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 - 장석주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석주씨의 저서를 좋아한다. 사실 저서의 내용 자체는 좋아하지만 즐길수는 없는 입장이고 문체가 좋다. 글을 읽다보면 어떤 이미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것 같은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가 좋다. 마치 달을 보라고 가리켰더니 그 손가락만 뚫어져라 보는 사람처럼. 내용을 읽으라고 했더니 그저 문장이 주는 단편적인 아름다움만을 보고 있지 않은가. 신간의 소식을 듣고서는 어디에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저 속으로 당부했다. 우리, 부정적인 진실은 아름답지 못하게라도 말합시다. '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니. 그 문장에서조차도 입안에 감도는 아름다움이 느껴져 매혹된다.

 

 마치 점자책을 읽듯이 손끝으로 문장을 훑으며 한장씩 읽어나가다 보면 '그런데 어떻게 이런 책을 발간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이렇게 많은 시들에 대한 부분은 장석주이니까, 하고 넘기더라도 한 줄의 시어를 통해 꿰어낸 그의 통찰과 사유는 이 정도 두께의 책들이 되기까지를 떠올리자면 그저 대단하다. 시집을 읽어야겠다"는 작위적인 다짐이 있던 이후로, 매번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시를 감상하는 특별한 방법이라도 따로 있는 것일까 고민했던 이에게 엄청난 발견과 부담으로 다가오는 결과물이었다. 개인적으로 시를 그저 풍경과 같은 이미지로 먼저 받아들이고, 그래야만 개인적인 체험과 더불어 감상이 전달되는 편이다. 그런데 그의 시 읽기는 무한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더 넓게 확장되어 뻗어나가는가 하면 아주 세밀하고 자잘한 부분으로 몰입하는 등 다채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그래도 나름 몇 권의 시집을 읽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올려두었던 '읽은 기록'이 무색하리만큼 그가 시 안에서 꼽은 문장들은 낯설었다. 초면이네요. 하고 생각하면 시인의 이름과 시집 이름이 눈에 밟히고 구면이네요. 하기에는 그런데 어디서 만났더라? 싶게 기억이 아득하다. 전부터 필사에 대한 옅은 욕망이 있었고, 그것을 본인의 게으른 성향을 나름 잘 간파하여 끝을 보지 못할 일이면 시작조차 말 일이라고 다독였었는데... 이런 필사 노트가 나온다면 욕심이 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써놓는 조악한 문장들은 일년만 지나고 다시 봐도 어디 넓은 터에 작은 모닥불이라도 만들어 흔적조차 남기지 않아야 할 오점으로 보이겠지만. 그래도. 매력적인 읽기에 대해 배웠다.

 

 게다가 열일하는 현암사 디자인팀. 표지에서 오는 임팩트 역시 상당하다. 한동안 빤하니 표지의 문장들을 읽어내려 바라보고만 있게 만드는 묘한 매력. 다만 읽기엔 더 까다로울지라도 좀 더 타자기로 타이핑된 글자체처럼 되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표지만. 내용까지 그럴 필요는 없고. 지금도 딱 예쁘게 뽑아낸 표지이지만, 그저 덧붙이는 개인 취향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