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병세대라고 하는 세대는 저자에 따르면 일제의 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친일’로부터 자유로운 세대로서 대체로 1920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이들을 말합니다.
2017년 출간된 이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이 책은 제가 김시덕 작가님의 ‘갈등도시( 열린책들, 2019)’를 읽던 중 언급이 되어 찿아 읽게 된 책입니다.
현재처럼 ‘극우 국가주의자 ‘들이 마치 한국 우익 보수세력의 전부인 것처럼 혹세무민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한국 정통 우익 보수파’ 의 계보가 일제강점기 말기 이후 1990년대 초까지 어떻게 내려왔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입문서’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학병세대 바로 이후 세대인 아버지와 4.19세대 어머니를 둔 서북지방 월남민 출신의 자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서북(평안도와 황해도) 출신 월남 지식인들의 주장과 삶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을수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이래 기호지방 ( 경기, 충청)과 더불어 가장 경제적 성공을 거둔 지역이 바로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이고 일찍부터 중국과의 교류로 상공업이 발전한 지역이 서북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적으로 기호지방 출신들에 비해 정치적 차별을 받아온 지역이었습니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이전 이미 이와같은 정치 경제적 배경을 가지고 있던 이 지역은 마국의 북장로교가 전략적으로 기독교 선교를 하게됩니다. 같은 북쪽이지만 함경도와 북간도는 캐나다 연합교회의 선교지역이 됩니다.
따라서 서북지역은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미국 북장로교의 영향 아래에서 ‘보수적 기독교 ‘가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이들은 한국전쟁이후 월남하여 예장( 예수교 장로회)세력을 이루며 현재 한국의 ‘극우 근본주의 기독교’의 중심을 이루게 됩니다.
반면 이들보다 더 급진적이고 개방적인 함경도 북간도 출신 기독교인들은 한국전쟁 이후 김재준 목사의 ‘한신대학교’를 중심으로 모이게 되고 기장(기독교장로회)을 이끌게 됩니다.
문익환 목사와 강원룡 목사로 대표되는 이 그룹은 기독교 사회운동을 통해 1960-7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그룹입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성서조선’사건과 김교신, 류영모, 함석헌 등 무교회주의자들이 있습니다.
마치 불교에서 스스로 깨우치는 것처럼 기독교의 본질은 신자 스스로가 교회이지 교회라는 건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무교회주의자들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정신에 가장 근접해 있습니다. 근래 팬데믹 와중에도 예배를 꼭 대면으로 하겠다는 ‘근본주의 극우 기독교‘와는 정반대의 노선입니다.
종교의 모습이 결국 ‘약자에게 임하는 것’이라는 점은 그들이 속한 교단이 무엇이든 결국 같은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책의 처음과 마지막은 전 고려대 총장이셨던 김준엽 교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장준하와 함께 ‘사상계’ 잡지를 만들어 1950년대부터 해방이후 국가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 고민하신 분이고 일제말기 태평양전쟁 당시 학병으로 끌려갔던 일본군을 탈출해 광복군으로 이범석 장군의 부관으로 미국 OSS와 국내 진공작전을 하려 했던 그야말로 ‘정통 우익’ 인사입니다.
일제부역세력들이 친미파로 바뀌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와중에 한국에 중국학 기반을 만드신 분이기도 합니다.
이분이 처음과 끝에 소개된 것은 아마도 ‘일제로부터 고등교육을 받았으나 친일로부터 자유로운’ 학병세대로서의 대표성과 임시정부와 광복군 출신이라는 경력이 해방 후 국가 건설에 있어 중도적 자유민주주의를 보여주실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책은 한국현대문학 연구자가 쓴 해방이후 한국현대 지성사로서 270여 패이지 밖에 안되는 짧은 책이지만 한국에서 ‘보수주의’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성찰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서북출신 인사들이 일제강점기부터 가지고 있던 공산주의에 대한 ‘생래적 혐오’가 한국전쟁과 이들의 월남이후 과대 증폭된데다가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국가주의적 통치를 거치며 한국땅에 ‘정통 보수’ 내지 ‘ 중도’ 정치 세력이 뿌리내린 적이 없었던 이 땅의 정치사를 비추어 볼때 이전에 보수를 저처하던 우파들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 말미에 이런 언급을 합니다.
친일파들은 해방이후 살기 위해 우파가 되기를 바랬고 이들은 극우 국가주의적 입장을 취했지만 자신들만이 ‘우파’로서 불리길 원했고 다른 세력들이 우파를 자처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현재 한국 정치의 지형을 정확하게 표현한 언급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관련서 몇권 더 언급합니다.
문학연구자가 쓴 한국근현대사로는 근래 가장 인상깊었던 ‘3월1일의 밤(돌베개, 2019)’을 꼽고 싶습니다. 3.1운동 당시 뭍혀졌던 일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제1차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이라는 세계사적 격변이 일제 강점기 조선에 미친 영향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책에서도 인용한 ‘ 원형과 변용( 서울대출판부,2007)’도 같이 읽으면 좋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최대 최적이라는 경제개발계획의 기원이 사상계 그룹의 근대화론에 기인하고, 민주당 장면 정권에서 실행하려 했던 계획이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 차원에서 경제개발계획에 미국의 영향력이 어떻게 발휘되었는지도 볼 수 있습니다.
이책의 인물들이 거의 대부분 일제강점기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로 근래 지식사회학적 관점에서 일제가 조선인들을 어떻게 교육시켰는지에 관한 연구서가 나왔습니다. ‘제국대학의 조센징(휴머니스트,2019)’입니다. 이책의 학병세대들은 일제의 교육을 받은 거의 마지막 세대이고 학병세대 이전 세대들이 일제에 의해 어떤 교육을 받아 어떻게 친일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이 책은 제국대학의 조선인 졸업생들의 삶의 괘적을 추적하며 이들이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