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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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하면 내게는 칼 세이건이 쓴 책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우리나라 늦여름부터 가을이면 지천에서 볼 수 있는 꽃인 코스모스도 떠오르지만. 그 꽃만큼이나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는 내게 코스모스의 대명사라고 할 만할 정도였다.


그만큼 칼 세이건의 책이 내게 경외감을 주었는데... 그 내용을 이해하고 말고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 책을 읽는다는 사실에서 행복을 느꼈고, 광대한 우주를 세이건과 함께 여행하는 느낌을 지니곤 했다. 지금도 그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또다른 책인 [코스모스]를 봤다. 어라, 세이건 책이 아니네. 앤 드루얀. 어떤 내용이지. 작은 제목이 있다. '가능한 세계들'


우주 속에서 우리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지닌 별을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인가? 제목이 코스모스니 우주에 관한 내용이리라 추측을 하고 빌렸다. 읽어야지, 당연히.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와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날지 궁금해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기 전에 저자를 보니, 칼 세이건과 함께 작업을 했던 사람, 세이건이 죽기까지 함께 살았던 사람이다. 그들은 함께 우주를 탐색하고, 과학을 대중들에게 알리려는 일을 했던 사람이다. 앤 드루얀이 [코스모스]란 제목으로 여러 번의 작업을 했음도 작가 소개에 나와 있으니 책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진다.


이 기대는 감탄으로 바뀌는데는 책장을 얼마 넘기지 않아서였다. 칼 세이건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장에서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말. 그 말 하나면 이 책을 정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말 하나로 과학자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고.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26쪽)


이 말을 실천하는데 칼 세이건만큼 행동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앤 드루얀도 마찬가지다. 이 책 역시 이해하기 쉽게 쓰였다. 과학은 골방에서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만에게 해당하지 않고 우리 인류 모두에게 필요한 학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듯이.


우주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우주를 이야기하기 위해 앤 드루얀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그리고 우리 지구가 걸어온 역사와 인물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지금 인류세라는 절명위기 시대를 겪고 있지만, 지구 역사, 우주 역사를 보면 그런 일들은 늘 있었고, 그것을 거쳐온 과정이 지금까지 우주 역사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절망만 할 필요도 없다. 많은 과학자들이 예언을 했다. 이 책에 나오는 카산드라 이야기처럼, 과학자의 예언을 믿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반대하는 이익집단들이 있었다. 하지만, 카산드라의 예언은 비극적일망정, 사실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의 예언은 실현된다.


과학자들의 예언은 예언이라기보다는 예측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에 기반한 증거를 해독해서 그 증거를 토대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예측한다. 그러므로 예측은 행동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즉 예측을 통해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앤 드루얀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자연을 완전히 경험하지 못하도록 막는 어둠의 커튼을 살짝 들추는 방법을 하나 안다. 그것은 바로 과학의 기본 규칙들이다. 어떤 발상이든 실험과 관찰로 확인해 볼 것, 시험을 통과한 발상만 받아들일 것, 통과하지 못한 발상은 버릴 것, 어디든 증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의심할 것. 권위에 대해서도. 이 규칙들만 지킨다면, 코스모스는 우리 것이다." (33쪽)


자연을, 우주를 완전히 안다는 생각을 버린다. 그저 살짝 들출 뿐이다. 그런데 살짝 들추는 방법도 쉽지는 않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증거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가. 또한 증거가 있음에도 권위에 굴복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과정이 이 책에도 나와 있지만, 역사는, 코스모스의 역사는 그러한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옳은 길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 결과다. 그런 과정을 감동있게 표현하고 있기도 한데...


특히 바빌로프(4장.바빌로프)에 관한 부분에서는 지금 우리 인류가 어떠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굶주림 앞에서도, 굶주려 죽어가면서도 인류를 위해 씨앗(종자)를 먹지 않았던 학자들. 바빌로프의 동료들. 


