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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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313쪽)


이 책 마지막 문장이다. 사람이 사람을 실격시킬 순 없다. 이 당연한 말이 당연하지 않으니, 현실은 실격당한(실격시킬 권리가 없음에도 이상하게도 실격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자신들이 실격당하지 않기 위해서 두 배, 세 배의 노력을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아니라, 그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더 강하게, 그들보다도 더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이려 한다. 그들과 비슷해지려 하기도 한다. 비슷해질 수 없음에도.


그러다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나는 나대로 살아야 한다는 자각을 한다. 내가 왜 남과 비슷해지려 노력해야 하는가? 남과 다르다고 해서 남을 따라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


남을 따라가려 하다가 내가 잘하는 것을 놓치고 또 나를 사랑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이 나만이 책임져야 할 문제일까?


나만의 책임이라는 말은 실격과 관련이 된다.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다고 해서 내가 관여하지도 않은,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었던 장애에 왜 나만이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인가?


오히려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내가 남들과 비슷하게가 아니라 나로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사회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인권을 지니고 태어나니까, 그 인권은 장애가 있고 없고 상관없이 모두에게 지켜져야 하니까. 그러니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문제가 있는 사회다. 그런 사회를 바꾸려고 해야 한다.


지금까지 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해온 일이 이런 일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과격하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줄까? 물론 귀 기울여 주는 사람도 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사회를 바꾸려고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사회는 누구나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런 사회에서는 누구도 실격당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누구도 실격시켜서는 안 된다.


그러니 '인간적 상호작용(1,2,3장), 개인의 윤리적 결단(4,5장), 법과 제도의 관행(6,7장), 사랑과 예술이라는 특수한 맥락(8,9장)으로 구성하여 '잘못된 삶'이라는 관념과 태도에 맞서려 했다(16쪽)'고 구성한 저자의 글은 사람이 실격당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펼치고 있다.


읽으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 법에 치우친, 형식을 중시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세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쓸 수 있는 품격주의라는 말과, '오줌권'(이런 권리를 공식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지만, 이동권이라는 말도 처음에는 없던 말이라고 했으니)이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오줌권'이라? 인간의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는 권리인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지금도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소위 먹자골목이라고 하는 음식점이 주욱 늘어선 곳에 가면, 각 음식점들 안에 화장실이 있는 경우도 있고, 건물에 공동 화장실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계단으로 갈 수밖에 없거나 또는 턱이 있어서 휠체어가 갈 수 없는 곳이 많다.


그렇다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회식을 하더라도 화장실이 어떠한가를 미리 고려하고 음식점을 선택해야 한단 말인가? 비장애인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텐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을 갈 수 있도록 하는 일, 그것이 장애인의 책임일까?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의 책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렇게 되면 누구도 실격당하지 않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의 끝부분에는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연상하게 하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실현되는 사회,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으면 하는 말로 끝맺으려 한다.


'예의 바른 무관심, 섬세한 도움의 손길 무시와 냉대 속에 혼자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고개 숙여 말을 거는 순간, 조금 더 긴 시간을 들여 상대방의 '초상화'를 그려보려는 미적 · 정치적 실천. 그런 것들이 모여 자기 삶의 조건을 수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하고 탁월한 자아를 구축하게 한다. 그러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자신들의 구체적인 삶을 언어화 하고, 법적인 권리로 만들고, 품위와 겉모양만 중시하는 품격주의자들의 세계에 구멍을 낸다. 모든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존중은 이제 법률이 되고, 헌법이 되어 우리 공동체의 최고 규범이 된다.'(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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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런 말은 쓰지 않습니다 -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새로고침이 필요한 말들
유달리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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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끝부분 나가는 말에 이런 말이 나온다. 

'모를 수 있다는 건 곧 특권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사실조차도 모른다.'(250쪽)


그렇다. 모를 수 있다는 것, 즉 자신의 삶에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았기에 알지 못하고 지냈다는 사실 자체가 힘이다. 권력이다.


이런 힘이 있는 자들은 약자들의 고통을 모른다. 자신은 겪어보지 않았기에... 겪어보려 하지도 않았기에, 약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결코 자신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 그러니 그들은 모른다. 모를 수밖에 없다. 힘이 있는 자들에게는 그런 모름이 권력이 된다. 힘이 된다.


