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당시 유령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는데 그 유령은 시대를 대변하는 유령이라고 할 수 있다면, 지금 유령은 나타나지 말아야 할 망령에 불과하다.


  망령의 출현. 그것은 바로 현실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말.


  도처에서 예전에 사라졌던 망령이 부활해서 실제 존재들을 억압하고 있는데...


  그런 망령이 나타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망령이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망령의 출몰, 아니, 망령이 우리를 옥죄고 있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헌책방에서 구입한 이 시집에서 우연히 망령을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망령을 철저하게 눌러놔야 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1989년 시집이니 꽤 오래 된 시집이지만, 그럼에도 이 시집에 실린 시 중에 '고인돌'은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하지 않나 싶다.


                      고인돌


               죽는 일이 제법 무섭기는 하지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보다

               세상 더 무서운 일은 없다


               죽음이나 두려움에 관한 한

               우리보다 몇 곱절 훤했던 옛 사람들

               한 번 죽은 사람은 아주 보내버리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고인돌을 세웠다


               누운 사람 양편에 받침돌을 세우고

               일어설 생각일랑 꿈에도 못하도록

               어마어마한 뚜껑돌을 덮어놓은 것이다


정진명, 머나먼 DMZ. 문학과비평사. 1989년. 97쪽.


그렇게 눌러놓았어야 하는데... 다시는 나오지 못하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망령이 출몰하고 있다.


아니 망령을 불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불러낸 망령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다'고 해야 한다.


그래서 생각한다.


망령은 망령이 있을 자리로 가야 한다. 망령이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망령을 제자리로 보내고, 다시 이곳으로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옛사람들이 '어마어마한 뚜껑돌을 덮어놓'았듯이. 그렇게.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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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 2003년 제3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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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소설을 읽기로 하다. 이름을 많이 들어서 언젠가는 한번 읽어봐야지 했던 작가. 이름만으로 흘려보낸 시일이 꽤 된다. 이제는 김연수 소설을 읽자. 그가 자꾸 언급되는 이유가 있겠지. 그런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소설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당연히 책을 골랐을 때는 제목이 된 소설이 실려 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집들은 대부분 그랬기 때문에... 최근에 시집들은 시집 제목을 수록된 시에서 따오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그 생각을 소설로 확장하지는 못했다.


이 소설집은 2002년에 나왔는데, 소설집도 굳이 수록된 소설에서 제목을 따오지 않아도 되는데... 단편 소설 9편이 실려 있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일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이거나 기껏해야 대학생 정도의 나이이고, 공간적 배경은 경상도 김천이라고 할 수 있다. 꼭 김천이 아니어도 경상도 어느 마을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특정한 공간에서 아이부터 대학생이 되기까지 겪은 일들이 이 소설집에 나오는 내용이라면, 이 소설들은 한편 한편이 독립적이지만 또한 과거 마을 삶에 관한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또 시대적 배경이 70년대에서 80년대를 거치고 있으니, 이 소설집이 나온 때로부터 20-30년 전 이야기라는 공통점, 지금으로 따지면 소설집이 나온 때가 20년 전이니, 과거의 과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지금 세대에게는 낯선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작가 김연수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래, 그때는 그랬지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소설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의 아픔도, 개인이 겪는 아픔도 소설 속에 드러나고 있는데, 설핏 작가의 개인적인 성장사도 소설 속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이 소설집에 있는 '뉴욕제과점'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 '뉴욕제과점'은 작가의 사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좋을 만큼 직접적으로 작가가 된 자신이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 다음은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내용이 주욱 연결되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70-80년대 우리나라 상황을 알 수 있는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은 과거에는 그랬지라고 넘길 수가 없다.


이 소설 속 상황은 지금도 진행형이니까. 우리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특정 지역을 배제하는, 그런 행태들. 그런 관념들. 여전하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주사파 운운하면서 그들과는 협치하지 않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상처에는 칼날의 생김새가 남아 있다.


상처를 보면 어떻게 상처를 입었는지를 알 수 있다. 상처를 낸 존재들의 모습이 상처 속에 오롯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상처는 기억이고, 과거를 잊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존재가 된다. 이 소설 역시 그렇다.


어린 시절의 기억.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라도 기억에 남아 현재를 살아가게 한다. 어쩌면 현재의 자신을 지탱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집에 실린 마지막 소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는 80년대 학원 폭력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지만, 과연 우리는 폭력을 극복한 사회에 살고 있나 되짚어 보게 한다.


당시에는 물리적인 폭력이 난무했지만, 지금은 물리적인 폭력은 많이 사그라지고 있다. 물론 학교폭력은 여전하기는 하지만, 교사들에 의해서 또 교사를 대리하는 반장이라는 권력에 의해서 자행되는 물리적 폭력은 사라졌다. 암암리에 일어나는 폭력은 있지만, 이처럼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폭력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게 폭력에 길들여졌던 과거가 오나전히 극복되기 위해서는 이 소설에처럼 다른 계기가 있어야 한다. 결코 그 폭력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마음 가짐.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노력. 


