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엔 카프카를 - 일상이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
의외의사실 지음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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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편의 문학작품이 나온다. 그렇다면 13명의 작가가 나오는 셈.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이다. 그 작품들을 읽고 그것을 만화로 다시 표현한 책이다.


작가만 언급하면 (작품은 단 한편이기도 하고, 여러 편이 함께 소개되기도 하니까. 또 작품들은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에 있는 책들이라고 하는데,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읽을 수도 있으니까) 체호프, 버지니아 울프,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피츠제럴드, 보르헤스, 이디스 워튼, 무라카미 하루키, 카뮈, 소포클레스, 이탈로 칼비노, 카프카, 가즈오 이시구로다. 


'일상이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이라는 작은 제목이 있는데,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여행이다. 우리들 삶을 찾아가는 여행. 그렇지만 우리가 여행이라고 하면 단단히 마음 먹고, 준비하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일상을 벗어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일을 흔히 여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그런 통념을 뒤집는다. 바로 일상이 여행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 방법이 무엇일까? 책을 읽는 것이다. 언제? 퇴근길에... 아니 출근길에 읽어도 좋다. 점심시간에 읽어도 좋다. 짬짬이 시간을 내어 읽으면 그것이 바로 여행이 된다. 일상이 여행이 된다.


하지만 긴 문학 작품을 일상 생활을 하면서 읽기는 힘들다. 토막내어 읽은 작품들은 읽을 때마다 앞 줄거리를 생각해야 하거나, 등장인물 이름을 잊어버려 다시 앞으로 가서 읽어야 하는 무한 반복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품에 몰입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일상이 여행이 되지 않고, 오히려 여행을 포기하고 일상에 주저앉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문제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겐 시간을 내기가 너무도 힘든데... 그렇다고 문학 작품을 읽는 일을 포기할 수도 없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휴가기간이라든지, 주말을 이용해서 문학 작품을 읽을 생각만 있다면, 이 책은 그렇게 문학 작품을 읽을 동기를 마련하는데 적격이다. 문학 작품으로 가는 여권이다. 그래서 이 책이 바로 '패스포트(passport) 툰(cartoon)'인 것이다.


13편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고 만화로 정리해냈다.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인물에 대한 평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읽은 내용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에 비추어 그 작품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만화란 그림과 글이 적절히 어우러지는 장르 아니던가. 그러니 많지 않은 글에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그림이 곁들어져 문학 작품에 대한 또다른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한 작품씩 퇴근길, 출근길, 점심시간에 읽을 수 있다. 분량이 잠시만 시간을 내도 충분히 읽고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양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리 작품을 읽었다면 더 좋다. 자신이 읽기와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읽지 않았어도 좋다. 왜냐면 이 책을 읽다보면 그 작품을 읽고 싶어질 테니까. 제목에 '카프카'를 인용하고 있지만, 카프카 하면 왠지 신비주의를 연상시키고, 일상에서 벗어난 느낌을 주는 작가 아니던가.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변신'만 해도 그렇고, 그가 쓴 '성'이란 작품을 봐도 도대체 미로 속을 헤매는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카프카뿐만이 아니라 많은 작가가 바로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삶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삶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너무도 모르기에 문학 작품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본다. 그런 엿봄 여행을 통해 내 삶을 발견하려고 한다. 그래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바로 여행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게로 향하는 여행.


그 여행의 티켓이 바로 문학 작품이기도 하고. 문학 작품의 내용을 정리하고, 문학 작품에 나온 글들을 인용하고, 작가에 대한 소개를 하는 3단계 구성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도 만화라는 매체의 친숙성, 가독성에 기대어 문학 작품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고 있으니, 일상을 여행이 되게 하는 이 책, 한번 읽어보자. 


한번에 주욱 읽을 필요 없다. 말 그대로 잠시의 시간을 내어 하루에 한 편씩 읽어도 좋다. 그러면 최소한 13일간 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 책에 나온 작품들을 읽는다면 더 긴긴 시간을,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장소에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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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천 문'이다. 한자어가 병기되어 있지 않고 그냥 한글로만 되어 있다.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게 한 것이 시인의 의도라면 이해하겠지만, 차례를 살펴보면 천문(天文)이라고 한자어가 나와 있다. 그것도 같은 제목의 시가 두 편이다.


  그러니 우리는 한자를 보고 뜻을 유추할 수 있다. 하늘의 글. 또는 하늘의 무늬라고 하는... 한문에서는 문(文)과 문(紋)을 함께 쓴다고 하니, 글과 무늬는 같다고 봐야 한다.


  맞다. 글은 무늬다. 글은 바로 우리들 마음 무늬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한다. 글은 말과 더불어 마음 무늬를 형상화하는 존재다. 그러니 글이나 문이나 함께 할 수밖에 없다.


