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는 인물과 인물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들이 보여주는 삶은 우리네 삶이다.


  시에는 인물과 인물이 등장하더라도 소설과 다르다. 이야기가 압축되어 있다.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소설이든 시든 삶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박남준의 이번 시집 2부에서 4부까지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삶들이 들어 있다.


  시인 자신의 삶이기도 하지만, 그 삶은 바로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는 내밀한 자기 고백이기도 하지만, 사회 속 우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시집에 실린 지리산에 관한 시들을 보면, 참 짠하다. 환경영향평가라는 항목이 유명무실해진 지금, 환경부가 환경파괴부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을 이 시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비록 최근에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문제로 환경영향평가가 무용지물임을 알게 되었지만, 설악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이미 지리산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지리산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무심할 수 없었던 시인. 이 시집에서 '지리산이 당신에게, 지리산은 지리산의 자리에서 노래하네'라는 시를 통해 시인의 마음을 만날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어쩌면 높고 크고 강한 것들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낮은, 작은, 약한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을지 모른다.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라는 말, 안빈낙도라는 말이 멀리 존재하는 이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낮은 곳으로, 작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 역시 시인이다. 아니 우리들이어야 한다. 큰 산보다는 작은 산, 큰 나무보다는 작은 나무가 되고 싶다는 시인처럼.(시 '작은 나무' 84쪽)


사람이 가장 낮은 곳을 볼 수 있는 자세... 바로 '절'이다. 자신을 한 없이 낮추는 일. 이는 다른 존재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을 낯춤으로써 오히려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자세.. 절.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남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남과 함께 하는 일. 시인의 시는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니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자세는 무엇일지 생각하게 한다.


자고로 성인들이 어떤 자세로 사람들을 대했는지, 이 시에 나오는 다른 시편들을 읽어보면 이 시에 담긴 시인의 마음을 더 잘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푸른 바다가 들어와 머물기도 했지

발목을 빠져나간 늙은 양말이 눈에 밟히며

애써 이룬 수평을 흔들었다

젊고 뻔뻔한 후회가 스치며 혀를 깨물게도 했네

여기까지는 얼마나 흘러왔는가

지문을 찍듯 엎드려

낮고 겸손한 바닥을 몸에 새기는 것만이

절은 아닐 것이다

절은 할수록 절로 늘어

뼈마디마다 불꽃을 피우고

육탈 같은 다비가 일어나기도 한다


꽃잎의 주소를 따라가면 환해지고는 했지

강가에 나가 꽃배를 띄웠다

일상이 간절해야지

점점 작고 가벼워져

꽃배를 타고 건너가야지


박남준, 어린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걷는 사람. 2022년 1판 6쇄.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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