그들은 인류가 굶주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종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고, 그 종들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세계를 돌아다니면 세계의 씨앗들을 모아두었다. 전쟁으로 굶주림에 시달릴 때 그 씨앗들을 먹으면 굶어죽을 일이 없을텐데도, 그들은 미래를 위해서 굶어죽는 길을 택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알기에, 그 미래를 파괴하면서 현재를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 과학자들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하는 태도 아닌가. 그것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이 택해야 하는 천형과도 같은 윤리다. 그 윤리를 저버리면 이 책에서도 말하지만 (10장, 두 원자 이야기)원자폭탄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데 참여한 데서 더 나아가 더욱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텔러와 같은 과학자처럼 된다.


로트블렛이라는 과학자는 전쟁이 끝나자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하는데, 그보다 더한 폭탄을 개발하는 쪽으로 나아가는텔러와 같은  과학자도 있다고 하니...참고로 아인슈타인이 마지막으로 서명한 문서가 핵개발을 반대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인류가 합심하자고 하는 버트런드 러셀이 쓰고 로트블렛이 발표한 문서였다고 한다. 


텔러라는 과학자와 아인슈타인 또는 로트블렛이라는 과학자가 걸어간 길은 다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은 바로 아인슈타인과 로트블렛이 걸어간 길. 즉 과학이 파멸의 길로 가지 않게 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의식하는 과학자. 그리고 그런 과학을 깊은 의미까지 이해해야 하는 우리들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 과학자들은 예측을 했다. 그들을 카산드라로 만들지 않을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힘을 합쳐 그들의 목소리에 반응해야 한다. 그래야만 예측을 통해 결과가 바뀔 수 있게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힘만으로도 결과는 엄청나게 바뀔 수 있음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앤 드루얀이 쓴 이 책, 광대한 우주 이야기가 결국 우리 인간 이야기임을, 우리 역시 우주임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멀리 별을 보아도 좋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보아도 좋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존재들을 보아도 좋다. 우리는 모두 우주니까.


그런 코스모스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고, 또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 앤 드루얀과 칼 세이건이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칼 세이건을 만날 수 있다는 행복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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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을 읽다가 한 시를 읽으며 갑자기 권영길 전 의원이 했던 말,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란 말이 떠올랐다.


  세상이 민주화됐다. 그랬다. 형식적, 또는 절차적 민주주의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독재정권이 아니다. 우리 손으로 뽑은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는 세상이다.


  우리 손으로 뽑았다? 이 말은 대의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뜻이고, 우리 손으로 뽑았으니, 그들은 우리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살림살이는 나아져야 한다. 나아졌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 손으로 뽑은 정치인들에게 만족감을 표할 수 있다. 그런 정치인을 뽑은 우리들 자신에게도 만족할 수가 있고.


지금 2021년에 다시 한번 이 말을 떠올려본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그래요, 나아졌어요. 라고 말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코로나19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꼭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이상하게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숙해 가고, 이제는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당당하게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이때에도 빈익빈 부익부는 착실히 진행되어 네라고 대답할 수가 없다.


우리네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는데, 나라는 선진국이다.


최저임금이 만 원도 안 되지만, 그 최저임금조차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고, 여전히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일하러 가서 집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저녁을 맞이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노동자와 더불어 자영업자도, 또 등록되지 않은, 통계에 잡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생계에 허덕이고 있는 지금이지 않나 싶다. 


지금 읽은 시집은 오월시 동인시집 제4집이다. 2020년에 다시 발간되었는데, 원래는 1984년에 발간된 시집이었으리라. 머리말에 지난해(1983년)이라는 말이 나오니.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38년 전 시다. 독재 정권을 극복하고 민주 정치를 하고 있는 지금에는 어울리지 않아야 할 시집이다. 


그런데 아니다. 아니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특히 이 시집에 나오는 시 '김용오 씨'를 보면 정말 지금 우리 사회에는 '김용오 씨'와 같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안 되지 않나. 이렇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김용오 씨'들이 잘사는 사회가 되었어야 하지 않나. 온갖 부정으로 감옥에 간 사람을 특별사면이다 뭐다 감옥에서 나오게 하려고 하는 움직임보다는, 이런' 김용오 씨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어야 하지 않나.