  하늘의 말이나 하늘의 무늬를 시집 제목으로 삼고 있으면, 시각적인 표현이 많아야 할 것 같은데, 시각적 표현이라고 해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표현들이 넘쳐 나고 있다.


오죽하면 해설에서 이 시집에 나타나는 표현들을 '그의 문장들이 비롯되는 기저 세계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경험의 세계가 아니라 조연호에 의해 창세기가 씌어진, 따라서 달리 말하자면 조연호식 문법에 따라 새로운 통사적 관계를 맺는 어휘들에 의해 새겨지는 세계'(150쪽)라고 하겠는가.


이 정도면 나은데, 이 시집을 관통하는 표현을 해설하는 문학평론가는 '우주가 음사(音寫)된 우리의 세계'라고 하고 있다. (조연호, '아르카디아의 광견' 중 이 시집에서는 94쪽에 나온다)


한 마디로 말하면 참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서 조연호 시를 읽을 때는 '마치 문법책 없이 외국어를 배우는 이가 개별 발화들의 경험에 의해서만 어휘의 의미와 대상어의 문법을 정립해가는 것과 같은 수고로운 과정이 조연호 시의 독자에게는 필요하다'(153쪽)고 한다.


시를 읽을 때 시인이 자신의 언어로 재창조한 세계를 우리들의 언어로 다시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어렵다. 시의 세계를 만나는 일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어떤 사람에게는 어려운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이런 시들을 읽는 재미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아직. 내게는 천문보다는 인문. 사람의 마음을, 사람의 무늬를 쉽게 보여주는 시들이 더 와닿으니...


이 시집에 나온 시 가운데 '악마의 정원사'라는 시를 보자. 정원사는 사람이 아니라 한자를 보면 정원의 역사다. 자신들의 언어로 시인의 언어를 다시 그려서 무늬를 만들어 보길...


    악마의 정원사(園史)


그때 악마는 자신의 정원에

경험한 대로의 천상을 만들고

폭설로서의 나무를 심고 있었다


처음으로 열 손가락 모두를 세우고 자기 얼굴을 할퀴며

붉은 과실은

정신의 타액에 물질의 근심을 섞는다


거식에 대한 남다른 재주

자기 집에 불을 지르는 재주

훨씬 적게 상대를 걱정하는 편지를 쓰는 재주

그런 재주가 오늘의 허기를 눈송이로 채우고 있었다


운동화와 사다리를 합친 나이쯤

애벌레는 헐거운 객지에 대해 어버이가 될 준비를 하고


그때 악마는 정원의 쐐기풀에 종아리가 부어오르고

자기의 거울이 착한 사람을 비추지 못해 엉엉 울었습니다

하지만 가설이기 때문에 아프진 않아요


그가 자신의 길고 아름다운 머리 두 개와 싸우던 길 위엔 다만

오랫동안 심지를 올려둔 저녁놀의 온도로

나무가 날아오른다 곧 정육이 될 짐승처럼 따뜻한 콧김을 품으며

저길 봐, 정든 낙엽이 떨어진다


조연호, 천문. 창비. 2010년. 6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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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2-20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은 말과 더불어 마음 무늬를 형상화하는 존재다.˝ 와! 마음 무늬를 형상화...오늘의 문장으로 기억하고 갑니다.

어려운 시는 역시나 어렵습니다. 저에겐^^;;

kinye91 2021-02-20 09:42   좋아요 0 | URL
저도 시는 참 어려워요. 특히 이런 시는. 그래도 마음에 들어오는 시들이 있어 위안이 돼요.
 
양심 고백 김동식 소설집 4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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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소설집 두 권째 읽다.


읽으면서 이 작가의 상상력이 그냥 공상에 그치지 않고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 소설집의 첫번째 소설인 '인간 평점의 세상'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서열 사회를 사는지 알게 된다. 이놈의 서열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세상이라면, 참 두려운 세상이다. 


수능 점수 하나로 자신의 위치가 매겨지는 이 나라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지식을 추구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험을 잘 봐서 높은 점수를 얻는다는 의미다. 그러니 지혜와는 상관없는, 오로지 서열을 위한 공부만이 있을 뿐이다.


악마에게도 평점을 매길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악마의 복수는? 소설의 결말을 보면 그 다음 이야기는 생략되어 있지만, 상상하면 끔직하다. 아마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지 않은 디스토피아가 펼쳐질 것이다. 그 뒷부분을 상상해서 채워가면서 평점 사회, 서열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생각하면 좋겠다. 


