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쿠데타, 8월 종파사건
김재웅 지음 / 푸른역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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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현재 김정은의 일인독재체제를 유지하는 나라이고 그의 일인독재체제는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 3대째 이어져 온 것입니다. 주목할 점은 북한이 ‘조선노동당’의 일당독재(一黨獨裁)가 아니라 한사람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독재정(獨裁政)으로 사실상 군주제와 유사한 형태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처음 성립되고 초기부터 김일성 일인독재체제는 아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일성은 자신의 일인독재를 완성하기 위해 자신을 비판하고 소련과 중국의 개입을 촉구해온 쿠데타 세력을 숙청해야 했습니다. 이 책은 북한성립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던 쿠데타에 대한 분석서입니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김일성의 일인독재체제는 원래 북한의 혁명가들이 추구했던 사회주의 정치체제와 무엇이 달랐나? 비판세력은 김일성 일인독재체제가 네가지가 결여되었다고 생각했고, 이를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그 네가지는,

첫째,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
둘째, 인사문제( 김일성에 아첨하는 인사들로만 간부선발)
셋째, 조선노동당내 집단지도체제가 와해되었고, 당내 민주주의가 저해됨
넷째, 조선민족해방운동사가 김일성의 항일투쟁사로 왜곡되어 김일성과 관련된 만주항일빨치산 이외의 조선의용군 등 항알무장투쟁 역사가 왜곡됨.

1956년 당시 북한의 수뇌부에서 활동하던 소련출신 고려인들과 중국 연안에서 무장투쟁을 하던 인사들 중 일부가 당시 김일성 일인독재체제에 대해 위의 네가지 사항을 시정하지 않으면 북한이 사회주의 정치체제로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고 믿었고 신념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 사건은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 사후 후계자인 후르쇼프가 1956년 2월 소련공산당 제20처대회애서 ‘스탈린 격하’를 선언하고 나서 그 동인을 얻었습니다. 소련의 1인자가 전임인 스탈린의 일인독재정치를 비판하고 나섰고, 이 정치적 선언의 효과는 동유럽과 북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실상 소련의 위성국으로 억압받던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북한에서는 김일성 일인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이 북한 수뇌부에서 나왔던 겁니다.

국제정세에 큰 영향을 받았던 만큼 국제정세가 바뀌면 상황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갈 수 있었습니다. 사회주의 모국인 소련과 중국에서 사실상 비판세력을 지지해 김일성의 통치력이 약해진 기간이 잠시 있었습니다.

하지만 1956년 일어난 헝가리사태로 국제정세는 반전합니다. 스탈린격하운동의 영향으로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 했던 헝가리는 동유럽에서 영향력을 잃기 싫었던 소련이 군대를 파견하고 사태를 유혈진압해서 소련에 대한 비판세력을 탄압했습니다. 거기다가 중국과 소련간의 분쟁이 격화되면서 이 두 나라가 북한에 간섭하기 어려워졌고, 해게모니 장악을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북한 끌어들이기에 골몰합니다.

북한은 소련의 헝가리 유혈진압을 비판세력을 탄압해도 괜찮다는 신호로 받아들였고, 소련은 실제로 김일성 비판세력의 숙청을 묵인했습니다.

중국도 처음 비판세력에 가담했던 연안계 인사들 탄압에 대해 북한에 항의했으나 소련과의 중소분쟁으로 이들에 대한 탄압을 사실상 승인했습니다.


이 책은 북한이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나 1950년대말부터 사실상 김일성 일인독재국가로서, 국가의 모든 결정을 김일성 혼자 독점하고, 아첨을 일삼는 측근만을 기용해 사실상 경제정책에 실패해 현재까지도 굶주림에 시달리고 중국의 원조없이는 살수 없는 국가가 된 역사적 원인을 캐고 있습니다.

당시 북한수뇌부에서 김일성을 견제하며 주요 정책결정을 하던 엘리트들이 이를 그냥두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8월종파사건’이 일어난 것이지요. 다수가 소련과 중국에서 유학하고 소련공산당이나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전력이 있는만큼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정견에서도 그렇고 항일투쟁 전력을 김일성이 혼자 독식하는데 불만이 많았을 겁니다.

