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세트 - 전4권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김홍모 외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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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헌법 전문에 나오는 민주화 운동은 4.19다. 아직 5.18과 6월 민주화 운동은 아직 헌법 전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4.3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5.18에 대해서는 여전히 악의적 중상이 횡행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니, 지금 어느 정도 민주화를 이룬 시점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헬기 사격에 관한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에서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을 만화로 기획하고 출판했다. 민주화 운동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좀더 다가가기 쉬운 방법은 없을까? 그런 고민으로 시작된 작업이 꼬박 2년이 걸렸습니다. 그저 만화라는 양식만 차용한 것이 아니라, 만화작가들의 시선으로 본 민주화운동이야기입니다'(4쪽)라고 책을 낸 취지를 말하고 있다.

 

4명의 만화가가 참여했는데... 김홍모 작가는 제주 4.3을, 윤태호 작가는 4.19를, 마영신 작가는 5.18을, 유승하 작가는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참여 했다.

 

  제목을 보면 제주 4.3은 '빗창'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제주 해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일제시대에 해녀투쟁과 해방후 4.3을 연결지어 표현했다. '빗창'은 해녀들이 전복을 딸 때 쓰는 도구라고 한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억압받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슬프게 전개되고 있다.

 

  이 만화를 보면 친일파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남북 분단으로 인한 이념의 대립이 무고한 사람들을 옭아매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가 흘렸던 피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사일구'라고 숫자가 아닌 한글로 제목을 달고 있다. 현재와 과거를 엮어서 4.19가 일어났던 시대, 그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과 지켜본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5.18은 제목에서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아무리 얘기해도'라는 제목이다. 현재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어쩌면 젊은 세대들이 매체의 영향으로 잘못된 관점을 지니게 된 경우가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얘기해도 잘못된 관점을 지니고 있으면 바꾸기가 힘들다. 확증편향이라고 자신에게 맞는 정보만을 찾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증편향을 공고하게 하는 매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지금 환경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더더욱 이야기해야 한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 '1987 그날'이라는 제목. 박종철과 이한열이 등장한다. 만화는 1986년부터 시작한다. 상계동 철거민들과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촛불시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대통령을 평화적으로 탄핵하여 정권교체를 할 정도로 민주주의가 성숙하게 된 과정에는 4.3으로부터 1987년 민주화운동까지 수많은 피들이 흘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화라는 매체가 흥미를 유발하고 읽기를 수월하게 한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또 그림이라는 매체를 통한 전달이 글로만 전달할 때보다 접근하기 편할 때도 있다.

 

읽다라는 표현과 보다라는 표현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매체를 이용하여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어서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이것보다도 읽다(보다)보면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을 느낄 수도 있는 작품들이다.

 

자칫 잊기 쉬운 역사. 그 역사가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만화로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알려주는 이 작업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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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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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뇌졸중에 걸린다면? 생각할 수가 없다. 뇌졸중에 걸리면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뇌졸중에 걸린 사람이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그건 단지 그 사람이 표현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 책을 보니 확실히 알겠다. 뇌졸중으로 표현을 하지 못하더라도 생각을 하고 느낌을 계속 지니고 있다는 것을.

 

뇌학자인 질 테일러가 어느날 뇌졸중에 걸렸다. 자신의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과정을 느끼면서 뇌졸중이 왔음을 알게 된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연락을 해야 하는데 뇌기능이 상실되어 몸을 쉽게 움직일 수가 없다.

 

뇌혈관이 터졌는데 언어를 담당하는 좌뇌 쪽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기억과 언어에 문제가 생긴다. 물론 행동에도 문제가 생기는데... 연락을 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기억해야 하는데 잘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전화를 걸었어도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다행히 연락이 되고 지인이 찾아와 병원에 가게 된다.

