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르라미 별이 뜨는 밤 반올림 38
김수빈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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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나는 아무래도 너를 한 번 더 만나야 할 것 같아."

 

 때이른 매미의 날개 무늬를 단 표지는 감각적이었다. 여름에 태어난 작가라서 그런지 전작도, 이번 '쓰르라미 별이 뜨는 밤'도 여름과 얽혀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태어난 계절을 좋아하던데, 작가도 그런지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그냥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궁금함이 많았는데 읽고보니 어딘지 환상적이면서도 씁쓸한 분위기가 가시지 않는 그런 여운이 짙게 남았다. 가끔 이렇게 혹은 종종 '청소년'이나 '아동'이라는 수식을 달고 나오는 작품들이 더 깊게 마음을 때린다. 좀 더 날것의 감성으로 생생한 점도 있고 구태의연하고 불필요한 어른의 내면을 굳이 직시하지 않아도 되어 좋을 때도 있다.

 

 결이 앞에 등장한 진이라는 소년이 자신과 그녀는 우주인이라고 주장한다는 내용을 보고 단순한 현실 도피라고 먼저 떠올렸다. 결이나 진이를 보고 있자면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도 믿어서 현실을 탈피하고픈 마음이 생길 수 있으니까 하며. 중학생과 고등학생, 한창 예민한 시기에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의지할데가 마땅치 않아 성치않은 마음을 안고 지내는 둘이기에 서로의 안에서 같은 결을 봤다고 생각했다. 우연한 만남이 계속되는데도, 결이 흔들리는 동안에도 '아닐거야'하고 생각했다. 어른은 어른이었나보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이 더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읽으면서는 혹 사실 비가 매미인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금방이라도 세상을 떠날 것 같이 위태로운 비가 차라리 매미인이라 떠날 때가 된 것이라면 덜 안타까울까 싶었다.

 

 결이나 진이 강한 아이들로 보여서 다행이지만 그들이 처한 소설 속 현실은 심각했다. 친구에게 대놓고 사생아라는 모욕을 당하거나, 성인도 하기 어렵다는 병자의 수발을 들어야하는 상황, 제대로 된 생활을 하고 있는지 관심도 없는 채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 외진 공원에서 집단 폭행을 당하고 담뱃불이 지져질 상황에 놓이면서도 가족, 학교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는 등 마치 예민한 지구인들이 본능적으로 자신들과 다른 매미인의 냄새라도 맡은 양 그네들을 괴롭힌다. 마치 그들이 지구를 떠나는게 당연하도록 느껴지라고, 땅속에서 참고 견디며 지내는 매미처럼 힘든 시련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안타까운 한편 매미13과 매미17의 절박함도 공감됐다. 멸망을 앞두고서도 매미인들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해준다니, 매미인들은 너무나 관대했다.

 

 금방 책장을 덮었지만 나 역시 진을 한 번 더 만나야 할 것 같아졌다. 남겨진 여운이 강해 몇 번은 더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결이가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그랬을 것 같다. 아직은 좀 이르지만 금새라도 매미 소리라 찢어질 듯이 울리는 한낮의 여름과, 팔월의 마지막 날을 지나가는 어느 여름밤이 떠오를 것만 같다. 다소 판타지스러운 내용과 함께 상처를 감싸안은 한 소녀가 성장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만큼 깊이 이해하며 애정어린 눈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아직 봄을 다 보내기는 아쉽지만 여름의 입구에 누군가에게 선물해준다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여름 내내, 매미 소리가 들릴 때마다 결과 진을 떠올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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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블로거 아름다운 청소년 14
아나 알론소.하비에르 펠레그린 지음, 김정하 옮김 / 별숲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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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이 금요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일주일 중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이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삶을 가진 사람들 이야기다. 나 같은 사람은 아니다."

 

 책소개로 봤던 내용보다 실제로는 더 흥미롭다. 가공의 인물로 SNS 계정을 만들었는데, 공교롭게도 실존하는 유명 인물과 같은 이름이었다. 가짜 계정으로 찾아온 사람들의 오해를 해명하거나 없애지않고 그냥 놔두었다 생긴 사건이라는 단순한 줄거리로는 다 알 수 없는 기지가 안에 담겨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허영심으로 가짜 계정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인척 하는 소녀를 떠올렸다. 예전에 처음 개인 SNS의 시초라고 할 수 있었던 플랫폼을 이용해서 실제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거짓된 모습을 꾸며내는 주인공을 다룬 영화를 본 적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 부러움을 받고 싶어서 다른 사람이 올린 사진을 도용해서 본인인 척하거나, 값비싼 물건들의 사진을 올려 자신의 것인양 꾸며낸 여자의 이야기였다. 그 영화의 주인공도 에바와 비슷하게, 혹은 더 심하게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히키고모리였다. 에바와 그녀는 차이점이라면 그 영화의 주인공은 일부러 다른 사람의 일상 사진을 훔쳐와 새로운 자신을 꾸며냈지만, 에바는 의도치 않게 이미 존재하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어 가짜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점이다.