끝으로 한반도의 북쪽의 한국전쟁 이후의 현대사를 파해친 이 책을 보면서 느낀 두가지를 언급하려 합니다.

첫째, 1950년 6월 이전까지 하나의 나라였던 남한과 북한에 대해 남한에서는 그동안 지나치게 북한에 대한 역사를 터부시했다고 생각합니다. 남한에서 진행된 자본주의에 의한 경제발전과 정치전개만큼, 북쪽에서 진행된 사회주의 경제발전과 정치전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출발점은 항일운동이 우파뿐만 아니라 좌파에서도 있었고, 연해주와 중국에서 무장투쟁하던 인사들이 북한의 성립에 기여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치 좌파쪽 항일운동이 역사에 없었던 것처럼 치부하고, 우파쪽인 임시정부만 강조하는 것도 역사왜곡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대체로 친일성향이거나 제국대학출신 엘리트들이 통치해온 한국에서 이는 인정하기 싫은 역사적 사실일겁니다. 남한의 설립당시 뿌리가 친일 친미성향인 엘리트였던 것처럼 북한도 소련이나 중국에서 활동하던 좌파 엘리트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이들 사회주의 항일투사들 중 김일성 일인독재에 반기를 든 이유와 경과를 설명한 것인 것 만큼 그 전사 (前史)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최근 친일인 뉴라이트세력이 홍범도 장군의 항일독립운동을 깎아내리고 폄하하는 행위는 일본제국주의에 영합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비이성적인 주장이죠.

북한을 아는 건 북한의 현재를 알기 위해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도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전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골수 우파적인 입장에서 봐도 북한이 주적이라면, 북한을 제대로 아는 것은 필수조건입니다.

반면, 북한의 실체를 모르고 관심없어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북한의 도발을 부추기는 일부 친일 극우세력의 적대적 공존전략은 북한을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하수의 전략으로 한국을 전쟁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매우 위험한 도박입니다.

둘째, 위의 쿠데타의 네가지 명분은 현재의 윤석열 검찰독재정부에도 그대로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을 책에서 읽으면서 기시감(旣視感, Déjà Vu)을 느껴 당혹스러웠습니다.

사실상 일인독재로서 윤석열 대통령이 모든 결정을 하는데( 물론 여기에 대통령 부인의 영향력 내지 이면에서의 결정여부가 아직은 불분명합니다), 집권여당인 국민의 힘은 대통령의 거수기로 전락해 사실상 국가정책 결정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습니다.

두번째 인사문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되온 사안입니다. 고위인사의 상당수가 전직검사들로 해당 포스트의 경험이 전무한 경우가 많고, 수사하듯 일을 처리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외에는 대통령 부인의 사적 인맥이거나 대통령의 개인적 인맥에 따르는 경우로 역시 전문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아첨꾼’문제가 심각한 건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김일성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도 업무성과가 형편없습니다. 역대급의 무능은 재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셋째, 집단지도체제 붕괴는 한국의 맥락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정부의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검찰과 감사원을 대통령의 수족으로 만들어 버렸고, 제1야당 대표를 정치수사로 옭매면서 사실상 입법부와 척을 지고 있고, 거부권을 남발해 국회의 입법권을 무력화시켜 버렸습니다. 30년이상을 늘공으로 살아온 관료출신 대통령과 역시 관료출신이 대부분인 내각역시 법률의 위반 여부만 따지고, 정치적 정무적 감각을 상실한 상태이고 대통령부터 모든 관료조직이 ‘책임회피’와 ‘복지부동’이 몸에 벤 상태입니다. 추측컨데 윤대통령은 아마 평생 ‘책임’이라는 걸 진적이 없는 걸로 보입니다.

넷째, 역사왜곡도 이 정부의 주요과제로서 항일운동사를 부정하고 일제의 전쟁범죄애 면죄부를 주는 일을 서슴치 않습니다. 심지어 일제강점 당시 한국인은 없고 일본인이었다는 망언까지 나오는 형국입니다.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해 보급기지 역할을 했던 한국이 그에 필요한 인프라를 투자했을 뿐인 일제의 경제정책을 마치 한국이 일제없이는 경제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왜곡합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시각을 고스란히 가져와서 당혹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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