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는 중국의 마지막 왕조국가로 여진족(女眞族)출신의 누르하치(努爾哈赤)가 17세기 초 만주지역에서 세운 국가입니다.

한국사람들에게는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皇太極)가 조선을 침략했던 1637년의 병자호란과 남한산성에서의 공성전( 攻城戰)그리고 삼전도에서의 항복이 우선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근래 청나라에 대한 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매체는 영화입니다. 횡동혁 감독의 2017년 작 ‘남한산성’은 추위에 한강을 넘어 남한산성에 도착한 조선조정이 어떻게 청에 대항하고 싸우다가 항복하게 되었는지 산성 속 주화파 최명길과 척화파 감상헌의 대립을 통해 보여줍니다.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던 조선의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임금이 만주출신 오랑캐인 홍타이지에게 항복의 예를 올리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후대에서는 사대부의 나라 조선이 오랑캐에게 패한 치욕 (恥辱) 만 강조할 뿐 선조이래 발생한 조선의 붕당정치가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에 대한 치열한 반성을 보기는어렵습니다.

아마 전문적 영역이라 일반대중이 꺼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지만 정조이후 19세기 조선사를 돌이켜보면 양반들의 안이하고 무신경한 국토방비의식을 볼 수 있습니다.
명나라가 망했는데도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명나라에 사대하는 노론사대부들의 정신세계는 이해불가입니다. 책이나 읽으면서 마음따위나 논쟁하면서 삶의 기반인 경제와 군사를 무시하다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도 양반들이 정신을 못차린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몰상식하고 구태의연한 생각이 결국 조선의 멸망에 이르는 한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말로만 북벌을 외치던 이들의 주장 자체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구한말 조선이 어려움에 처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제대로된 신식군대가 없었다는 것이고 실학파와 후의 개화세력 모두 이를 보완하려고 했고 남은 수단은 결국결국 러시아와 일본에 군대를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사대부들이 고고한지 몰라도 조선 멸망의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튼 21세기가 시작된지 한참 지난 지금도 별로 유익하지 않은 소중화사상에서 아직 별로 벗어난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역사적 관계를 되짚어 볼 때 중국이 한국을 속방(屬邦) 으로 생각하여왔고, 동쪽의 오랑캐라는 의미의 동이(東夷)라는 명칭으로 불러왔다는 사실은 사실 언급하기 새삼스럽습니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의 여러민족 중 명나라를 세웠던 한족(漢族)들의 생각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만큼은 이제 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안 사실로 철저히 만주족( 여진족)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대청제국의 정치구조가 한족의 영향으로 중국화되기 시작된 것은 19세기 들어서 청나라 내부의 여러 민족들의 반란과 태평천국의 난, 그리고 의화단 전쟁같은 우환을 겪고 19세기 중반 영국과 아편전쟁을 하고 불평등조약을 맺기 시작하고 러시아와의 국경분쟁으로 연해주 땅을 잃는 등 외부로부터 위험이 가중되며 기존의 정치체제가 변화하고 한인들을 중용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종시기 조선에 주재하며 한국을 중국의 종속국으로 생각하고 실효적 지배를 밀어부쳤던 북양대신 이홍장 (李鴻章)은 19세기 혼란기가 아니었으면 중용되지 못할 한족(漢族 ) 출신 고위관료였습이다. 그는 철저한 화이사상 (華夷思想)을 가지고 조선을 하대하였습니다.

18세기까지 청나라는 만주족과 몽골족 중심의 나라로 한족은 철저히 권력중심애서 배제된 나라였습니다.
또한 청나라는 다민족 다언어 국가로 모든 공문서에 만주어와 몽골어와 한문이 병기되었고 한족출신 관료들은 철저히 과거 명나라의 통치지역에서의 권한행사만이 허용되었습니다.

심지어 조선과의 외교를 위한 칙사파견도 철저히 만주족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이 규칙이 깨져 한족출신 칙사가 조선에 온것도 19세기 이후입니다.

청나라는 자신들이 기마유목민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나라였고 또한 몽골제국의 후예로 그들의 뒤를 잇는다는 자긍심이 대단한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사실은 청나라가 사실상 옛 몽골제국 황실의 공인을 받아 나라의 정통성을 인정받은 기마민족의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무예와 말타기는 따라서 학문보다 더 큰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이었습니다.

당나라와 함께 중국대륙을 200년 이상 통치한 청나라는 제국으로서 만주뿐만 아니라 내몽골과 외몽골, 위구르 이슬람, 티벳지역까지 그 영토가 확장된 대제국이었습니다.

특히 티벳과 신장지역의 위구르 이슬람 지역은 직할통치보다 자신들의 지역에 맞는 통치를 하기 위해 자치권을 주었습니다. 이슬람 문화도 티벳 불교 문화도 모두 편견없이 받아들인 겁니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청나라의 준가르 초원 정복은 청나라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상징하는 것으로 너무 간략하게 서술된 것이 아쉽습니다.

미국의 중국학자 퍼듀라는 분이 이 청나라의 준가르 원정에 대한 연구서 (China Marches West,Harvard,2005) 를 썼습니다. 기회가 되면 읽어볼 생각인데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서구의 지역연구의 폭과 깊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청나라의 전성기인 옹정제, 강희제 연간에 이루어진 정복으로 이를 위해 청나라는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 카흐타 조약을 채결해 러시아와의 국경분쟁을 마무리 지어야 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청의 대 러시아 외교는 ‘몽골문제’의 일부로 파악해 한족 출신 관료들이 철저하게 배제되었고 이 두 조약의 언어도 만주어 몽골어 러시아어 라틴어에 한정되었으며 이 조약의 중재를 위해 당시 중국에 와 있던 예수회 선교사들이 참여하였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청과 러시아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러시아의 동진이 자명한 가운데 여러 분쟁이 있었겠지만 이에 대한 내용은 한국독자들애게 거의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언어의 장벽이 크게 다가옵니다.

저자께서 서두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책은 청나라의 정치에 관련된 책이고 청나라의 이원적 통치구조에 대해 서술해 개론서를 기대한 독자에게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개론서 수준의 책만 여러권 나오는 것은 그 자체로 무의미한 시간 낭비라고도 생각합니다.

300쪽 내외의 책에서 상당히 밀도있게 청나라의 정치 작동방식을 설명했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청나라를 연구하면서 만주어로 된 사료를 인용한 책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느껴졌습니다.

최근 나온 중앙아시아나 유목민족 관련 서술들에 이들의 문자로 이루어진 사료를 직접 해독해서 연구한 책들이 나오고 있는 건 고무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어 뿐 아니라 기타 언어라고 취급받았던 언어들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도 시급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일제시대 교육을 받아 일본어가 능통한 학자분들이 일본어 자료에만 의존하는 관행은 그 자체로 매우 나태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누르하치와 홍타이지에 관한 예전에 읽었던 책을 소개합니다.

누르하치( 돌베게2015)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산수야,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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