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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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35

"사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데 느닷없이 전쟁이 터지는 거야. 우린 전쟁을 바라지 않았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주장하지. 그런데도 세계의 절반이 전쟁에 참가하고 있어."


독일의 군사학자로 널리 알려진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저서 <전쟁론>에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당연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일텐데, 국민의 생명을 대규모로 희생하면서 까지 치뤄야 하는 전쟁은 과연 합리적인 것일까? 무엇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가의 결정에 의해 모든 것을 잃고 비참하게 전장에서 살인을 하고 죽었어야 했을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죄다 잃어버렸다. 쫓기는 우리의 시선에 다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는 누가 누군지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 우리는 이제 감정이 없는 죽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속임수와 위험한 마술을 써서 달리고 또 달리며 그저 살인을 저지를 뿐이다.]  P.127



<서부 전선 이상없다>는 1차 세계대전의 독일을 배경으로 쓰여진 작품으로, 가장 위대한 전쟁 문학작품 중 하나라고 한다. 읽어보니 허언이 아니었다. 이 작품을 읽는다면 누구든지 잔혹한 전쟁의 실상을 간접체험할 수 있고, 작가인 "레마르크"가 실제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을 가지고 글을 써서인지 너무 리얼하고 참혹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19세의 "파울"은 담임 선생님의 허황된 애국심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자원입대 하여 10주간의 강압적인 신병훈련을 받고 최전방에 배치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직 생존을 위해 상대방을 죽인다. 잠시라도 딴 생각을 했다가는 내가 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오직 동물적인 생존본능만을 가지고 살아간다. 전우애를 제외하고 그들은 오직 살고 먹고 죽이는 데에만 집중한다.

[포탄에 맞는 것도 우연이듯이 내가 살아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우연이다. 포탄으로부터 안전한 엄폐부에서도 나는 당할 수 있다. 그리고 엄폐물이 없는 전쟁터에서 열 시간 동안 포탄이 비 오듯 쏟아져도 상처 하나 없이 무사할 수 있다.어떤 군인이든 온갖 우연을 통해서만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그리고 군인이면 모두 이런 우연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P.111



전쟁 속에서 "파울"은 절친한 친구들과 전우를 한두명씩 떠나 보낸다. 이중 그의 고향 친구였던 "케머리히"는 허벅지에 총을 맞고 군병원에 입원한다. 그리고 다리가 절단된다. "파울"은 친구에게 다리가 절단된 것을 숨긴 채, 곧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하지만 "케머리히" 본인도 예감했고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케머리히"는 오래 살지 못할 거란 것을. 결국 그는 큰 고통속에서 비참하게 죽는다. "파울"은 고향에 있는 그의 어머니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한다.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아니면 그가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고 거짓말을 해야 할까?

[하지만 그는 머리를 옆으로 돌리고 울기만 할 뿐이다. 그는 자기 어머니, 자기 형제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미 그럴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 열아홉 살 된 자신의 조그만 생명과 홀로 대면하면서, 그 생명이 자신을 떠나려 하기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이다.]  P.40



이후 많은 전투를 치룬 "파울"은 포상휴가를 얻고 고향에 간다. 하지만 그는 고향을 떠나기 전과는 다른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는 어머니 앞에서조차 그가 겪은 참혹한 실상을 말할 수 없었다. 본인조차 믿을 수 없었기에, 사실을 말하기에는 너무 잔인했기에 말이다. 전장의 잔혹함을 모른 채 안전한 후방에서 편하게 전쟁이야기를 하는 마을사람들에게 분노보다는 허탈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더이상 꿈을 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 어머니, 어머니! 전 어머니에겐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왜 저는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울 수 없나요? 왜저는 늘 씩씩하고 의젓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요? 저도 한 번쯤 울면서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요. 장롱에는 아직 내가 어릴 때 입던 짧은 바지가 걸려 있다. 그때가 마치 어제와 같은데, 왜 그 시절이 이처럼 훌쩍 지나가 버렸는가?]  P.195



"파울"은 다시 잔혹한 전장으로 복귀하지만, 오히려 친구와 전우를 만나고 나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그는 더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전쟁의 도구로서 어쩔수 없이 살아간다. 애국심? 그런건 없다. 그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인간적인 것이라면 전우애 뿐이었다. 살아 돌아갈 희망? 그런건 없다. 그는 하루하루 그져 죽음을 향해, 시체를 밟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예전의 영상이 소망보다는 오히려 슬픔, 즉 무시무시하고 걷잡을 수 없는 우울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정적 때문이다. 이러한 영상은 과거에 존재했지만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추억은 지나가 버렸다. 그것은 우리에게서 지나가 버린 다른 세계이다.]  P.132



전장에서 젊은이들이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은 어떻게든 보상받을 수 없다. 누가 치유해 줄 수도 없다. 결국 "파울"의 곁에 있던 친구들은 모두 죽는다. 그리고 이제 "파울" 혼자 남았다. 다음 차례는 "파울"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파울"은 슬프하지 않았다. 다만 아무도 그의 죽음에 대해 신경쓰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전쟁은 계속 될 거라는 사실이 허탈할 뿐이다. 과연 전쟁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년 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P.304




