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 인권이 해답이다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표창원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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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해답이다'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이다. 인권연대에서 기획한 책으로, 여러 사람의 강연 내용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참여한 사람들은 표창원, 오인영, 선우현, 이희수, 고병헌이다. 인권 하면 인권과 관련이 있는 단체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범죄를 다루거나, 역사를 가르치거나, 철학을 가르치거나, 이슬람에 대한 전문가, 그리고 교육전문가들인 이 사람들이 이 책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만큼 인권은 어느 한 분야로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 인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이 책 145쪽에 보면 선우현이 철학에 대해서 강연을 하면서 철학의 첫번째 명제로 철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한다.

 

즉, 철학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함이라는 것이다. 철학함이라는 것은 우리 삶 속에서 철학을 실현한다는 의미다. 지식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인권도 이와 마찬가지다. 인권은 지식으로만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인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그리고 인권은 지식이 아니라 삶 자체여야 한다.

 

삶 자체인 인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표창원은 '폭력'을 주제로 이야기한다. 폭력은 인권을 이야기할 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정당한 폭력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라는 질문과 통하기도 한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이것은 소수에게는 폭력일텐데, 다수에게는 정당한 폭력이라고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생각을 삶에 더 가져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바로 다수와 소수의 문제이고,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인영은 토도로프와 앨버트 허시먼의 논의를 빌려와 이야기를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토도로프에게서, 지배자들의 논리를 허시먼에게서 빌려온다.

 

민주주의의 원리로는 주권재민, 개인의 자유, 진보 세 가지가 있는 반면에 지배자들은 무용명제, 역효과 명제, 위험 명제를 들어 민주주의를 방해. 저지한다고 한다.

 

이것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 위해서는 바로 철학이 필요한데, 이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또 표면에 머물지 않고 깊이 있는 본질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철학이기 때문이다. 이를 선우현의 논의에서 배울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도구를 가지고 이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과연 우리가 아는 이슬람은 폭력적이고 악이기만 할까.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종교일까? 그 점에 대해 이희수가 이야기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병헌은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평화를 가르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결국 평화를 가르친다는 것은 자신이 평화를 위해 산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서 바로 가르침은 지식을 전달만 하는, 명사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바로 동사여야 함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권이다. 인권에 대해서 생각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분야에서 인권에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인권이 바로 우리 삶임을 알아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바로 인권임을, 인권은 이렇게 우리 삶 모든 분야에서 나타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가 우리나라 곳곳에 있다. 그런 사각지대를 없애는 방법은 바로 인권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삶으로, 실천으로 받아들일 때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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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다. 시들이.

 

  시집에 실려 있는 시들 중에서 짧은 시를 고르기가 힘들다. 어떤 시는 서너 쪽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짧음의 미학. 그것이 시의 미학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길다. 길어서 마음 속에 담아놓기가 힘들다.

 

  일제시대 단편서사시라는 시의 종류를 개척했던 임화의 시에서는 어떤 사건이나 줄거리를 발견할 수 있는데, 요즘 시인들의 시에서는 길어도 사건이나 줄거리를 발견하기 힘들다.

 

  여러 생각들이 중첩되어 있다는 느낌. 그것들을 다시 이성의 힘으로 해체해서 연결해야만 이해가 된다.

 

마음이 아니라 머리로 읽는 시. 그런 시들이 많다. 이근화의 이 시집에 실린 시들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머리가 먼저 고된 노동을 해야 한다. 머리 속에서 무언가가 반짝 켜지고 빛을 밝혀야만, 그 빛이, 온기가 마음으로 간다.

 

그래서 어렵다. 머리가 먼저 작동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시를 읽는데 온 신경을 집중해도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를 비평가들은 긴장이라고 하는데... 그 긴장을 함께 즐기는 독자를 마련한 시인은 행복한 시인이겠지만...

