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개정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 현실문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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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첫 느낌은 감각적이다' 이다. 간단하면서도 눈에 탁 트이는 좀처럼 잘 사용되지 않는 포스터 물감의 형광 분홍색을 이용한 포인트 각주는 읽는데에 더해 보는 즐거움을 주었다. 그리고 첫 부분에 들어서면서부터 뻘한 당황을 느꼈다. 첫머리의 '이 책을 읽는 방법'은 사실 이 책을 읽는 방법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다. 대신 개설서나 입문서 정도가 될 것이라는 단어들을 보며 마음의 진입장벽을 좀 낮추는데에만 위로를 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본문에서 나 자신을 한 발 빼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한다. 우리가 흔히 알거나 짐작할 수 있는 미술 작품이나 양식들을 두고 이것은 미술이다/미술이 아니다 를 단호하게 구분하고 있다. 뒤로 가면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이런 식으로 귀찮다는 듯이 휙휙 넘기기까지 한다.

 

 저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어떨까.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예상했겠지만 책에서는 그것들을 '미술이 아니다'라고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앤디 워홀의 '네 명의 모나리자'는 미술이 된다. 물론 왜 그것들을 미술인지 아닌지로 구분했을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도록 설명되어져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위대한 예술 작품이라 널리 알려진 그림들을 미술이 아니라고 단언한 부분에서는 왠지 모를 불편함과 어색함이 느껴졌다. 책은 단숨에 "제도들이 갖는 역사적 한계는 우리들 대부분이 르네상스 문화를 위대한 걸작과 미술작품이라는 차우너에서 이해한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술가 바버라 크로거는 바로 이에 대한 작품을 만들었다. 우리는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환경 때문에 시스티나 성당의 그림들 걸작으로 보는 것이다."라며 기존 예술에 대해 학습된 이데올로기-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길 종용하고 있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하지만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최근의 이슈와 함께 공감했던 부분은 '5 미술창작이라는 특권'이었다. 소위 천재라 수식되어지는 예술가들이 '백인 남성'들이라는 예시와 함께 부여되는 천재성도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진 자들의 특혜임을 알려준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유리천장의 존재는 모든 시대와 분야를 걸쳐 존재하고 있고 예술사에서도 예외가 아님을 환기시켜주는 부분이었다. 특히나 여성은 예술작품안에서의 모델이란 역할에 국한되어 왔음도 새삼스럽게 자각하게 된다. 근대를 지나 현대로 오면서 변화되는 추세들에 대한 내용도 담겨져 있지만 이어지는 '6 아카데미' 장을 읽으며, 영국에서는 연극이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조차 신분에 따른 계층이 구분되고 맡을 수 있는 배역이 한정되게 주어진다는 공공연한 현실이 다시 떠오르곤 했다.

 

 "이제는 미술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시장성이라는 것과, 대중을 위한 언어를 사용하는 랩과 월드 비트, 팝과 에스닉 록 음악과 같은 대중문화의 풍부한 표현력을 고려해 본다면 미술을 '고급'으로, 그리고 대중문화와 상업은 '저급'으로 동일시하는 판단기준을 버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 책의 마지막 장으로 가면 대중문화 향유계층인 미알못인 나조차 쉽게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운 전통적인-고정관념이 된- 시각을 버려야 함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어떤 소망을 바라건데 이전에도 후로도 향유하지 못할 턱없이 비싼 과거의 유물들을 그 자체로 칭송해야 마땅함을 놓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가치를 자신이 더 잘 이해하고 누릴 수 있는 것에 두어야 함이 옳은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여러모로 생각해 볼 부분들이 많았다. 첨부된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에 함께 보는 재미도 크다. 두께에 비해 부담감은 적으니 날이 좋은 날 여유가 되는 시간에 한번쯤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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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의 삶, 사랑의 말 -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양효실 지음 / 현실문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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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의 삶, 사랑의 말'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라며 포문을 열었다. 반면으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면 당신은 세상을 정확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 아프니까 청춘처럼, 늙으니까 서럽'지 하고 위로해줄 것만 같았는데 뜬금없는 팩트로 묵직한 한방을 선사한다.