이 책은 반전이나 영웅중의, 정치적 교훈을 담고 있지는 않다. 단지 전쟁의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참혹함과 비참함, 젊은이들이 잃어버린 삶과 꿈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큰 울림과 공감이 독자에게 전해진다. 과연 전쟁은 누굴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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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4-09 11:18   좋아요 2 | URL
thkang님 축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thkang1001 2022-04-09 11: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새파랑님께서도 즐거운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미미 2022-04-09 13: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2관왕 축하드려요!!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더 읽어보고 싶어요. 주말 바쁘셔도 유쾌하게 보내시길 바래요(*ᴗ͈ˬᴗ͈)ꕤ*.゚

새파랑 2022-04-09 15:11   좋아요 3 | URL
어쩌다 보니 2관왕(?) 인데 이번달은 안될거 같아요 ㅋ 빨리 퇴근하고 소세키의 책을 읽고 싶네요 ^^ 감솨합니다~!!

페넬로페 2022-04-09 15: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레마르크의 소설로 리뷰당선되셔서 더 축하드려요.
열심히 읽는 성실함을 언제나 닮고 싶어요**

새파랑 2022-04-09 18:33   좋아요 1 | URL
저는 페넬로페님의 글쓰기를 더 닮고 싶습니다 ^^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scott 2022-04-09 15: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곳은 세문집 맛집!
새파랑님의 완독의 황제!
2관왕 추카!추카!^^

새파랑 2022-04-09 18:35   좋아요 1 | URL
제가 세문집만 많이 읽는거 같아요 ㅋ 완독만 하지 잘 이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스콧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 ^^

그레이스 2022-04-09 16: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1차 대전 관련 내용에 레마르크의 소설이 유럽과 미국에 큰 호응을 불러왔다는 내용이 있더군요
저는 다른 출판사걸로 있는데 꺼내놨어요^^

새파랑 2022-04-09 18:36   좋아요 2 | URL
요 책이 번역이 안좋다는 말이 있어서 다른 출판사 읽는게 더 좋을거 같아요~!! 그레이스님 행복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

bookholic 2022-04-09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늘 좋은 책 소개 감사드려요~~
봄꽃 아래 즐거운 독서 되시길...^^

새파랑 2022-04-10 09:32   좋아요 0 | URL
북홀릭님 두번 감사합니다~!! 오늘 무슨 책을 읽을지 고민해봐야 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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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34

˝고통은 미친 짓이야. 고통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더 미친 사람이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권 발매 기념으로 그동안 오래 묵혀두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권인 <갇힌 여인 1>을 읽었다. 아직 2편이 남아 있어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는 섣불리 예상할 수 없으나, 9권의 주요 이야기는 알베르틴과 함께 살게 된 마르셀의 사랑과 질투 그리고 의심이다.

[혼자 있을 때면 그녀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녀는 내 곁에 없었고 나는 그녀를 소유할 수 없었다. 그녀가 내 곁에 있을 때면 나는 그녀에게 말할 수 있지만, 나 자신의 부재로 인해 그녀를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가 잠이들면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녀가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으므로, 나는 더 이상 자아의 표면에 살 필요가 없었다.]  P.114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음에도, 함께 동거하고 있음에도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은 실시간으로 변한다.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될 때에는 그녀에 대한 사랑이 식어간다고 느끼지만, 그녀의 의심어린 행동을 발견할 때에는 극심한 질투를 느끼며, 차라리 그녀가 아름답지 않아서 아무도 처다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가까이 있어도 너무나 멀기만 한 그녀.

[사랑의 고뇌는 때때로 멈추었다가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 우리는 사랑하는 여인이 더 이상 공감의 열정을 갖지 못하고, 초기의 애정 어린 은근한 접근도 하지 않음을 보고 슬퍼하며, 어쩌면 그녀가 우리에 대해 잃어버린 열정이나 그 접근을 다른 이와 더불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괴로워한다.]  P.166


[어느날 저녁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갈매기 같은 소녀들의 무리에 둘러싸인 채 느린 걸음으로 방파제를 걷던 새가, 일단 내집에 갇힌 몸이 되자, 알베르틴은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가질 수 있는 온갖 기회와 더불어 그녀의 빛깔도 다 잃어버렸다. 그녀는 점차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어 가고 있었다.]  P.285


[그러나 나의 소망은 알베르틴이 젊거나 아름답게 보이지 않아, 거리에서 뒤를 돌아다보려고 고개를 돌리는 일이 자주 없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질투에 사로잡힌 연인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것은, 젊은 여자를 보살펴 주는 나이 든 부인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에 나타나는 나이 든 모습이기 때문이다.]  P.319




마르셀은 왜 그렇게 자신을 힘들게 하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사랑을 놓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현실에서 갇힌 여인은 알베르틴 이지만 마음속에 갇힌 사람은 마르셀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사랑하는 마르셀이 더 고통받을 뿐이다. 10권까지 읽고 <갇힌 여인> 리뷰를 써야겠다.


