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티브 -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을 위한 섬세한 심리학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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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나니 다른 내용들을 다 접어두고서라도, 자신이 요즘 집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아졌다. 눈에 밟히는 요소들이 자존감, 자신감, 자기애. 자기애와 함께 나오는 자기연민 부분이 좀 애매하긴 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온 신경이 몰려있는구나 싶어졌다. 누구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면 좋을까 생각해봤는데 생각의 끝에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책의 맨 뒷편에 있는 자가 테스트부터 해보고 내용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얼마 전 봤던 "거절당하기 연습"의 저자 지아 장의 테드 강연이 떠올랐다. 그의 강연이 인상적이었던 터라 그 대목을 읽자마자 떠올랐는데, 이는 내가 지금 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원치 않는 모임 거절하기'와 맞물린 의미가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는 거절을 당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는 거절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셋의 연관이 약간은 애매한데, 그는 거절 당하는 것도 그가 제안을 하는 것처럼 제안을 받는 사람의 의사표현일뿐 그것이 그의 가치에 손상을 주거나,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짓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자 했다. 그리하여 좀 더 자신있게 자신의 소신을 펼치는 삶을 살기 위한 밑거름으로 썼다. 일자 샌드의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관한 내용도 남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거부당하지 않을까, 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 관계가 망가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런 염려들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여 진정한 모습으로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요지다. 이쯤되면 단순히 인간관계에 더이상 치여 살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시작된 나의 '원치 않는 모임 거절하기'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시도되는지도 알 것 같아졌다. 그리고 여전히 내성적인 것과 민감한 것이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애매하게 여겨졌다.

 

 3장으로 들어서면 점점 더 공감되는 내용들이 나온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나, 문득 사람들 사이에서 [그러다가 결국 너무 지쳐서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고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뒷문으로 빠져나올지도 모른다.] 는 행동을 하거나, 내 사적인 공간을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다는 소망하에 [손님이 너무 오래 머물러서 자신이 탈진하게 될까 봐 아예 손님을 초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처럼 행동하던 자신의 이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공감되는 내용들이 나오면서 점차로 나는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 것인가 헷갈렸는데, 앞선 2장에서 나왔던 자존감에 대한 내용이 자연스레 다시 떠올랐다. [자존감은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신의 깊은 가치를 아는 것이다.] 나는 특별히 내가 민감한 사람이라고 의식하지 않았고, 않는다. 그래서 이런 몇 문장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 그 사람의 성향을 단정지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게 되면서도 이게 혹시 보통의 범주에서는 대수롭게 여겨질만한 특이점이었던가 싶어졌다. 다만 나는 자신이 내성적인 면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남들과 처음 만나는 일에 어려움을 겪거나 하지는 않지만, 함께 있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즐기고 집 밖으로 나서는 일이 벅차 두통이라는 피곤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완전히 내성적인 것도 아닌 것이 무리와 어울리는 일을 적당히 해내거나, 내 직업은 언제나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과 나의 거리는 애매하게 멀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가 [인간은 두 가지 성으로 구분될 뿐 아니라 이러한 두 가지 유형으로도 구분된다.] 고 하는 문장을 첫장 두번째 문단에 두었을 때부터- 물론 뒷부분으로 가면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유형'이 있고, 이런 분류를 하는 것은 [사람들을 여러 가지 유형으로 설명하는 것은 실제로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사람의 성은 두 분류로 나뉘어질 수 없으며, 이제 그것을 알고 인정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민감함이 주는 특징인 사려깊음에서 벗어난 시작이 아니었는가 하고 반발심이 들었었다. 거기에 계속해서 반복되는 '높은 민감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표현들이 기존의 '내향적인 사람들'에 대한 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 내향적이다라는 말이 가진 부정적인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 용어에 머문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이 책안에 인용된 상담자들의 말은, 민감한 사람들인데도 자신의 이야기가 책에 실리는 것이 괜찮았을까 싶을 정도로 내밀한 내용도 있었다. 개인의 트라우마가 되었음직한 어린시절의 일이나 쉽게 말하지 못했을 속마음 같이.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 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책을 읽었다. 책 날개에 달린 당신은 얼마나 민감한 사람입니까? 하는 질문들을 읽다보니, 민감하다는 것일까 소심하다는 것일까 싶게 애매했고, 얼마전에 읽었던 "고슴도치의 소원"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예민함, 민감함, 소심함같은 성향은 거시적이고 전체적인 것을 바라보던 흐름에서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것에 집중하게 된 시기로 변화하면서 화두로 떠오른 우리의 일부가 아닐까. '혼밥'이라는 것도 어찌보면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나온 한 갈래같다. "센서티브"에서는 모두가 다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했지만 그래서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고 보고 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누구나 민감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성향에 묻혀 덜 드러나는 사람이 있고, 그 특질이 가장 크게 표출되는 사람도 있는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민감한 것이 뭔가를 더 느낄 수 있고, 더 세심하게 앞일을 대비하는 성향이 되고, 남들보다 특별하게 되는 특질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었다. 그것은 섬세함이거나, 신중함, 개인의 신념이나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엇나가는 시선으로 읽어서 어쩌나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여러 갈래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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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일반판)
반디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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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발'은 진짜 괜찮은 작품이다. 처음 책을 봤을때 사실 표지 선정 관련 글을 보고 딱 지금의 표지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구면인 사람을 만나듯이 반가웠다. 그래, 이 책을 읽고 싶었어!' 하고. 북한의 작가가 쓴 글이라 해서 어떤 느낌일지 잘 가늠되지 않았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근래 어디에서도 읽어본 적이 없이 신선하면서도 그러나 오래 전의 작품들에서 보았음직하게 익숙한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었다. 만약 이 책을 도서관 같은 곳에서 찾아 읽었더라면 반납한 뒤에는 직접 구매했을 것 같다.