 

 책의 분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주로 대학교 시절 읽었던 참고서적들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시와 시인, 그리고 근대에 관한 언급이 있을 때마다 더욱 그랬다. 교수님께 권해드렸다면 좋아하셨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 것은 풍겨지는 분위기에 비해 읽기에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제가 어려웠을지언정, 내용을 읽다보면 오히려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편에 속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대해 나왔던 내용이었다. 사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언젠가 한번 봐야겠다고 리스트에 보관해둔 영화 목록 중 하나였는데 여기서 모든 내용의 흐름을 다 읽어버리는 바람에 자발적 스포일러를 당해버렸다. 뮤지컬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과 호불호가 갈린다는 말 때문에 미뤄두고 있었는데, 짧게 정리된 내용으로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 책의 내용이 워낙 강렬하고 잘 정돈되어 있어 내 자신의 해석을 가질 여지는 박탈당한 것 같다.

 

 또 하나는 3장의 딸과 아버지에 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여자의 삶에서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이어지는 남성의 존재가 왜 이렇게 크게 비중을 차지하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과도 같은 의문을 남긴 장이다. 여성의 삶이 제대로 된 롤모델을 통해 성장하여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보다 어머니의 역할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여야 하는데, 본문에서 다룬 '실비아 플라스'의 경우에도 아버지의 부재와 남편의 부정을 통해 자기 자신이 파괴되었다고 단정 자살하기에 이른다. 그녀의 작품이 아무리 파격적이었다 하더라도, 인물의 삶에서 느끼게 된 실망감이 그것들을 상쇄할만큼 컸다. 물론 그럴만큼 우리는 우리 외부의 존재들로부터 상처받는다는 부분에서도 깊은 공감을 했다. 때문에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답습된 복사본과 같지만, 그 이름들로부터 벗어난 존재가 되길 소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딸로서, 아버지와 같거나 혹은 같지 않은 남자랑 결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겠다는 또다른 아버지인 남편의 아내로서, 가정 안의 삶에 고립되지 않는 개인이자 여성의 삶을 살아보길 다시금 소원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자조적으로 말하곤 했다. '서른을 넘겼으니 이제 죽어도 요절은 못되고, 노환으로 칠 거야.' 하고.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서글펐던 것일까, 한참 서울 바닥을 누비고 다니던 시절에도 서른을 넘기고 나면 이미 모든 것이 다 늦은 뒤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더 어릴 적에도 항상 나이를 먹는 것이 싫었다. 빨리 어른이 되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소원하는 친구가 이해가 안됐었다. 가장 가까이서 보는 부모님의 '어른의 삶'이 그토록 자유롭게 보이지 않았다. 술이나 담배같은 것을 하거나 늦은 밤 유흥가를 헤맬 수 있는 일 따위는 특권도 아니었다. 기껏해봐야 저녁 나절 학원을 빠지고 한가로이 친구들과 밤바람이나 맞을 수 있는 이탈이 가장 큰 사건이 될 수 있는 미성년의 시절이 가장 안전하고 자유롭게 여겨졌었다.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자격없이 살아가고 있는 어른이 되었다. 정말이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이정도의 텍스트를 읽고 공감할만한 과거가 쌓였다는 것은 기쁘다. 간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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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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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이상으로 재밌게 읽었다. 약간 시크하면서 무심한듯한 문체가 핵심이었다. 사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에서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알고 있는 얘기가 나온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세계사 시간에 한번쯤 키워드로 밑줄 쳐봤음직한 인물이나, 주관식 답으로 나올 법한 사건들이 담겨져 있다. 그걸 그 때 외워봤다고 해서 사실 알고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걸 잘 알 것이다. 학생들이 선택과목으로 세계사를 넣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공부해야 할 내용인데 재밌게 읽히기 때문에 유용하다. 이미 공부와는 상관없어진 입장에서 흥미 위주로 읽어서 그렇게 느껴졌다면 미안.

 

 흥미로웠던 내용 중 하나는 합스부르크 턱. 근친결혼 때문에 나타난 유전병이라는 것도 흥미로운데 음식을 씹어 삼키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데다가 갈수록 병약한 자식을 얻게 되는데도 혈통-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계속 근친결혼을 했다니.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일이다. 근친결혼까지는 아니어도 서로의 이권을 살펴 관계를 맺는 경우는 지금까지도 있긴 하지만. 또 하나는 '꽃 전쟁'의 인신희생에 관한 내용이었다. 실제로 치첸잇사를 다녀와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아름다운 유적지 같은 곳에서 인신희생 제물을 올렸다고 생각해보니...... 그 피라미드가 그 피라미드는 아니겠지......