˝사랑이란 어쩌면 어떤 감정의 분출을 겪고 난 후, 영혼을 뒤흔드는 소용돌이가 확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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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8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8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8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8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2-02-28 20:1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에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으라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잃어버린 시간을 찿아서
읽어야 하는데~~ㅎㅎ
마르셀과 같은 사랑은 많은것 같아요^^
힘들지만 놓지는 못하는 관계요~~

새파랑 2022-02-28 20:18   좋아요 5 | URL
책에서도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언급되더라구요 ㅋ 누구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ㅎㅎ
특히 <그해 여름 손님>에서 스탕달의 <아르망스>를 선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떤 책인지 너무 읽어보고 싶어서 오늘 급하게 구매했습니다 ^^

9권에서 마르셀은 정신적으로 만신창이가 됩니다 ㅋ 저렇게 어떻게 살지?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mini74 2022-02-28 20: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문장도 미쳤는데요 새파랑님 ㅎㅎ예전에 3권 읽으면서 진도가 너무 안 나가서 혼자 막 지구종말의 시간, 야 잃시찾 읽은 사람만 나와 ! 이러면서 벙커에 데려간다면 나는 못 가겠구나 하는 망상을 했더랬죠 ㅋㅋ 새파랑님은 미미님과 나란히 구출되시겠군요 ㅎㅎㅎㅎ

새파랑 2022-02-28 20:21   좋아요 5 | URL
9권에는 특히 좋은 문장이 너무너무 많더라구요~! 저도 3권 4 권이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 벙커 재미있네요ㅋ 저랑 미미님 비교는 아니되옵니다. 미미님은 프루스트 찐팬이시고 저는 그냥 팬? 😅

미미 2022-02-28 20:59   좋아요 4 | URL
미니님 그런일이 생기면 제가 담당자한테 잘 얘기할께요ㅋㅋㅋㅋ😆
반대로 미술, 신화로 그런일이 발생하면 잘좀 부탁드려요!ㅎㅎㅎ

페넬로페 2022-02-28 22:19   좋아요 4 | URL
그러면 저는 두 번다 기회가 없어 그냥 집에서 지구 종말을 기다려야겠어요^^

미미 2022-02-28 22:42   좋아요 4 | URL
그럴리가요!!ㅋㅋㅋ 페넬로페님은 서로 자기 벙커에 데려가려고 싸울거예요~♡

페넬로페 2022-02-28 23:13   좋아요 4 | URL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넘 기뻐요♡♡♡
혹시 그런일이 일어난다면 벙커에서 신나게 책얘기 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읽어야겠어요^^

새파랑 2022-02-28 23:49   좋아요 5 | URL
저도 데려가주세요 😆 전 이야기 할 책들을 싸들고 가겠습니다 ~!!

미미 2022-02-28 23:54   좋아요 6 | URL
새파랑님도 분명 서로들 데려가려다 옷찢어지실겁니다ㅋㅋㅋㅋ😆

scott 2022-03-01 09:36   좋아요 4 | URL
저도 🖐 😻

미미 2022-03-01 10:02   좋아요 4 | URL
스콧님은 이미 다수 벙커 소유자 👆😍

희선 2022-03-01 01: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가까이 있으면 더 좋게 여겨야 할 텐데... 사람은 자유롭게 놔두는 게 좋겠지요 그러다 떠나면 어쩔 수 없고... 떠나지 않기를 더 바라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2-03-01 07:13   좋아요 4 | URL
떨어져 있어서 가둬놨더니, 오히려 가까이 있으니까 더 힘들어 지고...차라리 시작하지 않는게 현명한건데 그렇게 못하는게 사람 마음인가 봐요~!
 
그해, 여름 손님 (양장)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N22032

˝어쩌면 내가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은 영원히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시작하는건, 끝이 좋지 않을거라 예상되는 일을 시작하는건 많은 각오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그 일을 시작한다. 그 이유는 끝은 슬프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절대로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지만, 왜 그럴 수 없는지 알려면 계속 바라봐야만 했다.˝]  P.19



이탈리아의 작은 별장에서 스물넷의 대학생 올리버와 열일곱의 학생 엘리오는 그 해 여름 운명처럼 만난다. 그리고 엘리오는 그에게 즉각적인 사랑을 느낀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엘리오는 올리버 앞에서만 서면 떨린다, 그의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마음을 숨긴다. 그는 남자였고, 나도 남자였으니 어떻게든 마음을 숨기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숨겨지는게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원했을까? 가차 없이 속마음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도 왜 내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을까? 어쩌면 그에게 최소한으로 바란 건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또래보다 덜한 인간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것이었으리라. 내가 그의 발아래에 너무도 쉽게 떨어뜨려 버린 존엄성을 그가 고개숙여 주워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터였다.]  P.44



그의 행동, 그의 말 한마디, 그가 입고 있는 옷, 그가 보내는 눈빛에 엘리오는 무너진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꿈속에서 그의 몸짓을 떠올린다. 그의 마음도 나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왜 그에게 끌리는 걸까, 나와 너무 닮았기 때문일까?

[그의 한마디에 행복해질 수 있다면 쉽게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불행해지고 싶지 않으면 그런 작은 행복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P.69



그런데 그때 마법이 일어났다. 올리버 역시 엘리오의 마음과 같았던 것이다. 그도 엘리오에게 끌렸지만 자신의 마음을 숨겨왔던 것이다. 그리고 엘리오만 알고 있는 비밀의 언덕에서 그들은 떨리는 첫 키스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첫 키스 후 그들의 관계가 더 나가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망설이게 된다. 여름이 끝나면 그들은 헤어질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의 관계는 용인될 수 없었으니까.