 

뇌수술을 해야 한단다. 두개골을 절개하는 일. 잘못될지도 모르지만 그냥 놓아두었을 때 또다시 뇌졸중이 올 수도 있고 그때는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 결국 수술하기로 한다. 그리고 수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좌뇌를 쓸 수 없을 때 우뇌가 작동함을, 그리고 우뇌를 통해 평안함을 경험하게 된다. 언어로 세상을 인지하는 것에서 그림으로 세상을 인지하는 방법도 알게 되고. 자폐증을 앓던 템플 그랜딘이 그림으로 생각한다고 하던데, 그것이 우뇌를 이용한 생각법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평온을 유지하는 상태. 이를 열반에 든 상태나 몰아의 경지에 이르른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좌뇌가 활발히 활동할 때는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좌뇌는 언어를 중심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다시 과거 자신의 모습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평온한 상태를 굳이 다른 상태로 옮길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질 테일러는 자신의 좌뇌를 살리기로 한다.

 

단계적으로 천천히 할 수 있는 만큼 노력을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과거의 자신을 살리게 된다. 이런 과정이 결코 짧지 않다. 8년이란 시간을 통해서 한 단계, 한 단계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얻게 된 성과인 것이다.

 

이렇게 뇌과학자의 뇌졸중 경험기를 통해서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됐다. 우선 회복하기 위해서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 뇌가 손상되었을 때 회복하기 위해서는 수면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또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들도 표현만 못할 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 따라서 이들을 대할 때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지녀서는 안 되고 잠시 아픈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것. 부정적인 에너지를 지니고 이들을 만나지 말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지니고 만나야 한다는 것.

 

여기에 우리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구성되어 있어 얼핏 두 명의 인간이 한 뇌에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 이 두 뇌가 뇌량을 통해 활발하게 교류하고 협력하고 있으니,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는데 이런 뇌의 기능을 알면 많이 도움이 된다는 것.

 

뇌졸중. 어느 순간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이지만 인간의 뇌는 가소성이 있다는 것. 결코 불가역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뇌과학자가 자신이 경험한 뇌졸중에 대해 쓴 책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가 있다.

 

우리 인간이 우주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질 테일러라는 뇌과학자의 경험기를 통해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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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에서 주목할 주제는 두 가지다. 두 가지지만 하나로 연결이 될 수 있다. 원인과 결과라고 할 수도 있고, 함께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기후위기와 코로나19사태다. 기후위기로 인해 생태계에 교란이 생기고,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코로나19라는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다. 결국 인간이 초래한 위기라고 할 수 있는데...

 

  기후위기에 대해서 대응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청소년들 중에 등교 거부를 하면서 기후위기 문제에 대처하라고 시위하는 사람들도 있고, 기성세대들 가운데서도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느끼고 행동하는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기후위기가 코로나19라든가 또는 대홍수, 산불, 지진, 가뭄 등등으로 우리에게 이미 다가왔는데도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후위기는 없다는 식으로 막 나가는 정치인도 있고, 먼 미래에나 일어날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후위기가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임에도 그것을 자꾸만 부정하면 이번 코로나19보다도 더 심각한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데...

 

이번 호 표지가 마음을 울린다. 이미 우리는 지구를 생명체에 비유하여 가이아라고도 하는데, 이번 호 표지에 있는 문구는 '기후야 그만 변해 우리가 변할게'다. 그렇다. 다른 존재 탓을 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우리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변해야 한다.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진 기후가 우리에게 더 이상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고 항의를 한다. 그 항의를 더이상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올해 그 항의의 결과를 톡톡히 코로나19를 통해서 겪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코로나19는 단속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앞으로의 세상은 지금과는 많이 다르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교육부터 시작하여 생활하는 방식까지 확 바꿔놓은 것이 코로나19인데... 이번 호에서 교육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이야기하고,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짚어주고 있다.

 

그렇다. 온라인 학습 환경을 구축한다고 해서 성공적인 교육이 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교육이 무엇인가, 왜 학교가 필요했는가라는 질문부터 해야 한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 또는 교육의 본질, 여기에 사람의 몸이 지닌 특성이나 배움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온라인 교육 환경이 갖추어졌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이번 호에서 '관계와 공간이 변화한 상황에서 학습시간과 학습내용을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는(김성우, 온라인 학습과 새로운 교육의 상상력) 문제제기는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문제다.