 

 노동자의 삶. 아무리 아둥바둥 벗어나려 애써도 결국 찍혀나가 떨어져버린 운명 앞에 놓인 자들, 그리고 체념이 글 안에 녹아있다. 때문에 과거에 줄곧 읽어왔던 9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의 한국 문학 작품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침 첫 단편 '탈북기'에도 최서해의 '탈출기'니 하는 제목이 나오니 더욱 그러하다. 북이고 남이고 같은 문학작품을 공유하여 번역을 거쳐와 중간 전달자의 해석과 의도가 자칫 스며들 염려없이 해석되어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하여 같은 뿌리에서 자라나온 다른 열매를 보는 듯하다.

 

 분단은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아픔과 상실이자 정체성이며 결코 맞닿지 않는 평행한 두 선과 같다. 그 자체로는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인데 분단국가라는 것이 우리를 관통하고 있어 저절로 우리는 땅을 두고도 오갈 데 없는 난민이자 뿌리를 잃은 실향민이 되고, 건널 수 없는 금기와 합쳐질 수 없는 이념을 가지고 반목하게 된다. 분단은 내재된 핏줄이 되어 문학과 공연, 극 예술 전반에 주제와 소재가 되어 우리를 특정짓는 요소이자 밑받침되는 바탕이 되어준다. 우스갯소리로 분단되지 않았다면 나오지 못했을 작품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조의 농담도 있으니.

 

 작품 안에 담긴 내용만큼 드라마틱한 출간 과정과 함께 이목을 모을만한 요소를 많이 가진 책이다. 책을 가지고 있는 동안 '북한'과 '고발'이라는 키워드만으로 내용을 묻는 사람들이 여럿되었다. 더욱이 '김정남 피살 사건'으로 한참 어지러운 시국에 '고발'의 출간이 맞물려, 작품을 향한 세간이 관심이 자연스럽게 한데 모아질 시점의 등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개인의 죽음이라는 불운이 또 이런 방향으로 기회를 만들어주는가 하고. 적고나니 인간성의 부재가 여실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좀 저어되었지만 소식을 듣고 떠올린 생각 중 하나였으니 가감없이 덧붙인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책을 보고 어떤 작품인지 묻는데 설명할 방법이 없어 잠깐 짧은 단어라도 사전을 찾아봐두었다. 고발이니, 탈북이니 하는 표현이 이런 단어였구나 생소했다. 외부에서 걱정하는 것만큼 내부의 긴장감이 높지 않았던 탓일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말조차 이제는 흔히 불려지지 않는 시대에 남보다 더한 무관심 탓일까, 단순히 내가 공부를 덜해서 단어를 몰랐던 탓이 가장 크겠지만.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현 시점에 대해 더 관심이 많고 많이 알고 있다는 것에 면구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 북한의 모습을 현장감이 느껴지도록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몇몇의 낯선 표현들과 함께 읽는 동안 조금 더 윗쪽의 서늘한 공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기묘하면서도 충실한 체험이다. 작품이 하나하나 매우 흥미로운데 단순한 르포, 실태고발적인 내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다양한 각도로 담아내었다는 점이 좋다. 짧은 단편안에 흐트러짐 없이 짜여진 내용이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을 했다고 하니 주변인들에게도 추천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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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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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먹하고 암담한 줄글을 도쿄로 돌아가는 기차에 가만히 앉아서 읽어나갔을 '나'를 떠올린다. 눈을 들어보니 나 역시도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들어간 전철이었다. '나'와 내가 동일시 되는 순간- 마치 소세키가 바란대로 책을 읽어나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마음'은 총 세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소설 속의 나와 선생님이라는 인물이 만나게 된 계기와 관계에 대하여, 집안 문제로 고향에 내려가게 된 나와 가족간의 모습, 그리고 선생님의 과거에 대해 밝히는 편지글이다. 이 세 부분의 내용을 통해 개인과 타자 사이의 관계, 개인의 내면을 돌아보도록 하였다. 나는 선생님의 어딘가 모르게 이목을 끄는 점을 발견하여 그에게 점차 다가가고자 하는데, 선생님은 세상과 소통하기도 그에 자신을 드러내기조차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 우리가 밝은 것보다 어딘가 석연치 않게 어두운 면모를 가진 사람을 못내 안타까워 하며 마음을 열어주려 하는 버릇을 가진 것처럼, 나 역시 선생님의 과거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된다.