[죽도록 원하지만 시작하면 참을 수 없을지도 모르니 아예 시작하지 않겠다]  P.123

[세월이 흘러 그가 여전히 이 책을 가지고 있다면 보고 가슴 아프기를 바랐다. 그보다는 언젠가 그의 책을 살펴보던 누군가가 이 작은《아르망스》를 발견하고 1980년대 이탈리아 어딘가에서 누가 침묵 속에서 쓴 글인지 물어본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때 그가 슬픔처럼 확 솟구치되 애석함보다는 덜 강렬한 감정을 느꼈으면 했다. 어쩌면 나에 대한 연민이라도.]  P.136



하지만 이성보다는 감정에 몸을 맞긴 그들은 더이상 침묵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자정이 넘은 시각 앨리오는 올리버의 방으로 넘어간다, 서로의 사랑과 강렬한 끌림을 확인한다. 서로의 육체에 몸을 맞긴다. 이 시간의 끝에는 어떤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떤 마음의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체.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태어나 처음 해 본 일이었다. 그를 내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나는 그 전에, 어쩌면 그 후에도 타인과 공유한 적 없는 영역으로 들어갔다.]  P.171






이 책을 읽고나서 작년에 읽었던 <모리스>와 <어둠속에서 헤엄치기>가 떠올랐다. 동성애를 다루고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그렸다는 측면에서는 비슷하지만, 동성애의 정밀(?)한 묘사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해 여름 손님>이 앞의 두 작품에 비해 많이 세밀(?)하게 묘사 되어서인지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첫사랑의 설레이는 감정에 대한 묘사는 너무 아름답고 공감이 되었으나, 그 사랑이 너무 육체(?)적인 면에 집중되어 있어서 다소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해 여름이 끝나고 두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이후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감추고 살아가야 했던 이야기는 많이 애틋하고 좋았지만 초반부는 좀 그랬다. 특히 복숭아와 수영복 관련 이야기는 많이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엘리오의 첫사랑에 대한 감정변화와 이에 대한 묘사,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올리버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야기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함께 있었던 시간이 짧더라도, 같이 있을 수 없다 해도,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도 너와 같아. 나도 전부 다 기억해.˝ 나는 잠시 멈추었다. 당신이 전부 다 기억한다면, 정말로 나와 같다면 내일 떠나기 전에, 택시 문을 닫기 전에, 이미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이 삶에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장난으로도 좋고 나중에 불현듯 생각나서라도 좋아요,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테니까, 나를 돌아보고 얼굴을 보고 나를 당신의 이름으로 불러 줘요.]  P.310



Ps.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영화를 먼저 보고 이 책을 읽는게 좋겠다는 다른 분들의 생각에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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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2-27 17:4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앗!
저 지금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보고 있어요.
시간 날때마다 봐서 끊기는데~~
드디어 둘이 키스하고는 더 이상 나가지 말자고 하는 장면요~~
그 뒤 더 나가는군요^^
영화와 소설은 결말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영화에 나오는 이태리 시골로 여름 휴가 가고 싶어요^^

페넬로페 2022-02-27 17:51   좋아요 5 | URL
콜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발간된 책은 번역이 안좋다고 하는데 이 책은 번역이 괜찮아요?

새파랑 2022-02-27 18:11   좋아요 6 | URL
제가 찾아보니 영화의 결말은 책의 4분의 3정도 지점에서 끝나고 (주인공 17살때까지), 책은 이후의 40대(50대?) 이야기 까지 이어집니다. 전 뒷부분이 더 좋았습니다 ^^

번역은 괜찮았어요, 이상할 정도는 아니고. 사춘기인 엘리오의 입장에서 글이 쓰여서 초반의 묘사가 좀 어지럽습니다 ㅋ 알수없는 마음?

잠자냥 2022-02-27 17: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그 분야의 정밀하고 세밀한 묘사는 <수영장 도서관> 따를 책이 없습니다.

복숭아가 충격적이셨군요? 영화 보시면 더 충격받으시겠네….. ㅋㅋㅋㅋ 그놈의 복숭아! 전 딱복파인데, 이 영화 보고 나서 물복이 더 싫어졌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2-02-27 18:06   좋아요 4 | URL
안그래도 제가 잠자냥님의 예전 리뷰 보고 <수영장 도서괸> 읽을까 말까 고민했었고, 어제 우주점 갔는데 <수영장 도서관>이 있어서 살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안읽어야 할거 같습니다....영화에도 그런게 묘사가 되나 보군요 ㅋ

전 복숭아가 그런건지 예상도 못했습니다 😅

잠자냥 2022-02-27 18:08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 이 책 읽고 넘하다 싶을 정도의 멘탈이시면 <수영장 도서관>은 영원히 패스하세요~~ ㅋㅋㅋ

새파랑 2022-02-27 18:16   좋아요 4 | URL
전 제가 멘탈이 쎄고 깨어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근데 궁금해지긴 하네요 ㅋ

Falstaff 2022-02-27 21:20   좋아요 3 | URL
흠. 저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수영장 도서관>이 더 많이 생각나고, 제가 별 4 줬는데, 이것이 좀 야박했던 건 아닌가 하는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홀링허스트, 이 양반의 글짓기가 무슨 작두를 탔는지 읽을 당시엔 그냥 그렇게 휙 지나갔으면서도 두고두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상한 힘이 있더라고요. 한 두 컷으로 결정할 일은 아닌 것으로.....

