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에 출판사 직원인 은숙이 나온다. 광주를 겪은, 그러나 민주화가 되지 않은 시대, 출판 검열의 시대. 검열관에게 뺨을 맞은 은숙.


  엄혹한 시대다. 수많은 죽음을 겪고도 다시 죽음과 같은 검열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시대. 소설 속 이야기지만, 그런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어느 날 시집을 설명하는 글에서 시인 김혜순이 그런 일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뭐 망설일 것 있나? 읽어봐야지. [소년이 온다]가 소설로 쓰였다면, 시는 그런 사건을 좀더 압축적으로, 감정적으로 전달해줄 테니.


  뺨 일곱 대를 맞았다고 한다. 한 대에 시 한 편. 시인은 그 분노를 시로 쏟아내었다. 하지만 밝힐 수는 없는 일.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도 없는 일. 시 자체가 직설이 아니라 세계를 자신의 감정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니.


차마 일곱 번째 시는 발표하지 못했다고, 어디엔가 두었다가 결국 찾지 못했다고 하는데... 


'경찰서에 따라가서 뺨을 일곱 대 맞은 적도 있었다. 맞으면서 숫자를 세었다. 하숙집에 엎드려 뺨 한 대에 시 한 편씩 출판사를 결근하고 썼다. 그 시들을 몇 년 묵혔다가 이 시집에 실었다. 마지막으로 쓴 일곱번째 시는 걸릴 것 같아 애당초 넣지 않았는데 지금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시집엔 여섯 편만 들어 있다.' (2017년 복간본, 시인의 말에서. 아마 1988년 초판본에는 이런 말도 싣지 못했으리라)


이런 사건을 '그곳'이란 제목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곳은 어떤 곳인가?


'세계 제일의 창작소' (그곳 1)이고 '스토리와 테마 들이 만들어져 떨어지는'(그곳 1) 곳이 바로 그곳이다.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사실을 만들 수 있으니까. 만들어진 사실은 진실처럼 유통이 된다. 그런 시대를 거쳐 지금은 최소한 그러한 거짓들이 사실로 둔갑하는 세상은 아닐 거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는데... 


'스토리와 테마 들이 만들어지는, 세계 제일의 창작소'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버젓이 사실을 왜곡하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으니... 그곳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다고... 그곳에서 창작되는 많은 스토리들이 우리 삶을 옥죄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곳의 존재를 안다. 그곳이 실제했음을, 그곳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스토리와 테마들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안다. 그곳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 속에서나 만나는 '그곳'이 되어야 한다. 


복간된 김혜순의 시집 [어느 별의 지옥] 맨 앞 부분에 실린 '그곳' 연작시 여섯 편. 그러한 그곳이 있는 곳이 지옥이다. 지옥은 꼭 죽어서만 가지 않는다. 하여 우리는 시집 제목인 '어느 별의 지옥'을 찾아 없애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집 제목이 된 시를 읽어 본다. '그곳'과는 다른 의미겠지만.


  어느 별의 지옥


무덤은 여기

가슴에 매달린 두 개의 봉분

이 아래 몇 세기 전의 사람들이 아직 묻혀

숨 들이켜고 있는 곳

바다에 달 뜨고 달 지듯

두 개의 무덤 아래

죽은 자들이 모여

망망대해를 펼치고 오므리는

달을 올리고 끌어당기는

여자의 깊은 몸 구중궁궐

또 한세상

몇 세기 전의 어둠이 아직도

피 흘리며 갇혀 있다가

초승달 떠오를 때

기지개 켜는 곳

뱀과 뱀이 입 맞추고

초록 풀 나무 덩굴이 수천 번

되살아나고 뒈지는 곳

어느 별의 지옥은 여기 


김혜순, 어느 별의 지옥, 문학과지성사. 2025년. 초판 2쇄.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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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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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편의 소설이 실렸다. 다른 매체에 발표되었던 작품들. 한 자리에 모인다. 한 작가가 쓴 작품이라도 다 다른 내용일 수밖에 없다. 그때그때 작가는 다른 주제를 가지고, 다른 인물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책으로 묶이면 무언가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같은 작가니까, 그 작가가 추구하는 공통적인 무언가가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가 그러한 공통점을 발견하면 역시 그렇지 하지만, 공통점을 찾지 못하면 뭐야? 하는 마음을 먹는다. 작품 한 편이 온전한 세계니까, 그냥 그 세계를 감상하면 되는데도...


