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정치사를 연구하시는 이완범 교수의 2013년 저서로 본론과 미주 그리고 서지목록을 포함해 900페이지가 넘는 책입니다. 책의 절반인 400여 페이지가 관련 서지목록입니다.

한반도를 외국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시작한 영토분할에 대한 군사적, 외교적 논의를 역사적으로 추적한 첫 연구서 (Monograph)로서 본분 총 540페이지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 임진왜란 당시 명과 일본간의 조선 할지 논의
2. 청일, 러일전쟁 당시 북위 39도 및 38도선을 기준으로 한 한반도 분할 논의
3. 태평양 전쟁의 일본항복 후 미군의 일본 한국 점령계획의 일환으로 미국과 소련과 논의된 북위 38도선에 다른 한반도 분할점령 논의 - 38도 분할점령선은 한국전쟁이후 정전 협정을 거치며 휴전선으로 고착화.

현대사 전공자의 저작이다 보니 세번째 주제가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우선 외세에 의한 한반도 분할논의가 한국전쟁에서 그 기원을 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일반의 통념과는 다르게 가장 이른 한반도의 분할논의는 16세기 말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최초 일본의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을 정복하고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까지 정복해 아시아 제국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명을 정복하기 위해 길을 빌려달라 (征明假道)’는 요구를 조선에 하면서 시작된 임진왜란은 조선의 항전과 명의 지원군 출병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일본은 명나라와 화친교섭을 시작합니다. 일본이 조선 땅에서 명과 교섭을 시작한 이유는 조선을 명의 속방(屬邦)으로 생각해 명과 외교교섭으로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명과의 교섭에서 조선의 북방지역을 명나라 요동의 완충지역으로 남겨두고 곡창인 전라,경상, 충청,경기 지역 4도의 할지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할지 요구에 대해 조선조정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명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왕으로서의 책봉만을 허락해 더이상 한반도 분할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논의는 근세에 이루어진 한반도 최초 외세에 의한 영토분할 논의였으며 이후 논의되는 외세간 한반도 분할 논의의 역사적 근거로 작용합니다.

특히 일본은 16세기 명과의 한반도 분할논의 이후 19세기 말 다시 조선에 대한 국권침탈을 시도하며 임진왜란 당시 자신들이 명나라와 교섭했던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청나라/러시아와 협상을 진행합니다.

대외적으로 일본은 청일전쟁을 시작하며 ‘조선은 독립국이다’라는 논지를 유지했는데 그이유는 조선이 중국에 대한 사대의 입장을 유지하며 스스로 중국의 속방(屬邦)임을 자처해 왔기 때문으로 일본은 조선과 청과의 이런 전통적 조공/사대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자신의 이권을 위해 조선을 독립국으로 한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일본의 조선의 보호국화 과정은 황태연 교수의 ‘갑오왜란과 아관망명 (청계, 2017)’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중국대륙에 대한 야심은 만주에서 러시아와의 이권충돌을 가져왔고 러시아와 다시 전쟁을 벌이게 되는 데 이 전쟁이 러일전쟁으로 일본은 조선에서 청의 영향력을 없애고 난 이후 러시아와 다시 한번 격돌해 승리함으로써 조선반도와 만주에 대한 영향력을 획득하고 아시아 대륙 전체에 대한 침략을 더 강력하게 추진합니다.

일본은 러시아와의 한반도 분할교섭에서 39도선을 중심으로 교섭을 시작하고 러시아가 한반도 북방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인정하였지만 점차 군사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자 원해 목적대로 한반도 전체를 그들의 영향권에 두고 대륙진출의 교두보로 삼습니다.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정복의 꿈을 300년 후 자신들이 이루었다고 득의양양했습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의 패배로 일본은 미국에 본토 및 한반도를 점령당하는 운명을 맞이하고 미국은 만주, 일본, 한국 세 지역에 대한 점령을 놓고 외교적 교섭을 하게 됩니다.

소련은 만주를 자신의 점령지역에서 생각했고 미국은 일본 본토 전체를 자신의 점령지로 생각했고 미국과 소련은 쿠릴열도 일부를 제외하고 만주 및 일본의 점령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조선이 문제였는데 미.소 양국은 포츠담 회담을 통해 잠정적으로 북위 38도를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하는 것을 결정하였고 소련의 조기 참전이 미국의 동아시아 영향력을 약화시킬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소련의 참전을 늦추려는 시도가 일어납니다.

소련의 참전으로 한반도 북방지역과 일본 일부지역이 소련에 점령된다면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미국은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만주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인정한 대신 일본 본토의 미국 점령은 양보할 수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완충지역이었던 한반도가 분할대상이 된 것입니다.

미국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한반도에 38선을 그었고 소련은 만주지역에 대한 자신들의 이권과 영향력이 손상되지 않는다면 한반도의 북방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38도 분단제안은 아주 매력적인 제안으로 다가왔고 실제로 미국의 이 제안을 협의하고 동의했습니다.

38도 분할선은 미국이 짧은 시간 내에 거의 임의적으로 제안한 선이라는 기존의 설명은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즉 한반도 분단에 미국의 책임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책을 읽으면서 한국에게 있어 일본과 미국이라는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한국의 분단을 초래한 포츠담 선언과 미국의 북위 38도선 결정관련된 외교문서들이 아직도 모두 공개되지 않은 체 학자들의 ‘주장’과 ‘추정’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미국은 한국을 태평양 전쟁 이후 패전국 일본의 식민지로 일본본토와 함께 ‘점령(occupation)’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소련과의 세력균형을 위해 ‘분할점령’을 고려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한국전쟁이 분단을 고착화시켰지만 미국이 고려했던 분할점령은 일본의 무조건항복보다 훨씬 이전인 1945년 7월25일경 아라는 말입니다. 확인하고 검증해봐야 할 사안이라고 저자가 언급하고 있지만 미국의 사료를 통해 미국이 38도선 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저자는 의심하고 있습니다.

P.S 언제나 전쟁이 역사의 전환점으로 작용해온 것을 고려한다면 한국사를 전쟁을 통해 읽는 것은 좋은 역사읽기의 한 방식입니다. 근래 읽은 조선 전쟁사관련해서 ‘전란으로 읽는 조선’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전문가들이 전공영역에서 한 꼭지씩 맡았고 서지목록이 좋아서 제 마음에 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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