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차례가 온다면
세스 고딘 지음, 신동숙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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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 당신 차례가 온다면' 가정이 아니다. 당신은 차례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러면 당신 차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차례는 이미 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당신 차례다.

 

차례를 기다리기만 하는 당신은 어쩌면 제논의 역설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는 아킬레스. 머리 속에서는 따라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금방 따라잡는다.

 

우리 삶에서도 이런 제논의 역설을 벗어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실행이다. 움직이는 일이다.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이 점에 대해서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차례를 기다리기만 하는 일은 두려움 때문이다. 두려움은 생각에서 온다. 왜냐하면 실행하지 않은 것,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생각이 두려움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래에 대해서 생각만 하면 결국 행동할 수 없다.

 

차례만 기다리다 자기 차례가 온 줄도 모르고 보내버리게 된다. 세스 고딘은 이 점에 대해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당신 차례는 이미 왔다고.

 

선택은 다른 사람에게서 주어지지 않는다고. 바로 당신이 지금 선택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당신 차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고.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청년세대들이 지금은 삼포를 넘어 오포, 또는 다포세대라고들 하는데, 이들 역시 두려움 때문에 포기를 하는 것이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것들을 머리 속에서 그리고, 예측하고,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게 되니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패를 통해 성공으로 나아가는 일, 이제는 너무도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실패, 실패, 실패...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때 성공이 어느 새 다가오게 되어 있는데...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 번 실패하면 일어서기 힘들다. 그만큰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히다. 패자부활전. 없다.

 

토너먼트 경기처럼 한 번 패배하면 그냥 퇴장해야 한다. 리그전이 아니다. 한 번 져도 다음에 경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젊은세대들이 도전을 꺼리게 된다.

 

머리 속으로 온갖 상황을 그려보고, 성공할 확률이 70-80%는 되어야 행동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행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드니까. 경기에 참여할 수 없게 되니까.

 

아무리 이런 책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해도, 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해도, 당신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을 떨쳐버리라고 해도, 두려움과 함께 하라고 해도, 대가가 너무 크다.

 

치명적이다. 그러니 안전한 길로만 간다. 따라서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권할 만하지 않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주어진 대로, 다른 사람이 주는 대로 살아가고자 할 뿐이다.

 

이들에게는 생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살아간다고 하기보다는 살아진다고 하는 편이 가까운 삶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뿐인 삶. 수동적으로 주어진 대로만 살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미래는 머리 속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는 상상일 뿐이다.

 

그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것은 바로 실천, 행동이다. 지금 바로 하는 행동이 바로 미래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삶을 살고 싶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라고. 지금이 바로 당신 차례라고 이 책은 말한다.

 

삼포세대를 넘어 오포세대, 다포세대가 된 청년들에게 그냥 그렇게 살아가라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이것을 벗어날 수 있는지, 자기 삶의 주인은 자신일 수밖에 없으니, 먼저 행동하라고, 두려움을 잠시 미뤄두고 움직이라고 한다.

 

그래야만 변화가 시작되니까... 여전히 힘든 일이겠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아지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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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는 '학교, 교육과 돌봄 사이'를 주제로 하고 있다.

 

  사실 학교가 교육기관이 아니라 보육기관, 탁아기관이 된 지 오래인데, 새삼 이런 제목을 붙이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봄은 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의미한다. 부모가 늦게 퇴근해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학교에 머무르게 하는 것.

 

  이마저도 못하는 아이들은 지역아동센터에 가거나 학원에 가야 한다.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그런데 읽으면서 이게 과연 돌봄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 선택권이 있을까? 아이들에게 자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은 부모나 또는 어른의 돌봄이 필요한 나이라고, 이들이 홀로 있으면 안 된다고, 늘 누군가의 눈길이 닿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발상이 바로 '돌봄'이 아닌가 한다.

 

위험사회에 도달한 이 나라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아이들은 집에 가고 싶어도 (비록 집에 아무도 없다고 하더라도 자기 집이고, 그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을 때도 있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있고 싶을 때고 있고, 또 게임이나 다른 활동을 하고 싶을 때고 있는데) 갈 수가 없다.

 

그건 돌봄이 아니라 방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밖에서 밤늦도록 놀아도, 친구들과 그냥 어두워질 때까지 놀아도 안 된다.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자기가 결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꼭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아야만 한다. 그것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옭죄어 오는 그 통제를 견디면 이제는 중학생이 되어 학원으로 자연스레 갈 곳을 바꾼다.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다. 이러다 대학생이 되면 도대체 자기 스스로 무엇을 결정할 수 있을까?