이 작품집에서도 공통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먼저 생긴다. 김기태라는 작가는 어떤 점을 주로 소설로 쓰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고. 읽다가 포기한다. 뭐, 꼭 공통점을 찾아야 해. 그냥 작가가 그때그때 우리에게 보여주는 세계를 같이 거닐면 안돼 하는 마음을 지닌다.


그냥 읽는다. 한편 한편을 독립적으로. 연결지을 생각은 버린 채. 그렇게 읽다가 어떤 작품이 내 맘에 가장 들었지, 우리 현실하고 어떻게 연결이 될까 하는 생각이 또 든다. 참, 가지가지한다. 그냥 읽고 받아들이면 될 것을.


작품에 우위를 매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위가 아니라 내 맘에 얼마나 드냐를 생각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래, 같은 작가의 소설 중에서도 내 맘에 쏙 드는 것이 있고,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는 소설이 있을 수도 있지 뭐. 이건 순전히 내 주관적인 감상일 뿐이니까. 그렇게 마음 먹는다.


연예인이 나오는 소설이 두 편이다. '세상 모든 바다''로나, 우리의 별'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연예인이 아니다. 김기태는 특출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그 주인공을 바라보는 보통 사람을 등장시킨다. 우린 이런 보통사람들에 가까울 테니까.


이 두 작품을 읽으며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생각한다. 연예인을 두고 벌어지는 수많은 설왕설래들. 그러다 그렇게 설왕설래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생각한다. 연예인을 비판하든 두둔하든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지니고 산다. 연예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각을 지니고 산다. 그들의 신념이나 행동이 윤리나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굳이 뭐라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무어라 한다. 이게 문제다.


그런 행태가 두 소설에 나타나 있는데, 그럼에도 연에인을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의 처지에서 소설이 쓰였기에 무언가 따뜻한 느낌이 든다. 악성 댓글로 인해 피곤해지는 마음이 이 소설들을 통해서는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다른 세계를 이해할 마음이 생긴다.


평범한 삶을 평범하게 그려내고 있고, 그런 평범한 삶 속에서 희노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덤덤하게 펼쳐진다.


'롤링 선더 러브, 전조등, 태엽은 12와 1/2바퀴, 무겁고 높은, 팍스 아토미카' 등이 그렇다. 교육 문제를 다루고 있는 '보편 교양' 역시 마지막에 가면 평범한 학생들이 등장해서 그들의 삶을 우리가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평범함이 바로 우리 삶이다. 이 평범함은 멀리서 봤을 때 평범함이지만, 각 개인에게는 비범함이다. 자신에게는 하나뿐인 삶인 것이다. 그러므로 평범한 삶은 곧 비범한 삶이 된다. 우리 모두가 존중해야 할 삶이 된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서 그 점을 실감한다. 중심에 들지 못하는 삶. 그러나 자신만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두 사람. 그들이 '인터내셔널가'를 듣고 알게 되는 과정. 그리고 '기립하시오. 당신도!'라는 말을 서로에게 주고받는 과정.


이 둘이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어떻게 보면 팍팍한 현실도 삶을 뭉뚱그려 놓고 보면 평범함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비범하지만 평범한 삶. 그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김기태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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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3-28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관계, 가족, 계급, 교육 등을 상상해 본 책이었습니다.

kinye91 2025-03-28 09:39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시대예보: 호명사회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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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 핵개인의 시대]를 읽고 많은 내용에 공감했다. 그렇다. 이제는 집단의 일원이 아닌 개인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집단이나 공동체의 이름 속에 개인이 사라지는 시대는 아니다. 개인이 우뚝 선 시대, 핵개인의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핵개인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핵개인이라는 말이 그냥 너는 너대로만 살라는 말일까? 자립을 이야기하고, 독립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홀로라는 말과는 다르다. 자립이나 독립에는 연대, 함께함이 포함되어 있다. 고립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개인은 또다른 핵개인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핵개인이 핵개인을 만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이름을 불러야 한다. 나의 이름을 알리고, 상대의 이름을 알고 서로가 서로를 불러야 한다. 그러면 서로 함께할 수 있다.


이런 사회가 '호명사회'다. 이름을 부르는 사회라는 말은 상대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함께한다는 의미다. 즉 독립된 개인들이 모여 연대를 하고 함께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함께하는 모임은 하나일 필요가 없다. 직장도 이제는 하나에서 여럿으로 바뀌는 시대가 되었으니, 호명사회에서 모임은 여럿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여러 모임을 기웃거린다는 말은 아니다. 모임을 갖는다는 의미는 자신이 이미 그 모임을 할 정도로 숙련되었다는 말이다. 