 

나와 같은 평범한 독자들은 시에 나타나는 그런 긴장을 즐기지 못한다. 시의 표면에 나타나 있는 표현과 표현 속에 숨어 있는 의미들이 지닌 긴장.. 이 긴장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머리가 혹사당해야 한다.

 

그런 혹사를 기꺼이 감내할 마음이 내게는 없다. 그런 혹사가 즐거움이 되는 사람들, 현대시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리라.

 

이근화의 이번 시집에서 이 시를 골랐다.

 

  당신의 발걸음

 

나폴레옹은 왜 과자점의 이름으로 남았을까

그가 흘린 피의 대가

그가 남긴 고독의 흔적

새벽에 빵을 문 채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의 키 작은 괴로움이 밀려온다

나는 새벽에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새벽 쌀의 뿌연 물이

한번은 개수구로

또 한번은 냄비에 담겨

새벽의 허기를 달랜다

현관문을 나선 발걸음이 추위에 어떻게 맞설지

투 스텝 쓰리 스텝

새벽의 빈 골목에서 춤을 춘다면

고요히 피어오른 밥냄새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출발하지 못했다

숟가락을 물고 있다

꿈 바깥으로 넘어오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너무하다

나폴레옹이 되어가는지

나이팅게일이 되어가는지

에디슨이 되어가는지

인형의 다리를 꼭 쥐고

흥건한 침이 밥물처럼 고소하게 흘러넘친다

새벽 이웃의 허기를 자극할 밥냄새를 피운다

이웃의 꿈도 투 스텝 쓰리 스텝을 밟을까

발바닥이 시리다

나폴레옹의 작은 발이 그가 밟은 핏자국이

여기까지 스멀스멀 건너온다

 

이근화, 차가운 잠, 문학과지성사, 2012년. 초판 2쇄. 140-141쪽.

 

나폴레옹. 유럽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사람. 그러나 그 전에 그는 혁명정신을 유럽에 전파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나폴레옹은 어떤 작용을 할까? 그가 내딛는 발걸음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세상이 좀더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 되었을까.

 

루쉰의 '나폴레옹과 제너'라는 글이 생각이 나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나섰던 사람들이 생각나고.

 

그렇다면 나폴레옹은 전쟁을 통해 사람들의 피를 밟고 전진했다면 이제 이름으로 등장한 제과점에서 만든 빵은 사람들을 살게 하기 위해 존재해야만 한다.

 

하지만 마지막 구절 '나폴레옹의 작은 발이 그가 밟은 핏자국이 / 여기까지 스멀스멀 건너온다'는 표현은?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나아가야 하는 그런 길... 피가 터지도록 힘든 길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이고, 역시 삶은 투쟁이다. 힘들다. 그럼에도 삶은 희망이다. 밥, 빵을 통해 우리는 그래도 살아가기 때문이다.

 

'투 스텝 쓰리 스텝 / 새벽의 빈 골목에서 춤을 춘다면 / 고요히 피어오른 밥냄새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의미가 있게...

 

이때 당신은 나폴레옹이 아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이다. 우리 이웃들의 발걸음은 나폴레옹의 발걸음과 달라야 한다.

 

나폴레옹과 제과점, 그리고 이를 통한 우리 삶의 고달픔, 이를 시로 표현하기 위해 일어나는 긴장, 그 긴장 속에서 다시 발견하는 삶...  오독이다. 오독이어도 어쩔 수 없다.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을 넘었듯이 우리 역시 우리의 산을 넘어야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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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5 17: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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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5 17: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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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 발칙하고 에로틱한 그리스 로마 신화편 말과 글이 풍성해지는 어원 이야기 1
권표 지음 / 돋을새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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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신화 속으로 떠나는 언어 여행"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영어에서 사용하는 많은 말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것. - 이 책은 개정판이 나왔다고 한다.

