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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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먹하고 암담한 줄글을 도쿄로 돌아가는 기차에 가만히 앉아서 읽어나갔을 '나'를 떠올린다. 눈을 들어보니 나 역시도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들어간 전철이었다. '나'와 내가 동일시 되는 순간- 마치 소세키가 바란대로 책을 읽어나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마음'은 총 세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소설 속의 나와 선생님이라는 인물이 만나게 된 계기와 관계에 대하여, 집안 문제로 고향에 내려가게 된 나와 가족간의 모습, 그리고 선생님의 과거에 대해 밝히는 편지글이다. 이 세 부분의 내용을 통해 개인과 타자 사이의 관계, 개인의 내면을 돌아보도록 하였다. 나는 선생님의 어딘가 모르게 이목을 끄는 점을 발견하여 그에게 점차 다가가고자 하는데, 선생님은 세상과 소통하기도 그에 자신을 드러내기조차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 우리가 밝은 것보다 어딘가 석연치 않게 어두운 면모를 가진 사람을 못내 안타까워 하며 마음을 열어주려 하는 버릇을 가진 것처럼, 나 역시 선생님의 과거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된다.

 

 모든 것에 초탈해보이던 선생님도 사실은 서투르고 약지 못해 차라리 애처로운 젊은이었다. 소세키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그 안의 인물들이 왜 저리도 꼬장꼬장한 성격인지 답답할 때가 있다. 생활 태도는 제 앞길 하나 제대로 가려내질 못하는 한량같으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완급을 모르는 깐깐함이 드러날 때마다 시대적인 부분에서 오는 차이인지, 그가 그려내는 인간상에 그런 면면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일본이란 나라의 문화가 그런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남에게서 느낀 환멸의 조각이 자신의 내면에서도 욕망과 시기, 질투라는 추악한 면모로 존재함을 발견한 선생이 평생을 두고 자기 자신을 경멸하고, 경계해온 모습이 애처로웠다. 누구의 마음에도 그러한 사심이 없을 수 없을 텐데도 결벽적인 구석이 있어 그 한점의 어둠을 끝내 못본체 하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불안감에 흔들릴 때마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면 내가 기대하는 것이 언젠가 눈앞에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렸다. 하지만 모든 인간에 대해 젊은 피가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 선생님에게만 이런 마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금에야 비로소 그걸 깨달았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나를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이따금 내게 보여준 쌀쌀맞은 인사나 냉담해 보이는 행동은 나를 멀리하려는 불쾌감의 표현이 아니었다. 가엾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만한 사람이 아니니 그만두라고 경고를 보냈던 것이다. 남이 반가워하는 것에 응하지 않는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한 것 같다. ...]

 

 이제는 익숙해진 전집의 장정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 한 권의 책을 죽 읽고 나니, 한동안 밀려드는 감상을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왜 많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세키의 작품으로 '마음'을 손에 꼽는지 이해도 가고, 십년 전 쯤 읽었던 이 책이 이런 내용이었던가, 하고 새삼스러웠다. 그때는 그저 줄줄이 쉽게도 넘어가던 책장이 이제는 구석구석 때때로 맺혀 멈추게 되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소세키의 전집 시리즈도 이제 끝을 향해 다다른다. 손 안에 든 책이 어디론가 떠나갈 것만 같아서 한참을 꼭 붙들었다. 오래두고 천천히 가까워진 누군가와 또다시 이별을 앞둔 기분이다. 기다리던 시간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좋았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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