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국가와 대칭국가 - 식민지와 한국 근대의 국가
윤해동 지음 / 소명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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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의 조선 강점과 식민지 시기 그 자체에 대한 연구는 그간 많이 봤지만 식민지시기의 국가(國家)의 의미와 식민지통치구조가 어떻게 작동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매우 드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념을 떠나서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어떤 통치체제를 가지고 조선을 지배했고 구조적으로 어떤 차별이 있었는지 그대로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의 국가론을 이론적 프레임워크로 삼아 일제강점기의 국가론을 다룹니다.

일제강점이 끝나고 해방이 된지 70여년이 지났는데도 일제시기에 대한 통치구조에 대한 연구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습니다. 좋든 싫든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체계와 통치구조에 영향을 주었을텐데 이해가 쉽게 되지는 않습니다.

일단 이 책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베버의 국가론을 간략히 정의한다면, 베버는 근대국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 ‘물리적 폭력의 독점’으로 보았고 국가란’주어진 영토내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 사용을 실효적으로 행사하는 인간공동체’로 보았습니다(p373).

즉 여기서 물리적 폭력이란 치안과 안보를 담당하는 무력, 즉 군대와 경찰입니다.

하지만 조선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1910) 되면서, 왕조국가- 식민국가의 역사 진행과정을 거치면서 베버가 정의한 서구적 근대국가의 정의와는 다른 괘적을 가진 국가의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조선동화정책 등이 과연 ‘정당한’ 물리적 폭력의 독점인가에서 전형적 근대국가의 정의와 차이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식민지시기 일본 식민권력의 통치형태를 대한제국과 같이 병존하던 통감부시기를 이중국가 (Dual state)시기로,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조선총독부와의 관계를 대칭국가와 식민국가(colonial state)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조선총독부의 통치메커니즘도 일본과의 관계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기 전부터 이미 대한제국의 군대를 무력화시켜 국가의 독점적 폭력을 무력화하기 시작했고, 대한제국을 일본에 병합한 후 한동안 대한제국의 권력과 통신부가 병존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때를 저자는 이중국가의 시기로 규정하였고, 대한제국이 일본으로 병합(annexation)된 이후 조선의 국가는 일본에 흡수도는 형태를 띄게 됩니다. 이후 일어난 군대해산이 바로 국가권력이 해체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조선총독부로 대표되는 일제의 식민권력은 총독에게 사법권과 입법권을 포괄하는 종합 행정권을 부여하였기, 조선에 주재하는 ‘조선군( 조선에 주둔하는 일본군)’에 대해 병력을 청구하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조선군을 포함해서 조선은행 그리고 이왕직 (李王職)은 일본 본국의 직접 통제를 받는 시스템으로 총독의 통치권력은 일본본토의 끊임없는 견제를 받았습니다.

식민국가를 대표하는 조선총독부는 저자에 따르면 영토와 독점적 물리적 폭력이 있으나 주권( sovereignty)이 부재한 근대국가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가 현저하게 부재한 식민지 조선은 따라서 거대 관료조직을 동반하는 ‘과대성장국가’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칭국가로 설명되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그 역사적 실체가 국토와 인민이 없는 반주권 (半主權)적 정체로서 조선의 왕통을 이어받은 망명정부(government in exile)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국제법적인 실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불운이 있었습니다. 또한 일제 강점이후 조선의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행위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뿐 아니라 미주 러시아 국내에서도 많은 활동이 있어 이는 사실 주권의 경합상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이 전반적인 이 책의 주요내용이며, 아래에서 ‘조선군’관련 내용을 부가적으로 말하려고 합니다.

조선군은 최초 조선주차군이라는 임시주둔 형태로 조선에 들와서 조선의 치안을 위한 활동을 하다 193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일본의 중국 침략을 위한 선봉부대가 됩니다. 일제가 중국과 만주침략을 위해 조선을 병참기지로 만든 건 다 알고 있지만 조선군의 주둔목적이 일본의 대륙침략이었다는 사실은 좀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1931년의 만주사변부터 1937년 시작된 중일전쟁까지 조선군은 일본의 중국침략애 깊게 관여했습니다. 태평양전쟁 이전까지 러시아를 제1의 적으로 규정한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이후 함경도 지역을 사실상 군정으로 통치하며 이 지역을 러시아와의 결전을 대비한 군사요충지로 만들었습니다.

조선군이 남하하여 제주도와 군산 등지에 주둔하게 된것은 미국과 적대하게 된 태평양전쟁이후였습니다.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 (조선군)이 중일전쟁과 제2차세계대전에서 어떤역할을 했는지 찿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서구학계에서 제2차세계대전의 범위를 더 넓게보고 시기를 확장하면서 최초로 이 대전이 발생한 지역과 시기가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아니라 사실은 일본이 1931년 일으킨 만주사변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서구인들에게 적대적 공산국가인 중국의 군벌시대나 중국공산당 집권 이전 국공합작을 통한 일제에 대한 저항이 상당히 낯설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기존의 유럽중심적 시각에서 독일 나찌와 자유주의 서구진영의 대전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새로운 시각에 따르면 제2차세계대전은 유럽에서 먼저 일어난 전쟁이 아니라 중국에서 먼저 일어난 전쟁이었고, 이는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중국을 도발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이전에 일어난 러시아혁명과 제1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일어난 혁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해도 중국에서 일어난 일본의 팽창적인 침략정책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아는 한 미국은 공산화되기 전 중국을 공산주의의 최고 방어선으로 생각하고 장개석 총통을 지원하고 1930년대 중국에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국가론이 중요한 이유를 한마디 덧붙이자면,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이후 2022년 현재 한국은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보수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청년들이 희생당하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국가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고, 그게 국가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포함해 행정자치부 장관까지 모두 최근에 일어난 10.29참사에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정권을 맡긴 이유가 국민의 생명보호에 있는데도 ‘법적 책임’운운합니다. 해방되고 정부가 수립된지 70여년이 넘었는데도 정부의 이런 무책임한 경우를 보게 될 줄 몰랐습니다. 지금이 주권이 없는 식민지 시대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고시출신 고위공직자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문제고 조직의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부분을 특정할 수가 있지요. 비정상을 정상으로 빨리 돌려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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