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굉장히 오랜시간에 걸쳐 책을 읽게 된 경우입니다.
중간에 다른 책을 읽느라 왼독이 늦었습니다.

이 책은 제가 2025년 8월 28일 백창민작가를 초대해 북토크를 진행했던 연남동 책방곱셈에서 샀습니다.

거의 일년이 다 되가는 시점에 이제서야 책에 대해 쓰게 되니 좀 미안한 마음도 드네요.

전체적인 평가를 우선 하자면, 한국 도서관계에 일제와 친일의 영향이 상당히 남아있다는 점과 박정희/ 전두환에 걸친 군부독재 시절 학술과 문화의 척도인 도서관을 소홀하게 취급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도서관을 소홀하게 취급한 대표적인 예가 국립중앙도서관이 받은 푸대접입니다. 1970년대까지 서울의 도심 소공동에 자리잡고 있었던 국립중앙도서관이 박정희 군부에 의해 남산으로 쫓겨난 사례는 차라리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도서관을 ‘열람실’혹은 ‘독서실’취급하고 폐가식으로 운영하던 당시의 실태를 보면 당시 군부는 국민들이 도서관에서 배은 지식으로 정권을 위협하는게 몹시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그 시작이 해방후 국립도서관이고 일제 때 조선총독부 도서관이기 때문에 초기 도서관 사서들의 경우 ‘친일’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조선총독부에서 관료를 지낸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제국대학 출신의 검증된 친일파인 경우가 상당수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의 최고 도서관이라고 하는 국회도서관의 경우, 국립중앙도서관과 함께 양대도서관인데도 관외대출이 되지 않는 운영방식이 상식밖이고, 더구나 국회의원들이 잘 이용하지도 않는다고 하니 세금들인 방대한 자료들을 활용을 못하는 대표적인 국가자원 비효율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저같은 사람들은 국가가 지원하는 도서관 시설조차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면 집권세력과 정부조직은 뭐하나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그래도 복지수준이 처참한 나라에서 유일한 문화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도서관의 이용만큼은 좀 더 개방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서구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도서관 서비스는 질이 낮습니다.

대학도서관이든 공립도서관이든 미국에서는 20권 정도 대출받는 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5권이 최대 대출수량입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건 교육청 도서관과 구립도서관의 새 책을 구입해서 대출해주는 서비스의 상한이 3만원이라는 점입니다. 학술서나 연구서의 경우 3만원이 넘는 경우가 허다한데 국민들은 이런 책 읽지 말라고 부추기는 것도 아니고.

도서관은 국민들의 문화복지 차원에서 고가의 양서를 마음껏 빌려볼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황당한 경우는 ‘공공도서관’성격의 교회도서관인 명성교회 도서관이 ‘세습’된 경우입니다.

‘극우’목사들의 어처구니 없는 전횡이 정치적 측면에서 이미 ‘사회악’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강동구에 있는 대형교회인 명성교회에 세습이 진행되면서 그 부속 도서관도 세습되는 몰상식한 사례입니다. 반공자유주의를 외치며 민주주의가 자신들만의 소유인 것처럼 오만하게 굴면서 북한을 적대시하면서 북한처럼 권력을 세습합니다. 자기부정을 부끄러움없이 저지르는 대형교회 목사들을 보면 황당함과 분노가 같이 일어납니다. 웃긴 건 이들이 주장하는 아무것도 성경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점이죠. 대형교회는 ‘종교기업’이라고 봅니다. 종교를 참칭하고 종교를 일상적으로 모욕하는거죠.

마지막으로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고종의 도서관인 경복궁 집옥채와 덕수궁 중명전의 장서가 사라진 경우입니다.

고종은 조선에서 재위기간이 매우 긴 왕이었음에도 조선말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 앞에 무력한 왕이었고, 개인적으로도 부인안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참살당하는 아픔도 겪었지만 끝내 국권을 빼앗겼기 때문에 평가가 결코 좋을 수 없는 왕입니다. 그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장서를 모았던 그의 왕립도서관 도서들이 격변을 맞아 흩어지고 사라지고 불탄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은 도서관과 관련된 한국 근현대사를 두루 소개하다보니 일제시대 제국 일본의 문화정책과 일본에 협력했던 친일지식인/관료들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고 한국전쟁이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시대를 거치며 아직도 일제의 영향하이 있었던 폐쇄적이고 부실한 도서관 정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경험에도 일제의 영향은 1980년대까지도 유효했습니다. 당시 고위관료들 중에 일제시대 제국대학을 나온 이들이 현직에 있었고, 학교에서도 일본의 대학을 대단하게 생각했던 기억입니다. 특히 국문학이나 한국사의 경우는 현재도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박정희의 경우 자신이 일제 만주군 장교 출신이고 2인자 김종필은 일본육사를 나온 인사이가 때문에 박정희가 실행했던 경제개발계획이 대체로 만주국에서 시행했던 것의 복사판이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도서관도 예외가 아니어서 폐가식 운영에 공부방인 열람실울 운영하는 체제가 아직까지도 운영되고 있죠. 정작 일본은 패전이후 미국식으로 도서관 운영체제를 바꿔 열람실을 없애버렸는데 말이죠. 역설적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 중 몇가지 관련 도서를 소개합니다.

제국대학출신 한국의 엘리트에 관해서는,

정종현,제국대학의 조센징( 휴머니스트, 2019)

를 소개합니다. 한국의 경제개발 초창기 엘리트들의 뿌리를 총체적으로 분석한 연구서로 역사학자가 아닌 인문학자의 연구입니다.

군부독재시절 ’근대화‘의 만주의 영향/기원 관련해서는,

한석정, 만주모던 ( 문학과지성사, 2016)

을 소개합니다. 박정희의 업적으로 칭송되는 경제개발계획이 사실 만주국의 계획을 배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박정희 당시 고위관료 중에는 만주국에서 일했던분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에 관해 한마디하려 합니다.

저는 이 노정객이 한국전쟁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한국계 미국인( Korean-American)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고종시절인 구한말부터 살아온 이이기 때문에 전근대적인 조선의 전제정치( 왕정)의 인식을 1950년대까지 가지고 있던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를 싫어했지만 자신을 왕으로 여기던 전제정치 인식은 그의 배움과 관련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프린스턴에서 박사를 받으면 뭐하나요. 하는 행동은 전제군주처럼 행동했는데요. 그는 이땅에서 민간인으로 독재정치를 처음 도입한 독재자입니다. 민주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4.19 혁명이 일어난 원인도, 막걸리선거라고 칭해지던 1950년대의 금권선거도 설명이 안됩니다.

애석하게도 한국의 실질적 민주주의는 1945년 해방이후 42년 후인 1987년에야 가능했습니다. 그 이전은 이승만의 독재시대,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의 군부독재가 이어졌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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