김용오 씨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데 김용오 씨는 아파트와 학교를 단골로 구두닦기와 구두수선을 했다. 고향은 충남 공주인데 거기에 유년기를 보냈던 고아원이 있다고 했다. 열세 살 때 고아원을 뛰쳐나와 구두닦이 십이년 째, 장래 소망은 제화점을 차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지런히 열심히 구두를 닦았다. 하루에 보통 오십 켤레씩. 전남 해남에서 올라와 양장점에서 일하는 아가씨를 꼬였다는 그의 어린 아내는 늘상 아이를 업고 교무실에 들어와 구두를 받아갔다. 그들의 아이가 자라듯이 그들의 저축도 부쩍부쩍 늘어서, 드디어 소원성취하는 모습 가까이서 보려고 나는 잔뜩 기다렸다. 그러나 갑자기 생선 궤짝을 나르던 그의 형의 오토바이가 사람을 치이자 닦아놓은 일터를 팔아넘겨 그 자리 값을 형수에게 건네고 다른 일터를 찾아 떠났다. 

(최두석 외, 다시는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그림씨. 2020년. 16쪽.) 


아,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하는 질문에 바로 이런 김용오 씨들이 '네, 나아졌어요.' 하는 세상은 정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일텐데... 이렇게 자신의 삶을 위해 일하는 김용오 씨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또 삶터를 잃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일텐데...


지금 우리 사회, 38년 전 김용오 씨는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 아니, 그 자식은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시를 읽으며 그런 질문을 하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김용오 씨와 그 자식들이 생계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민주주의 사회 아니던가. 


민주주의는 자유만을 이야기하는 사회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날개로 나는 사회여야 한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그런 사회, 지금 우리는 살고 있는가?


권영길 전 의원이 했던 말, 지금 다시 하고 싶어진다. "살림살이들 좀 나아지셨습니까?" "네."라고 대답하고 싶은데... 정말, 그렇게 대답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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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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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총 7편의 소설이 실렸는데, 다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고 있는 일들이 소설에 담겨 있으니..,


우선 세계적으로 한국 영화, 또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이 높아졌는데, 그렇게 높아진 위상 속에서도 여전히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영화의 화려한 모습 뒤에 드러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 물론 소설은 흥행 영화의 뒷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흥행 영화에서도 스탭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는 많은 언론보도를 통해서 기사화됐지만, 소설에서는 그보다는 독립영화를 소재로 삼아, 독립영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을 하는 때에 오히려 독립영화관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 독립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 자신이 추구하는 영화를 할 수 없게 되는 현실. 너무도 힘든 독립영화의 현실 속에서 그럼에도 독립영화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


어쩌면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거들먹거리는 우리나라에서 그늘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 이들도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몇 편이 세계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고 수많은 상도 받고 또 돈도 벌지만, 사실 영화라는 산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처럼, 선진국이라는 이름 아래 알려지지 않은 먹고살기 위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서이제가 쓴 '0%를 향하여'는 영화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대상을 받은 전하영이 쓴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소설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 '조명등'이라는 말에서 남들 눈을 의식하는 삶이라는 생각을 한다. '많은 시간'에서는 그렇게 사람들이 보내야만 했던 시간. 자신을 찾기 위한 시간을 생각하고, '보냈다'는 말에서 과거형이네, 이제는 자신의 삶을, 남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삶을 살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소설의 결말 부분은 아직도 '조명등 아래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어쩌면 내 삶만이 아니라 남들의 삶도 '조명등 아래서' 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사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적 관계를 떠나기 힘든 존재이기에 어느 정도는 남을 의식하고 살 수밖에 없다. 남을 완전히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다만, 그 과정을 깨닫고 서서히 자신과 남의 관계에서 주체성을 찾아가야 한다. 그것이 성장이다. 소설은 그 점을 보여주고 있지만, 또한 그 성장이 얼마나 힘든지도 보여주고 있다. 