하지만 약자들은 모를 수가 없다. 생활에서 늘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점을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 두어야 한다. 약자가 행복한 세상은 강자도 행복한 세상이다.


마찬가지로 강자들은 의식적으로 불편해지려 해야 한다. 자신이 겪지 않는 일에 무관심하기보다는, 그런 일에 관심을 두는 불편함을 생활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가 바뀐다. 


출퇴근 시간에 권력자들이 꼭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불편함을 겪어보기를.. 몸에 손상이 없는 사람도 고통을 겪는 그런 대중교통. 몸에 손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임을... 그 지옥도 잘 이용할 수 없음을...


특히 언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속적으로 듣게 되는 언어는 우리의 사고뿐이 아니라 행동까지도 규정할 수가 있다.


차별 언어가 만연하면, 그 사회는 차별을 당연시하게 된다. 차별 언어를 의식하지 않고 쓰는 무지의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차별 언어들을 다루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들도 있지만, 일부러 쓰는 말들도 있다. 그런 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왜 쓰면 안 되는지, 그 말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내용 중에 김도현의 글을 인용한 부분이 있다. 장애에 관해서.


'손상은 손상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된다.' (234쪽) 


그렇다. 선천적 장애도 있지만 후천적 장애가 많다. 그런데 장애와 손상을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이 문장을 보면서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손상은 손상일 뿐이라는 말. 이 말은 풀어서 이렇게 설명해주고 있다.


'다리의 '손상'은 휠체어를 이용한다면 평지에서는 장애가 아니다. 웬만하면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단을 마주하였을 때 다리의 '손상'은 장애가 된다.' (234쪽)


손상이 장애가 되지 않게 하는 일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불편해져야 한다. 불편함을 몸으로 느껴야 한다. 불편함을 모르고 그냥 지내다보면 손상이 장애가 되어도 모르고 지나가기 쉽다.


최근 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벌이는 지하철 출근 투쟁에 관한 글이 있다. 왜 이들이 그런 투쟁을 하는지, 그것은 이들의 손상이 장애가 되는 구조 때문이다. 구조만 바꾸면 이들의 손상은 손상으로 그칠 수 있다. 장애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통계의 문제가 이 부분에서도 작동한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2년 4월 기준으로 공사가 관리하는 지하철 역사 275개 중 254개 역에선 교통 약자가 타인의 도움 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 출구부터 승강장까지 하나의 동선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른바 '1역사 1동선'이 확보된 역들이다. 수치만 보면 92.3%로 높다. 그러나 문제는 환승역이다. 환승역 69개 중 50.7%(35개 역)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환승할 수 없다. 환승하려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거나 휠체어 리프트를 사용해야 한다.'(230-231쪽)


환승하는 곳에서 꼭 필요한 엘리베이터가 절반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 빙 돌아서 환승해야 한다고 하니,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고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떻게 설치되어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냥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잖아 하면 그것은 바로 무지의 힘이다. 권력이 작동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이런 시설말고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한 번 발화되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말이다. 차별의 말들... 상처주는 말들.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은 정말 모르는 힘을 구사하는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그들에게는 모르는 게 힘일 수 있지만, 이는 약자들에게는 독이 되고 칼이 된다. 그들의 마음에 몸에 상처를 낸다. 그러니 알아야 한다. 불편해져야 한다. 알아서 불편해지면, 고치게 된다. 고치도록 한다.


손상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또 말로 인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가 더 행복해진다.


이 책 제목대로 '이제 그런 말은 쓰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겠다. 먼저 '그런 말'이 어떤 말인지 알아야겠다. '그런 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힘을 알게 모르게 발휘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런 말들' 모르고 넘어가서는 안 되겠단 생각을 한다. 알아서 고치는 불편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지가 힘이 되지 않게... 아는 것이 힘이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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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에는 인물과 인물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들이 보여주는 삶은 우리네 삶이다.


  시에는 인물과 인물이 등장하더라도 소설과 다르다. 이야기가 압축되어 있다.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소설이든 시든 삶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박남준의 이번 시집 2부에서 4부까지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삶들이 들어 있다.