 

 모든 것에 초탈해보이던 선생님도 사실은 서투르고 약지 못해 차라리 애처로운 젊은이었다. 소세키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그 안의 인물들이 왜 저리도 꼬장꼬장한 성격인지 답답할 때가 있다. 생활 태도는 제 앞길 하나 제대로 가려내질 못하는 한량같으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완급을 모르는 깐깐함이 드러날 때마다 시대적인 부분에서 오는 차이인지, 그가 그려내는 인간상에 그런 면면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일본이란 나라의 문화가 그런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남에게서 느낀 환멸의 조각이 자신의 내면에서도 욕망과 시기, 질투라는 추악한 면모로 존재함을 발견한 선생이 평생을 두고 자기 자신을 경멸하고, 경계해온 모습이 애처로웠다. 누구의 마음에도 그러한 사심이 없을 수 없을 텐데도 결벽적인 구석이 있어 그 한점의 어둠을 끝내 못본체 하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불안감에 흔들릴 때마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면 내가 기대하는 것이 언젠가 눈앞에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렸다. 하지만 모든 인간에 대해 젊은 피가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 선생님에게만 이런 마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금에야 비로소 그걸 깨달았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나를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이따금 내게 보여준 쌀쌀맞은 인사나 냉담해 보이는 행동은 나를 멀리하려는 불쾌감의 표현이 아니었다. 가엾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만한 사람이 아니니 그만두라고 경고를 보냈던 것이다. 남이 반가워하는 것에 응하지 않는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한 것 같다. ...]

 

 이제는 익숙해진 전집의 장정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 한 권의 책을 죽 읽고 나니, 한동안 밀려드는 감상을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왜 많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세키의 작품으로 '마음'을 손에 꼽는지 이해도 가고, 십년 전 쯤 읽었던 이 책이 이런 내용이었던가, 하고 새삼스러웠다. 그때는 그저 줄줄이 쉽게도 넘어가던 책장이 이제는 구석구석 때때로 맺혀 멈추게 되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소세키의 전집 시리즈도 이제 끝을 향해 다다른다. 손 안에 든 책이 어디론가 떠나갈 것만 같아서 한참을 꼭 붙들었다. 오래두고 천천히 가까워진 누군가와 또다시 이별을 앞둔 기분이다. 기다리던 시간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좋았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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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 - 장석주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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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석주씨의 저서를 좋아한다. 사실 저서의 내용 자체는 좋아하지만 즐길수는 없는 입장이고 문체가 좋다. 글을 읽다보면 어떤 이미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것 같은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가 좋다. 마치 달을 보라고 가리켰더니 그 손가락만 뚫어져라 보는 사람처럼. 내용을 읽으라고 했더니 그저 문장이 주는 단편적인 아름다움만을 보고 있지 않은가. 신간의 소식을 듣고서는 어디에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저 속으로 당부했다. 우리, 부정적인 진실은 아름답지 못하게라도 말합시다. '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니. 그 문장에서조차도 입안에 감도는 아름다움이 느껴져 매혹된다.

 

 마치 점자책을 읽듯이 손끝으로 문장을 훑으며 한장씩 읽어나가다 보면 '그런데 어떻게 이런 책을 발간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이렇게 많은 시들에 대한 부분은 장석주이니까, 하고 넘기더라도 한 줄의 시어를 통해 꿰어낸 그의 통찰과 사유는 이 정도 두께의 책들이 되기까지를 떠올리자면 그저 대단하다. 시집을 읽어야겠다"는 작위적인 다짐이 있던 이후로, 매번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시를 감상하는 특별한 방법이라도 따로 있는 것일까 고민했던 이에게 엄청난 발견과 부담으로 다가오는 결과물이었다. 개인적으로 시를 그저 풍경과 같은 이미지로 먼저 받아들이고, 그래야만 개인적인 체험과 더불어 감상이 전달되는 편이다. 그런데 그의 시 읽기는 무한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더 넓게 확장되어 뻗어나가는가 하면 아주 세밀하고 자잘한 부분으로 몰입하는 등 다채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그래도 나름 몇 권의 시집을 읽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올려두었던 '읽은 기록'이 무색하리만큼 그가 시 안에서 꼽은 문장들은 낯설었다. 초면이네요. 하고 생각하면 시인의 이름과 시집 이름이 눈에 밟히고 구면이네요. 하기에는 그런데 어디서 만났더라? 싶게 기억이 아득하다. 전부터 필사에 대한 옅은 욕망이 있었고, 그것을 본인의 게으른 성향을 나름 잘 간파하여 끝을 보지 못할 일이면 시작조차 말 일이라고 다독였었는데... 이런 필사 노트가 나온다면 욕심이 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써놓는 조악한 문장들은 일년만 지나고 다시 봐도 어디 넓은 터에 작은 모닥불이라도 만들어 흔적조차 남기지 않아야 할 오점으로 보이겠지만. 그래도. 매력적인 읽기에 대해 배웠다.