즉 핵개인의 시대라고 해서 숙련된 기술, 또는 저만의 장점을 지니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핵개인의 시대에는 적어도 이름을 알리고 불리기 위해서는 저만의 장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사회와 산업의 혁신 속도가 빨라질수록 개인의 커리어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핵심은 '축적의 시간'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 행위를 팔기보다 의미를 팔고, 자신의 진정성을 제공'(157쪽)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조예와 취향이 될 것이다.'(157쪽)고 하고 있다.


남다른 조예, 자기만의 취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그런 사람을 알아본다.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함께한다. 대등하게. 그런 사회가 호명사회다.


이런 호명사회에 살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이름을 가져야 한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 아니다. 남들이 자신을 인정하고 부르는 이름이다.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지닌 덕목이 '투명성과 동류를 모으고 선의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힘'이라고 한다.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 이것을 상대에게 투영하면 상대 역시 투명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가 하는 일이 가감없이 내게 전달될 때 서로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면, 그 관계는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핵개인의 시대는 당연히 호명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개인과 개인이 만나 우리를 이루는데, 그 우리는 굳게 닫혀 있는 '우리'가 아니라 언제든지 축소하고 확장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 즉 열려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호명사회라는 말, 듣기에도 좋고 머리에도 쏙쏙 들어오는 말이다. 열린 사회라는 말이 될 테니까. 또한 호명사회라는 말에서 요즘 공유 주거공간을 생각하기도 한다. 따로 하지만 함께하는 공간. 


그런데 읽으면서 명쾌한 이야기에 동감이 되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축적해야 하는 핵개인, 자신의 이름을 지녀야 하는 핵개인이 될 수 있는 사회 환경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책에서 논의하는 것은 개인이 어떻게 해야한다가 주를 이루는데, 개인은 바뀐 사회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지 않나. 오히려 이렇게 애쓰는 개인들이 나가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사회 환경, 제도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개인의 노력이 모여 사회를 바꿀 수도 있지만, 소수의 개인이 성공한다고 다수가 성공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니 다수가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의 의무이고,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 해야할 의무 아닐까? 


개인에서 사회로 시대의 흐름을 이야기했으니, 그렇다면 다음 책에서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 정치적 노력을 이야기하고, 함께 논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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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3-27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로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그곳에서 늘 바뀐다고 느껴요.
꽃이름 벌레이름 나무이름 새이름
이 이름 하나를 마음에 놓으며
서로 만날 수 있고요.

kinye91 2025-03-27 09:2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이름을 부르면 서로의 만남이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 - 사로잡힌 영혼들의 이야기
비비언 고닉 지음, 성원 옮김 / 오월의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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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미국에 공산당이 있었다고?"


매카시즘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미국에도 공산당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매카시즘이 바로 미국 사회에 속해 있는 공산주의자들과 그 동조자들을 미국 사회에서 축출하고자 벌인 사상투쟁이었으니.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미국에 공산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알 필요도 없다. 사실 공산당은 존재한다고 해도 미미한 영향력만 행사할 뿐이기 때문에... 사회당조차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미국에서 공산당이라니...


그럼에도 미국에 공산당이 있었고, 그들이 힘을 발휘하던 때도 있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공산당이 거의 소멸되다시피 한 사건은 매카시즘이 아니라 흐루쇼프가 폭록한 스탈린 시대의 참상들이라고 한다. (12쪽)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미국에서 공산당 활동을 했던 공산주의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지금 그들은 또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제목이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다.  작은 제목으로는 '사로잡힌 영혼들의 이야기'라고 되어 있고. 즉 한때 공산주의 사상에 빠져 활동을 열심히 했던, 그것도 미국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물론 과거형이다. 이 책은 1970년대에 쓰여졌다고 한다. 최근에 다시 발간되기는 했지만...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공산주의는 사라졌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공산주의 활동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의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공산주의 활동을 하다가 반공주의자가 된 사람도 있고, 자본가의 삶을 사는 사람도, 여전히 공산주의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다양한 분포를 보이지만 확실한 것은 미국에서 공산주의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사상이라는 점. 그렇기 때문에 그때 활동했던 기억들을 모두 다르게 기억하고, 그런 기억들을 모아 책으로 펴낸 이 책은 현재에 유용하기보다는 과거를 회상하는데 도움이 된다.


과거 회상에 도움이 된다고? 단지, 그것때문에 책을 쓸까? 아니다. 과거 회상에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즉 한때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사람들, 당이라는 조직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작은 차이를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차이로 알고 서로를 배척하던 사람들. 그런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들을 읽으면 지금-여기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다. 페미니즘 활동을 하던 때에, 페미니즘 운동 진영에서 벌어진 차이들을 마치 적으로 여기는 듯한 모습들을 발견하면서 저자는 1930-1960년대의 공산주의자들을 생각한다. 그들이 걸어온 길에서 지금 걸어갈 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마치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의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 책이 먼저 나왔지만 읽는 순서는 상관이 없다.


