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일반판)
반디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고발'은 진짜 괜찮은 작품이다. 처음 책을 봤을때 사실 표지 선정 관련 글을 보고 딱 지금의 표지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구면인 사람을 만나듯이 반가웠다. 그래, 이 책을 읽고 싶었어!' 하고. 북한의 작가가 쓴 글이라 해서 어떤 느낌일지 잘 가늠되지 않았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근래 어디에서도 읽어본 적이 없이 신선하면서도 그러나 오래 전의 작품들에서 보았음직하게 익숙한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었다. 만약 이 책을 도서관 같은 곳에서 찾아 읽었더라면 반납한 뒤에는 직접 구매했을 것 같다.

 

 노동자의 삶. 아무리 아둥바둥 벗어나려 애써도 결국 찍혀나가 떨어져버린 운명 앞에 놓인 자들, 그리고 체념이 글 안에 녹아있다. 때문에 과거에 줄곧 읽어왔던 9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의 한국 문학 작품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침 첫 단편 '탈북기'에도 최서해의 '탈출기'니 하는 제목이 나오니 더욱 그러하다. 북이고 남이고 같은 문학작품을 공유하여 번역을 거쳐와 중간 전달자의 해석과 의도가 자칫 스며들 염려없이 해석되어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하여 같은 뿌리에서 자라나온 다른 열매를 보는 듯하다.

 

 분단은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아픔과 상실이자 정체성이며 결코 맞닿지 않는 평행한 두 선과 같다. 그 자체로는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인데 분단국가라는 것이 우리를 관통하고 있어 저절로 우리는 땅을 두고도 오갈 데 없는 난민이자 뿌리를 잃은 실향민이 되고, 건널 수 없는 금기와 합쳐질 수 없는 이념을 가지고 반목하게 된다. 분단은 내재된 핏줄이 되어 문학과 공연, 극 예술 전반에 주제와 소재가 되어 우리를 특정짓는 요소이자 밑받침되는 바탕이 되어준다. 우스갯소리로 분단되지 않았다면 나오지 못했을 작품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조의 농담도 있으니.

 

 작품 안에 담긴 내용만큼 드라마틱한 출간 과정과 함께 이목을 모을만한 요소를 많이 가진 책이다. 책을 가지고 있는 동안 '북한'과 '고발'이라는 키워드만으로 내용을 묻는 사람들이 여럿되었다. 더욱이 '김정남 피살 사건'으로 한참 어지러운 시국에 '고발'의 출간이 맞물려, 작품을 향한 세간이 관심이 자연스럽게 한데 모아질 시점의 등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개인의 죽음이라는 불운이 또 이런 방향으로 기회를 만들어주는가 하고. 적고나니 인간성의 부재가 여실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좀 저어되었지만 소식을 듣고 떠올린 생각 중 하나였으니 가감없이 덧붙인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책을 보고 어떤 작품인지 묻는데 설명할 방법이 없어 잠깐 짧은 단어라도 사전을 찾아봐두었다. 고발이니, 탈북이니 하는 표현이 이런 단어였구나 생소했다. 외부에서 걱정하는 것만큼 내부의 긴장감이 높지 않았던 탓일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말조차 이제는 흔히 불려지지 않는 시대에 남보다 더한 무관심 탓일까, 단순히 내가 공부를 덜해서 단어를 몰랐던 탓이 가장 크겠지만.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현 시점에 대해 더 관심이 많고 많이 알고 있다는 것에 면구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 북한의 모습을 현장감이 느껴지도록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몇몇의 낯선 표현들과 함께 읽는 동안 조금 더 윗쪽의 서늘한 공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기묘하면서도 충실한 체험이다. 작품이 하나하나 매우 흥미로운데 단순한 르포, 실태고발적인 내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다양한 각도로 담아내었다는 점이 좋다. 짧은 단편안에 흐트러짐 없이 짜여진 내용이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을 했다고 하니 주변인들에게도 추천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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