  시인 자신의 삶이기도 하지만, 그 삶은 바로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는 내밀한 자기 고백이기도 하지만, 사회 속 우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시집에 실린 지리산에 관한 시들을 보면, 참 짠하다. 환경영향평가라는 항목이 유명무실해진 지금, 환경부가 환경파괴부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을 이 시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비록 최근에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문제로 환경영향평가가 무용지물임을 알게 되었지만, 설악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이미 지리산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지리산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무심할 수 없었던 시인. 이 시집에서 '지리산이 당신에게, 지리산은 지리산의 자리에서 노래하네'라는 시를 통해 시인의 마음을 만날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어쩌면 높고 크고 강한 것들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낮은, 작은, 약한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을지 모른다.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라는 말, 안빈낙도라는 말이 멀리 존재하는 이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낮은 곳으로, 작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 역시 시인이다. 아니 우리들이어야 한다. 큰 산보다는 작은 산, 큰 나무보다는 작은 나무가 되고 싶다는 시인처럼.(시 '작은 나무' 84쪽)


사람이 가장 낮은 곳을 볼 수 있는 자세... 바로 '절'이다. 자신을 한 없이 낮추는 일. 이는 다른 존재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을 낯춤으로써 오히려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자세.. 절.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남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남과 함께 하는 일. 시인의 시는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니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자세는 무엇일지 생각하게 한다.


자고로 성인들이 어떤 자세로 사람들을 대했는지, 이 시에 나오는 다른 시편들을 읽어보면 이 시에 담긴 시인의 마음을 더 잘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푸른 바다가 들어와 머물기도 했지

발목을 빠져나간 늙은 양말이 눈에 밟히며

애써 이룬 수평을 흔들었다

젊고 뻔뻔한 후회가 스치며 혀를 깨물게도 했네

여기까지는 얼마나 흘러왔는가

지문을 찍듯 엎드려

낮고 겸손한 바닥을 몸에 새기는 것만이

절은 아닐 것이다

절은 할수록 절로 늘어

뼈마디마다 불꽃을 피우고

육탈 같은 다비가 일어나기도 한다


꽃잎의 주소를 따라가면 환해지고는 했지

강가에 나가 꽃배를 띄웠다

일상이 간절해야지

점점 작고 가벼워져

꽃배를 타고 건너가야지


박남준, 어린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걷는 사람. 2022년 1판 6쇄.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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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씨 집안 자녀교육기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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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설이다. 중국 소설가를 많이 알지 못한다. 몇몇이 우리나라에 꽤 알려져 있고 쑤퉁 역시 유명하다고 하는데,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의 소설도 처음이었고.


총 네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제목이 된 소설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네 편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생각해 보면, 인생이란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 인생에 무엇이 개입해 우리의 삶을 다른 쪽으로 흘러가게 할 수도 있음이라 할 수 있다.


마씨 집안 자녀 교육기도 마찬가지다. 어떤 부모가 자식이 망나니로 살길 원하겠는가? 하지만 자식이 부모 뜻대로 살아주지는 않는다. 마씨 집안도 마찬가지다. 그렇더라도 개망나니 소리를 듣는 마쥔도 자기 아버지에게는 꼼짝하지 못한다.


잘못을 했을 때마다 아버지에게 뺨을 맞던 마쥔. 이 집안 사람들은 남의 뺨을 치는 것이 유전인지 마쥔의 아들까지도 그러한데... 


우리말로 하면 술상무, 그들이 좀 고상하게 부르는 프로 드링커가 되어 살지만, 술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유머러스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자기 뜻대로 안 되는 인생이라지만, 마쥔 역시 이혼하고 또 눈 먼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는데, 자기 뜻대로 살아간다고 생각했지만, 그 역시 뜻하지 않는 여러 흐름에 휩쓸려 살다 갔을 뿐이다.


이런 점을 '1934년의 도망'에서 더 잘 알 수 있다.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도망간 사람 쫓기를 강 앞에서 포기하는 인물. 


자신이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돌아서는데... 그래서 자식은 다른 사람의 품에서 자라게 된다. 가부장적인 남성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소설이지만, 그럼에도 남성들 역시 여러 사건에 얽혀 휘둘리며 사는 모습을 보인다.