평점이나 서열이 능력주의와 연관될 때 불평등이 평생 족쇄로 사람들을 옥죄게 되면 그 사회는 행복할 수 없는 사회가 된다. 김동식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외계인이 아주 단순한 일을 시키면서 최저임금만 준다는 발상. 그런데 근로조건이 너무 좋아 외계인이 제시한 일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상상. '톡 쏘는 맛'이란 소설은 노동에 관한 이야기로 읽히지만, 외계인이 최저임금을 준다는 발상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기본소득과 연결지으면, 기본소득이 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은 상상력으로 외계인을 불러냈지만, 우리는 그 외계인에게서 실현 불가능한 공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본소득 또는 기본배당이라는 우리 삶이 최저선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보장장치를 보게 된다.


김동식 소설집 첫권에서도 그랬지만 기발한 상상력이다. 그런데 단지 기발한 상상력에 그치지 않고 자꾸 현실을 소환한다.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경쟁, 경쟁,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모습, 내 삶만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살아가는 태도 등등... 소설을 읽으며 우리 사회 곳곳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전혀 다른 세계가 소설 속에 펼쳐지는데도 이상하게 자꾸 우리 사회를 떠올리게 된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제목이 된 소설 '양심 고백'은 우리가 써 나갈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양심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더 필요한 양심 고백은 무엇일까?


그렇게 양심 고백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는 점점 좋은 쪽으로 변해가지 않을까? 자본의 논리가 아닌, 인간의 논리, 한정된 지구, 우주의 논리로 우리 삶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짧은 소설들로 경쾌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집이다. 재미있게 읽으면서 깊이 있게 생각할 수도 있는 소설들이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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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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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히다. 이런 상상력이라니. 이걸 상상해서 소설로 쓰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상과학 소설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현실주의 소설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실험소설이라고 하기도 그런데, 억지로 분류를 해보자면 그래도 공상과학소설 쪽에 속하지 않나 한다.


이 소설집에 나타나는 사건들이 지금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까. 가령 제목이 된 '회색 인간'만 해도 지저 인간들이 땅 위에 사는 인간들 1만 명을 납치해서 땅을 파는 일을 시키는 것이다. 도구라고는 곡괭이 하나뿐. 여기다 기본 편의시설은 전혀 없고, 식량이라곤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빵이 전부.


반항을 하면 죽음.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온갖 디스토피아 소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인간들이 납치돼서 전혀 낯선 상황에 직면하는 모습들을 도처에 표현하는 소설들은 김동식 소설에서 처음 만난다 싶다. 


그가 쓴 단편 소설들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전혀 상상하지 못한 현실에 직면한 사람들을 다룬다.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류애를 발휘하기도 하고, 식인 풍습을 유지하기도 하고, 꾀를 써서 모면하려 하기도 하는데...


'회색 인간'에서는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들이 예술을 포기하지 못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노래도, 그림도, 글도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인간들. 그들은 이제 더이상 회색이 아니라고 한다. 상황이 전혀 변하지 않았음에도.


이 소설의 이 결말은 인간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과연 우리는 먹을거리만 해결되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다움이란 먹을거리보다도 더 중요한 그 무엇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회색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무인도에 남겨진 사람들. 그들이 살아갈 때도 역시 예술이 사라지지 않는다. 돈이 최고인 것 같지만, 그 속에서도 실용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예술활동이 경제 영역에 자리잡는다.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에 인간을 놓아두고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까를 상상해서 쓴 소설들이 다수 있는 반면에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소설들도 있다.


그런 모습 중에 옛이야기를 비틀어 쓴 '신의 소원'이란 소설을 보면 참, 인간들의 이기심에 대한 비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통해서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신과 관련된, 또 외계인과 관련된 예전부터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김동식 식으로 재구성해서 소설로 썼는데, 그 결말이 예상을 훨씬 벗어나 재미를 준다. 죽지 않음을 소원으로 빈 인간에게 죽지 않게 해주지만 늙음은 주지 않는 신. 그런데 김동식은 이를 비틀어서 신을 외계인으로 바꾸고, 인간에게 영원한 삶을 주는데, 바로 영원한 삶이 시작되는 바로 그 시점의 나이에 그대로 머물게 한다.


그때 나이가 1살이었다면 그의 몸은 계속 한살이다. 정신은 성숙해져도 몸은 한살. 한살짜리 몸으로 살아야 한다. 그때 나이가 20이었다면 계속 20이다. 80이었으면 계속 80이고. 그렇다면 아이들이 태어날 수 있을까? 태어날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지구가 견뎌내지 못할 것이기때문.


그렇다면 이런 사회가 과연 행복할까? 인간이 영원불멸을 꿈꾸었지만 이런 식의 영원불멸이 과연 인간을 행복으로 이끌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결말에서는 이것이 저주라고 하는데... 