새파랑 2022-02-27 21:41   좋아요 2 | URL
폴스타프님의 별 네개도 강력한데 그 이상이라니 이건 안읽어볼 수가 없겠군요 ㅋ 좀 두꺼워보이던데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잠자냥 2022-02-27 22:04   좋아요 2 | URL
홀링허스트 그이 작품은 안 읽고 지나가기에는 넘나 아깝습니다. <수영장 도서관> 말고 다른 작품이라도 꼭 읽어보세요~~~

mini74 2022-02-27 18:2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너무 육체적인 면에 집중해서 ㅎㅎㅎㅎ 이 부분에서 빵 터졌어요 ㅋㅋ 이 책 좋았다는 분도 많던데 새파랑님 글보니 급 궁금해집니다 ㅎㅎ

새파랑 2022-02-27 18:31   좋아요 4 | URL
저도 이 책의 문장들과 분위기는 아주 좋았어요~! 다만 일부에 적응이 안되더라는 ㅎㅎ 모리스의 상급버젼입니다~!!

미미 2022-02-27 19:3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공부하면서 동성애에 관해 과거랑 생각이 달라졌지만 아직 저도 ‘세밀한 묘사‘는 못보겠더라구요. 복숭아 걱정이네요. <하버드 스퀘어>에도 복숭아가 부정적으로 언급되는데 전혀 다른 의미인듯합니다. 복숭아캔 좋아하는데ㅋ😅

새파랑 2022-02-27 19:48   좋아요 4 | URL
거기에도 복숭아가 나오는군요 ㅋ 저는 다음달에 <하버드 스퀘어> 읽어보겠습니다 ㅋ

저도 아직 세밀한 묘사는 힘든가봐요 😅

희선 2022-03-01 00: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난 뒤 이야기도 나오는군요 처음에는 서로 자기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을 것 같네요 그전까지 그런 일이 없었던 건지... 한번 좋아한 사람을 오래 생각하기도 하다니, 그런 기억이 있는 게 좋을지...


희선

새파랑 2022-03-01 07:11   좋아요 2 | URL
희선님 이 책 안보셨으면 한번 읽어보세요~! 섬세한 감정들의 표현이 좋더라구요. 나이 들어서도 잊지 못하는 마음이 좀 안쓰럽기도 합니다 ㅜㅜ
 

N22031

˝다시 일어설 자신만 있다면, 한 번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오. ..…하지만 돈이야 문제될 게 없다고 쳐도, 그보다 더한 마음의 고통이 따를 수도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오.˝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 열한번째 작품인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그의 총서 중 유일한 해피엔딩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해피엔딩이었을까?


주인공인 ˝드니즈˝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아무 재산도 없이 남동생 둘을 데리고 무작정 파리로 상경한다. 그리고 일년전에 자신들을 챙겨주겠다는 큰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아무 연락도 없이 무작정 찾아간다.


하지만 장사꾼인 큰아버지의 집은 ˝드니즈˝ 가족을 받아줄 정도의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 큰아버지의 집은 바로 옆에 생긴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으로 인해 서서히 몰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동네의 모든 가게의 이익을 흡수하는 백화점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진다.


하지만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드니즈˝는 큰아버지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 취직한다. 하지만 시골에서 올라온데다 돈도 없었던 ˝드니즈˝는 낡은 신발 한켤레만 있었고, 꾸미지 못한 그녀의 외모 때문에 다른 직원들의 멸시를 받는다. 하지만 강직하고 의지가 강했던 그녀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끝가지 버틴다.

[내 말 잘 들어라, 얘야. 난 이 물병과 같아. 여기서 절대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그들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엔 파멸을 자초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난 끝까지 버틸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1권 P.356



이런 그녀를 남다른 눈길로 지켜보던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백화점 사장인 ˝무레˝였다. 처음에는 연민이었는지도 모른다. 촌스럽고 가진것도 없었던 그녀에게 측은지심을 느낀 그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점점 그녀가 눈에 가득 들어온다.

[무레는 그녀를 어린아이처럼 다루고 있었다. 불쌍하고 서툴기 짝이 없는 한 여자아이에게서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여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면서도 호감보다는 동정심에 더 가까운 감정으로 그녀를 대했다.]  1권 P.207



그동안 자신의 부와 지위를 바탕으로 많은 여자들과 놀아났던 그는, ˝드니즈˝ 역시 자신에게 넘어올 거라 자신하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그를 밀어낸다. 마음속으로는 그에 대한 연모의 감정이 있긴 했지만, 방탕하고 돈으로 매수하려는 그에게 반감을 갖는다.