김지연이 쓴 '사랑하는 일'과 한정현이 쓴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은 성소수자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성소수자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좀더 오랜 시간이 걸려야 과거의 이야기로, 그때는 그랬지라는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기에 젊은 작가들 소설에서 자주 다뤄지는 소재다. 소설 소재로 자주 다뤄진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성소수자 문제에서 우리 사회가 한발짝 더 나아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만, 한정현의 소설에도 나오고 있듯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물론 김지연의 소설에서는 핍박받는 성소수자의 모습보다는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성소수자가 나온다. 세상이 많이 변했는데, 그러한 시대에 따른 성소수자의 삶을 잘 보여주는, 그럼에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 한정현이 쓴 소설이다. 한정현의 소설은 그래서 울림이 있다. 


여기에 자식 교육 문제도 만만치 않다. 박서련이 쓴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이라는 소설을 보면 참 씁쓸하다. 이 소설에 나오는 엄마는 문제적 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회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인물.


모든 것을 자식에게 바치는, 자식이 잘 되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일을 하는 그런 사람. 하지만, 그런 엄마에게 엄마가 욕으로 자리매김된 게임 현실은 충격일 수밖에 없다.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한다고 여기던 엄마, 그런 '엄마'라는 말이 욕이, 그것도 심한 욕이 될 수밖에 없는 모습.


이 소설들에서 다룬 현실이 소설 속이라고? 허구라고?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음을 젊은작가들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젊은작가수상집은 우리 사회가 지닌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비판하기 위해서, 무엇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기보다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특히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세계를 보면서 우리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영화를 보듯이, 또는 거울을 보듯이 보게 된다.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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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그림들 - 파란의 시대를 산 한국 근현대 화가 37인의 작품과 삶
조상인 지음 / 눌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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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그림들이 어찌어찌 하여 간신히 살아남아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작품도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그림들은 모두 살아남은 그림'들'이다.


그림이 물질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고, 우리들에게 다가와 감동을 준다는 면에서 살아남았다는 말을 한다면,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은 그야말로 살아남은, 앞으로도 살아남을 작품들이다.


처음 듣는 작가도 있고, 처음 보는 그림도 있지만, 그 자체로 소중하다. 무더위에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 안에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하고,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을 한 책을 통해서 만날 수도 있다.


37인의 한국 근현대 작가를 다루고 있는데, 나혜석으로 시작하지만, 아쉽게도 여자 화가들은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이성자, 최욱경 정도다). 아직까지도 남자 화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아마도 시간이 더 흐르면 살아남은 그림'들'에 여성 화가들의 작품들도 나오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작가의 일생과 그가 지닌 특성, 그리고 작품이 소개되어 있어서 많은 작품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게 한다. 작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거의 연대기 순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 물론 주제로 각 장을 나누고 있지만, 소개하는 작가들 순서는 거의 연대기 순이라고 보면 된다 - 우리나라 미술사의 흐름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다.


참 많은 일을 겪은 우리나라, 그것도 전쟁의 참혹함을 겪었기에 유실된 작품도 많다. 또한 잃어버린 작가들도 많다. 그리고 작가들의 생애에서 지우고 싶은 일들도 많았으리라. 하지만, 그런 일들을 겪고도 살아남은 작품'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보면 우리나라 추상미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 그냥 추상미술하면 우선 이해 못할 작품들이라고 멀리 하게 되는데, 이 책은 왜 그런 추상미술로 나아가게 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그렸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어서 추상미술이 전문가들만이 감상하는 미술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추상미술을 보는 눈도 키워주고 있다. 그 점이 좋다. 우리나라 미술에서 추상미술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으니, 이러한 추상미술에 대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 점, 이 책이 지닌 장점이다.