소련이 붕괴된 다음에 소련에 속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한 책. 이 책에는 수많은 소련 사람들(물론 지금은 독립한 나라들 사람도 속한다. 한때는 소련인이었지만, 이제는 각자 자기 나라의 국민이 된 사람들. 이 사람들이 소련 때를 회상하고, 또 소련이 붕괴된 직후의 사회를 회상하고 있는데, 비비안 고닉이 쓴 이 책은 1970년대에 미국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미국 공산당 활동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다른 것은 몰라도 이들은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것. 여기에 개인과 조직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고 있으니, 과연 개인을 누르는 조직이 존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조직이 우선이고, 조직에 개인이 종속되면, 언젠가는 조직이 붕괴될 수밖에 없음을, 이 책에 나오는 미국 공산주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여전히 우리는 '공산주의'하면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으로 취급한다. 공산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 사회주의자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종북좌파라는 말로 뭉뚱그려 하나로 취급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것이 얼마나 편협한 사고인지 알 수 있게 되겠지만... 한 조직에 속한 개인들도 각자의 개성이 있음을, 자신들 나름대로의 삶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어떤 한 흐름 속에 개인들을 집어넣으려고만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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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는 한글 우리말글문화 총서 1
김슬옹 지음 / 마리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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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자랑스레 내놓을 수 있는 우리 문자. 한글. 


세계에서 만든 사람과 방법이 알려져 있는 문자, 한글.


하지만 한글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니 질문을 바꾸자. 우리는 한글을 얼마나 자랑스레 여기며 잘쓰고 있는가?


말로는 과학적이고 창의적이며 편리한 문자라고 하면서도 지금 우리나라 곳곳을 둘러보면 과연 우리가 한글을 잘쓰고 있는지 살펴보면 아니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길거리에 보이는 간판들은 외국어가 많으며 (외래어가 아니다. 외래어는 외국에서 들어온 말이지만 우리말이 된 말이니) 하다못해 공공기관 이름들까지도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니 말이다.


대표적으로 공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곳 몇군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통신은 KT가 되었으며 담배인삼공사는 KT&G가 되었고, 국민은행은 KB라고 하고, 한국방송공사는 KBS, 문화방송은 MBC라고 하는 형편이니, 무슨 한글 사랑이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이런 현실에서 한글의 소중함을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나라에서조차 한글을 외국어로 바꾸고 있는 형편이니 말이다. 국경일에서 제외됐다가 다시 국경일이 된 지도 몇 해 되지 않았고... 


하지만 그럼에도 한글은 우리 문자다. 우리들의 생각을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자다. 사라져서는 안될 문자이기도 하고.


이 책은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한글 관련 유적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글길부터 시작해서 한글박물관, 한글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의 유적 등등을 소개하고 있다.


참 많은 곳에 한글을 기념하는 유적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이토록 많은 한글 유산이 있었는데, 그냥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있으니, 어디서든 한글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한다. 그동안 그냥 지나쳤던 한글 유적들을 자세히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또 저자인 김슬옹이 이야기하듯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훈민정음을 제대로 읽고 배우는 과정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보편 교양을 가르친다는 중등교육에서 훈민정음 해례 언해본을 강독하는 과정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그래야 한글이 왜 좋은 문자인가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테니까.


훈민정음만이 아니라 한글의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한글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질 수 있을 테니까.


한글, 다시 한번 우리가 쓰고 있는 문자를 생각하고, 한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준 책이다.   


덧글


한글에 대한 역사와 정보를 알려주는 책인데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아마도 오타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144쪽에 '신숙주는 훈민정음 관련 모든 저술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라고 되어 있는데...

145쪽에 (성삼문은) '신숙주와 마찬가지로 <<운회>> 번역을 제외하고는 훈민정음 관련 저술에  모두 참여했다'라고 나온다. 

이 문장이 모호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신숙주도 <<운회>> 번역에 참여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성삼문만 빠진 것인지... 

차라리 문장 순서를 '<<운회>> 번역을 제외하고는 신숙주와 마찬가지로 훈민정음 저술에 모두 관여했다'라고 했으면 명확하지 않았을까.


여기에 더해 집현전 학사들이 훈민정음 관련된 작업을 요약하면서 147쪽에 성삼문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운회>>를 언문으로 번역'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명백한 실수다. 빼야 한다. 분명 성삼문은 <<운회>> 번역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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