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전 서울의 도심이 어떠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광복이전까지 경성에 자리잡았던 일제 강점기 당시 어떤 건물들이 어떤 지역에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개화기 이후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말 대한제국기까지 유지되었던 관청가인 경복궁 앞 육조(六曹)거리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이들의 통치기구 설치로 어떻게 변해왔는지 일차사료인 당시의 신문과 관보, 실록 등과 같은 기록자료를 통해 그 변천사를 추적합니다.
2012년 출판된 책으로 약 39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으로 근대건축물, 특히 근대이후 중앙 관청의 공간변천사를 기록한 책은 이 책을 제외하고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조선 말 왕조의 수도 한양이 어떻게 일제의 식민지 도시 경성으로 바뀌어 갔는지, 일제 식민 당국은 어떤 필요에 위해 어떤 장소에서 그들의 행정부서를 세웠는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간의 ‘정치사’이자 ‘ 행정조직 변천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칭하는 이유는 인용문헌의 출처가 대부분 <조선총독부 관보> 또는 <통감부 관보>그리고 <고종실록 >,<승정원 일기>등 통치기관의 공식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몇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첫째, 갑오경장이후 을사늑약 전까지 기존의 육조 자리에 자리를 잡았던 대한제국기 관청들은 나라의 힘이 열강에 달리고, 정세가 불안정 한 탓에 수많은 자리바꿈이 일어나게 됩니다.
둘째, 1910년 을사늑약이후 일본은 통치권 강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육조거리에 그들의 관청을 세우기 시작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며 육조거리의 틀을 변화시킵니다. 대한제국기 일본인 거리였던 남산의 충무로 근방에 있던 통감부는 후일 총독부로 확대되어 약 10여년의 공사 끝에 경복궁 내의 신청사로 1926년 옮겨오며 육조거리 변화의 정점을 찍습니다.
일제는 1910-1920년대를 통해 서양식 관청 청사를 속속 광화문 앞 육조거리에 건립합니다. 일제 특유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투영된 거리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번째로 일제강점기 때 구획이 나뉘어졌던 광화문 앞 육조거리는 해방이후 미군정 시기에도 계속 이어졌으며, 이 도심의 구조가 무너진 결정적 계기는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후 약 10여년간 복구를 하지 못하던 이 거리는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대대적 도로확장과 함께 현재의 모습을 갖추어 갑니다. 이후 2009년 경 광화문 광장 공사로 이일대의 공간구조는 완전히 변모했고 일제시기까지 유지되던 ‘육조거리’의 모습은 현재 찿을 길이 없습니다.
넷째, 이 책은 서울의 특정한 공간 즉 광화문 서쪽의 세종로 77번지,78번지, 79번지, 80번지, 81번지 그리고 광화문 동쪽의 76번지,82번지, 84번지, 149번지의 공간이 1880년대부터 1945년까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고찰합니다. 이렇게 특정 장소에 대한 변천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적한 문헌은 처음이고 다소 딱딱한 감도 있지만 가치가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이 이 책에서 보았던 공간 변천의 특징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변화보다 해방이후 거리의 변화가 더 컸다는 점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 같습니다.
도시개발관련 제가 당국에 느끼는 점은 이들이 개발을 너무 물질적인 잣대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느 나라를 가도 볼 수 있는 브랜드를 입점시킨 고급 쇼핑몰이나 화려한 건물들로만 가득찬 도심공간개발만이 도심개발은 아닐텐데, 현재까지 서울의 도심개발은 모두 ‘돈’만을 위해 진행되어 과거의 역사와 흔적을 등한시해 온 것입니다.
서울대 김시덕 교수께서 ‘서울선언(열린책들,2018)’에서 언급하셨던 ‘일제시대의 근대건축물’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 현재 광화문 세종로에서 전혀 수용되지 않은 것은 좀 유감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일제시대 고등교육을 받았던 대한민국 정부 초기 인사들( 상당한 수가 친일경력이 있습니다)이 해방 후에도 일본어로 일본의 전범 후예들과 협상을 하고, 정보를 통제한체 국민들에게’경제성장’만을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주입시키는 과정에서 그들의 친일적 흔적을 지우듯이 일제가 이 땅에 세워놓았던 수많은 근대건축물을 ‘철거’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됩니다.
19세기부터 서양열강이 차지했던 중구 정동을 제외하고 세종로와 명동 등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당시의 건축물은 그 흔적을 찿을 수 없습니다.
결코 일제 강점기 당시의 건축물들이 전부 보전가치가 있다는 점은 아니지만 정치 중심가인 세종로에 표지석만이 아닌 관공서 건물 몇채는 넘겨두어야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보지 못하면 잊혀지는 것인데 과연 전문 학자가 아닌 다음에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100여년도 더 된 옛 문헌과 사진을 보면서 흔적을 찿을지 의문입니다.
역사는 기억에 관한 학문이고 따라서 일제 강점기는 ‘지워버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어떻게 기억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가’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비판적 수용이 ‘추종’이 아니라는 것도 언급하고 싶습니다.
일제강점기는 우리 역사에 아픈 기억이지만 분명 현재까지도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대이고 그 흔적이 현재의 한국사회에도 직접적으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 대한민국이 일제강점기 그들이 남긴 유산이외 스스로 어떤 물질적 정신적 발전을 이루었는지 되돌아 봐야 합니다. 과연 맹목적 조선추종이나 맹목적 일본/미국 추종이외 다른 정신적 발전이 있었는지 말이죠.
한국의 경제가 아직도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인용된 수많은 문헌들과 지도와 사진자료 출처가 오직 각주로만 표기되어 아쉬웠습니다. 책 말미에 참고문헌목록이 붙어야 제대로 완성된 책으로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논픽션이나 역사서 같은 책들의 필수항목(requirement )인데도 누락된 점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