 

지금도 우리가 많이 쓰고 있는 말들, 멘토라는 말이라든지, 나르시즘이라든지, 이지스라는 말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왔으니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언어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말에서 사자성어를 알고 싶으면 중국 고전을 읽으면 된다.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수호지'를 읽으면 수많은 사자성어들의 기원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 한문에서 사자성어의 기원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나 그 이후 시대의 일들에서 비롯되었다면 서양의 경우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책이 외국 학자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면 이 책은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이라 더 우리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 온다.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제대로 읽은 사람도 별로 없지만 -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소홀한지, 제대로 끝까지 읽는 경우는 별로 없다. 마찬가지로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하지만 하나로 정리된 것도 없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내가 읽었지만, 그리고 이윤기 편역의 그리스 로마 신화도 읽었지만, 내용이 다 똑같지는 않다. 이 책은 이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여러 책을 참조해서 언어 이야기를 해준다 - 이 책에 나와 있는 말들을 대부분 모른다고 할 수도 없다.

 

그만큼 자주 쓰는 말들인데... 예를 들면, 한때 트럭 이름이었던 타이탄, 영화로 꽤나 알려진 타이타닉호가 '티탄'족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판도라의 상자라는 말, 운동화로 유명한 나이키, 음료 이름인 바카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월계관, 마이다스의 손, 피그말리온 효과, 아킬레스 건 등등 이런 말들을 우리는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 말들이 모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기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이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신화만이 아니라 신화에서 발생한 언어까지. 그래서 이 책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라고 한다. 신화도 알고 언어도 알고.

 

즉, 상식이 풍부한 교양인이 되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재미있게 읽으면서 자연스레 지식을 넓혀갈 수 있도록.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에 새로운 사실을 추가하지 않는다면 책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책에는 그래서 앞에서 예를 들었던 말들의 유래에 보태, 잘 모르던 말이나 잘 쓰지 않는 말들의 유래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나 엘렉트라 컴플렉스는 많이 들어봤지만 '파이드라 컴플렉스'라는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품는 연정이라고, 자식들이 부모에게 품는 마음과 반대 방향에 있는 심리적 왜곡 현상을 이르는 말인데... 이 책에서 그 유래를 만날 수 있다.

 

이밖에도 많은 언어들의 유래를, 그 유래를 통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날 수 있으니, 이 책은 재미도 있고, 상식도 넓힐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면 영어 어휘를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양하게 파생되는 언어들의 기본형을 알 수 있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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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14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외로 일상속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깔려있는 것들이 많아서 매번 읽어도 또 까먹게 되는게 이 신화이야기 같아요.
그리고 작가마다 저마다의 신화 해설이 조금씩 달라서 그 방대함이 더 크게 느껴지곤 합니다. 리뷰 읽다보니 이 책이 다시 탐나서 읽어봐야겠어요^^

kinye91 2017-12-14 18:01   좋아요 1 | URL
시대나 나라에 따라서 또 작가에 따라서 조금씩 변형해서 전하고 있으니, 저도 읽을 때마다 새롭기도 해요. 그리고 서양문화의 저변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깔려 있어서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자꾸 읽어도 질리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동양신화, 우리 신화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시원(始源)이 되시다

                              - 장인어른께


당신은

지금껏 우리와 함께 흐르는 물이었습니다

힘든 곳, 쉬운 곳

때론 느리게, 때론 빠르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늘 함께 흐르는 물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했기에

어떤 곳도 두렵지 않았고

어떤 곳에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우리에게 시원(始源)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부터

흘러왔는지 알려주는 지표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계속 흐르게, 당신은

지금 우릴 만들어준 근원이 되셨습니다.

근원이 되어 당신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계속 흐르는 우리들 속에

당신은 영원히 함께 흐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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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3 2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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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의 정원 대산세계문학총서 125
바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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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진(巴金), 이름만 듣다가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어보았다. 중국 소설가로 꽤나 이름이 알려져 있는 작가인데, 이제서야 읽게 되다니. 그간 중국 소설 쪽에는 고전(삼국지, 수호지, 열국지, 서유기)을 제외하고는, 루쉰의 작품을 읽은 것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몇 작가의 작품을 읽은 적은 있지만 (빨간 기와, 로빙화와 같은 작품들) 그다지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럼에도 중국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냥 넘어갔었는데...(나중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모옌의 작품을 읽을 생각)

 

최근 장아이링의 작품을 시작으로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세계문학이라고 하면서 어쩌면 서양 쪽으로 치우친 독서 경향을 바로잡으려는 마음도 작용하기 시작했고.

