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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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제목만으로는 어린이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어린이와 함께 지내면서 겪은 이야기를 쓴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어린이와 멀어진 어른들에게는 그다지 읽을 필요를 느끼게 하지 못하는 책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이 책을 펼치자마자 사라진다. 이 책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거치지 않은 어른이 없고, 어린이와 완전히 접촉을 끊은 어른도 역시 거의 없고, 어린이와 어른은 다른 존재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둘 중 어느 한 존재가 사라져서도 안 되고, 사라질 수도 없다.


그런데도 이 두 존재는 동등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한쪽은 보호와 지도가 필요한 존재고, 한쪽은 보호와 지로를 해야 할 존재라고... 


물론 이 말이 그릇되지는 않았다. 아직 자신의 힘으로 자립할 수 없는 존재, 자립하기 위해서 배워가는 존재가 어린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평생교육을 이야기하는 지금 세상에서 배워야 하는 존재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보호와 지도만이 필요한 존재라고 해서는 안 된다.


보호와 지도가 필요한 존재라고 해도 자신만의 세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어린이는 그 자체로 오롯한, 완전한 존재다. 그렇게 어린이를 대해야 한다.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 하면서 어른도 어른이 된다. '교학상장'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이 책에는 그런 어린이의 세계가 잘 나타나 있다. 어린이의 세계, 그리고 어른의 세계, 함께 살아가는 세계. 가끔 어른들은 어린이는 지도가 필요하다고, 가정교육의 중요성, 학교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마치 자신들은 어린이들의 교육과 관련이 없다는 듯이. 하지만 아니다. 아이 한 명이 자리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들 교육은 사회 몫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린이를 가르치고 키우는 일, 즉 교육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 된다. 가정과 학교는 교육의 출발점일 뿐 결국 책임은 사회가 져야 한다. 그러기 싫어도 사회의 몫으로 돌아오고 만다.(254쪽)


한때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노 키즈 존'(왜 영어로 말하는지, 그냥 아이들출입금지구역이라고 해도 될 것을)이라는 말... 여기에는 부모들이 교육을 잘못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지 않을까. 부모가 아닌 자신들은 상관이 없다는 인식. 하지만 아니다.


'노 키즈 존'이 아니라 아이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활동하면서 배워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의 몫이고,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잘못되었다, 실패했다고 말하기 전에. 저자의 이 말이 가슴에 새겨진다.


나는 교육의 실패를 선언하고 싶다면 세상의 실패를 선언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 분노와 무력감 사이를 오가다 보면 이 나라를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가 버리는 짐을 결국 어린이가 떠안을 것이다.(255쪽)


실패했다고 포기해버리면 그 짐을 다른 세대에게 넘겨버리는 꼴이라는 이 말. 그렇다. 문제는 지금 발생했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도 지금 사람들이다. 어른이든 어린이든. 그러니 희망,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절망을 안고 가는 희망을 지녀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반대말을 찾지 않는다.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은 여성을 도구로 보지 말라는 것이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성별이나 자녀가 있고 없고가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219쪽)


해야할 일, 옳은 일. 어린이라는 세계는 미래를 준비하는 단계만이 아니다. 그들은 그 자체로 온전한 존재다. 온전한 세계다. 그 세계를 인정하고, 그런 세계가 다양하게 마련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어린이라고 모두 동일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어른 역시 어른이라는 개념으로 뭉뚱그려지지 않듯이,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온전한, 오롯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라는 세계'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생각한다. 어린이라는 나 자신도 거쳐온 세계를 통해 다시 우리가 살아갈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그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단지 어린이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 아니다.


어린이와 함께 하면서 겪은 일들을 통해서 저자는 어린이라는 세계는 불완전한 세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한, 오롯한 세계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오롯한 세계를 우리에게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통해서 지도와 보호만이 필요한 어린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한 어린이라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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