 

 읽으면서 에바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생각해봤는데 놀랍게도 에바는 아무 문제가 없는 소녀였다. 성적도 우수하고 글도 잘쓰고 머리도 영리하고 외모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다만 사교적이지 못한 면이 있었는데 그 점에 대해 본인은 크게 불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에바를 문제적으로 만들고 괴롭히는 것은 에바의 엄마였다. 에바가 비사교적이라는 면을 지나치게 날카롭게 지적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그런 태도 역시 학대나 가정폭력이 아닐까 싶어졌다. 금요일 저녁에 놀러나가지 않는 딸을 들볶는 엄마라니, 에바가 원치 않는 외출을 강요하면서 매번 약속이 있는지를 감시하듯 확인하는 모습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에바가 바라는대로 외출을 하고 돌아온 다음에는 또다른 문제점을 만들어내어 금새 소리를 지른다. 에바가 저지른 사건의 문제보다도 엄마와의 사이에서 겪는 갈등이 좀 더 심각하게 다가왔고, 그 해결점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면 좋았을거라 아쉬움이 남았다. 에바가 달라진다 하더라도 엄마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바뀌는 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드는 부분이 많았다.

 

 번역이 되어서 그런지, 어떤 부분들에서는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는 방식에서 다소 어색함을 느꼈다. '가짜 블로거' 뿐 아니라 다른 책들에서도 가끔 느끼는 사소한 위화감인데, 더 매끄럽게 바꿀 수 있으나 가능한 원문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를 지키기 위해서 아닐까 생각한다. 작은 모험과 약간의 로맨스가 섞여서 한 소녀가 조금 성장하는 내용을 담아내었다. 시작은 아무 의도 없이 그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SNS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지나친 주목을 끌고, 의문의 사나이가 나오고, 비밀에 싸인 인물의 정체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진다. 가짜 계정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처벌을 받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소녀가 어떻게 진실을 밝히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되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여정이 꽤 두근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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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인문학 - 새벽에 홀로 깨어 나를 만나는
김승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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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난감했던 책이었던 것 같다. '명상'과 '인문학'이 합쳐진 책이라니, 둘 중 하나만 나와도 어려운데 말이다. 명상이란 것이 단어는 흔히 들어보기는 했어도 주변에서 실제로 명상을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체감하기엔 낯선 문화 아닌가 싶었다. 개인적으로 명상을 한다는 것을 불가 수행같은 종교적인 느낌도 들면서 구도적 자세를 갖춰야 하는 것처럼 생각했었는데 어설프게 가지고 있는 명상에 대한 이미지, 생각 같은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배우면서 고쳐갈 수 있었다. 특히 음과 양에 대한 구분도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의 개념이었어서 읽으면서 흥미로웠다. 사람의 신체가 양이고 영혼이 음으로 구분된다 생각했는데 책 속에서는 반대의 것으로 보고 있었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르고 있던 것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명상 인문학'을 읽으려면 2장부터 읽는 것을 추천한다. 사실 명상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1장의 내용을 읽으면서도 명상이 어떤거지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등 기본적인 지식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아서 몰입이 어려웠었다. 2장부터는 명상을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본격적으로 실려 있기 때문에 더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점은 처음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명상을 하려면 산이나 절이라도 들어가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반쯤은 고정관념같은 것을 농담처럼 생각했는데, 실제로 책에서도 명상을 하기에 좋은 장소가 있고, 그곳이 산이라고 하는 내용도 나온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쉽지 않은 장소 선택이기 때문에 일상적 공간안에서 명상을 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더불어 명상을 위한 명당 자리도 따로 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명상 수련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명상을 해보려고 시도만 하면 머리속에 너무 많은 생각들이 떠돌아 쉽지 않았던 차에 그 내용을 보고 금새 그럼 그 자리에 가서 잠깐 있다가 오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가, 이 마음가짐부터 고쳐야겠구나 하고 다시 반성했다.