'양귀비의 집'이나 '결혼한 남자'라는 소설을 보면 이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세상의 흐름에 자신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


격동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계획한 대로 살아가기 힘든 삶의 모습이 이 소설집에 잘 드러나 있다. 그렇게 인생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일들로 이루어짐을...


소설의 내용이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비극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작가의 글쓰기 방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희화화 해서 표현하고 있고, 중간중간 작가가 직접 개입해서 직접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중 인물에 대해서 거리를 두게 하고 있다.


이 거리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설 속에 빠져들게 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읽게 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보면서 그래, 인생이란 이렇게 뜻대로 안 될 때가 많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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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사진과 빅이슈 그리고 홈리스


  '홈리스 월드컵' 처음 들어봤다. 빅이슈 덕이다. 이런 경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그만큼 내세계에 갇혀 있었다는 얘기다.


  올림픽이 끝난 다음에 열리는 패럴림픽은 알고 있었는데, 홈리스 월드컵이라니... 그것도 매해 열린다니.


  영화 '드림'을 소개하는 글이 빅이슈 여기저기에 실렸는데, 왜 그랬나 했더니, 영화 '드림'이 홈리스 월드컵에 바탕을 두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참가한 2010년 대회.


대회 참가 목적이 우승이 아니다. 참여하면서 자신들이 할 수 있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느낄 수 있고, 또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거창한 목적을 달지 않아도 좋겠다. 그냥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월드컵을 홈리스들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 그들이 축구를 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고, 또 그들만의 세계 대회를 갖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니 홈리스 월드컵이란 대회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가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 홈리스들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고.


여기서 생각해 본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했다. 인종, 성별, 경제적 차이, 신체 등에 의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이 당연한 명제가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 아직도 장애인들이 지하철 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고 시위를 하고 있는 현실이 생각났다. 


요즘은 언론에서도 잘 다뤄주지 않지만, 이들은 한 해가 넘도록 자신들도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들의 요청에 답을 하지 않고 있는 관련기관이 답답하기만 한데...


홈리스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홈리스들은 경제적으로 참가비를 마련하기 힘들다. 참가비만이 문제가 아니다. 외국에서 대회가 열리니, 교통비도 마련해야 한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대회, 홈리스 월드컵이지만 현실적으로 경비는 무시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경비 문제로 고민하지 않고 참가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홈리스 월드컵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다. 


홈리스 월드컵은 한 해에 한 번 열리는 특별한 행사다. 이런 행사가 아니라 장애인들이 출퇴근을 하고 직장에 다니는 일은 늘상 해야 하는 일이다. 보통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보통이 특별이 되지 않는가.


보통이 보통이게 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시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뒷받침은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사회의 의무다. 이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기관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휠체어를 탄 사람이 연극을 보러 대학로에 간다고 하자. 수많은 소극장들이 있는 서울 대학로. 하지만 소극장들은 3층 이상에 있거나 지하에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소극장이 별로 없다는 것.


즉, 휠체어를 탄 사람은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고 싶어도 (대형 공연장이 아닌 소극장들에서 하는, 우리가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에 자주 접할 수 있는)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홈리스 월드컵처럼 참가비용 때문에 참가하기 힘들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제도, 시설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보통이 특별이 되지 않게.


영화는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빅이슈를 통해서 홈리스들이 꽤 오랫동안 대회에 참여해왔음을 알게 되었다. 좀더 관심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번 호에는 그때 직접 선수로 참여했던 빅판의 이야기와, 감독으로 참여했던 사람, 그리고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영화를 본 사람이 이번 호를 읽는다면 영화와는 또다른 무엇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같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글을 통해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으니.


그래서 영화 '드림'은 영화로 끝나서는 안 된다. 빅이슈가 홈리스의 자립만을 위한 잡지가 아니라 우리 보통 사람들을 위한 잡지이듯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낮은 시선에서 살펴볼 줄 알아야 하겠다. 높은 곳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을 볼 수 있는 눈, 그런 눈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 '드림'이었으면 좋겠다. 잡지 [빅이슈]가 그런 눈을 지니게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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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3-05-12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영화를 봤는데, 감동적 실화와 별개로 정작 영화는 별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