 

 각 장의 첫머리에 앞으로 나오게 될 인물들 사이의 관계도가 항상 실려있는데, 그 관계도를 보면 앞으로 계속해서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지 망설이게 된다. 막상 읽으면 딱히 복잡하다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정신 건강을 위해 관계도는 매번 생략하고 읽었다. 내용을 다 읽고 관계도를 봐도 큰 위로가 되진 않는다. 뒷편에는 본격적인 계보도랑 연표도 있다. 참고적으로 알아두시길. 초반에 썼던 것처럼 유럽의 역사나 인물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는 교과서적 두뇌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책을 읽었는데, 겉모습에 비해 폭력적으로 어렵거나 난감하게 읽기 힘들지 않다. 사건이 아니라 인물 위주로 풀어나간 점도 긍정적인 요건으로 작용한 것 같다. 재미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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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 앤 허니 - 여자가 살지 못하는 곳에선 아무도 살지 못한다
루피 카우르 지음, 황소연 옮김 / 천문장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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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은 이제 막 발화했다고 생각한다. 아직 너무 초반의 서투르고 변질되거나 오인하기 쉬운 그런 상태인 것 같다.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내뱉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경멸을 야기하게 될 정도로 이제 막 움이나 터 보려고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직 너무나 어렵다. 여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젠더에 대한 이해가 더욱 필요하고 또 그 중 한 갈래가 페미니즘이므로 눈에 띄는 대로 접해보고 이해해보려고 하고 있다. 최근에 관련 도서를 몇 권 읽어보긴 했지만, '밀크 앤 허니'는 상당히 특별했다.

 

 '밀크 앤 허니'에는 어떤 이론이나 설명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저 끄적이듯 이란 표현이 어울리도록 쓰여지고 마치 불려지듯이 적혀졌다. 시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포리즘 같기도 하다. 아포리즘 식으로 쓰여진 글들의 시대가 막 지나간 뒤라 약간은 유치하다고 생각되는 내용도 있다. 흔히 인터넷 소설 감성이라고 하는 그런 면모가 보이는. 하지만 그 전에 읽어보았던 다른 페미니즘에 관한 글들보다 평이하고 짤막한 문장으로 되어 있지만, 굉장히 가감없이 적나라한 표현들이 많아서 꽤 강렬한 체험으로 다가온다.

 

 여성에 대해 썼다는 점 외에도 이 책이 의미를 갖는 다른 이유는 그녀가 '타자'의 삶을 반영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인도에서 태어난 여자. 여성의 인권이 취약한 나라의 출신이라는 점 뿐 아니라 성장한 곳이 캐나다였기 때문에 받았어야 할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까지.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 대한 논란은 꽤 강렬한 체험이 되었다. 여성인 나조차도 드러낸 신체보다 생리혈이 묻어난 사진에 대해 설명만으로도 더욱 거부감을 느낀 것이다. 여성의 나체가 얼마나 많이 소비되어 왔는지, 혹은 본질이나 자연적인 아름다움으로 해석될 수 있었는지는 받아들이면서 그 일부인 생리에 대해서는 금기시하고 터부시하는 일을 일반화 한 것이다.

 

**카우르는 10대 때부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때로는 시, 때로는 사진, 때로는 그림이었다. 꾸준한 발표 덕분에 그녀는 '인스타포엣'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인스타그램은 그녀가 올린 사진 하나를 삭제하고 '(자신들의)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다. 인스타그램이 삭제한 사진은 루피 카우르가 생리혈 자국이 분명한 회색 긴 바지와 하얀 상의를 입고, 침대에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카우르는 인스타그램에 항의했지만 그들은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카우르는 대중에게 이 사건을 밝히고 공론화했다. "너무나 많은 사진들이, 여성이 완전히 성적이고, 물건처럼 취급되고, 심지어 완전히 벌거벗은 사진들도 버젓이 게시되는데 왜 여성의 생리 사진은 삭제되어야만 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결국 인스타그램은 1주일 후 그녀의 사진을 다시 게재했으며 사진 삭제가 자신들의 실수였다고 사과했다.