 

 처음에는 명상을 한다는 것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읽다보니 호흡법을 따라해보게 되고, 마음을 가다듬어보려고 시도도 해보게 되었다. 전부터 복식으로 호흡하기 위한 시도는 몇번 했었는데 그 흐름이나 구체적인 감각을 알 수가 없어 매번 아쉬웠다. 책을 좀 읽어본 것으로는 다 따라하기 어렵지만 명상이나, 단전호흡 또는 부동심 같은 것들은 염두에 두고 시도하는 것만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환기가 될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된다. 마치 공부하듯이 따라해보기도 하고 머리속에 남겨두려고 노력하면서 읽었는데 끝에서는 누구든 자신에게 맞는 명상의 목적과 방법을 찾아서 하면 된다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 지어져서 읽으며 쌓아둔 마음의 짐을 좀 덜어낼 수 있었다. 읽는 내내 어쩐지 계속 대학 강의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이름이 동양철학의 이해 일것만 같은 수업. 공자, 논어, 도가, 불교 등등 성인과 경전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실제로도 논어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을 대학 시절 수강한 적 있었는데, 그때 배웠던 구절이 책에서도 나와 반가웠다. 그때 교수님이 주셨던 학점을 떠올리며 즐겁게 책을 읽었다. 주변에 관련 내용을 담당하거나 관심갖고 계시는 교수님이 계시면 스승의 날을 맞아 이 책을 한권 선물해드리면 좋을 것 같다. 가격도 삼만원 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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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살림법 - 주말에 끝내는 살림살이 장만, 청소.정리.수납.인테리어!
최정인 지음 / 나무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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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책을 받자마자, 택배 포장을 북북 찢어내고 바로 앉아서 후루룩 읽어보기 시작했다. 책장도 금방 넘어가는데, 시간도 훌쩍 지나버린다. 수납, 정리 같은 부분만 좀 집중적으로 골라서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다보니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야 될 책이었다. 그래서 하루가 지나고 다시 여유를 좀 내서 표지부터 날개까지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저자가 4년차 새댁이라고 소개된 부분에서 약간의 절망감을 느꼈다. 솔직히 책장을 그냥 다시 덮을 뻔 했다. 똑같이 자기 살림 꾸린지 4년이 되는데 20년 정도 차이 나는 것 같은 이 상황은 뭐지... 전에 가볍게 훑어보면서 저자가 적어도 사십대 초반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니 나이야 어떻더라도 10년 이상은 집안살림을 해본 경력일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충격을 좀 받았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기숙사, 하숙 그리고 자취 생활까지 이어져 온 경력이 있다고 하니 조금 위안이 됐다. 이제 막 집을 나온 초보랑은 연륜이 다르겠지.

 

 

 제목이 '신혼 살림법' 이라고 되어 있기는 한데 신혼은 아니어도, 내 집을 한번 주욱 둘러보고 할 말을 잃고 이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번잡한 것들이 싫어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는데, 정리정돈이 정말 쉽지가 않다. 물건들이 신발장 앞에서 거실까지 벽을 타고 진열되어 있어서 어수선한데, 수납장 중에는 비어있는 것도 있다. 마찬가지로 싱크대 위 찬장은 자주 쓰는 그릇들로 가득차 있는데, 손이 잘 안가는 옆 칸은 남는 공간이 허다하다. 공간활용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쉬는 날 하루 날을 잡고 책장을 다 뒤져 남겨둘 책과 나눔할 책을 골라내기도 해보고, 옷장을 정리한다며 모든 옷을 끄집어 내보기도 해봤는데 뒤돌아서니 달라진 부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고생은 노가다에 맞먹는 노동이었는데. 아래는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인데, 저 부분도 청소를 할 수 있는지 생각도 못했었다. 게다가 청소를 위한 도구가 준비되어 있다니, 같은 회사에서 나온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데 읽다 말고 부엌으로 달려다가 밥솥 밑면을 확인해봤다.사고 난 뒤로 처음, 스팀캡을 열어 청소했다. 분리하다 고장낼까 걱정했는데 사진으로 자세히 나와 있어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곧 가스레인지 후드도 분리해서 청소해 볼 예정이다.

 

 

 