[이제 무레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의 유혹에 넘어오지 않은 여자는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동안 그는 몸을 숙여 여자를 줍기만 하면 되었다. 주변의 모든 여자들이 순종적인 하녀처럼 그의 입에서 나오는 변덕스러운 말 한마디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럴 듯한 핑계조차 대지 않으면서 단번에 그를 거절했다. 오랫동안 억눌렸던 그의 욕망은 그녀의 저항에 더욱더 자극받아 이젠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있었다.]  2권 P.112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무레˝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태도에 당황한다. 아무것도 가진것 없어 보이는 그녀가 자신을 거부하다니 말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게 신기한게 그렇게 별볼일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자신을 거부하니 오히려 더 관심이 가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심으로 그녀에게 빠지게 된다. 그동안의 방탕했고 오만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는 변하게 된다. 과연 그는 그녀와의 사랑을 이루게 될까?

[그녀는 무레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으며, 그녀가 지닌 강력한 힘은 그 사실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그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2권 P.209




여기까지만 보면 분명 해피엔딩 분위기이다. 하지만 ˝드니즈˝와 ˝무레˝를 제외한 백화점 주위의 소상공인들 삶은 그렇지 않게 그려진다. 그들은 백화점이란 자본 앞에서 파산하고, 가족을 잃고, 사랑을 잃고, 심지어 자살시도까지 하게 된다. 에밀 졸라는 ˝드니즈˝의 성공하는 삶과 대비되는 비참한 소상공인들의 삶을 함께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삶의 명암을 암시하고 있다.

[그랬다, 저 백화점은 그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아비에게서는 재산을, 어미에게서는 자식을, 그리고 딸한테서는 10년 전부터 기다렸던 남편감을 앗아 갔던 것이다.]  1권 P.389




사실 개인적으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2권 부터는 그렇게 흥미롭게 읽히지는 않았다.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모든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는 ˝드니즈˝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이름처럼 무례한 ˝무레˝의 갑작스러운 사랑꾼으로의 변화는 쉽게 납득이 안되었다.


그럼에도 에밀 졸라가 그리는 여인들의 돈과 욕망을 잡아먹는 ‘백화점‘의 실체에 대한 묘사는 감탄할만 했고, 소상공인들이 어떻게 자본 앞에서 무너지게 되는지에 대한 과정 묘사는 너무 사실적이었다.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 보다는 주변인들의 비극에 더 흥미를 가져서인지 결말이 다소 아쉬웠다. 역시 난 해피엔딩 보다는 새드엔딩이 맞나보다.


그리고 선입견이 무서운게 그래도 난 ˝에밀 졸라˝니까 결말 부분에 당연히 뭔가 큰 폭탄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게 안나와서 약간 당황했다. 역시 선입견은 좋은게 아니다. ˝에밀 졸라˝의 색다른 작품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께는 이 책을 추천한다.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었다.


Ps 1. 루공 마카르 총서 열번째 작품인 <집구석들>과 열한번째 작품인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이야기가 연결된다고 하니, <집구석들>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다음달에는 <집구석들>을 읽어야 겠다.


Ps 2. 에밀 졸라의 전작 읽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까지 읽은 에밀 졸라의 Top3는 인간짐승, 목로주점, 테레즈 라켕 순이다. 아직 읽을 책이 많아서 순위는 바뀔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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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2-23 20: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름처럼 무례한 무레에서 빵 터졌습니다 ㅋㅋㅋ 아니 전작 읽기 하시는 작가가 대체 몇 명이예요? 무서운 분…

새파랑 2022-02-23 21:28   좋아요 5 | URL
작가가 가끔씩은 이름에 맞게 캐릭터를 잡더라구요~ 에밀 졸라 분명 한국어를 알고 있습니다~!!

저 전작 작가 7인으로 고정하고 있습니다 ㅋ 전 전혀 안무섭고 순둥이 입니다 😆

미미 2022-02-23 22:1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순둥이 새파랑님 잘 읽었습니다. 😁저도 다음 읽고싶은 에밀졸라의 작품은 <집구석들>이예요!ㅎㅎ
드니즈가 행복한건 그야말로 신데렐라 이야기. 소상공인들의 비극 때문에 저도 왠지 좋아보이질 않더라구요. 그럼에도 졸라의 자연주의는 역시👍 저의 TOP 2는 <인간짐승>과<제르미날>입니다.ㅎ

새파랑 2022-02-23 22:38   좋아요 4 | URL
미미님 답글을 보고 찾아보니 저한테 <제르미날>이 있더라구요 ㅋ 관리가 안되고 있습니다 ㅎㅎ 그럼 전 <집구석들> 다음에 <제르미날> 읽어야 겠어요~! 급하게 리뷰써서 부실합니다 ㅎㅎ 두권짜리 책은 리뷰 쓰기가 어렵더라구요 ㅋ

페넬로페 2022-02-23 22:3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주말연속극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의 향기가 나는데요~~대형 프랜차이즈때문에 동네 상권이 죽는 요즘 경우와 비슷합니다 ㅠㅠ
이 책에 마지막 한방이 없군요^^

새파랑 2022-02-23 22:39   좋아요 5 | URL
뭔가 주말 드라마랑도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ㅋ 전 마지막에 비극이 있을거라 기대했는데 그건 아니더라구요 ㅎㅎ 근데 책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초란공 2022-02-23 22: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초등학생들이 ‘가장 패륜적인 프랑스 작가‘로 ‘에밀 졸라‘를 꼽더군요 ㅋㅋㅋㅋ 당시의 사회나 지금의 한국이 너무나 흡사한듯해서 흠칫 놀랍니다.

