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거품 토피아 단편선 2
김동식 외 지음 / 요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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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디스토피아를 주제로 한 소설 모음집이다. 우리가 바라지 않는 세상을 그리는 이유는 그런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게 하고, 그런 세상이 도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상상을 통해서나마 끔찍한 세상을 경험하는 것, 인간이 지닌 유토피아적 요소이기도 하고, 디스토피아적 요소이기도 하다. 세상에 행복만으로 살아가기도 짧은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이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디스토피아를 생각해내고 상상한다는 것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결국 디스토피아를 상상한다는 것은 미래를 상상한다는 얘기하고 통한다. 지금 세상에 어느 정도는 만족하고 있으므로 그 세상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작가들이 그리고 있는 디스토피아는 어떤 세상일까?

 

우선 조상들이 죽지 않고 존재하는 세상.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고, 미래까지도 지배하는 세상은 디스토피아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만 한다. 만약 그것에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까? 전혜진이 쓴 '언인스톨'은 그런 세상을 다루고 있다. 나를 옥죄고 있는 조상들... 그들의 취향대로 살아야 하는 후손들. 그건 후손들의 자율성을 빼앗는 것이다. 자율성을 빼앗긴 존재, 행복할까? 그 세계가 바로 디스토피아다.

 

김창규의 '벗'은 더 끔찍하다. 철저한 계급사회도 끔찍하지만 자신과 똑 같은 존재를 발견하는 것 역시 끔찍하다. 그것도 세상을 정복하는 존재라니. 나를 조종하는 존재, 인간이 무기가 되어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명령에 따르기만 하는 존재로 전락한, 기계가 되어버린 세상은 상상하기도 싫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런 세상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이것과 유사하지는 않지만 지금 자동차들에 있는 내비게이션을 생각해 보라. 자신이 판단하지 않고 그것에 맡기지 않는가. 이것이 점점 확장되면 나란 존재는 다른 존재에 구속당해 자율권을 박탈당하고 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정도경의 '너의 유토피아'는 파괴된 세상을 보여준다. 인간이 없는 세상. 인간이 창조한 자동차가 인간을 그리워하는, 아시모프가 말한 로봇의 3대 원칙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없는 기계가 판치는 세상은 공포스럽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인간의 형상을 한 로봇을 자신에게 태우고 함께 하는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김동식의 '두 행성의 구조 신호' 역시 반전이 있다. 궤멸한 두 행성을 구조하러 간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기록과 씨앗(정자, 난자 포함)들이다. 노아의 방주처럼 이들이 살아갈 행성을 마련해 주는데... 기록을 살펴보면 이들은 일부러 공멸을 택했다는 것. 미래의 후손들을 살리기 위해 현재 자신들의 죽음을 담보로 한 세상이라니...

 

해도연의 '텅 빈 거품'은 지구 멸망을 아는 사람이 나온다. 이 멸망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두고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어떤 길이든 디스토피아임에는 틀림없다. 자신들의 행성이 사라진다는 것. 미래를 명확히 알고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 이것 역시 디스토피아다.

 

결국 이 소설에서 그려진 것은 멸망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만 한순간에 인간을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디스토피아 소설은 소설을 통해서 그런 세상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그런 세상을 만들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것이 우리가 디스토피아 소설을 읽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디스토피아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에게 행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흥미로운 주제로 다양한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보여준 작가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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