 

 어떤 부분들에 있어서는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구석이 많다. 조금만 더 문학적으로 원숙해진다면 좋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것들을 좀 더 유려하거나 완성도 높은 문장으로 표현해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관통하는 글을 접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읽으면서 다소 거칠고, 날것에 가까워 필요 이상의 불편을 자아내는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강렬하고 의미있는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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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 어느 수집광의 집요한 자기 관찰기
윌리엄 데이비스 킹 지음, 김갑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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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집이라니. 이것은 지금의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너무나 멀리 동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너무나도 긴밀하여 좀처럼 떨쳐낼 수 없는 기벽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집안 가득히 '언젠가 필요할지도 모를' 물건들을 미처 버리지 못한 채 기약할 수 없는 쓰임을 예상하며 보관해둔다. 그것 뿐이랴, 언제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과거의 그 순간'을 추억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특별하게 여겨지는 순간에 취득한 물건들을 서랍이나 작은 상자 등 어디에든 보관해둔다. 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는 바로 그런 것들에 대한 책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때로 갑갑함을 느꼈다. 넣어둔 그것들이 필요해진 언젠가의 순간에 그것을 넣어둔 곳을 잊어 오히려 더 많은 곳을 뒤져가며 찾느라 헤매일 뿐이고 때로는 그것을 보관해두었다는 사실조차 까먹을텐데도 기어코 얇은 식빵 봉투를 묶어놓은 철사끈을 주방 어딘가에 매어두거나, 하는 일들을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버릇처럼 쓸 일도 필요한 적도 없었던 그것을 버리지 않는 자신을 끊임없이 자각하며 책을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추억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기억은 물건에 남아있지 않는다. 때로 물건으로 인해 그 순간이 환기될 수는 있을 지언정 언제고 그것을 손에 쥐고 추억만 하고 앉아있지는 않으니. 그럼에도 모아놓은 영화표나 작은 엽서, 사진들이 서재 구석에서 꽤 많은 부피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옛날부터 수집가였지만, 지금은 내가 다른 수집가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 수집 행태는 시장에서 외쳐대는 대상물들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다른 수집가들과 다르다. 나는 말 없고 빈약하고 실용적 가치가 없는 물건들에 반응한다. 이를테면 안쪽에 돌멩이가 박힌 채로 바닷물에 부식된 물통 뚜껑 같은 것 말이다. 비록 도착적이고 모순적일지라도 내 수집이 여전히 수집인 이유는, 수집가들에게 흔히 관찰되는 보상의 패턴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 수집은 잃어버린 사랑을 채워 준다. 내 수집은 그 대상물 속에 깃든 다른 신에게 응답한다.'

 

 나는 수집에 대해 떠올리며 필요와 추억을 말했지만, 저자는 상실과 보상에 대한 의미를 드러내며 자신의 어린시절을 밝힌다. 일견 대수롭지 않은 수집물이라 여겨질지 모르지만, 저자와 내가 수집을 통해 떠올린 것들의 의미는 꽤나 감성적인 부분에의 충족과 맞닿아 있다. 저자는 자신의 수집이 다른 여타의 수집가들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물질적인 가치로 본다면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수집이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그것과는 가장 유사한 모습으로 그러나 매우 집요한 관심으로 이어졌던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의 수집이 더욱 눈길을 끄는 매혹이 되는 것이다.

 

 '소망컨대, 내가 물려주는 것들 가운데서 내 아이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는 뭔가 의미 있는 것을 발견하면 좋겠다. 희망컨대, 내 아이들이 어디선 나름의 기쁨을 찾아내면 좋겠다. 그 기쁨은 이 모든 것들 가운데 있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을 다시 포장하는 이 책 속에 있을 수도 있으며, 모든 것을 뛰어넘어 그애들 자신의 컬렉션과 회상 속으로 움직여가는 과정 속에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소망하는 것이다. 수집은 내가 내 삶을 붙들고 있는 더 큰 패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라고 하지만 문득이 김춘수 시인의 '꽃'이 떠올랐다. 불러주었을 때 의미가 되었던 것 처럼, 모았을 때 비로소 어떤 의미를 부여받는 것들도 있다. 그것들은 귀한 가치를 가진 유일무이한 것일 수도 있으나, 흔하디 흔한 공산품일 수도 있다. 그가 시리얼의 상자를 모았던 것 처럼. 중방 한 켠에 매달아 놓은 빵끈이 내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물려져내려온 '언젠가'를 위한 궁상같은 작은 수집벽인 것처럼. 텍스트를 읽어내는 눈길을 건조하였을지라도, 곧 나의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떠올리자 여러 상념들이 떠돌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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