새파랑 2022-02-23 22:41   좋아요 2 | URL
와우 가장 패륜작가였군요 ㅋ 좀 그런 측면이 있는거 같아요 ㅎㅎ저때 당시의 백화점이나 지금이나 비슷해보여요. 그시대에 그런 큰 시스템이 돌아갔다는게 놀라웠습니다~!!

얄라알라 2022-02-23 23:40   좋아요 2 | URL
헉^^;;; 그나저나 초등학교 친구들도 ‘에밀 졸라‘를 안 단 말이죠?^^

새파랑 2022-02-24 06:38   좋아요 1 | URL
프랑스 국민작가 에밀졸라 인가 봅니다 ^^

얄라알라 2022-02-23 23: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Les Rougon-Macquart
에밀졸라 잘 모르는 제게 ˝루공˝이 꼭 한자어 같아서 스펠 한번 확인하고 갑니다
무려 20권, 새파랑님께서 시리즈 섭렵에 도전하시는 거죠? 리스펙, 진정 리스펙!!!^^

새파랑 2022-02-24 06:40   좋아요 1 | URL
20편이 다 번역된게 아니고 절반 정도? 번역된거 같더라구요. 다시 찾아보니 열두편이네요 ㅋ 올해안에는 다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레이스 2022-02-24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루공가 보다는 마카르가 이야기가 더 인기있었나봐요^^
루공가 이야기는 별로 번역이 안되었어요 ㅎㅎ
새파랑님 따라가려면 멀었군요 ㅋ

새파랑 2022-02-24 10:16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답글 보고 찾아보니까 마카르가가 더 많이 번역되고 재미있는거 같아요 ㅋ 그레이스님은 이미 소세키 완독하셔서 제가 따라가야 합니다 ^^

coolcat329 2022-02-24 09: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 목로주점 읽고 있는데요...
인간들이 좀 심하네요. 인간이라는 ‘동물‘을 연구했다더니 딱입니다.
집구석들을 읽고 이 책을 읽어야겠군요.

새파랑 2022-02-24 10:16   좋아요 3 | URL
목로주점은 좀 심하게 심합니다 ㅋ 집구석들 먼저 읽으시고 알려주세요 ^^

희선 2022-02-25 0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데렐라 이야기도 보이면서 백화점 때문에 힘든 사람이 나오기도 하는군요 지금 시대와 비슷하기도 하네요 그런 건 예전부터 그랬다니... 백화점은 더 비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때는 어땠는지 모르겠네요 비싸도 백화점 물건을 사려고 했을지...


희선

새파랑 2022-02-25 06:30   좋아요 0 | URL
그때 백화점은 주변 소규모 가게보다 쌌나봐요. 무한 가격 경쟁 ㅋ 지금은 백화점이 더 비싸서 전 안가지만 ㅎㅎ 싼걸 미끼로 고객을 유인해서 이것저것 더 사게 하는건 비슷한거 같아요 ^^
 

N22029

˝분명하고 확실하게 도착하는 유일한 것은 죽음뿐입니다.˝


젊은 시절 목숨을 걸고 혁명군에서 복무했던 대령은 참전용사에 대한 연금을 약속한 정부를 믿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60년이 지났다. 그는 정부의 연금 게시 편지를 기다렸지만 편지는 오지 않는다.

[10월이었다. 그날과 같은 수많은 아침으로부터 살아남은 대령 같은 사람도 피해가기 힘든 아침이었다. 마지막 내전이 끝난 이후 오십육 년 동안 대령은 기다리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령에게 도착하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가 10월이었다.]  P.7



그러는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대령의 동료들은 모두 연금을 받아보지 못한채 죽었고, 대령 부부는 가난에 찌들어 살아야 했으며, 하나뿐인 아들 ˝아구스틴˝은 투계장에서 반정부 활동에 연루되어 군인에게 살해되었다. 하지만 부부는 자신들의 불행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참고 견딘다.

[˝내 동료들은 모두 편지를 기다리다가 죽었습니다.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 달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공화국을 구하기 위해 분골쇄신했습니다.˝]  P.37



하지만 더이상 팔 물건도 없던 대령 부부는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싸움닭을 팔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싸움닭은 아들 ˝아구스틴˝이 남긴 유일한 유산이다. 부인은 싸움닭을 팔고 싶어한다. 당장 먹을것도 없었고, 이놈의 싸움닭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선거가 끝날 때마다 당신에게 약속했던 알록달록한 새들을 이십 년이나 기다렸지만 우리에게 남은 것은 죽은 아들뿐이에요.˝ 아내는 멈추지 않고 말했다. ˝죽은 아들뿐이란 말이에요.˝]  P.64



하지만 대령은 싸움닭을 파는걸 망설인다. 싸움닭은 대령과 그 동네에 남은 마지막 희망이었고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투계장이 열렸을 때 자신의 싸움닭은 절대 질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대령과 그럼 그때까지 무얼 먹고 사냐고 따지는 부인, 과연 두 부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뭘 먹고 살게 될까? 설마?