 

돌봄, 돌봄 하면서 오히려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그런 기회를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때 이렇게 돌봄 운운하며 어른들 눈길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생활을 했던 아이들을 마냥 어린이로만 취급하는 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다.

 

선거 연령을 만18세로 낮추자는데, 고등학생이 무슨? 하면서 반대를 하는 어른들... 돌봄의 틀에 갇힌 사람들 아닐까 한다.

 

그렇더라도 돌봄은 필요하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이번 호에는 다양한 돌봄들이 소개되고 있다. 학교를 이용한 돌봄만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 또는 공동육아와 비슷한 형태의 돌봄들 말이다.

 

'학교, 교육과 돌봄 사이'라는 주제에서, 우리는 두려움과 배움이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울 명심해야 한다.

 

학교에서 하는 일 중에 돌봄과 교육은 기본이 되는 일이다. 교육기관이 돌봄과 교육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다만, 이것이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밤 늦게까지 학교에 있다가, 집에 잠시 갔다 왔다가 다시 학교에 오는 초등학생들.

 

이들에게 과연 학교는 행복한 공간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번 호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돌봄이 지녀야 할 기본 원칙은 노동시간 단축이다.

 

노동시간을 줄여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돌봄 문제가 해결이 된다.

 

그 다음, 학교가 보육, 탁아기관으로 전락한 것은 교육정책이 실패한 까닭이니, 제대로 된 교육정책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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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1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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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19: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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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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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읽은 책이다. 그때는 사회-역사 지식이 부족해서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또다른 동물이 독재를 한다 정도로만 이해하고 말았던 책이다.

 

다시 나이들어 읽으면 그동안 살아온 것들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책 해설에서도 나오지만 책이 발간될 당시 사람들은 이 소설에서 풍자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았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소설이 발간된 지도 70년이 넘었고, 그만큼 강산이 일곱 번이나 변했고, 또 이데올로기로 대립하던 것이 이제는 종교 대립이나 경제 대립으로 넘어가 버렸으니, 지금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오웰이 풍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소련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바로 소련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들의 반란은 민중들의 혁명이고, 정권을 잡은 돼지는 스탈린이며 쫓겨난 돼지는 트로츠키라는 것. 그리고 한없이 일만 하다 죽게 되는 복서(말)는 프롤레타리아를 의미한다는 것. 여기에 스퀼러라는 돼지가 나오는데, 이는 왜곡된 언론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민중은 혁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지만, 그 혁명은 곧 몇몇 권력가들에 의해 배신당하게 되고, 민중들의 삶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

 

얼핏 보면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소설같지만, 사회주의라는 이념보다는 스탈린이라는 권력자가 사회주의 이념을 어떻게 왜곡했는지를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 (어쩌면 그는 아나키스트라고 하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지만)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동물농장 말고 또다른 글이 두 편 실려 있는데, 한 편은 '자유와 행복'이다. 인간에게 자유와 행복은 양립할 수 있는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독재자들은 양립할 수 없고, 행복을 위해서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유롭지 않은 행복이 어떻게 행복일 수 있을까? 동물농장에서 다른 동물들은 서서히 자신들 자유를 잃어간다. 잃어가는 줄도 모르고 잃어가는데, 이들 삶은 점점 버거워지고 힘들어진다. 반면에 몇몇 권력자들은 점점 더 살찌게 되고.

 

그러니 우리는 자유와 행복은 양립해야 한다고,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 이 점을 '동물농장'을 통해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동물농장'은 단순히 스탈린 체제에 있던 소련 사회를 풍자하는 것을 넘어선다. 우리들이 잘살기 위해서 벌이는 일들이 바로 '자유와 행복'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는 일이라는 것.

 

인간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이들은 그래서 자유를 획득했지만, 곧 자유는 구속당하고, 행복은 강요당한다. 강요된 행복은 왜곡된 언론에 의해서 진정한 행복인 것처럼 가려지지만, 그렇다고 진정으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이들은 점점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돼지와 인간들을 구분할 수 없게 되는 많은 동물들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혁명은 혁명 이후가 더 중요하다. 혁명 이후 발을 잘못 디디면 혁명 전과 같은 상황으로, 아니 더 나쁜 상황으로 들어가게 된다.

 

'동물농장'에서 권력을 쥐게 되는 돼지들 말고, 다른 동물들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죽을 때까지 일만 하던 복서가 결국 팔려가, 권력자들 향연에 필요한 돈을 마련해주는 것처럼.