 

김성우는 이 글에서 이렇게 제안하고 있다.

 

'어떻게 온라인 교육으로 기존의 교육을 지속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삶의 질서와 기술적 토대가 열어젖히는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데서 시작한다.

  그렇기에 '온라인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나누어줄 것인가'를 넘어 변화하는 삶의 지형 속에서 교육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로 발전해야 한다. '온라인 교수학습'도 중요하지만 '일상의 재구조화 속에서 교육의 본질과 과정을 재구조화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대체제'가 아니라, 기존의 교육을 급진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도약대이다. (100쪽)

 

지금 등교개학을 했다. 어떤 학교는 학생들이 접촉을 막는다고 쉬는시간도 없앴다고 한다. 9시부터 1시까지 4시간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한다. 이게 과연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일까? 이렇게까지 하면서 등교개학을 해야 하나?

 

마찬가지로 온라인 수업도 오프라인 수업의 형태를 그대로 가져와 하고 있다. 그러니 이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을 해야할지 교육의 근본, 학교의 존재의미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한다.

 

민들레 129호를 읽으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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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거품 토피아 단편선 2
김동식 외 지음 / 요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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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디스토피아를 주제로 한 소설 모음집이다. 우리가 바라지 않는 세상을 그리는 이유는 그런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게 하고, 그런 세상이 도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상상을 통해서나마 끔찍한 세상을 경험하는 것, 인간이 지닌 유토피아적 요소이기도 하고, 디스토피아적 요소이기도 하다. 세상에 행복만으로 살아가기도 짧은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이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디스토피아를 생각해내고 상상한다는 것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결국 디스토피아를 상상한다는 것은 미래를 상상한다는 얘기하고 통한다. 지금 세상에 어느 정도는 만족하고 있으므로 그 세상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작가들이 그리고 있는 디스토피아는 어떤 세상일까?

 

우선 조상들이 죽지 않고 존재하는 세상.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고, 미래까지도 지배하는 세상은 디스토피아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만 한다. 만약 그것에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까? 전혜진이 쓴 '언인스톨'은 그런 세상을 다루고 있다. 나를 옥죄고 있는 조상들... 그들의 취향대로 살아야 하는 후손들. 그건 후손들의 자율성을 빼앗는 것이다. 자율성을 빼앗긴 존재, 행복할까? 그 세계가 바로 디스토피아다.

 

김창규의 '벗'은 더 끔찍하다. 철저한 계급사회도 끔찍하지만 자신과 똑 같은 존재를 발견하는 것 역시 끔찍하다. 그것도 세상을 정복하는 존재라니. 나를 조종하는 존재, 인간이 무기가 되어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명령에 따르기만 하는 존재로 전락한, 기계가 되어버린 세상은 상상하기도 싫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런 세상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이것과 유사하지는 않지만 지금 자동차들에 있는 내비게이션을 생각해 보라. 자신이 판단하지 않고 그것에 맡기지 않는가. 이것이 점점 확장되면 나란 존재는 다른 존재에 구속당해 자율권을 박탈당하고 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정도경의 '너의 유토피아'는 파괴된 세상을 보여준다. 인간이 없는 세상. 인간이 창조한 자동차가 인간을 그리워하는, 아시모프가 말한 로봇의 3대 원칙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없는 기계가 판치는 세상은 공포스럽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인간의 형상을 한 로봇을 자신에게 태우고 함께 하는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김동식의 '두 행성의 구조 신호' 역시 반전이 있다. 궤멸한 두 행성을 구조하러 간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기록과 씨앗(정자, 난자 포함)들이다. 노아의 방주처럼 이들이 살아갈 행성을 마련해 주는데... 기록을 살펴보면 이들은 일부러 공멸을 택했다는 것. 미래의 후손들을 살리기 위해 현재 자신들의 죽음을 담보로 한 세상이라니...

 

해도연의 '텅 빈 거품'은 지구 멸망을 아는 사람이 나온다. 이 멸망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두고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어떤 길이든 디스토피아임에는 틀림없다. 자신들의 행성이 사라진다는 것. 미래를 명확히 알고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 이것 역시 디스토피아다.

