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을 읽다가 한 시를 읽으며 갑자기 권영길 전 의원이 했던 말,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란 말이 떠올랐다.


  세상이 민주화됐다. 그랬다. 형식적, 또는 절차적 민주주의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독재정권이 아니다. 우리 손으로 뽑은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는 세상이다.


  우리 손으로 뽑았다? 이 말은 대의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뜻이고, 우리 손으로 뽑았으니, 그들은 우리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살림살이는 나아져야 한다. 나아졌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 손으로 뽑은 정치인들에게 만족감을 표할 수 있다. 그런 정치인을 뽑은 우리들 자신에게도 만족할 수가 있고.


지금 2021년에 다시 한번 이 말을 떠올려본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그래요, 나아졌어요. 라고 말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코로나19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꼭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이상하게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숙해 가고, 이제는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당당하게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이때에도 빈익빈 부익부는 착실히 진행되어 네라고 대답할 수가 없다.


우리네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는데, 나라는 선진국이다.


최저임금이 만 원도 안 되지만, 그 최저임금조차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고, 여전히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일하러 가서 집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저녁을 맞이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노동자와 더불어 자영업자도, 또 등록되지 않은, 통계에 잡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생계에 허덕이고 있는 지금이지 않나 싶다. 


지금 읽은 시집은 오월시 동인시집 제4집이다. 2020년에 다시 발간되었는데, 원래는 1984년에 발간된 시집이었으리라. 머리말에 지난해(1983년)이라는 말이 나오니.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38년 전 시다. 독재 정권을 극복하고 민주 정치를 하고 있는 지금에는 어울리지 않아야 할 시집이다. 


그런데 아니다. 아니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특히 이 시집에 나오는 시 '김용오 씨'를 보면 정말 지금 우리 사회에는 '김용오 씨'와 같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안 되지 않나. 이렇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김용오 씨'들이 잘사는 사회가 되었어야 하지 않나. 온갖 부정으로 감옥에 간 사람을 특별사면이다 뭐다 감옥에서 나오게 하려고 하는 움직임보다는, 이런' 김용오 씨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어야 하지 않나.


김용오 씨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데 김용오 씨는 아파트와 학교를 단골로 구두닦기와 구두수선을 했다. 고향은 충남 공주인데 거기에 유년기를 보냈던 고아원이 있다고 했다. 열세 살 때 고아원을 뛰쳐나와 구두닦이 십이년 째, 장래 소망은 제화점을 차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지런히 열심히 구두를 닦았다. 하루에 보통 오십 켤레씩. 전남 해남에서 올라와 양장점에서 일하는 아가씨를 꼬였다는 그의 어린 아내는 늘상 아이를 업고 교무실에 들어와 구두를 받아갔다. 그들의 아이가 자라듯이 그들의 저축도 부쩍부쩍 늘어서, 드디어 소원성취하는 모습 가까이서 보려고 나는 잔뜩 기다렸다. 그러나 갑자기 생선 궤짝을 나르던 그의 형의 오토바이가 사람을 치이자 닦아놓은 일터를 팔아넘겨 그 자리 값을 형수에게 건네고 다른 일터를 찾아 떠났다. 

(최두석 외, 다시는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그림씨. 2020년. 16쪽.) 


아,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하는 질문에 바로 이런 김용오 씨들이 '네, 나아졌어요.' 하는 세상은 정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일텐데... 이렇게 자신의 삶을 위해 일하는 김용오 씨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또 삶터를 잃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일텐데...


지금 우리 사회, 38년 전 김용오 씨는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 아니, 그 자식은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시를 읽으며 그런 질문을 하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김용오 씨와 그 자식들이 생계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민주주의 사회 아니던가. 


민주주의는 자유만을 이야기하는 사회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날개로 나는 사회여야 한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그런 사회, 지금 우리는 살고 있는가?


권영길 전 의원이 했던 말, 지금 다시 하고 싶어진다. "살림살이들 좀 나아지셨습니까?" "네."라고 대답하고 싶은데... 정말, 그렇게 대답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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