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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런 말은 쓰지 않습니다 -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새로고침이 필요한 말들
유달리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책 끝부분 나가는 말에 이런 말이 나온다.
'모를 수 있다는 건 곧 특권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사실조차도 모른다.'(250쪽)
그렇다. 모를 수 있다는 것, 즉 자신의 삶에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았기에 알지 못하고 지냈다는 사실 자체가 힘이다. 권력이다.
이런 힘이 있는 자들은 약자들의 고통을 모른다. 자신은 겪어보지 않았기에... 겪어보려 하지도 않았기에, 약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결코 자신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 그러니 그들은 모른다. 모를 수밖에 없다. 힘이 있는 자들에게는 그런 모름이 권력이 된다. 힘이 된다.
하지만 약자들은 모를 수가 없다. 생활에서 늘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점을 강자가 아닌 약자에게 두어야 한다. 약자가 행복한 세상은 강자도 행복한 세상이다.
마찬가지로 강자들은 의식적으로 불편해지려 해야 한다. 자신이 겪지 않는 일에 무관심하기보다는, 그런 일에 관심을 두는 불편함을 생활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가 바뀐다.
출퇴근 시간에 권력자들이 꼭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불편함을 겪어보기를.. 몸에 손상이 없는 사람도 고통을 겪는 그런 대중교통. 몸에 손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임을... 그 지옥도 잘 이용할 수 없음을...
특히 언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속적으로 듣게 되는 언어는 우리의 사고뿐이 아니라 행동까지도 규정할 수가 있다.
차별 언어가 만연하면, 그 사회는 차별을 당연시하게 된다. 차별 언어를 의식하지 않고 쓰는 무지의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차별 언어들을 다루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들도 있지만, 일부러 쓰는 말들도 있다. 그런 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왜 쓰면 안 되는지, 그 말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내용 중에 김도현의 글을 인용한 부분이 있다. 장애에 관해서.
'손상은 손상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된다.' (234쪽)
그렇다. 선천적 장애도 있지만 후천적 장애가 많다. 그런데 장애와 손상을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이 문장을 보면서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손상은 손상일 뿐이라는 말. 이 말은 풀어서 이렇게 설명해주고 있다.
'다리의 '손상'은 휠체어를 이용한다면 평지에서는 장애가 아니다. 웬만하면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단을 마주하였을 때 다리의 '손상'은 장애가 된다.' (234쪽)
손상이 장애가 되지 않게 하는 일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불편해져야 한다. 불편함을 몸으로 느껴야 한다. 불편함을 모르고 그냥 지내다보면 손상이 장애가 되어도 모르고 지나가기 쉽다.
최근 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벌이는 지하철 출근 투쟁에 관한 글이 있다. 왜 이들이 그런 투쟁을 하는지, 그것은 이들의 손상이 장애가 되는 구조 때문이다. 구조만 바꾸면 이들의 손상은 손상으로 그칠 수 있다. 장애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통계의 문제가 이 부분에서도 작동한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2년 4월 기준으로 공사가 관리하는 지하철 역사 275개 중 254개 역에선 교통 약자가 타인의 도움 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 출구부터 승강장까지 하나의 동선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른바 '1역사 1동선'이 확보된 역들이다. 수치만 보면 92.3%로 높다. 그러나 문제는 환승역이다. 환승역 69개 중 50.7%(35개 역)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환승할 수 없다. 환승하려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거나 휠체어 리프트를 사용해야 한다.'(230-231쪽)
환승하는 곳에서 꼭 필요한 엘리베이터가 절반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 빙 돌아서 환승해야 한다고 하니,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고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떻게 설치되어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냥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잖아 하면 그것은 바로 무지의 힘이다. 권력이 작동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이런 시설말고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한 번 발화되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말이다. 차별의 말들... 상처주는 말들.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은 정말 모르는 힘을 구사하는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그들에게는 모르는 게 힘일 수 있지만, 이는 약자들에게는 독이 되고 칼이 된다. 그들의 마음에 몸에 상처를 낸다. 그러니 알아야 한다. 불편해져야 한다. 알아서 불편해지면, 고치게 된다. 고치도록 한다.
손상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또 말로 인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가 더 행복해진다.
이 책 제목대로 '이제 그런 말은 쓰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겠다. 먼저 '그런 말'이 어떤 말인지 알아야겠다. '그런 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힘을 알게 모르게 발휘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런 말들' 모르고 넘어가서는 안 되겠단 생각을 한다. 알아서 고치는 불편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지가 힘이 되지 않게... 아는 것이 힘이 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