 

이런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이 소설이 씌어졌다고 보면 된다. 또다른 글인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동물농장'은 내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한,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의식하면서 쓴 첫 소설이었다.' (143쪽)

 

한참 세월이 흘렀지만 이 소설은 우리에게 혁명 이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어서 지금도 유효하다.

 

혁명 자체도 중요하지만, 혁명 이후가 더 중요함을 소설은 생각하게 한다. 혁명 이전의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소수에게 권력이 독점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 왜곡된 정보를 흘리는 언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민중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

 

깨어 있더라도 참여를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소설에서는 당나귀 벤자민이 이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혁명 이후를 예측하고 있다. 그럼에도 행동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이 점도 경계해야 한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사회-역사와 관련지어 읽으면,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사회를 꿈꾸며 읽으면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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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0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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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15: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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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한글


문맹률이 0에 가깝다고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배우기 쉬워

어린아이라도 한 나절이면

깨친다는

한글을 지닌 나라라고

자랑들 하지만

문자만 읽고

뜻은 못 읽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나라

들어가지 마시오

기를 쓰고 들어가고

걷거나 뛰지 마시오

걷고, 뛰고

서 있는 사람에게 도리어

큰소리 치는

인권, 질서, 배려,

문자만 읽고

뜻은 못 읽는

정치 뜻도 모르고

선량(選良)이라고 우기며

사는 인간들이

득시글한

문맹률은 낮지만

문해율(文解率)도 낮은

쉬움이 가벼움이 아닌데

너무 쉬워

머리에서 증발해

가슴, 발로 가지 못하는


슬픈,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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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 제목이 된 시는 오병량 시인이 쓴 '편지의 정원'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시는 '온통 글이' 되는 듯 길고도 긴데, 점점 말이 많아지는 것이 요즘 시들 추세인가 싶기도 하다.

 

  50명의 시인들이 두 편씩 시를 써서 선보이고 있다. 나는 이런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앞으로 이런 시와 비슷한 시들을 엮어 시집을 내겠습니다. 내 시 어떤가요? 이렇게 묻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은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고, 언어에 대한 민감성, 예민성이 뛰어난 사람인데, 시집 제목에 '티저'라는 말이 들어간 것이 좀 마음에 걸린다.

 

예고편 정도 되는 말을 이렇게 기념 시집에 당당히 쓰다니, 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고, 영어 단어 'teaser'라는 말을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도 많을텐데, 우리말도 아니고 영어 단어를 이렇게 시집에 버젓이, 비록 한글로 '티저'라고 썼다고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단 생각을 했다.

 

두 편의 시들. 그 시인들이 앞으로 이런 시를 쓰겠다는 것, 맛보기, 예고, 그러니 이 시인들 시집이 앞으로 나올텐데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 관심을 가지라는 의도로 편집한 시집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보통 기념시집은 그 전에 나온 시집들에서 한두 편을 뽑아 엮었는데, 이 시집은 과거로 가지 않고 미래로 갔다.

 

미래에 나올 시집을 상상하고 기다리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시가 문태준의 '상응하다'란 시가 아닐까 한다.

 

시집은 시를 통해 우리와 상응하려고 하고 있다. 시와 시인이, 시인과 우리가, 우리와 시가 서로 상응해야 하는 것이다.

 

상응하다

 

  아무 인연이나 연고가 없는 것은 없다. 무엇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무엇에서도 마음은 일어난다. 아침햇살, 새소리, 바람, 꽃가루가 돌에게 가서 돌을 깨우듯이, 그래서 돌이 얼굴과 음성으로 화답하듯이.

 

고은강 외,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문학동네. 2017년. 79쪽. (문태준, '상응하다')

 

 이 시집은 이렇게 우리와 상응하려고 한다. 그것도 요즘 영상세대에 맞게 짤막한 시들을 보여줌으로써 좀더 깊고 넓은 시 세계로 들어오라고 한다. 그래서 '티저'란 말을 썼는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 (내 맘에는 안 들지만)

 

하여 이 시집에는 시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50개가 있다. 이 50개 중 어느 곳으로 들어가도 된다. 어느 문을 열어도 된다. 아무 문이나 열어도 어느 문과도 상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시다.

 

그렇게 문학동네 시인선은 과거의 시들과 현재 시, 그리고 미래 시들이 함께 어울리게, 상응하게 하고 있다.

 

단지 시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과 상응할 수 있는 그런 삶, 그런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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