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에 출판사 직원인 은숙이 나온다. 광주를 겪은, 그러나 민주화가 되지 않은 시대, 출판 검열의 시대. 검열관에게 뺨을 맞은 은숙.


  엄혹한 시대다. 수많은 죽음을 겪고도 다시 죽음과 같은 검열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시대. 소설 속 이야기지만, 그런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어느 날 시집을 설명하는 글에서 시인 김혜순이 그런 일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뭐 망설일 것 있나? 읽어봐야지. [소년이 온다]가 소설로 쓰였다면, 시는 그런 사건을 좀더 압축적으로, 감정적으로 전달해줄 테니.


  뺨 일곱 대를 맞았다고 한다. 한 대에 시 한 편. 시인은 그 분노를 시로 쏟아내었다. 하지만 밝힐 수는 없는 일.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도 없는 일. 시 자체가 직설이 아니라 세계를 자신의 감정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니.


차마 일곱 번째 시는 발표하지 못했다고, 어디엔가 두었다가 결국 찾지 못했다고 하는데... 


'경찰서에 따라가서 뺨을 일곱 대 맞은 적도 있었다. 맞으면서 숫자를 세었다. 하숙집에 엎드려 뺨 한 대에 시 한 편씩 출판사를 결근하고 썼다. 그 시들을 몇 년 묵혔다가 이 시집에 실었다. 마지막으로 쓴 일곱번째 시는 걸릴 것 같아 애당초 넣지 않았는데 지금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시집엔 여섯 편만 들어 있다.' (2017년 복간본, 시인의 말에서. 아마 1988년 초판본에는 이런 말도 싣지 못했으리라)


이런 사건을 '그곳'이란 제목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곳은 어떤 곳인가?


'세계 제일의 창작소' (그곳 1)이고 '스토리와 테마 들이 만들어져 떨어지는'(그곳 1) 곳이 바로 그곳이다.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사실을 만들 수 있으니까. 만들어진 사실은 진실처럼 유통이 된다. 그런 시대를 거쳐 지금은 최소한 그러한 거짓들이 사실로 둔갑하는 세상은 아닐 거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는데... 


'스토리와 테마 들이 만들어지는, 세계 제일의 창작소'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버젓이 사실을 왜곡하는 말들이 난무하고 있으니... 그곳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다고... 그곳에서 창작되는 많은 스토리들이 우리 삶을 옥죄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곳의 존재를 안다. 그곳이 실제했음을, 그곳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스토리와 테마들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안다. 그곳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 속에서나 만나는 '그곳'이 되어야 한다. 


복간된 김혜순의 시집 [어느 별의 지옥] 맨 앞 부분에 실린 '그곳' 연작시 여섯 편. 그러한 그곳이 있는 곳이 지옥이다. 지옥은 꼭 죽어서만 가지 않는다. 하여 우리는 시집 제목인 '어느 별의 지옥'을 찾아 없애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집 제목이 된 시를 읽어 본다. '그곳'과는 다른 의미겠지만.


  어느 별의 지옥


무덤은 여기

가슴에 매달린 두 개의 봉분

이 아래 몇 세기 전의 사람들이 아직 묻혀

숨 들이켜고 있는 곳

바다에 달 뜨고 달 지듯

두 개의 무덤 아래

죽은 자들이 모여

망망대해를 펼치고 오므리는

달을 올리고 끌어당기는

여자의 깊은 몸 구중궁궐

또 한세상

몇 세기 전의 어둠이 아직도

피 흘리며 갇혀 있다가

초승달 떠오를 때

기지개 켜는 곳

뱀과 뱀이 입 맞추고

초록 풀 나무 덩굴이 수천 번

되살아나고 뒈지는 곳

어느 별의 지옥은 여기 


김혜순, 어느 별의 지옥, 문학과지성사. 2025년. 초판 2쇄.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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