 

바진은 중국 격동기에 살았던 작가다. 약력을 보면 그는 아나키즘에 많이 경도되었다고 하던데... 바진이라는 이름도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의 첫자와 끝자를 따서 지은 필명이라고 하고.

 

처음으로 읽은 '휴식의 정원'은 나름대로 읽을 만했다. 중국이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몰락한 한 가정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사회는 변해가는데 자신은 과거에 얽매여 결국 재산을 다 탕진하고 죽음에 이르는 양씨 집안 셋째와 그럼에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그의 아들 양도령, 그리고 지금 부자로 지내고 있는 친구 라오야오와 그의 아들 샤오후. 이를 바라보는 소설가인 나, 라오리.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사회의 변화를 보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산다. 바로 양씨 집안의 셋째가 그렇다. 그는 재산을 탕진만 하고 생산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 축첩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든지, 체면에 얽매여 몸을 움직이는 일, 남 밑에 있는 일은 하지 않는다.

 

집안이 망해가는데도 그는 여전히 과거의 습성에 젖어 있다. 반대로 그의 큰아들은 이런 아버지의 생활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는 이미 근대인인 것이다. 그가 우정국(우리말로 하면 우체국)에 취업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가족에게 쫓겨난 그, 하지만 그의 둘째 아들 양도령은 그런 아버지도 역시 아버지라고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다.

 

양도령의 사랑을 온전히 받고 있는 양씨, 그러나 그는 비렁뱅이로 지낼지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병을 고쳐 새로운 생활에 나아가려고 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이 양도령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아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사라지고 만다. 죽음으로 영원히.

 

이것을 바라보는 작가에게 또다른 과거의 인물이 등장한다. 양씨는 이미 어른인 과거라고 하지만, 작가의 친구인 라오야오의 아들 샤오후는 미래를 살아갈 인물이긴 하지만 그는 이미 과거의 인물이다.

 

그가 하는 행동은 양씨의 행동과 다를 것이 없다. 그는 미래를 살지 못한다. 아니 살아갈 수가 없다. 이미 양씨의 몰락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작가는 그래서 그를 죽음으로 이끈다. 과거의 인물이 발 디딜 곳이 이제는 중국에서도 없는 것이다. 이젠 과거의 인물을 대신할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

 

친구와 재혼한 부인인 자오화가 임신을 한 것이 그 예가 된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를,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마찬가지로 양도령도.

 

비극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과거의 인물이 비극으로 사라져 줌으로써 미래의 인물이 희극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고 있다.

 

바진의 이 소설은 그래서 비극적 삶을 다루고 있지만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에서 자오화가 소설가인 주인공에게 요구한다. 왜 소설에 비극만 있냐고. 소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해주면 안 되냐고.

 

이것이 소설가인 주인공에게 다른 결말을 지닌 소설을 쓰게 한다. 소설 속 소설과 이 소설이 함께 하면서 새로운 희망, 아름다움,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그것이 과거의 인물을 사라지게 한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사가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고,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다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소설가는 세상을 봄더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잖아요. 눈물 흘리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모든 이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요.' (75쪽)

 

라오야오의 아내인 자오화가 영화를 보고 오면서 작가인 라오리에게 하는 말. 이 말이 바로 작가가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도 비극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희망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우리 세상이 아무리 암흑일지라도 한 줄기 빛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꼭 있다. 그 빛으로 인해 사람들은 견뎌내고 어둠을 이겨내는 것이다.

 

바진의 이 소설,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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