공공연한 폭력만이 아니라 은연중에 가해지는 폭력도 없애야 한다. 또 제도로 가해지는 폭력도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소설 속에서 가해지는 폭력 상황과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 지지 말고 자신만의 꽃을 피울 수 있으려면 폭력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폭력에 맞설 마음을 지니고,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김연수가 자신의 과거를 소설을 통해 불러낸 이유는 바로 과거를 미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과거를 통해 현재를 개선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또 과거와는 다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그렇게 소설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김연수가 불러낸 우리나라 70-80년대의 삶. 이제는 과거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이지만, 이 중에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들이 있으니... 김연수 소설을 통해서 또다른 삶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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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간에 영화 보기 2 - 외국 영화로 만나는 시와 시인들 문학 시간에 영화 보기 2
박일환 지음 / 한티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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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시인들을 다룬 1권에 이어 이번에는 외국 시인들을 다뤘다. 우리나라 시인도 잘 모르는데 외국 시인? 할 수도 있지만, 시를 즐기는데, 영화를 즐기는데 굳이 국적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또 외국 시인에 대해서 알면 훨씬 더 좋지 않은가.


영화도 보고 시도 읽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인데, 그런 기회를 책이 제공해 주고 있으니, 일석삼조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 시가 흐른다? 시가 영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쩌면 시를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적어도 그것이 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그리고 영화에 나온 시를 찾아보고 다시 읽으면 더 좋겠고.


많은 영화, 많은 시들이 나오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와 시가 이 책에도 나온다. 바로 '죽은 시인의 사회' 


소설과 영화는 알아도 시는 잘 생각 안하는 영화인데, 제목에 시인이라는 말이 들어갔으니 시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영화에는 시도 나오고, 또 시 수업에 관해서 나오니 말이다. 그래서 외국 영화와 시를 연결지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한 영화가 '위험한 아이들'이다. 시를 통해서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 영화. 이 영화에서는 딜런이 나온다고 한다. 밥 딜런. 가수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 아니던가.


그렇게 영화는 딜런으로 시작해서 시를 만나고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물론 교사도 변하고.


다음에 시와 관계 있는 영화는 '일 포스티노'다. 네루다에 관한 영화. 아니 네루다를 만난 우편배달부에 관한 영화.


시로 인해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 그렇게 시는 사람에게 다가와 그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그런 시를 영화를 통해서 만나게 된다. 우리 역시 영화 속 인물들처럼 시를 통해서 우리 인생을 다시 바라볼 수 있을 수도 있다.


여기에 새로운 느낌. 지브란이 쓴 '예언자'... 잠언집이라고만 생각했다. 시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시였다니...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읽힌 글이... 


영화와 시에 관한 책을 읽으며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또 시를 새롭게 보게도 된다. 그렇게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시를 새롭게 만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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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되셨습니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0
길상효 외 지음 / 비룡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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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이라고 한다. 짧은 소설이 열 편 실려 있다. 우리가 삶에서 한번쯤 생각해 봤던 일들이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작가가 다른 만큼 소설 속 세계도 다르다. 그런데 SF소설이라고 하지만, 이상하게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쿤'이라는 소설이 그렇다. 청소년기, 훌쩍 변해버린 모습. 낯선 모습에 당황하기도 하지만, 그런 변화만큼이나 변하지 않은 면이 있음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코쿤이라는 다른 장소에 갔다 오면 변해 있는데, 그만큼 청소년기의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지 않고 갑자기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갑자기 변한 자신의 모습, 친구들과의 낯선 관계. 그러나 아무리 변해도 지니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청소년들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변하고 싶은 마음과 변하지 않고 간직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교차하는 시기.


다른 소설들 역시 상상 속 현실이지만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중에서 '소생과 탄생 사이'는 인간의 불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죽음을 극복하려 한다. 그런데 어떻게?


과학(의학)기술로 인해서 많은 발전이 있지만, 이 소설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줄기세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와 비슷한 존재로 인해서 손상된 신체를 회복하게 된다. 그런데 과연 그 인간은 소생한 것일까? 탄생한 것일까?


소생이라면 죽음에서 살아났다고 할 수 있지만, 탄생이라고 하면 죽음과 연결되지 않는, 그 전의 존재와는 다른 존재가 된다는 뜻인데...


어쩌면 우리는 불멸의 존재가 되기 위한 노력 중에 뜻하지 않은 일을 겪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과연 인간에게 불멸이란 무엇일까도 생각하게 하고.


이와 비슷한 소설이 '당첨되셨습니다'다. 인간의 신체 일부를 가지고 다시 살려내는 기술이 있다. 그리고 살려내서 다시 살게 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이렇게 인간을 다른 존재로 만드는 기술이 있다면 과연 그 사회는 행복한 사회일까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누나의 에펠탑'이 그렇다. 신체를 조작할 수 있다면, 신체만이 아니라 의식도 조작할 수 있다면,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할까?