 독립하기 전에는 방청소 한 번 스스로 해본 적 없이 무심하게 지내서 그런가 화장실은 원래 깨끗하고, 냉장고에 채워놓은 음식들은 백년천년 두고 먹으면 되는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 집, 내 살림을 갖게 되면 내가 살고 싶은대로 해놓고 잘 유지하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절대 그냥 되는 일이 아니라 노하우와 노력이 필요했다. 해본 적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 '신혼 살림법'은 초보들을 위한 내 집 관리 눈높이 교습서이다. 옷 접는 방법, 식기 세척, 보관법, 다진 마늘 등의 양념을 큐브로 얼려 보관하여 사용하는 법 등이 정말 쉽게 소개되어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저자가 직접 사용하여 본 제품 중에서 예쁘고 실용적인 살림살이를 브랜드를 여러개 소개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알아보는 시간은 적게 들이면서도 실패는 줄여 비용도 절감하고 인테리어 효과는 좋은 팁이 되어 준다. 정리, 청소, 수납을 잘 할 수 있는 노하우를 단계별로 촬영한 사진들과 함께 세심히 설명해 놓아 결혼한 사람이 아니어도 정리정돈에 서투른 초보들이 읽어보고 어렵지 않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신혼 살림법'은 감각도, 손재주도, 아는 것도 없는 초보 살림꾼이 내 집 내 마음대로 해놓고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쉽고 간단하고 유용하니 부담없이 읽으며 따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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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 -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임종학 강의
모니카 렌츠 지음, 전진만 옮김 / 책세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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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해한 임종 과정은 세 단계로 나뉜다. 죽음의 문턱에 선 인간은 세 단계의 상태 변화를 거친다. 이과정은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진행된다. 나는 통과 이전(의식과 무의식의 내적 경계 전), 통과 순간(이 경계를 넘는 순간), 그리고 통과 이후(경계를 통과한 이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익숙하지 않다. 낯설 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주제로 올려놓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해보면 불편하거나, 금기시 되거나, 혹은 알 수 없어서 모호하다.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를 앞에 두고 자연스레 책의 내용이 죽음을 마주하기 전에 생의 정리 단계에 대한 조언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를테면 주변에 친절하라던가, 용서를 구하거나 하라던가, 금전문제를 정리하라는 등의 내용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하고 나니 내가 떠올린 것들은 엄밀히 죽음을 마주한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마주하기 이전의 생의 영역에 있는 것들이었다. 실제로 죽음을 마주한다고 떠올리면서도 그 앞까지 도달하지 못한 단계에서 머물러버린 것이다. 어쩌면 무지이고, 혹은 회피하고 싶다는 무의식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종잡을 수가 없다.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은 죽음을 '소유'할 수도, '만들어'낼 수도, 준비할 수도 없다. 죽음은 개별적으로 일어나고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17년간 임종 준비를 해왔지만 늘 불안했다. 죽음을 긍정하고 인정하도록 하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부당한 요구를 해올지를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성서 본문에 등장하는 천사가 여러 차례 말한다. 천사는 이승과 저승 두 세계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해주는 전령이자 경계에 서 있는 상징적 존재이다. 이 존재가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고 외치면서 동시에 넌지시 일러준다. 우리가 어떤 영역과 관계되어 있다고, 그 영역에는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죽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경험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죽음을 앞둔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죽음에 대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지거나 공포를 느끼게 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 그런 근원적인 공포감에 대해서 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죽음의 과정에서 겪게되는 신체적, 정신적, 감각적 변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면은 있지만, 그 근원적인 공포나 두려움은 상쇄되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점은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수긍하고 인정하도록 도움이 되는 부분은 있었다. 이유는 다름아니라 저자 역시 17년간 임종 준비를 해왔어도 그것을 준비할 수도 종잡을 수도 없어 늘 불안했다는 고백 때문이었다. 때문에 때때로 죽음을 떠올리고 불안해하거나 하는 일이 과민한 불안 증세인 것이 아니라 좀 더 자연스러운 것이라 공감하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나,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환자들의 행동 양상에 대해 알게 되는 점들이 많았다. 다만 일부 내용에서는 다소 종교적인 관점으로 죽음을 받아드리도록 서술된 면이 있어서 크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죽음은 이별이다. 죽음은 삶의 단절이고 결코 좋은 것이 아니며 최종적이고 일회적이다. 임종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은 절박함을 느낀다. 이는 가족 간의 화해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모든 것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죽음의 문턱을 넘는 과정에 맞춰진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한층 더 심한 강요와 압박, 인간관계의 충돌, 뒤끝이 찜찜한 관계 단절과 쉬고픈 욕구가 느닷없이 밀려온다."

 

 성인이 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변인의 죽음을 경험해보았을거라 생각된다. 특히 가족과 같은 가까운 인물의 죽음은 망자 뿐 아니라 남은 이들에게도 숙제를 남긴다. 죽음의 과정, 망자의 사후까지도 죽음을 함께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 이별의 과정에서 오는 절박함은 상호적인 것이고 때로는 길게 그 상흔을 남기기도 하는데 이 양자적인 면도 함께 깊이있게 다뤄줬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책을 읽고 난 뒤에 분명히 새로이 깨달은 것들이 있다. 그런데 애매하게도 이것을 어떤 식으로 삶 속에 녹여낼지는 막막하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죽음을 앞두고 그의 상황을 이해하고 보살피는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면서,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혼란과 두려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저 단순히 참고할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이미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삶의 자연스런 과정 중 하나인 죽음에 대해 우리의 삶을 준비하고 계획하듯이 한번쯤은 떠올려보고 주변의 죽음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

 

 모니카 렌츠의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는 진실로 죽음의 순간을 눈 앞에 둔 환자들을 직접 마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임종학 강의'를 담아놓았다. 이 책에 담긴 다년간에 걸친 임종의 실 사례들과 그에 비롯한 죽음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는 죽음과 죽음의 과정, 순간들을 한 발 더 다가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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