잡히면 다시 시작해서 되돌아 나오는 도돌이표처럼 처음부터 다시 읽곤 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그렇질 못하다. 읽은 후가 문제다. 무언가를 토해내야 한다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강박관념이 발목을 잡는다. 써야만 한다는 무언의 욕구,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다.

 

        읽고 쓰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의 본성이 빚은 관념에 가깝다. 기록한다, 생각한다, 소통한다는 단계별 매개가 넝쿨감자처럼 엮인다. 따지고 보면 책을 잉태한 작가의 시선이 머물렀을 그 경계, 어디메에 나 또한 가 다다랐을지 모른다. 교감한 흔적을 통해 나는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낸다. 내가 아는 만큼만 담긴다는 사실이다. 안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다. 그러므로 견해에 의한 쓰기는 다양한 상념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곡해할 수도 아니면 일신우일신할수도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던 문제는 이러한 것과는 궤를 같이 하지 못한다. 쓴다는 것에 대한 관념은 보이기를 원하는 욕망의 표현이다. 아무리 미화시키고 윤색을 가미하여도 표백되지 않은 거친 문장은 허공을 맴돌며 공허하게 만든다. 그러니 내가 이런 생각을 떠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또한 어이없다는 것이다. 문장을 짓고 내러티브을 믹싱하고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작가도 아니고 글로 밥벌이는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책 한권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숱하게 많은 나날들을 카페인에 중독되고 까맣게 태워냈을 작가들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나는 게으르고 배부른 독자에 불과하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착각의 늪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일종의 나르시시즘으로 보아야 할런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내가 그렇다. 책을 읽는 도중은 물론이고 단어에 집착하고 문장이 책을 빠져 나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것도 모자라 걷는 중에도 정리되지 못한 생각의 실체들이 휙휙 정처 없이 떠돈다. 그래, 뭐 좋다. 착각도 삶을 위무하는 좋은 친구가 될 때도 있으니 좋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생각의 밑천이 고갈되었다는 민망함이다. 자꾸 자꾸 쏟아져 나오는 화수분이면 좋으련만 내가 가진 깜냥의 그릇이 딱 고만고만해서 더 이상 자라나질 못한다.

 

        몇 권의 책을 읽고 리뷰 또는 감상을 쓸라치면 전혀 다른 내용이 한데 엉키고 엇비슷한 문장과 표현이 판을 치다 못해 도배를 한다. 아마 내가 언급한 불편한 사실에 동조하거나 호응하는 리뷰어도 있으리라 믿는다. 없다면 전적으로 나의 모자람이겠지만 있으리라고 재차 믿어 본다. 이렇게라도 생각해야지, 괜히 엄한 리뷰어들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자존심이 더욱 오그라들지도 모른다. 이러다 한방에 훅 갈 날이 멀지 않았다.

 

        문제는 알았으나 해결책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궁여지책 하나.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으니 하다 보면 나아가다 보면 나아지리라. 대책 없는 자신감이다. 사실 문제를 가장했지만 쓰다 보면 유익한 점이 많다는 것은 모두들 아시리라. 책을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소통을 위한 디딤돌을 놓는 주춧돌이 된다. 갈무리되지 못한 생각들도 걸러내고 또 걸러내는 필터링의 효과도 있으며 무엇보다 공감의 달콤한 기쁨을 얻는다.  공감, 못 쓰는 글도 춤추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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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12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이기때문에 겪는 고통이군요.
그래서 전 리뷰를 쓰지 못해요.
소통의 한 루트 중에 책이 있다고 생각하고...저자의 의도와 말하려는 바가 무언지 알아낼 수 있다면...거기에 발전방향까지 제시할 수 있다면, 더이상의 독자의 태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런 입장에서 리뷰를 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그러한 소통의 자세를 늘 옆에 붙이고 사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ㅎㅎ분석엔 재주가 없고, 더군다나 글쓰는 데 잼병인 저로서는 곡우님의 이런 고민이 부럽기만 합니다.
부러워도 공감은 합니다, 곡우님~~~
건필!...아자아자!!!

穀雨(곡우) 2010-08-12 17:44   좋아요 0 | URL
소통의 자세, 맞아요. 그러고 싶은데 항상 산으로 갑니다.
그리고 마기님처럼 글을 재미나게 쓰시 분께서 재주 없다고 하면 아니되옵니다...^^

blanca 2010-08-1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제가 리뷰를 쓰기 시작한 건. 엄청 활자를 막 읽어내긴 하는데 정리도 안되고 내가 뭔가를 읽었는지 기억도 못해 심지어 같은 책을 두 번 읽기게 이르자 결심한 거였어요. 기록하자! 그런데 지금은 진짜 곡우님 의견에 동감해요. 꼭 뭔가를 써야 한다는 강박. 제대로 소화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리저리 짜집기 한 것 같은 찝찝함도 느낀답니다. 그런데 조정래샘은 읽은 시간 만큼 소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는...그러니까 제대로 독서하는 게 아니라 활자중독 정도인 것 같아요. 씁쓸합니다.

穀雨(곡우) 2010-08-12 17:47   좋아요 0 | URL
전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정도고 블랑카님은 활자를 지배하고 부리는 정도가 아닐까요..^^
그나마 활자중독은 동병상련이네요..ㅋㅋ 전 블랑카님 글을 흠모하는 일인이랍니다.ㅎㅎㅎ

글샘 2010-08-12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충분히 공감이 가네요. 활자 중독증이긴 하지만, 항상 읽고 싶은 책을 옆에 두고 다른 책을 읽고 있는 비극...ㅠㅜ 근데, 뭐, 너무 무서워할 거 없이 막 쓰세요. 그러다보면, 좋은 글도 나쁜 글도 나오겠죠.
반갑습니다. 저도 부산에 살거든요. ^^

穀雨(곡우) 2010-08-13 08:39   좋아요 0 | URL
오웃, 글샘님 부산사시는군요. 동향분들이 많으시네....^^
음, 무서울 것까지는 없는데, 너무 대책없이 써 내려가서 문제랍니다..^^

마녀고양이 2010-08-13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진짜 글 쓰는 재주가 무재주입니다만... 알라딘에서 쓰다보니
쓴다는 자체가 즐거워지고 있답니다. 그리고, 책임감이라는게 책을 더 충실하게 읽게하는 맛도 있더군요.

곡우님의 글 첨 읽는듯 합니다만,, 좋은 글이셔염.
그리고 공감에 대한 의견...... 절대 공감합니다!!

穀雨(곡우) 2010-08-14 13:35   좋아요 0 | URL
뭐든 즐기는 자 못당한다고 저두 그렇게 되어야 할텐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