 

결국 이 소설에서 그려진 것은 멸망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만 한순간에 인간을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디스토피아 소설은 소설을 통해서 그런 세상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그런 세상을 만들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것이 우리가 디스토피아 소설을 읽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디스토피아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에게 행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흥미로운 주제로 다양한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보여준 작가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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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웃음의 나라 - 문화인류학자의 북한 이야기
정병호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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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쳇바퀴 돌듯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남북 관계다. 잘 굴러가서 많이 진척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제자리다. 그냥 열심히 움직이기만 했다. 결과는 또 제자리. 다람쥐가 돌다 돌다 지쳐 나가 떨어지면 그나마 움직임도 없다.

 

그런데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것은 한쪽만이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양쪽의 행동이 맞아떨어지지 않았을 때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한다. 반대로 양쪽이 맞아떨어지면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거친 역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배를 노젓는 사공들처럼, 그렇게 협동하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진전이 있다. 이게 남북관계다.

 

양쪽이 맞지 않으면 어떤 일도 성사되지 않고, 양쪽이 맞아떨어지면 무언가 얻는 것이 있는 관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을 한다는 문제를 가지고도 이런 일이 반복된다. 그래서 남북관계는 눈에 보이는 진척을 거두기가 힘들다.

 

눈에 확 띄는 성과는 없을지라도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밑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북한과 사이가 확 좋아지는 것처럼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지만, 그 다음부터는 또 지지부진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단절이 되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지속적으로 무언가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다. 비록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는 못하지만.

 

이 책은 문화인류학자가 북한을 원조하는 일을 하면서 그동안 만나왔던 북한 사람들, 북한 체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인 면을 떠나서 문화적인 면에서 북한을 바라보려 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방적인 관점에서 서술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문화적 다양성의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려 하고 있다.

 

그들도 분단이 된 지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니, 그 이유가 분명 있을테고, 그냥 현상만 보고서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이라고 많은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어갔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놀이와 웃음이 있다는 것.

 

물질적 궁핍을 정신적인 노력으로 승화시키려는 체제의 모습이라는 것을 여러 면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북한 사회가 지니고 있는 폐쇄성, 그럼에도 그 폐쇄성 속에서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김정일은 경제위기를 선군사상으로 돌파하려 했지만, 그 후계자인 김정은은 경제 발전으로 돌파하려 하고 있다는 것, 그들의 세습체제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그 사회에서는 그것을 장자계승, 또 백두혈통이라는 것으로 의식화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백두혈통과 관련지어 항일빨치산 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후손을 대우하면서 그들을 자신들의 지지자로 만드는 것. 우리가 우려했던 것처럼 원조물자를 군대에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보급체계를 만들어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려 하고 있다는 것.

 

국민을 동원하는 체제이지만, 그 속에서 국민들이 개인적인 활동들을 한다는 것. 이것이 최근에 북한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장마당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집단주의에 개인주의가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것. 그런 시류를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부정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이를 최고지도자의 모습이나 말을 통해서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다는 것 등등.

 

겉으로 드러난 북한의 모습과 그들이 원하는 것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 협상 과정에서 돌발상황들이 많이 벌어졌는데, 원조를 받는 그들의 자세를 이해하면서 실질적인 원조를 할 수 있게 된 과정들...

 

그럼에도 굶주림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정권에 대한 비판. 도와주려고 해도 남한이나 북한이나 관료주의로 똘똘 뭉쳐 있는 관료집단들, 국제기구들의 관료주의들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 경우도 이야기하고 있어서 북한에 관해서 다양한 면들을 알게 해주고 있다.

 

북한은 여전히 고립되어 있다. 이는 그들이 아직도 고난의 나라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는 것. 그 웃음이 행복에서 나오지 않았더라도 정신으로라도 이 고난을 극복하려고 한다는 것. 그 점을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에서부터 시작하면 남북관계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를 맴돌지 않고 역류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남북관계는 좋아지고, 그것이 우리를 평화롭게 살도록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와는 많이 달라진 북한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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