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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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히다. 이런 상상력이라니. 이걸 상상해서 소설로 쓰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상과학 소설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현실주의 소설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실험소설이라고 하기도 그런데, 억지로 분류를 해보자면 그래도 공상과학소설 쪽에 속하지 않나 한다.


이 소설집에 나타나는 사건들이 지금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까. 가령 제목이 된 '회색 인간'만 해도 지저 인간들이 땅 위에 사는 인간들 1만 명을 납치해서 땅을 파는 일을 시키는 것이다. 도구라고는 곡괭이 하나뿐. 여기다 기본 편의시설은 전혀 없고, 식량이라곤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빵이 전부.


반항을 하면 죽음.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온갖 디스토피아 소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인간들이 납치돼서 전혀 낯선 상황에 직면하는 모습들을 도처에 표현하는 소설들은 김동식 소설에서 처음 만난다 싶다. 


그가 쓴 단편 소설들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전혀 상상하지 못한 현실에 직면한 사람들을 다룬다.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류애를 발휘하기도 하고, 식인 풍습을 유지하기도 하고, 꾀를 써서 모면하려 하기도 하는데...


'회색 인간'에서는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들이 예술을 포기하지 못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노래도, 그림도, 글도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인간들. 그들은 이제 더이상 회색이 아니라고 한다. 상황이 전혀 변하지 않았음에도.


이 소설의 이 결말은 인간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과연 우리는 먹을거리만 해결되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다움이란 먹을거리보다도 더 중요한 그 무엇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회색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무인도에 남겨진 사람들. 그들이 살아갈 때도 역시 예술이 사라지지 않는다. 돈이 최고인 것 같지만, 그 속에서도 실용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예술활동이 경제 영역에 자리잡는다.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에 인간을 놓아두고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까를 상상해서 쓴 소설들이 다수 있는 반면에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소설들도 있다.


그런 모습 중에 옛이야기를 비틀어 쓴 '신의 소원'이란 소설을 보면 참, 인간들의 이기심에 대한 비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통해서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신과 관련된, 또 외계인과 관련된 예전부터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김동식 식으로 재구성해서 소설로 썼는데, 그 결말이 예상을 훨씬 벗어나 재미를 준다. 죽지 않음을 소원으로 빈 인간에게 죽지 않게 해주지만 늙음은 주지 않는 신. 그런데 김동식은 이를 비틀어서 신을 외계인으로 바꾸고, 인간에게 영원한 삶을 주는데, 바로 영원한 삶이 시작되는 바로 그 시점의 나이에 그대로 머물게 한다.


그때 나이가 1살이었다면 그의 몸은 계속 한살이다. 정신은 성숙해져도 몸은 한살. 한살짜리 몸으로 살아야 한다. 그때 나이가 20이었다면 계속 20이다. 80이었으면 계속 80이고. 그렇다면 아이들이 태어날 수 있을까? 태어날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지구가 견뎌내지 못할 것이기때문.


그렇다면 이런 사회가 과연 행복할까? 인간이 영원불멸을 꿈꾸었지만 이런 식의 영원불멸이 과연 인간을 행복으로 이끌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결말에서는 이것이 저주라고 하는데... 


그래서 이 소설집은 처음 한두 편을 읽다가 그 다음 편부터는 결말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하면서 읽게 된다. 내 예상과 분명 다른 결말을 이끌어낼텐데, 내가 생각한 결말과 얼마나 다른지를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아주 좋다.


아주 짤막한 소설들이지만 그 소설들을 통해서 몇몇 주제를 찾아내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읽는 재미도 있고, 또 여러가지를 생각하게도 해준다.


참으로 다양한 상상력. 기존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그럼에도 현실을 자꾸 생각하게 하는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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