그래서 이 소설집은 처음 한두 편을 읽다가 그 다음 편부터는 결말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하면서 읽게 된다. 내 예상과 분명 다른 결말을 이끌어낼텐데, 내가 생각한 결말과 얼마나 다른지를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아주 좋다.


아주 짤막한 소설들이지만 그 소설들을 통해서 몇몇 주제를 찾아내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읽는 재미도 있고, 또 여러가지를 생각하게도 해준다.


참으로 다양한 상상력. 기존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그럼에도 현실을 자꾸 생각하게 하는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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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의 사회사 - 가정상비약에서 사회악까지, 마약으로 본 한국 근현대사
조석연 지음 / 현실문화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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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지만 무엇이 마약일까 하면 별로 알고 있지 않다. 몇 년 전이던가, 아니 지금도 프로포폴이란 마취제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분명 의약품인데 의사 처방 없이 사용하면 마약으로 취급되는 약. 


그렇다면 마약은 마약이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었느냐에 따라 마약이냐 약이냐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마약에 어떤 것이 있을까? 언론을 통해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은 아편, 대마초, 필로폰 정도다. 그것도 정확한 마약의 명칭이 아닐 수도 있다. 필로폰이 일본식으로 '히로뽕'이라고 불리고, 그 이름이 상표로 판매가 되기도 했다고 하니, 마약이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규정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편도 마찬가지다. 아편은 조선시대 말까지만 해도 가정에서 흔히 쓰던 상비약이었다고 한다. 진통제로써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그래서 가정에서 쓸 수 있었던 구급상비약 정도였던 것. 하지만 이 아편이 목숨을 끊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하니, 아편의 독성에 대해서는 우리 조상들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다만 이렇게 가정 상비약으로 쓰인 아편이 일제시대가 되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고, 조선을 아편 생산지로 만든 일제는 그것으로 돈도 벌고 또 상대를 무력화 시키는 작업도 했던 것이다. 아편이 마약으로서 자리잡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아편은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직후까지 우리나라 마약의 역사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다가 아편을 대체하는 식물이 나타났는데, 바로 대마라고 한다. 대마초로 만들어 피우면 환각작용을 일으킨다는 식물.


이 대마초가 유행하게 된 것이 미군으로부터였다고 하니, 그것 참, 일제로부터는 아편의 유행이, 일제를 대신한 미군으로부터는 대마초가 유행하다니, 마약의 역사와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이 함께 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미군이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이 우리나라 대마초라고 하니, 미군들의 수요에 의해서 대마초로 공급하게 되고, 따라서 시골에서 식물로 키웠던 대마가 마약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 1970년대라고 한다. 나라에서 대대적으로 대마초 소탕 작전을 펼치고, 언론을 통해서 대마초가 마약임을 인식시켰다고 하니...


마약은 어떤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와 함께 하는 식물이냐, 규제되는 마약이냐가 결정된다. 이렇게 마약 단속을 하는 정부 차원의 규제가 국민 개개인의 건강을 위함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권 안정을 위해서 하는 정책인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그것은 마약에 대한 규제에 집중했지, 마약을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하는 치유에는 소홀했음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마약을 국민 건강보다는 자신들의 정권 유지에 이용한 국면이 많다는 것이다. 1980년대 들어서는 이제 아편과 대마초는 수그러들고, 필로폰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것도 또 일본하고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마약의 역사에서 일본과 미국을 빼면 이야기할 수가 없다는 것, 이렇게 마약도 국제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이 자국에서는 규제를 강하게 하니까 필로폰을 제조하는 곳을 우리나라에 두고 밀수입을 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필로폰을 만들어 일본에 밀수출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이 우리나라와 협력하여 필로폰 수입을 막는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


일본으로 가지 못하는 필로폰. 어디로 가겠는가. 당연히 국내에서 사용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당시 정책가들이 생각했어야 하는데, 일본과 협정을 맺으면서 그 이후는 생각을 하지 못했나 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필로폰 사용자가 급증하게 되었다고 한다. 


쿠테타로 집권한 군사독재정권에세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은 마약 단속을 비로한 사회정화 활동을 하는 것. 그들은 국민건강보다도 정권 유지를 위해 필로폰 단속을 실시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해방직후부터 1980년대까지 나라에서 추진한 강력한 마약 단속 정책으로 인해 마약에 대해서는 국민들 모두가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게 되었다.


아직까지 마약청정국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이런 역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역대 정책들이 규제에는 강했지만 치유에는 소홀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이렇게 이 책은 조선 말기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펼쳐진 마약에 대한 인식과 규제 정책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여전히 마약은 진행형이지만, 의약품으로서 역할을 하면 약이 되고, 개인적으로 남용하면 마약이 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또 중독된 사람들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이제는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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