그림 하면 서양 미술가들을 먼저 떠올리는데, 그런 서양 미술가들만큼이나 좋은 미술가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음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으니, 이 책은 우리 미술들이 계속 살아남아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해주고 있고, 또한 우리로 하여금 우리 미술로 한발 다가갈 수 있도록 권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집 안에서 우리나라 근현대사 미술 작품들을 훑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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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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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1호면 좋은 줄 아는 시대가 있었다. 반대로 1호면 안 좋다고 인식하는 때도 있었다. 하여간 숫자를 붙이고, 그 숫자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살았던 과거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에 심심풀이로 우리나라 국보 제1호는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아이 때는 헷갈리기 마련, 숭례문이 남대문인지도 잘 모르는데, 여기에 동대문과 남대문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남대문이다, 동대문이다 말다툼을 한 적도 있었다.


국보를 지정하고 1호라고 하면 굉장히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냥 편의대로 붙인 순서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숫자로 가치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국보를 지정하면서 굳이 번호를 붙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국보나 보물 지정에 번호는 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국보면 국보, 보물이면 보물이면 되지, 무슨 몇번 몇번 하는 번호를 매기고 그런단 말인가.


하여든 국보하면 가끔 이렇게 1호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1호를 바꾸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얼핏 생각하면 번호에 가치를 부여하는 우리나라에서 국보에서 번호를 빼지 못하겠으면 정말로 문화재 위원회나 국민들에게 물어서 번호를 재지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정말로 이렇게 실행하지는 않겠지. 국보면 모두가 소중한 문화유산인데, 그것들을 다시 가치로 경중을 매기고, 순서를 정한다는 행위 자체가 국보에 대한 모독이니)


이 책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기자가 자신의 관심 분야에 천착해 국보라는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관해, 그 역사에 관해 썼다.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글이 읽기 쉽다. 잘 읽힌다. 그리고 내용이 방만하지 않고 짤막하게 핵심을 잘 전달한다. 게다가 국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곁들여서 더 좋다.


꼭 국보로 지정되지 않았어도 관련된 다른 문화유산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다. 그 점이 이 책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제시대를 거치고, 전쟁을 거쳐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기도 했겠지만, 그만큼 우리 문화유산을 사랑하고 아낀 사람들도 있어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문화재를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다.


그런 문화재를 통해서 우리 역사를 만나고, 우리 조상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한 부분이 끝날 때마다 '국보 토막 상식'이라고 해서 그동안 잘 몰랐던 점이나 궁금했던 점을 알려주고 있어 좋다.


국보에 관한 내용은 알고 있는 사실도, 몰랐던 부분도, 아직 확실히 정리가 안된 부분도 있으니 책을 읽으며 찾아보면 더 좋을 듯하고, 여기서는 '국보 토막 상식'에서 다루는 내용만 소개한다.


아마도 평소에 알고 싶었던 점들이 아닐까 한다.


숭례문은 왜 국보 1호인가(56-59쪽)

세 번이나 놓친 몽유도원도 (96-101쪽)

전쟁을 이겨낸 국보(146-151쪽)

고유섭, 국보 연구의 선각자(186-191쪽)

국보 신고와 보상금 (228-233쪽)

국보 도난의 역사(268-273쪽)

국보 지정의 문제점(310=313쪽)

국보의 가격(360-363쪽)


이 국보 토막 상식만 읽어도 재미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 아쉬움이라고 해야 하나? 훈민정음 해례본이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책 말고, 한 권이 더 발견되었다고 했는데, 보상 문제로 지금은 어디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세계에서 지금까지는 딱 두 권밖에 없는 책인데, 이미 간송미술관에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70호로(번호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지정이 되었으니, 발견된 책도 국가에서 사들여도 되었을텐데... 1000억을 요구한 소장자로 인해 무산되고,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하니... 이거야 원.


국보 신고 부분을 보니, 보상금이 1억이 최대라고 하는데(233쪽), 그동안 개정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2020년 초판이니, 아마도 개정이 안 되었다고 봐야겠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1조 정도의 가지가 있다고 하니, 그 1/10인 1000억과 보상금 1억은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해외로 반출만 안 되면 국보 소장자도 판매를 할 수가 있다고 하는데... 국가에서 이 문제는 현명하게 잘 해결해서, 또다른 훈민정음 해례본이 우리들에게도 공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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