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자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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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정희라는 작가의 소설을 접한 건 대학 때였다. 서가에 꽂힌  문학과지성사 간 <유년의 뜰>을 펼쳐본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 1993년 9쇄 발간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무척 여성적이면서도 부서질 듯한 세계, 그것이 내가 받은 인상이었고 그녀는 나의 베스트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십여 년을 읽지 않다가 작가의 신작 소식을 접했다. 망설이지 않고 주문하여 받아든 책은 (인식하지 못했는데) 랜덤하우스코리아 간이다. 상업적인 분위기를 풍겨서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출판사. 표지를 벗기니 촌스러운 분홍색의 성의없는 속책이 드러난다. 역시나,랄까. 

소설이라고 하기엔 정말 짧은 이야기 25편이 실려 있다. 이런 걸 엽편소설이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이렇게 짧은 이야기 속에 '인생의 한 장면'을 놀랄 만큼 압축적으로 담았다 싶은 단편도 있고, '어 이렇게 끝나나' 싶은 아쉬운 단편도 있다. 일상의 지루함을 이렇게 잘 묘사하는 작가도 드물 거다. 오랜만에 잘 숙성된 작가의 입맛 당기는 글을 읽어서 행복했다. 예전부터 이 작가 단편에 강했다. 아니, 장편을 쓴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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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한 다스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문화인류학, 개정판 지식여행자 7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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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 <올가의 반어법>을 읽고, <대단한 책>, <미녀냐 추녀냐>는 읽다가 던져둔 상태로 새 책을 주문했다. 목차를 읽어보니 가볍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문화 에세이로 보인다. 

이 작가의 책은 모두 마음산책에서 펴냈다. 번역도 충실하고 디자인이나 모양새도 좋다. 또 몇몇 권은 반값 세일을 하니 독자 입장에서는 반갑다. 좀 아쉬운 건 책이 무거워서 누워서 들고 읽기에 불편하다는 점. 이런 에세이는 좀 가벼운 종이로 펴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저자는 러시아어 통역사인 일본인으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였다는 좋은 자산이 있다. 이걸 글로 써내는 재주는 그녀만의 것이지만, 다양한 문화 체험이 저술의 바탕이 된 건 사실. 곁들여지는 여러 나라의 에피소드들이 생생하고 신기하다. 우리가 잘 접하지 못했던 러시아 등 구 공산권 국가들에 대해서도 많이 다루고 있어서인지. 

나라 간 문화적 충돌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다. <미녀냐 추녀냐>가 '통역'이라는 주제에 천착한 에세이라면 <마녀의 한 다스>는 좀더 대중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굳이 찾아읽을 책은 아니지만 그녀의 입담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만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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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 박찬일의 이딸리아 맛보기
박찬일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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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처음 듣는 이름인데.. 요즘 쏟아져나오는 요리/여행 에세이류는 잘 골라야 실패가 없다. 잘못 고르면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으면서 영양가 없는, 혹은 재미없는 개인 필담 위주로 되어 있기도 하고. 이 책, 미리보기로 살펴보니 필력이 꽤 있어보였다.  

책을 받아보니 부록으로 딸려온 DVD가 꽤 실속있다. 10편의 파스타 요리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자의 간단한 요리강습을 눈으로 직접 보니 흥미롭고 따라하기도 쉽다. 이런 걸 보면 창비도 꽤 한다 싶다. 같이 보던 신랑은 "파스타가 저렇게 쉬운 거였어? 마늘을 뽀개는 것만 기술이네. 나도 따라하겠다."란다.  

책을 넘기는데 종이가 꽤 두껍다. 값이 올라가는 요소가 되었을 듯. 이런 에세이는 일러스트 빼고 가볍게 제작해서 1만원 정도 매기면 좋을 텐데.  

아, 글은 꽤 재미있게 읽었다. 그가 수업한 시칠리아의 레스토랑, 그 주인이나 부주방장 등 주변인물을 그려내는 솜씨나 별로 재미없을 수 있는 에피소드를 꽤 근사하고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는 필력이 있었다. 뉴욕의 기자 출신 요리사의 고군분투 요리수업을 그린 <앗 뜨거워>와 비슷한 분위기. 그런데 여기 담긴 이야기들은 조금은 앙상하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거리가 많았을 텐데 혹시 숨겨둔 거 아냐? 싶을 정도. 때론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기도 하고. 그것 빼고는 한번 읽어볼 만한 글이었다. 소장가치는 높지 않지만. 

P.S. 박찬일 쉐프가 얼마 전 홍대 앞에'라꼼마'라는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한 번 가봤는데 코스 요리 중심이고 가격 대비 성능이 훌륭했다. 사전 예약을 권장하는, 좀 격식있는 레스토랑이다. 왠지 이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와는 좀더 캐주얼한 파스타 식당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2010.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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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여인 - Mystery Best 2
윌리엄 아이리시 지음, 최운권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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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로 구입한 이 책을 받았을 때, 역시 해문 책의 만듦새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번쩍이는 유광 표지는 그렇다치고 그걸 벗겨냈을 때 속의 표지는 악- 소리 나오게 생겼다. 남색의 짙은 두꺼운 종이로 싸여 있을 뿐. 책에 대한 기대도 덩달아 사그러들었는데. 몇 장 넘겨보니 번역도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았고.   

밤거리를 배회하던 주인공은 어느 술집에서 모자를 쓴 여자와 그날 저녁을 함께 보낸다.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가 죽어 있다. 소설의 초반부는 좀 지루했지만, 이 순간부터 긴장감이 올라간다. 혐의를 쓰게 될 것이 당연한 주인공. 챕터의 제목이기도 한 '사형집행 150일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사형집행일까지의 사건들이 촘촘하게 펼쳐진다. "왜 아무도 이 여자를 보지 않았다고 증언하는 걸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하는 소설. 그리고 그 의문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또다른 살인들. 

마지막에는 깜짝 놀랄 반전이 기다린다. 정통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서스펜스물에 가깝다고 하지만 그래서 엔터테인먼트적인 느낌은 더 강하다. 흑백의 미국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1940년대에 쓰여진 소설이라는데 놀랍게도 현대적이다. 

국내 출간작으로는 해문의 Panda Mystery 시리즈가 두 권 더 출간(2009년 9월)되어 있다. 해문이 추리소설 전문 출판사라 고맙긴 하지만 번역이나 책 제작에 좀더 신경써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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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디타운
F. 폴 윌슨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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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북 페스티발 때 북스피어 부스에서 공짜로 얻은 책. 사려고 했던 책이 아니라서 읽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책을 폈다. 한때 SF를 좀 읽었지만 최근에는 좀 관심이 없어져서. 

SF와 하드보일드를 근사하게 섞어놓은 이 책은 나를 깜짝 놀래켰다. 시그라는 탐정이 미국 여배우 진 할로를 닮은 복제인간의 의뢰로 일을 시작한다. 시그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소설 속 탐정이지만, 배경은 미래.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떠나버렸고 시그는 머리에 '버튼'을 달고 가상섹스체험으로 위안을 삼는 삼류 탐정.  

제1부 거짓말에서 시그는 어쩌다 엮인 사건 때문에 떼돈을 벌고, 진 할로를 닮은 여자는 외항성계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제2부와 3부에서는 단순한 하드보일드가 아닌 휴먼소설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버려진 아이들(업둥이들) 중 하나인 BB는 시그에게 더 큰 사건을 가져다주고, 또 그에게 인간과의 교류의 따뜻함을 알게 만든다.  

별로 머리 아프지 않게,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SF 소설이다. 추리소설 팬이라면 좀더 열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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