원하는 존재가 당사자가 아니라 권력을 지닌 존재라면? 미성년자라고, 판단능력이 없다고 부모가 대신 판단하고 신체나 지적 능력을 다시 부모들 맘대로 돌려놓는다면, 그런 기술이 가능하다면?


'소생과 탄생 사이, 누나의 에펠탑, 당첨되셨습니다'는 이렇게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 있는 사회로 보낸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게 한다.


먼 미래의 일이라고 하겠지만,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복제부터 시작해서 인공지능까지 인간이 어디까지 나아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이런 소설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한다. 미리 소설을 통해서 경험을 하고, 미래에 어떤 사회에서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생각할 수 있다. 소설은, 특히 SF소설은 이렇게 우리에게 미래를 먼저 경험하게 한다.


이 경험을 다른 사람과의 토론을 통해서 현실을 인식하고 삶의 방향을 정하는 쪽으로 만들어가면 된다. 그렇게 SF소설은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이 소설집도 그렇다. 다양한 상황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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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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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제목만으로는 어린이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어린이와 함께 지내면서 겪은 이야기를 쓴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어린이와 멀어진 어른들에게는 그다지 읽을 필요를 느끼게 하지 못하는 책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이 책을 펼치자마자 사라진다. 이 책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거치지 않은 어른이 없고, 어린이와 완전히 접촉을 끊은 어른도 역시 거의 없고, 어린이와 어른은 다른 존재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둘 중 어느 한 존재가 사라져서도 안 되고, 사라질 수도 없다.


그런데도 이 두 존재는 동등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한쪽은 보호와 지도가 필요한 존재고, 한쪽은 보호와 지로를 해야 할 존재라고... 


물론 이 말이 그릇되지는 않았다. 아직 자신의 힘으로 자립할 수 없는 존재, 자립하기 위해서 배워가는 존재가 어린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평생교육을 이야기하는 지금 세상에서 배워야 하는 존재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보호와 지도만이 필요한 존재라고 해서는 안 된다.


보호와 지도가 필요한 존재라고 해도 자신만의 세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어린이는 그 자체로 오롯한, 완전한 존재다. 그렇게 어린이를 대해야 한다.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 하면서 어른도 어른이 된다. '교학상장'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이 책에는 그런 어린이의 세계가 잘 나타나 있다. 어린이의 세계, 그리고 어른의 세계, 함께 살아가는 세계. 가끔 어른들은 어린이는 지도가 필요하다고, 가정교육의 중요성, 학교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마치 자신들은 어린이들의 교육과 관련이 없다는 듯이. 하지만 아니다. 아이 한 명이 자리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들 교육은 사회 몫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린이를 가르치고 키우는 일, 즉 교육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 된다. 가정과 학교는 교육의 출발점일 뿐 결국 책임은 사회가 져야 한다. 그러기 싫어도 사회의 몫으로 돌아오고 만다.(254쪽)


한때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노 키즈 존'(왜 영어로 말하는지, 그냥 아이들출입금지구역이라고 해도 될 것을)이라는 말... 여기에는 부모들이 교육을 잘못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지 않을까. 부모가 아닌 자신들은 상관이 없다는 인식. 하지만 아니다.


'노 키즈 존'이 아니라 아이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활동하면서 배워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의 몫이고,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잘못되었다, 실패했다고 말하기 전에. 저자의 이 말이 가슴에 새겨진다.


나는 교육의 실패를 선언하고 싶다면 세상의 실패를 선언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 분노와 무력감 사이를 오가다 보면 이 나라를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가 버리는 짐을 결국 어린이가 떠안을 것이다.(255쪽)


실패했다고 포기해버리면 그 짐을 다른 세대에게 넘겨버리는 꼴이라는 이 말. 그렇다. 문제는 지금 발생했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도 지금 사람들이다. 어른이든 어린이든. 그러니 희망,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절망을 안고 가는 희망을 지녀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반대말을 찾지 않는다.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은 여성을 도구로 보지 말라는 것이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성별이나 자녀가 있고 없고가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219쪽)


해야할 일, 옳은 일. 어린이라는 세계는 미래를 준비하는 단계만이 아니다. 그들은 그 자체로 온전한 존재다. 온전한 세계다. 그 세계를 인정하고, 그런 세계가 다양하게 마련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어린이라고 모두 동일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어른 역시 어른이라는 개념으로 뭉뚱그려지지 않듯이,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온전한, 오롯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라는 세계'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생각한다. 어린이라는 나 자신도 거쳐온 세계를 통해 다시 우리가 살아갈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그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단지 어린이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 아니다.


어린이와 함께 하면서 겪은 일들을 통해서 저자는 어린이라는 세계는 불완전한 세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한, 오롯한 세계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오롯한 세계를 우리에게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통해서 지도와 보호만이 필요한 어린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한 어린이라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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