 

 게다가 열일하는 현암사 디자인팀. 표지에서 오는 임팩트 역시 상당하다. 한동안 빤하니 표지의 문장들을 읽어내려 바라보고만 있게 만드는 묘한 매력. 다만 읽기엔 더 까다로울지라도 좀 더 타자기로 타이핑된 글자체처럼 되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표지만. 내용까지 그럴 필요는 없고. 지금도 딱 예쁘게 뽑아낸 표지이지만, 그저 덧붙이는 개인 취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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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 위대한 두 여성 인류학자의 사랑과 학문
로이스 W. 배너 지음, 정병선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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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거릿 미드 : 20세기 초 활동한 문화인류학자로 미국 사회에 육아, 교육, 여성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녀는 사춘기 시절 행동을 결정하는 주요 원인이 생물학적인 것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라고 생각했으며, 성 역할 또한 본능이 아닌 그 사회의 문화가 가진 이데올로기 교육을 통한 학습으로 이루어졌음을 주장했다.

 루스 베네딕트 : '국화와 칼'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문화의 상대성과 문화가 개인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녀는 어린시절 겪었던 아버지의 죽음,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며 임신을 할 수 없는 불운이 겹치 몸 상태 등으로 사회 속에서 자신이 느끼는 소외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그 답을 인류학에서 찾고자 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좀 도움이 될 만한 쉽고 간단한 소개라도 적어볼까 싶어서 두 인물에 대해 살짝 찾아봤는데 오히려 루스 베네딕트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 책을 읽다보면 두 인물에 대해 자신이 수집한 자료가 얼마나 자세하고 새로운 것인지에 대해 저자가 언급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오히려 책을 읽고 나서 인터넷에서 루스 베네딕트를 검색해보고서야 '아 진짜 이 책이 전에 없었을 내용을 다루고 있구나' 싶어진다. 두 인물의 성장 과정부터 어떤 계기를 통해 인류학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생애를 재미있게 서술해냈는데,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저서 내용이 어떤지 궁금해지도록 만든다.

 

 두 인물을 한데 엮어서 펴낸 책이니만큼, 인물 사이에 놓여진 관계가 밀접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이상의 미묘한 관계도가 눈길을 많이 잡아끌었다. 특히 당시 여학교의 선후배 관계에 대한 부분은 한국의 여중, 여고에서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특징적으로 보이는 관계들이라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고. 좀 놀라웠던 것은 두 사람 모두 남편이 있으면서도 조력자이자 친구이자 연인인 관계를 이어나갔다는 점이다. 최근에 읽었던 오스카 와일드의 편지 '심연으로부터'에서의 오스카 와일드와 앨프리드와의 관계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독특했다.

 

 '아 정말, 너무하잖아요. 양질의 신간을 내는 것도 좋지만 독자를 위한 받침대는 놔주시고 내셔야죠.' 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누가 읽으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니고 좋아서 읽겠다고는 했지만, 방대하고 난감한 건 난감한거니까... 그런데 또 문장은 잘 읽힌다. 내용 자체는 오히려 일상적인 부분들을 인간적으로 다뤄낸 면이 많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면서 출근할때 백페이지 정도, 퇴근할때 백페이지 정도 오가면서 금방도 읽게 된다. 이렇게 금방 읽히게 되는 건 이들의 삶과 관계에만 중점을 두고 읽었을 경우고, 학문적인 성과나 의미가 어땠을지 생각하면서 이해하고 싶어지게 되면 좀 더 복잡해진다. 사실 전혀 모르는 두 인물에 대해 알아갈 수 있을 책이라 생각했는데, 읽다보면 이제부터 알고 싶어지게 만드는 면이 더 크다. 국화와 칼도 읽어보고 싶고, 문화의 유형도 읽어보고 싶고. 개인적으로는 의미있는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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