(스포때문에 여기까지만 쓴다.)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콜럼비아의 근대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나는 당연히 이 지식이 없기 때문에 해설을 읽고 나서야 마르케스가 이 작품에 어떤 메세지를 담으려고 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해설이 거의 논문급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적 배경이 없더라도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어서 읽는데는 별로 지장은 없다. 다만 분량은 적은데, 해설이 너무 길어서 왠지 손해본 기분이 들었다.



Ps. 지금까지 마르케스의 작품은 네편을 읽었고, 다음에 읽을 작품은 <족장의 가을>이다. 생각보다 국내에 출판된 마르케스의 책이 별로 없는것 같다. 지금까지 최고는 <백년의 고독>, 재미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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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2-19 23: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콜레라시대의 사랑과 백년의 고독만 읽었어요
이책 표지가 인상적이어서 항상 관심이 가던 책이었는데...^^ 읽어봐야겠네요
논문급 해설도 그렇고^^

새파랑 2022-02-19 23:40   좋아요 5 | URL
구매보다는 빌려서 보시거나, 서점에서 읽는걸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레이스님이라면 한시간이면 다 읽으실 거에요 ^^

대장정 2022-02-20 00: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백년의 고독만 읽어봤는데, 마르케스🤔 어려워요ㅠㅠ 한페이지 넘도록 끝나지 않는 문장. . . 복잡한 가계도. . .그래서 다른 책도 저는 선뜻 손이 안가더라구요ㅠㅠ

새파랑 2022-02-20 07:35   좋아요 4 | URL
저도 <백년의 고독>은 인물들이 복잡해서 가계도를 계속 보면서 읽었어요 😅 <콜레라시대의 사랑>은 안복잡하고 재미있습니다~!!

대장정 2022-02-20 07:36   좋아요 3 | URL
! 그런가요. 도전해보겠습니다. 책방에서 들었다 놨다 했거든요.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새파랑 2022-02-20 07:38   좋아요 3 | URL
대장정님 이시라면 금방 재미나게 읽으실거라 확신합니다~!!

페넬로페 2022-02-20 08:0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스토리가 새파랑님 말씀처럼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러네요.
아무래도 책을 읽으려면 배경지식이 많아야 이해도 잘될것 같아요^^

새파랑 2022-02-20 08:13   좋아요 6 | URL
전 배경지식없이 냅다 읽는 스타일이라 읽고 맨붕온 적이 많습니다 ㅋ 그렇다고 해설은 잘 안읽어지더라구요 ㅎㅎ 전 세계문학전집 읽으면서 느껴지는 뭔가 낯선 분위가 좋더라구요 ^^

coolcat329 2022-02-20 08: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정말 빌려서 읽는게 좋아요. 저는 샀는데 해설이 반인거 보고 놀랐어요

새파랑 2022-02-20 09:48   좋아요 4 | URL
해설이 반이어서 저도 놀랐어요 ㅋ 갑자기 읽다가 보니 중간에 끝나서요 ㅋ 마지막 부분 너무 좋았습니다 ^^

coolcat329 2022-02-20 13:25   좋아요 4 | URL
마지막 잊을 수 없는 단어! 😉

mini74 2022-02-20 13: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예전 쿨캣님 리뷰 보고 읽어봐야지 했는데 ㅎㅎ 까먹고 있었어요. 그때 쿨캣님 올리신 첫 문장이 참 좋더라고요 ㅎㅎ 도서관에 가서 찾아봐야겠어요 ~

새파랑 2022-02-20 13:37   좋아요 4 | URL
이 책은 좀 최신(?)이어서 미니님 전집에는 없나봐요 ㅎㅎ 쿨캣님은 왠만한 고전책은 다 읽으신거 같더라구요 ^^

coolcat329 2022-02-20 18:33   좋아요 3 | URL
미니님 감사합니당~😆
근데 새파랑님! 저보다 훠~~얼씬 많이 읽으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ㅋㅋ 읽어야 할 책이 많은데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새파랑 2022-02-20 20:12   좋아요 2 | URL
전 쿨캣님이 더 많이 읽으셨을거라 확신 합니다 ^^

coolcat329 2022-02-20 20:47   좋아요 3 | URL
아니라는 데에 제 책을 다 걸겠습니다! 😆

새파랑 2022-02-20 20:57   좋아요 2 | URL
앗 😅 아쉽군요 쿨캣님의 책을 가질 수도 있었는데 ㅎㅎ

Jeremy 2022-02-21 02: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The only thing that comes for sure is death, colonel”
― Gabriel Garcí­a Márquez, No One Writes to the Colonel and Other Stories

새파랑 2022-02-21 06:19   좋아요 3 | URL
영어로 봐도 명문장입니다 ^^

희선 2022-02-22 04: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목 보니 장은진 소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가 생각납니다 그건 정치와는 상관없는 진짜 편지가 오지 않았다 생각한 거지만... 나중에 왔다는 거 알아요 마르케스 소설에서는 대령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편지를 받지 못한 듯하네요 꼭 보답받으려고 한 일은 아닐지라도 그런 사람을 알아주면 좋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독립운동한 분들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희선

새파랑 2022-02-22 07:02   좋아요 2 | URL
좀 안타까웠어요 ㅜㅜ 그때 고생한 대가가 겨우 이런 인생이라니~ 원래 편지는 기다리면 안오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